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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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그런 글들이 마구 쏟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것은 앞서 읽은 사람들의 좋은 평 때문이었다. 이 전에 유미리의 무슨 책을 읽었었더라. 아버지를 죽이는 소년의 얘기를 읽은 적 있는데, 가족시네마도 읽었었고, 또 읽은 게 있나. 그런 책들을 읽고 좋다는 생각 하지 못해서, 유미리의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지금의 유미리는 여전할까, 궁금해진다. 이 전에 읽은 소설이 너무 냉랭하고 건조하다고까지 느꼈었는데, 그게 에세이 속에서는 지나치게 일찍 나이 들어 버린 어린 아이가 보이는 듯해서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안쓰럽다. 소설 속에 비치는 작가는 그런 안쓰러움의 표현 매몰차게 거절할 듯해서, 그런 감정 느끼는 게 차라리 미안하였는데 이건 좀 다르다.

술자리에서, 젊은 어떤 날,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에 대해, 세상의 평판에 대해 말하는 그녀는 내게 더 가까워진다. 여전히 빈털터리여야 속이 편한지, 상상만 하면 창밖으로 집어던질 것 같다던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지금의 감정은 어떤지, 애엄마가 되었으니 사랑하는 태도는 좀 변했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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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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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지, 그래, 취향이란 게 있기는 있다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다는데, 왜 난 아무렇지도 않냐는 말이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정신병자에 대한 이야기. 내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일까? 영국에 흘러들어온 미국 군인, 우발적 살해, 긴 고립-뭐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도되는 끈기가 필요한 일. 사전편찬을 떠맡은 학자,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취합되는 자료, 산발적이고 두서없는 자료 중에 보석같은 자료, 그 자료의 발송지는 정신병원. 교수와 광인의 만남이 내게 그토록 건조하게 읽히는 건 왜냐구? 그 이상의 무언가, 감정적인 것들을 바란 것인가? 섬세한 것을 바란 것인가. 불만족의 이유를 대지도 못하면서 왜 몇 마디 하고 싶은 걸까. 그 광인의 고독에 대입하지 못해서, 그 교수의 감사함에 대입하지 못해서, 무언가 그 상황의 어딘가 그저 사전처럼 뻑뻑하다고 느껴져서, 아무에게도 권하지 못하겠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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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정희진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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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경우는 산처럼 많습니다.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기복이 심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나옵니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에도 알고 보니 참 가까이서 벌어진 일에도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랬습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지'
그런데, 그런 상황을 방조하는 게 '맞아도 싸, 그런 000'이라고 쉽사리 뱉었던 어떤 상황의 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압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데, 그토록 많은 이유를 다는 게 여지껏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부끄럽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선생님의 옷차림이 어색하다고, '어머, 사모님은 뭐하나 몰라'했던 고등학생이던 내가 떠올라 또 얼굴이 붉어집니다.

폭력의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는 여성이 얽매여 있는 것은, 결국은 나조차도 무의식중에 받아들였던 그런 신화들입니다. 아내가 이러저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화, 남편이 아내의 비행에 책임져야 한다는 신화,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더라도 가정은 깨지면 안 된다는 신화.

계속 미안해지는 것은 내가 그런 아내에 대해 '맞을 이유가 있었다'는 발언에 가끔 마음 썼기 때문입니다. 강경하게, '사람이 사람을 때렸는데, 무슨 이유야!'하고 소리지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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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 동림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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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책을 읽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게 원본에 충실할수록 더 심해지는 것은 옛날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거랑 비슷하다. 빠르게 변하는 화면,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 빽빽한 빌딩숲, 꼬일때로 꼬인 사건들을 보다가, 장면은 바뀌었으나 어디가 바뀐지 도무지 알아차리기 힘든 컷, 어디든 걸어가는 사람들, 단조로운 배경, 꼭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주구창창 묘사하는 대목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건 진짜 굉장한 인내 다음에나 간신히 오는 일이다.

이 책을 읽을 때 그랬다. - 그런데, 미안하게도 출판사가 맞는지 알 수가 없다. - 실험실에 부여된 음침한 공기, 가족들에 부여되는 밝은 공기, 감정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려고 그 시대의 말로 계속되는 묘사는 정말 끝까지 읽는데 굉장한 인내를 요구한다. 드레스를 입는 시대의 과학소설이란 내게 그만큼 낯설었다. 화자는 쇄빙선에서 자신의 피조물을 쫓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만난 선장이었고, 둘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사랑과 명예, 평범과 비범.

창조자로부터 배척당하는 피조물이 자신의 창조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구조는 이 후 수없이 변주되기 때문에 아주 익숙하지만, 파멸로 몰아넣는 피조물을 이토록 동정하게 하는 묘사는 익숙하지 않다. 피조물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는지, 사랑을 바라던 마음이 증오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생명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것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처하는 난처함,- 아니, 더 심한 말이 필요하다- 끔찍한 상황을 대하는 것은 '인간을 복제'하기로 하는 현실에서 더 걱정스럽다.

메리 셜리의 단지 악몽은 지금 얼마나 내게 가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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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SF 걸작선
정영목 엮어옮김 / 도솔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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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SF단편이 수록된 단편선에서 딱 두번째 단편을 읽었을 뿐이면서 무언가 써야지, 생각하는 건 순전히 아이작 아시모프 때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과학의 미래를 트랩에 갇힌 것처럼 묘사한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기억 속의 아시모프는 경쾌하였다. 발전한 과학은 미래에는 일상이 되어 있고, 지금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걸 묘사하는 것처럼 달 여행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 일상은 그리고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죽은 과거'에서는 아니다. 소설 속에서 과학은 상품이 되기 위해 작가의 손에 가공되고, 이용을 통제하지 못하기는 그걸 개발한 과학자나 행정가나 마찬가지다. 과학은 폭주하는 기관차고, 자본과 맞물려 상황은 통제불가능하다. 일상적인 묘사는 여전하지만, 그 차가움은 새삼스럽다. 암울한 미래란, 뛰어난 SF란 이런 것이다!

읽으면서 그래서 아시모프가 SF를 쓴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시모프가 묘사한 데로 미래에 새로운 직업으로 과학 작가가 등장해서 그 직업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록해야 한다면, 그건 아시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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