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leesunok.com/archives/3869

이선옥작가의 새글을 메일로 받아보는 중이다. PC주의와 페미니즘의 해악에 대해서 드라마를 보고 인상을 남겼다. PC주의와 페미니즘의 폭력적인 태도에 대해 대중이 가지는 피로감이 무엇인지 말한다. 

글 속에서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청소년들이 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론재판을 통해 이미 나쁜 놈을 변호하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네 아빠는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학대를 권장하고 있어'라고 말한 친구를 때린 장면에 대해 말한다. '무엇이든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페미니즘의 문제에 대해 말한다. 

나에게도 내가 잘못일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한 드라마가 있었다. 누군가 그건 '쓰레기'라고 말하는 걸 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왜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드는 미묘한 감상의 드라마는 '앨리맥빌' (https://namu.wiki/w/%EC%95%A8%EB%A6%AC%20%EB%A7%A5%EB%B9%8C )이다. '앨리맥빌'을 재밌게 봤지만, 조금씩 그 때의 나에게 질문하는 순간이 많았었다. 기억나는 에피는 크게 두 가지이다. 

여왕벌 사장님(시즌4 에피소드21)이랑, 피시변호사가 자신의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조사를 읊는 거다. 

여왕벌 에피에서 앨리의 사무실은 결혼했다고 직원을 해고하는 여자 사장님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 여자사장은 꽤나 자신만만하게, 내가 사장이고 자신은 성적 매력을 통해 직원들의 충성심을 끌어내고 있다고, 그러므로 결혼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담론의 뒤집어진 면을 본 것처럼 질문들이 생겼었다. 회사에서 성적인 무엇도 허용하지 않는 것과 성적인 것들을 동력으로 삼아 저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 각자의 사정, 각자의 생각, 같은 것들. 

피시변호사 에피는 찾지 못했는데, 이 때 피시 변호사는 장례식의 조사를 앞두고 한참을 앨리와 이야기한다. 자신의 할아버지는 늘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런 분이셨는데, 아닌 체하는 게 맞냐고, 2차대전을 겪고 이민자의 삶을 사셨는데, 그 분의 사상이 지금과 맞지 않다고 해서 내가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던 것도 같다. 

피시 변호사에 대한 나무위키 설명을 보니까, 딱 그런 인물이었다. (https://namu.wiki/w/%EB%A6%AC%EC%B2%98%EB%93%9C%20%ED%94%BC%EC%8B%9C ) 이 해설에서 피시즘(Fishism),을 본 기억이 있어서 검색했는데, PC주의만 나온다. 나는 피시 변호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의 어떤 태도들 '그러면 안 돼'라고 누군가를 교정하려던 태도들을 돌아보게 된 것도 같다. 

다들 나름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라고 좀 더 관대해졌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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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건이라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이미 아는 일인데도, 이유가 역시 궁금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e6AzsJr-zU )

남편도 모르게 임신하고 출산한 부인은 자신이 출산한 영아를 셋이나 살해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남편은 어느 날 집 냉동고에서 영아사체를 발견하고는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 과정에 이 프랑스인 부부는 출국했고, 모든 DNA결과가 부부를 가르킨다는 수사결과에 우리나라 과학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프랑스 언론도 기억이 나고, 끝까지 부인하던 부부의 인터뷰 장면도 나온다. 수사자료를 넘겨받고 모든 분석을 마친 프랑스에서도 그 부인은 역시 아이들의 엄마였다. 

오랜 심문과 정신감정에서 그 부인은 임신거부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미성년자 살해에도 불구하고, 병이 참작되어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감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결혼도 했고, 부유하고, 이미 아이도 둘이나 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임신거부증,이 생겨서 임신을 잊고, 엄마에게 잊힌 태아는 숨죽인 채 존재를 숨기며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괴물처럼 엄마에게서 분리된다. 그 상황을 맞닥뜨리는 여자는 아이를 아이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임신거부증,이라는 병에 대해서 말하면서, 살인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용인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해진다. 

간절히 아이를 원해서 일없이 배를 부풀리는 상상임신이 있으니, 아이가 필요없어서 존재하는데도 존재를 부인하는 임신거부증이 있을 수도 있는 건가. 

어떤 문명은 아이가 필요없다는 생각을 계속 계속 만들어내면서도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성교는 그저 이성애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건가. 여자는 아이를 원하지도 않으면서도 남편과 성교하고, 절대 임신일 리 없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건가. 잊고 거부하고 결국 살해하는 이야기 가운데, 사랑하니 당연히 성교하지만, 아이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기형적인 문명의 모습을 본다.  

왜 나를 낳았느냐고 혹시라도 아이가 나를 비난한다면, 네가 나에게 온 게 아니냐고 반문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나에게는 아이와 나의 관계에 능동성이 없는데, 저 이야기 속의 능동성에 놀란다. 


엄마조차 거부하면,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사람은 얼마나 신기한가. 

생각이나 감정은 몸에, 몸은 생각이나 감정에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가. 

존재를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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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1-03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어떤 글을 읽다가 이선옥 작가를 알게 되었고 <단단한 개인>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단한 개인 리뷰를 찾아 읽다가 별족님에게 다다랐고 별족님의 성실한 글들을 링크하신 이전 글들까지 죽 읽어 내려오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말 하는 사람은 많지만 듣는 사람은 적고 판단을 내리기 전에 곰곰히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별족님의 좋은 글들 잘 읽었습니다.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별족 2022-11-03 08: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랑을 상상한다. 완전히 이해하는 서로에 대한 환상. 

사람들은 이공계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다. 삶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환상.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가의 이력에 대해 훑었다. 60년대 연구소의 여자 화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은 화학자인가, 싶어 살폈다. 소설을 쓸 때, 2020년에 65세가 된 작가는 광고업계에서 일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을 읽었을 때, 책 속에서 가정주부에서 소설가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에게 편집자 쯤 되는 사람이 하는 조언 생각이 났다. 자신의 소설이 좀 더 현실감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조사를 많이 한 다음 쓴 조금은 무미해진 이야기에 대해 편집자는 환상 속 이야기가 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했던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특정하자면, 지금 이삼십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독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지도교수에게 강간당하고 학위과정을 하차했다. 다행히 석사로 연구소에 화학자로 취직했는데 아무도 그녀를 화학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연구소의 스타 연구자와 사랑에 빠지고, 동거하면서도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써야 하는, 여성의 결혼 전 성과를 무화시키는 어떤 제도의 알력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한국인 여성이 이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데, 연인은 달리기를 하다가 차에 치어 숨지고, 그녀는 임신으로 해고당한다. 부엌을 실험실로 개조하고, 딸아이를 키운다. 

엘리자베스는 돈을 목적으로 삼은 설교자의 딸로 아버지는 교도소에, 어머니는 멕시코에 살고 있다. 가족 내 의지처였던 오빠는 자살했다. 캐빈은 입양된 아이였다가 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모손에 자라다가 고모마저 죽어서 보육원에서 자랐다. 사랑의 환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둘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 온통 적대적인 세상만을 마주한다. 그래도 캐빈은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남자였고, 좋은 양부모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결혼을 원했다. 엘리자베스의 의사를 존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마도 그 남자가 살아남았다면 둘은 헤어졌을 것이다. 

강간당하고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한 엘리자베스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사랑에서 우위를 점하고는 결혼을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에 열광할 것이다. 

죽은 연인의 남겨진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엘리자베스를 또 그렇게 좋아할 것이다. 

그 와중에 학문적 성취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연구하면서도 성과를 빼앗기는 것에 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당한 일을 겪고도 대중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유명해진다는 것에 기분좋을 것이다. 

그녀의 고난들 가운데, 그녀 옆에 서는 이웃의 가정폭력 피해여성이나, 연구소의 여성에 기분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국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고난이나 역경을 슬픔에 쓰러지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에, 강한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그저 드라마처럼 드러난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고난에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렇게 단순하게 밖에 서술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역시 소설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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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기묘한 조선환담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괴담실록 지음 / 북스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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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읽었다. 유튜브도 볼까 싶다.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는 이야기들인데, 역사 속의 인물들과 연결된다. 

그래서 더 신기하다며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이야기를 만든다. 

복을 받을 리 없는 사람이 왜 복을 받을까.

왜 그 천하의 명장이 그런 바보같은 전술을 택했을까. 

어떻게 그 비루한 왕족은 왕의 아비가 될 수 있었을까. 

같은 의문들이 이야기가 되었다. 

거인과 이무기, 지네괴물, 용, 귀신을 부리는 사람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시대상을 담고 있을까. 

어지러운 시대상과 지나온 역사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는 듯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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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은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이 아니다(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253411)라는 글을 봤다. 

글은 공기업의 부실에 대한 성토 다음에 '감당할 수 없으면 차라리 민간에 맡겨라'로 마친다. 

공기업은 소중한 국민의 재산이고, 공기업의 부실은 나라의 부실이 되고, 국가 경쟁력의 약화라는 말 다음에 이어지는 맺는 말에 화들짝 정신이 든다. 

그랬지. 그랬어. 

두 종류의 정부가 있다. 

공기업은 국민의 재산이기 때문에 국민이 어렵지 않도록 이익을 낼 수 없어야 한다는 정부. 공기업이 파는 물이건, 전기건, 공공 서비스건 이익을 낼 수 없도록 가격을 통제한다. 어차피 국민이 낼 돈이고, 통제하지 않는다면 표가 떨어져나간다고 생각한다. 

공기업은 무능하고, 국가는 작아져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재산이지만 팔아치워야 한다는 정부. 공기업이 파는 물이건, 전기건, 공공서비스 건 이익을 낼 수 있지만, 무능한 공기업이 하던 대로 일을 해서 이익이 안 난 거라고, 민간에 맡긴다면 이익이 날 거라고 말한다. 어차피 국민이 낼 돈이고, 국가로서 책임질 일이 줄어든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앞의 정부가 집권한 동안 국제정세가 괜찮았으니, 가격이 꽉 묶였어도 어찌어찌 굴러갔던 공기업은, 뒤의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에 국제정세가 엉망진창이라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손해가 나는 이유가 무능 때문이니, 민간에 맡겨라. 국가는 책임을 덜고, 민간은 과연 국가가 책임질 때만큼 가격통제에 따를까. 

민자발전소가 들어오고, 한전의 가격통제력은 약화되었다. 하나의 회사일 때와 쪼개진 작은 회사들일 때, 더하여 민간의 발전소가 전기 공급자로 진입했을 때, 가격통제력은 점점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가는 한전을 통제하고, 한전은 발전사를 통제하고, 다시 민자발전사는 억울함을 언론에 토로한다. 이유는 있지만, 설명할 말은 길고, 아무도 열심히 듣지는 않는다. 

민간에 넘기면, 국가의 가격통제력이 약해지겠지. 

부실은 뭐고, 무능은 뭔가. 

민간은 뭐고, 국가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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