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랑을 상상한다. 완전히 이해하는 서로에 대한 환상. 

사람들은 이공계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다. 삶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환상.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가의 이력에 대해 훑었다. 60년대 연구소의 여자 화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은 화학자인가, 싶어 살폈다. 소설을 쓸 때, 2020년에 65세가 된 작가는 광고업계에서 일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을 읽었을 때, 책 속에서 가정주부에서 소설가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에게 편집자 쯤 되는 사람이 하는 조언 생각이 났다. 자신의 소설이 좀 더 현실감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조사를 많이 한 다음 쓴 조금은 무미해진 이야기에 대해 편집자는 환상 속 이야기가 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했던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특정하자면, 지금 이삼십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독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지도교수에게 강간당하고 학위과정을 하차했다. 다행히 석사로 연구소에 화학자로 취직했는데 아무도 그녀를 화학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연구소의 스타 연구자와 사랑에 빠지고, 동거하면서도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써야 하는, 여성의 결혼 전 성과를 무화시키는 어떤 제도의 알력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한국인 여성이 이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데, 연인은 달리기를 하다가 차에 치어 숨지고, 그녀는 임신으로 해고당한다. 부엌을 실험실로 개조하고, 딸아이를 키운다. 

엘리자베스는 돈을 목적으로 삼은 설교자의 딸로 아버지는 교도소에, 어머니는 멕시코에 살고 있다. 가족 내 의지처였던 오빠는 자살했다. 캐빈은 입양된 아이였다가 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모손에 자라다가 고모마저 죽어서 보육원에서 자랐다. 사랑의 환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둘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 온통 적대적인 세상만을 마주한다. 그래도 캐빈은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남자였고, 좋은 양부모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결혼을 원했다. 엘리자베스의 의사를 존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마도 그 남자가 살아남았다면 둘은 헤어졌을 것이다. 

강간당하고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한 엘리자베스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사랑에서 우위를 점하고는 결혼을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에 열광할 것이다. 

죽은 연인의 남겨진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엘리자베스를 또 그렇게 좋아할 것이다. 

그 와중에 학문적 성취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연구하면서도 성과를 빼앗기는 것에 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당한 일을 겪고도 대중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유명해진다는 것에 기분좋을 것이다. 

그녀의 고난들 가운데, 그녀 옆에 서는 이웃의 가정폭력 피해여성이나, 연구소의 여성에 기분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국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고난이나 역경을 슬픔에 쓰러지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에, 강한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그저 드라마처럼 드러난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고난에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렇게 단순하게 밖에 서술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역시 소설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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