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건이라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이미 아는 일인데도, 이유가 역시 궁금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Ee6AzsJr-zU )
남편도 모르게 임신하고 출산한 부인은 자신이 출산한 영아를 셋이나 살해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남편은 어느 날 집 냉동고에서 영아사체를 발견하고는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 과정에 이 프랑스인 부부는 출국했고, 모든 DNA결과가 부부를 가르킨다는 수사결과에 우리나라 과학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프랑스 언론도 기억이 나고, 끝까지 부인하던 부부의 인터뷰 장면도 나온다. 수사자료를 넘겨받고 모든 분석을 마친 프랑스에서도 그 부인은 역시 아이들의 엄마였다.
오랜 심문과 정신감정에서 그 부인은 임신거부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미성년자 살해에도 불구하고, 병이 참작되어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감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결혼도 했고, 부유하고, 이미 아이도 둘이나 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임신거부증,이 생겨서 임신을 잊고, 엄마에게 잊힌 태아는 숨죽인 채 존재를 숨기며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괴물처럼 엄마에게서 분리된다. 그 상황을 맞닥뜨리는 여자는 아이를 아이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임신거부증,이라는 병에 대해서 말하면서, 살인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용인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해진다.
간절히 아이를 원해서 일없이 배를 부풀리는 상상임신이 있으니, 아이가 필요없어서 존재하는데도 존재를 부인하는 임신거부증이 있을 수도 있는 건가.
어떤 문명은 아이가 필요없다는 생각을 계속 계속 만들어내면서도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성교는 그저 이성애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건가. 여자는 아이를 원하지도 않으면서도 남편과 성교하고, 절대 임신일 리 없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건가. 잊고 거부하고 결국 살해하는 이야기 가운데, 사랑하니 당연히 성교하지만, 아이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기형적인 문명의 모습을 본다.
왜 나를 낳았느냐고 혹시라도 아이가 나를 비난한다면, 네가 나에게 온 게 아니냐고 반문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나에게는 아이와 나의 관계에 능동성이 없는데, 저 이야기 속의 능동성에 놀란다.
엄마조차 거부하면,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사람은 얼마나 신기한가.
생각이나 감정은 몸에, 몸은 생각이나 감정에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가.
존재를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