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SF 걸작선
정영목 엮어옮김 / 도솔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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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SF단편이 수록된 단편선에서 딱 두번째 단편을 읽었을 뿐이면서 무언가 써야지, 생각하는 건 순전히 아이작 아시모프 때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과학의 미래를 트랩에 갇힌 것처럼 묘사한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기억 속의 아시모프는 경쾌하였다. 발전한 과학은 미래에는 일상이 되어 있고, 지금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걸 묘사하는 것처럼 달 여행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 일상은 그리고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죽은 과거'에서는 아니다. 소설 속에서 과학은 상품이 되기 위해 작가의 손에 가공되고, 이용을 통제하지 못하기는 그걸 개발한 과학자나 행정가나 마찬가지다. 과학은 폭주하는 기관차고, 자본과 맞물려 상황은 통제불가능하다. 일상적인 묘사는 여전하지만, 그 차가움은 새삼스럽다. 암울한 미래란, 뛰어난 SF란 이런 것이다!

읽으면서 그래서 아시모프가 SF를 쓴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시모프가 묘사한 데로 미래에 새로운 직업으로 과학 작가가 등장해서 그 직업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록해야 한다면, 그건 아시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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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모른다 - 여성.여성성.여성문학
김승희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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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들이 우글우글하다.
이제, 맘에 든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으면 되겠다.

'시는 어려워서 못 읽겠어'
'그냥 좋으면 좋은 거야'
동생의 말을 믿고, 나도 이제 그렇게 읽을 거라고 맘 먹고 간만에 산 시집이었다.

시들은 좋았는데, 좋은 시 골라주신 분께 미안하게도 평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다.

여성이란 육체를 가져서, 공유되는 부분들이 시에서 뚝뚝 떨어졌다. 아들로 연결되는 구약의 구절들을 죽 읊고는 말미에 짧게 붙인 한마디 말로 충분하였다. 딸들로 연결되는 긴 고리를 '사설조로'읽으라는 긴 시에서 느끼고, '양변기 위에서'의 심상은 또 그대로 내게 전해진다.

대지인 어머니를 말하지 않아도, 거창해지지 않아도 그 느낌들 알겠다. 시들에 평을 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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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0
김미경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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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지금의 가부장제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착취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은 사회에서 남성은 가정에서 적절한 비중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면 충분하였다.

그러나, 대안이 제시되었다면 그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방법은 실천가능하여야 한다. 이 순간 길을 잃게 되는 것은 나같은 초짜 페미니스트뿐만이 아니다. 충분히 연구하고 있는 사회학도 교수님도 길을 잃기는 마찬가지여서,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보여주는 대안이나 방법은 손쉽게 조소당한다.

그 조소는 한 명의 페미니스트가 보여주는 길을 잃은 논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페미니즘'에 대한 것이 되어버린다. 안타깝지만, 어떤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문의 영역에서도 '페미니즘'의 입지는 매우 좁아서 어떤 식의 발언도 '대표자'로써 읽힌다.-'여자들에게 고함'(함인희 저)에 보면 조직 속에서 19%를 점하지 못한 소수자는 어느 경우에건 해당 소수자'대표선수'(민족이건 인종이건 성이건)로 인식된다,라는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제시한 대안은 너무 안전하였고, 대안에 이르는 방법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균형을 잡으려는 의도는 주장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시스템에 대한-무자비한 자본주의- 반성없이 도달하려는 유토피아는 세상물정모르는 이가 상상하는 미래처럼 대책없었다.

내게도 자신있는 대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라는 이 선명한 제목으로 묶인 이야기는 좀 달랐으면 하는 바램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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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극장에서 생긴 일 - 세계환상문학 걸작선
알베르토 맹그웰 엮음, 윤춘미 옮김 / 문학세계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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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이야기들, 무서워서 책을 놓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속기로 결심하는 순간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아직 머릿속을 딱딱하게 만들기 전, 어린아이였거나 사춘기 소녀였을 때, 어두운 밤이거나 비라도 내리는 어두운 낮에 친구들과 교실 구석에서 경쟁하듯이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 놀라운 이야기와 닮았다. 한순간의 공포나, 짜릿한 흥분, 놀라움과 아쉬움, 기이한 낯섬과 낯익음,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짧게 대답할 수 없는 짧은 질문.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발'이나 '악마의 병'은 익숙하고 또 교훈적이고,'저승사자를 만나러 떠나는 하인'은 낯익고 또 재치있고, '완전한 행복을 위한 희생양'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고... 죽은 자가 걸어나와 복수하거나 은혜를 갚고, 인어의 사랑을 얻기위해 영혼을 떼어내거나, 마음없는 영혼이 사악해지거나, 조용한 일상이 갑작스레 떠밀려나오거나..

딱딱한 현실이 틈새가 없어서 혹은 현실이 고단할 때 혼자 앉은 낡은 극장처럼 그 많은 얘기들 풀어놓는다. 천천히 살금살금 읽을 일이다, 밤 말고 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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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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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래(?)소설이 무서운 것은, 결코 멀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징후들이 지금 현재에 있어서 우리가 서있는 곳이 매우 위태롭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으로 인간의 생식력이 약해지고, 약자에 대한 착취를 능력의 유무로 설명하려는 자본주의의 광포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여성에 대한 착취를 '전통'으로 미화하려는 시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소설을 기억해낼 것이다.

여성의 모든 권리는 사라지고, 계급의 최상부에게만 허용되는 생식력있는 '시녀'의 존재. 너무 끔찍해서 소름이 돋는다. 밤, 스산함, 황폐한 계급사회, 지켜지지 않는 존엄으로 남아있는 소설속의 가상세계는 내가 결코 속하고 싶지 않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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