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는 아줌마
이숙경 지음 / 동녘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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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양이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이 하드커버로 장정되어 비쌌고, 결혼하지 않은 내게는 너무 당연할 것들이 오래도록 너무나도 진지하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덜컥 산 것은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아줌마들의 찬사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죠'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애도 낳아본 적 없고, 덜컥 겁이 나서는 우습게도 살림부터 차려 볼 궁리를 하는, 그 다음의 걱정을 미뤄두는 머리로만 익힌 페미니스트인 내가, 아줌마가 아줌마에게 마음으로 한 말들에 논평하려하다니 금방 후회하고 만다.

머리로만 익힌 페미니스트인 나는 실전에 약하고, 그러면서도 실전의 경험들에는 고약하게도 냉소적이 되는 탓에 아줌마가 하는 밥하는 얘기, 담배 피우는 얘기, 결혼으로 얽히는 새로운 가족들의 관계를 그만큼의 무게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직 내게 닥치지 않아, '까짓 거, 그렇게 못할까봐, 뭐 이렇게 걱정이 많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줌마라면 아이를 낳아 그 고됨에 무언가를 집어던지고 싶었고, 아직도 어린애인 남자를 어른 대접하며 먹이고 입히는 데 버럭 짜증난 적 있었고, 밤 늦은 귀가에 어처구니없는-나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많이 늦는 남자에게- 폭언을 들은 적 있었다면 감상은 달라졌을 거다. '자기자신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이 고마웠을 거고, '야식 식당' 얘기에 '어, 내가 써먹어야지'할 거고, '팥쥐가 더 좋다'는 아이 얘기에 피식 웃으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처녀애라서 감상이 그만큼 절절하지 않아도 지난 다음, 이 아줌마에게 감사하게 될 거란 걸 안다.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격려, 위로, 칭찬, 충고라는 걸 안다. 나 같은 애한테는 '뭐 별것도 아닌데'란 말을 들을 각오도 하고, 또 어떤 남자한테는 '못되먹은 병원균'쯤으로 취급될 각오도 하고, 또 어떤 아줌마한테는 '어머,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않나?'하고 조금은 경계대상이 될 각오도 하고 한 말이란 걸 안다.

졸업하고 오래 못 본 나의 여자친구들을 가끔 우연으로라도 만나게 될까, 근심하는 지금 결혼한 다음이 걱정되어서는 아줌마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일들 들려주고 나누자고 채근하는 게 고맙다. 누군가 다르게 살아가려고 하면서 조금씩 실천하고 있으니, 당신도 하라고 할 수 있다고 손내미는 이 아줌마가 정답다. 한 번 깨지기가 어렵지, 깨고 나면 일사천리인 여자에게만 무수히 많은 금기들 '우습다'고 스무 번쯤 말한 다음 깨어보자는 이 선동가 아줌마, 부럽다. 부러워만 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정의대로 나, 아줌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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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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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그런 글들이 마구 쏟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것은 앞서 읽은 사람들의 좋은 평 때문이었다. 이 전에 유미리의 무슨 책을 읽었었더라. 아버지를 죽이는 소년의 얘기를 읽은 적 있는데, 가족시네마도 읽었었고, 또 읽은 게 있나. 그런 책들을 읽고 좋다는 생각 하지 못해서, 유미리의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지금의 유미리는 여전할까, 궁금해진다. 이 전에 읽은 소설이 너무 냉랭하고 건조하다고까지 느꼈었는데, 그게 에세이 속에서는 지나치게 일찍 나이 들어 버린 어린 아이가 보이는 듯해서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안쓰럽다. 소설 속에 비치는 작가는 그런 안쓰러움의 표현 매몰차게 거절할 듯해서, 그런 감정 느끼는 게 차라리 미안하였는데 이건 좀 다르다.

술자리에서, 젊은 어떤 날,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에 대해, 세상의 평판에 대해 말하는 그녀는 내게 더 가까워진다. 여전히 빈털터리여야 속이 편한지, 상상만 하면 창밖으로 집어던질 것 같다던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지금의 감정은 어떤지, 애엄마가 되었으니 사랑하는 태도는 좀 변했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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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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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지, 그래, 취향이란 게 있기는 있다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다는데, 왜 난 아무렇지도 않냐는 말이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정신병자에 대한 이야기. 내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일까? 영국에 흘러들어온 미국 군인, 우발적 살해, 긴 고립-뭐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도되는 끈기가 필요한 일. 사전편찬을 떠맡은 학자,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취합되는 자료, 산발적이고 두서없는 자료 중에 보석같은 자료, 그 자료의 발송지는 정신병원. 교수와 광인의 만남이 내게 그토록 건조하게 읽히는 건 왜냐구? 그 이상의 무언가, 감정적인 것들을 바란 것인가? 섬세한 것을 바란 것인가. 불만족의 이유를 대지도 못하면서 왜 몇 마디 하고 싶은 걸까. 그 광인의 고독에 대입하지 못해서, 그 교수의 감사함에 대입하지 못해서, 무언가 그 상황의 어딘가 그저 사전처럼 뻑뻑하다고 느껴져서, 아무에게도 권하지 못하겠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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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정희진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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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경우는 산처럼 많습니다.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기복이 심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나옵니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에도 알고 보니 참 가까이서 벌어진 일에도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랬습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지'
그런데, 그런 상황을 방조하는 게 '맞아도 싸, 그런 000'이라고 쉽사리 뱉었던 어떤 상황의 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압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데, 그토록 많은 이유를 다는 게 여지껏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부끄럽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선생님의 옷차림이 어색하다고, '어머, 사모님은 뭐하나 몰라'했던 고등학생이던 내가 떠올라 또 얼굴이 붉어집니다.

폭력의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는 여성이 얽매여 있는 것은, 결국은 나조차도 무의식중에 받아들였던 그런 신화들입니다. 아내가 이러저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화, 남편이 아내의 비행에 책임져야 한다는 신화,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더라도 가정은 깨지면 안 된다는 신화.

계속 미안해지는 것은 내가 그런 아내에 대해 '맞을 이유가 있었다'는 발언에 가끔 마음 썼기 때문입니다. 강경하게, '사람이 사람을 때렸는데, 무슨 이유야!'하고 소리지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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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 동림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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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책을 읽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게 원본에 충실할수록 더 심해지는 것은 옛날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거랑 비슷하다. 빠르게 변하는 화면,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 빽빽한 빌딩숲, 꼬일때로 꼬인 사건들을 보다가, 장면은 바뀌었으나 어디가 바뀐지 도무지 알아차리기 힘든 컷, 어디든 걸어가는 사람들, 단조로운 배경, 꼭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주구창창 묘사하는 대목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건 진짜 굉장한 인내 다음에나 간신히 오는 일이다.

이 책을 읽을 때 그랬다. - 그런데, 미안하게도 출판사가 맞는지 알 수가 없다. - 실험실에 부여된 음침한 공기, 가족들에 부여되는 밝은 공기, 감정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려고 그 시대의 말로 계속되는 묘사는 정말 끝까지 읽는데 굉장한 인내를 요구한다. 드레스를 입는 시대의 과학소설이란 내게 그만큼 낯설었다. 화자는 쇄빙선에서 자신의 피조물을 쫓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만난 선장이었고, 둘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사랑과 명예, 평범과 비범.

창조자로부터 배척당하는 피조물이 자신의 창조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구조는 이 후 수없이 변주되기 때문에 아주 익숙하지만, 파멸로 몰아넣는 피조물을 이토록 동정하게 하는 묘사는 익숙하지 않다. 피조물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는지, 사랑을 바라던 마음이 증오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생명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것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처하는 난처함,- 아니, 더 심한 말이 필요하다- 끔찍한 상황을 대하는 것은 '인간을 복제'하기로 하는 현실에서 더 걱정스럽다.

메리 셜리의 단지 악몽은 지금 얼마나 내게 가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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