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읽는 맹자
맹자 지음, 임자헌 옮김 / 루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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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를 버린 논어,를 살 때 이 책도 샀다. 

그 책의 불만족스러운 점들은 이미 썼다.(https://blog.aladin.co.kr/hahayo/13110982)

이 책도 형식은 비슷하지만 순서는 다르다. 번역문이 검은 글씨, 옮긴이가 보탠 생각이 파란 글씨, 원문이 다음에 있다. 원문에는 음조차 없다. 역시 번역은 지나치게 현대어,이고, 옮긴이가 보탠 생각은 읽지 않았다. 

맹자,는 누가 남긴 기록일까. 

논어,는 제자들이 남겼으니 대화가 가르치고 배우는 형식이 많은데, 맹자는 그 대화상대가 다양해서 꼭 연극대본같다면서 읽었다. 공자의 어떤 태도를, 대중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연극을 하고 다녔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대화를 대본처럼 남겼던 걸까. 어떻게 그 대화가 남았는지, 어떻게 책이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글들이다. 

그래도, 끝까지 본문과 번역문을 읽고, 원문을 보고 그렸다. 

잘 알려진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한 번쯤 듣고,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원하면서 정치인에 유세하러 다니는 지식인의 간절함을 본다. 

포스트잇은 읽을 때의 내가 드러난다. 

내가 가지는 불만이나, 어떤 세태에 대한 심사가 드러난다. 


사람들의 문제는 이거예요. 남의 선생 노릇 하기 좋아한다는 것!

孟子 曰: 人之患, 在好爲人師 -p215



유하혜는 한마디로 나만 잘하면 괜찮다는 사람입니다. 추잡한 군주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관직이 아무리 낮아도 사양하지 않았죠. 관직에 나아가서는 자기의 뛰어난 능력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고 반드시 올바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어요. 사람들이 그를 승진에서 누락시켜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경에 처해도 걱정하지 않았죠.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질서를 모르는 무지렁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아주 여유 있게 즐기면서 굳이 떠나려 하지 않았어요. 그의 생각은 이런 거였죠. '너는 너고, 나는 나지. 네가 내 옆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젖히고 무례의 끝판을 보여준다 한들 내가 더러워지겠어?'그래서 이런 유하혜의 삶의 자세를 들으면, 인색한 사람은 관대해지고 야박한 사람은 후해지게 되었습니다. -p281

柳下惠, 不羞汙君, 不辭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以不怨, 阨窮以不憫. 與鄕人處, 由由然不忍去之.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聞柳下惠之風者, 鄙夫寬, 薄夫敦. -p284

나는 공자님은 못 될 거 같지만, 유하혜처럼은 어떻게 되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럼 자네가 생각하기에, 만약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참 지도자가 나온다면 지금의 각 나라 군주들을 모조리 싸잡아 죽일 것 같은가, 아니면 일단 교화시켜보고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죽일 것 같은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으로 갖는 것을 모두 '도둑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유의 일을 극단적으로 확장시켜서 말하는 것일세. 공자께서 노나라에서 관직에 있을 당시 노나라에서는 엽각이 유행이었네. 이를테면 '내기사냥'같은 거? 그러니까 아무래도 미풍양속은 아니지. 그렇지만 공자께서도 그걸 하셨어. 사람들하고 어울려야 하니까. 내기 사냥도 하는데 윗사람이 내려준 예물이야 당연히 받아도 되지. -p290

曰: 子以爲有王者作, 將比今之諸侯而誅之乎? 其敎之不改而後誅之乎? 夫謂非其有, 而取之者, 盜也, 充類至義之盡也. 孔子之仕於魯也, 魯人獵較. 獵較猶可, 而況受其賜乎?-p293

내가 아마도 질문하는 사람같아서, 여기 포스트잇을 붙인 거 같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극단으로 흐르는 엄격함은 좋지 않다. 


입맛도 그래요. 맛있다는 음식은 모든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죠. 역대급 셰프 역아는 바로 그 입맛을 정확이 안 사람이죠. 입맛이 사람마다 다르다 해도 만약 개나 말의 입맛과 우리 입맛이 다른 정도로 달랐다면 어떻게 최고의 셰프라는 존재가 있을 수 있겠어요? 세상사람들이 모두 역아 셰프 식당에 굳이 예약을 잡고 꼭 먹어보려 하는 것은 사람 입맛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죠. -p315

口之於味, 有同耆也. 易牙先得我口之所耆者也. 如使口之於味也. 其性與人殊. 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 則天下何耆皆從易牙之於味也? 至於味, 天下期於易牙, 是天下之口相似也. -p316~317

정체성 정치,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 대목에 포스트잇을 붙였을 거다. 소리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고 반박하는데, 아마도 내가 가장 동의가 된 게 맛에 대한 거였나 보다. 


전쟁의 시대에, 사람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걸 믿고, 가치를 바로 세워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 다. 좋은 분이고, 좋은 글이다. 


형식이나 지나친 현대어 해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고 끝까지 쓸 수 있었던 데는 그래서 가능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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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덕이는 가난한 동네 사리촌에서 할머니와 살다가 일찍 죽었다. 

부연이는 고귀한 신녀가문 진씨 집안에 큰 딸로 태어나, 귀하게 살다가 아버지와 외삼촌 손에 죽임을 당했다. 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살아서, 가난한 할머니의 손녀 무덕이가 되어 자랐다. 

영이는 별을 보는 아버지의 귀한 딸로 살다가 환혼인이 되어 폭주하는 아버지가 가문의 사람들을 도륙하다가 결국에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한다. 아버지의 폭주는 알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원수로 삼아 잘못된 사람을 따라 살수가 되어 꽃처럼 목을 떨어뜨린다고 낙수,라는 별명을 얻는다.

부연이로 태어났으나, 무덕이로 십년을 산 이 소녀는, 낙수라는 별명을 얻은 영이가 죽음을 앞에 두고 환혼하는 순간 그 영혼을 잡아 자신의 몸에 가둔다. 무술을 하는 강한 낙수는 눈 먼 약한 몸에 들어가 다른 존재가 된다. 

내가 아는 무덕이는 부연이의 얼굴을 하고, 가난한 집의 눈먼 소녀 무덕이로 십년을 살다가, 이제 영이의 영혼을 잡아 가두면서 눈을 뜬 무덕이다. 보통은 강한 낙수의 영혼이 우세하고, 낙수의 영혼을 잡아두느라 부연이의 영혼은 잠깐씩 나타난다. 

부연이의 얼굴로 낙수의 영혼을 품고, 낙수의 태도로 살아가는 무덕이가 욱이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러다가 폭주했다. 욱이를 칼로 찌르고, 돌이 되어가는 몸을 던져 잠기던 무덕이는 뒤늦게 부연이임을 알아차린 신녀가문에 의해 건져졌다. 돌이 되어가는 몸을 고치면서 이제 무덕이는 낙수의 얼굴을 하게 되었다. 

좀 더 크고, 좀 더 강하던 낙수의 몸 대신에, 여전히 작고 약하지만 얼굴은 낙수의 얼굴이 되어 기억을 모두 잃고 살아났다. 

부연이의 얼굴로 자신을 낙수라고 생각했던 시즌 1의 무덕이는 이제 없다. 

이제 낙수의 얼굴로 스스로를 부연이라고 생각하는 시즌 2의 무덕이가 있다. 

관계는 달라지고, 이야기는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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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 -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대한민국 이대남 보고서
이선옥 지음 / 담담사무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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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여러 권을 뒤죽박죽 읽고 있다. 

마리 루티의 '가치있는 삶'(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536219)과 스티븐 E. 쿠닌의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7628702&start=slayer)을 시작했는데, 둘 중 어느 것도 빨리 읽어낼 수가 없는 와중에 받아서 읽었다. 가장 빠르게 끝냈다. 이미 많이, 메일링서비스로 읽었던 내용들인 데다가, 간결하게 쓰여진 글이다. 쉽게 읽히고 동의할 수 있다. 끝내고 다시 마리 루티와 스티븐 E. 쿠닌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미 마친 이 책에서 내가 아쉬웠던 건 뭘까, 생각했다. 

문과인 친구와 환경관련 수업을 같이 들을 때, 쿠닌같은 교수님이 수식을 칠판 가득 적어서 무언가를 설명했던 적이 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화학식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마지막까지 공대생이던 나는 와 멋진데,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문과였던 내 친구는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라고 했다. 설득을 할 생각이 있는 거야?라고 했던가. 

쿠닌도 마리 루티도 만족스럽지 않다. 과학의 언어도 감성의 언어도 어딘가에 걸려서 자꾸 멈춘다. 게다가 언어도 문화도 다르다. 

빠르게 걸리는 데 없이 읽은 이 책은 어떤가. 언어의 차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글이 가지는 어떤 입장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나'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 매번 설득에 실패하면서 내가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좀 더 자신을 드러내고, 정직하게 말해야 소통도 설득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의 민주주의거든'(https://blog.aladin.co.kr/hahayo/8968440)을 읽고 옮겨 놓은 문구대로, 합리나 논리만으로는 설득하기 어렵다. 그럼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어렵네. 

이 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하는 설득의 노력이다. 20대 남성의 대변인이라고 불린다면 아마도, 그 말하는 방법이 남성적인 것이기 때문일 거다.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지 생각하는 나는, 합리와 논리 대신 연민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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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17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번에 여러 책 읽는 재미와 기쁨이 큰듯 해요^^

별족 2022-12-18 07:48   좋아요 2 | URL
이런 것들을 비교하게도 되고^^
 
[eBook] 가상의 불량소녀 -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93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93
이익상 지음 / 더플래닛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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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다. 동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오래 전의 이야기들이다. 

얼어죽은 모나리자(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66),를 처음 읽었고, 보석반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64), 파금(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819354), 다음에 읽었다. 

화자가 남자인 이 소설은, 알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여기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나 미래가 없는 여자와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고 마친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말들이 새삼스럽다. 사건이랄 것이 과연 있나 싶은데 화자가 그 시대의 남자라서 은근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처음 그 여자를 본 날, 다음에 전해 들은 풍문, 그리고, 밤 산책에서 마주치는 여자의 묘사들은 시대상에 비추어 불량한 모습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다시 만나기를 원하고 이야기나눈다. 과거나 미래는 없이, 현재만을 살 뿐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의 팔을 끼고 가는 걸로 이야기는 마친다. 남자의 말들을 듣는 나는, 여자가 알 수 없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남자의 입장에서 하는 건조한 묘사 가운데, 남자가 안 되었다고 연민하게 된다. 

제목이 '불량소녀'가 아니고 '가상의 불량소녀'인 이유는 이게 모두 남자의 관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이고, 작가조차 여자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에서 드러나는 여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나는, 그러면서도 미래가 없고, 이런저런 남자들과 얕은 관계만을 반복하는 그녀가 과연 지금을 충실히 살고 있는가, 의심한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오는 말인 거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1406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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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통화하는데, 친구가 "똑같이 사랑도, 지원도 못 할 거면서 왜 셋씩이나 낳는 거야!"라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야, 어떻게 똑같이 사랑한다니?"라고 반문한다. 

친구는 삼형제 중 둘째인 자신의 남편이, 가족과 송사 중인 그 연예인 같다면서 한참을 이야기한 다음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사랑할 수가 없어. 그리고, 큰 아이라고 그게 좋겠어. 상황마다 사정마다 다 달라. 나는 첫 아이한테 주는 건 다 사랑인 줄 알고 줬던 그 사랑이 미안했다고, 내어놓으면 깨질 무엇인 것처럼 참 이것저것 못 하게 했다고 말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둘째한테는 첫째보다 관대해진 게 있다고. 그리고 셋째는 또 셋째대로 태도가 다르다고 내 자신을 항변한다.

둘째는 위로도 아래로도 형제가 있다. 전적이지 않은 부모의 사랑을 짧게 독점한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엄마를 빼앗긴 기분이 되니 첫째를 살피라는 조언도 참 많으니 그 사랑은 첫째와 나눠가지는, 첫째와는 다른 사랑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랑인 데도, 셋째가 태어나는 순간 다시 변한다. 막내인 셋째가 가지는 그래도 끝까지 말해보자,는 태도가 둘째에게 없다. 

가족과 송사 중인 연예인 덕에, 나도 내가 집에서 어떤지 내 자신을 관찰했다. 딸 셋에 막내가 아들인 집에 둘째인 나는 엄마랑 있으면 엄마한테 찰싹 붙어서 엄마 심부름을 한다. 언니는 방에서 충분히 늘어져 있다가, 엄마가 차린 밥을 먹고, 나나 동생이 있다면 부러 부엌에는 가지 않는다. 셋째는 적당히 적당한 수준, 에 내가 엄마가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면, 동생은 자기가 뭔가 하고 엄마에게 청하는 능동적인 방식이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엄마 말에 꼼짝 못하고 엄마 말만 듣는 건 아니고, 나는 항상 '스스로를 보호하라'파 이기 때문에 내가 억울할 때까지 하지는 않으니까, 그 연예인처럼 가족과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그만큼 돈이 없지. 

엄마는 내가 졸업하고 취업했을 때 월급을 주면 잘 저축했다 주겠다고 하셨었다. 그렇지만, 나는 흥,하고는 내가 가졌고, 결혼도 내 맘대로 내가 정해서는 내가 원할 때 했다. 

나는 약간 관심의 바깥인 둘째인 걸 좋아한다. 부모에게 억울하기 보다, 부모는 부모, 나는 나,의 태도가 있고, 큰 기대도 큰 실망도 없는 기대 밖의 존재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지금껏 살아가는 것이 맘에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일방이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고, 관계가 잘못 되었다면 바로잡기 위해 변해야 한다. 나는 잘못이 없고 상대가 변해야 한다,나 상대는 잘못이 없고 나만 변해야 한다,라는 관계는 없다.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면서, 마음 속에 억울함을 키우면서, 나 아닌 존재들에게 기대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다. 관계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고, 상대도 그 자신이 가장 우선임을 잊지 말고, 오직 내 마음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모도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사람이 달라지면 관계도 달라진다. 세상에 똑같은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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