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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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터는 도시가 아니다. 5개 대도시(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 중 가장 가까운 곳도 세 시간은 걸리고, 가장 가까운 영화관도 한시간은 걸린다. 나는, 도시에서의 삶도 별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직장이 안정적이니 뭐 만족한다. 그런데, 점점 도시화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정말이지 참고 듣기에 힘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직장 때문에 이주한 나도 이런데, 여기가 고향인 사람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지경이다. 익명게시판에 하도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화가 나서, 구구절절 쓰다가 날려먹었다. 00에서 썩는다,며 분개한 사람의 글 아래, '사람이 생각을 하면 '썩지'는 않습니다. 지하철에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출근하는 삶이 부럽다면, 말리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그게 다 '말'이 되는 건 아닙니다.'라고 마치면서, 너무 심한 말인가 싶어 고민하는 틈에, 무언가 신비로운 조화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너무 모진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고 생각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려고 하는 건가 싶어,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이 책은,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의외로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궁금해서 읽었다. 이게 2,30대 젊은이의 사고방식이라면 궁금했다.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이 싫어' 떠나는 계나를 보면서, 노동자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강제'순환에 찬성하던 젊은 직원 둘과 한참을 이야기할 때 결국 가닿지 못한 부분들을 여기서도 본다.

보잘 것 없는 개인,인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전능한 누군가가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세상이 미친 거예요.

자신이 하는 말들이 어떤 것들을 고착화시키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뱉으면서,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그렇게 빠져나간다.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으니, 더 심한 말로 욕할 수 있고, 결국 네 의견은 상관없고, 나는 '싫!다!고!'라고 닫아버린다. 사회가 미치면, 그 속에 사람들도 미친 거다.

 

이, 소설은, 아첨같다.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너도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아첨.

소설,은 어때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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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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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학, 여성주의, 페미니즘이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페미니스트,를 '이기적인 여자들'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이기적'이기로 결심하고 만난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부장제에서 희생하는 어머니,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그런 것들을 거부해서 단절해야 한다고 잘난 체하던 내 앞에서 여성단체 활동가였던 그 분은 '내가 안 하면, 엄마가 다 해야 해서'라고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명절에 그 수고를 하는 사람이 여자들 뿐인 게 분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혼자 다 해야 해서 하고 있다고, 그게 치기어린 청춘 앞에서 어떤 식으로 들릴지 아니까 작은 목소리로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해주신 거다.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모순 속의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그런 제목이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단정적인 표현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면서, -나는,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있어 좋다,고도- 상충하는 여성주의 내부의 입장에 대한 설명들을 듣는다. 여성을 억압하는 만큼 남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순간들에 말들을 보탠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조언들을 잡스러운 글들로 만날 때, '여자인 자신이 상사라는 걸, 모르는 타인에게 분명히 하기 위해 부러 반말을 한다'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겠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거다. 아이들에 대해 가끔 닥치는 죄책감에도 직장에 다니는 것은, 내 남편이 혼자 짐 지고는 '처자식 먹여살리려다보니'라고 변명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회사가 이런 사람-아이를 가진 엄마들-들을 포함하고도 굴러가는 조직이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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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쟁탈기 보름달문고 63
천효정 지음, 한승임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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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소통'에 대한 강연을 했다. 남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아나운서 출신의 강사님이 참 예뻤는데,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해서 급하게 정리하며 붙인 소통의 다섯가지 규칙 중에 하나가 가시처럼 걸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라'. 그럼 '소통'을 할 수 있어? 질문이 계속되는 거다. '11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거짓말 연습'을 읽었을 때도 그런 질문이 나왔었다. 


'소통'을 하려면, 상대도 나도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책은, 딸의 마법천자문 32권을 사면서, '삼백이'의 동화작가를 검색해서 동화책들을 넣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나는, 거짓으로 가득 찬 정연함보다, 진실로 가득 찬 혼란을 고르겠다.

 

아이라고,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연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보여지기'를 그만 둔 세라,의 용기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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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도 나도 진실을 말하려 노력해야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번뜩 머리를 치는 월요일입니다
좋은 구절 감사합니다^^

별족 2015-07-20 15:11   좋아요 0 | URL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마 불패, 하지원의 '너를 사랑한 시간'을 낮시간 재방송으로 잠깐 잠깐 본다. 

아직, 이입하지 못했고, 이입하기에는 너무 산발적인 시청이라, 둘 다 너무 멍텅구리처럼만 보인다.

오랜 친구가 아마도 연인이 될 테지만, 연인이 되기 직전을 오려낸 장면들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닥치는 설렘을 묘사하고 있었다. 

인피니트의 엘,이 하지원을 설레게 하는 연하남으로 나왔다. 햐~멋지구나. 

둘은 같이 출장을 가서 성공적으로 일을 성사시키고는, 기분 좋게 여행기분을 내며 놀다가 숙소에 들어간다. 출장 온 일이 성공했으니, 오늘 밤은 축하하자며 꽃단장을 마친 하지원이, 엘-극 중 이름을 쓰고 싶은데 기억이 안난다-의 숙소를 노크하려고 섰다가 열린 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서는, 엘이 성난 목소리로 하는 통화를 엿듣는다. '괜찮아, 된다구, 정직원. 팀장님이랑 각별하다구.~' 설렜다는 게 부끄러워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는, 알아차린 엘이 돌아보는데, '그런 거였어?고작 정규직 일자리 때문이었어?'라며 항의한다. 나는, 사랑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분하고 억울한 하지원 대신, 불쌍한 인턴직원 엘에 이입해서는 '고작'이라니 '자신의 권력'을 모르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인식했어야 한다. 

권력,을 인식한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각자 누리는 새털만큼의 권력,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소비자가 생산자나 유통업체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젊은 여성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 굳이 권력, 이라고 이름붙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그 작은 관계,영향력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했다. 

팀장이고, 나이도 많은데, 심지어 말 한마디로 존재기반을 허물 수도 있는데, 상대의 행동에 설렘을 느꼈더라도,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인식했더라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은 관계는 그저 남자와 여자로는 오려지지가 않는다. 다른 많은 관계, 배경이나 조건,이라고 불러서 혐오하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인식해서, 서로를 보는 걸 제약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해서 서로의 행동이나 방식을 오해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어야, '갑질'을 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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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 성찰없는 미디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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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만화를 보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웰의 1984를 병치시켜서는 현재가 헉슬리가 상상하던 미래가 된 거 같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덕분에 우리가 이상한 정치를 감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만화였다. 만화의 번역본에도 닐 포스트먼의 이 책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원본 링크는 저자와의 저작권 문제로 아예 내려가 있었다. 나는, 이 만화가 책을 읽게 할 거라고 생각했던가, 이 책은 내용이 만화의 딱 그것 뿐인가, 싶어 책이 궁금해졌다. 그래, 만화를 봐서가 아니라, 원본만화에서 '저작권자의 요구로' 링크가 내려가 있어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통치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마약으로 통제당한다. 무언가 맥락이 남지 않은 오래된 기억 속에-그래, 내가 분명히 언제 읽었었다- 남아있는 책 속의 장면은 성난 군중에게 뿌려대는 환각제,였다. 마음 속에, 그런 방식으로 행복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읽었나보다. 

책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환각제'-소마-의 역할을 '텔레비전'이 하고 있다고,아마도 헉슬리가 지금의 세상을 본다면 동의할 거라고 말한다.  

책은 형식,이 내용,을 제한한다고, 혹은 적합한 형식,이라는 게 있어서, 텔레비전,이라는 형식-기술-은 오락,에는 특화되지만, 다른 진지한 주제들을 '오락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히려 티비로 무해한 것은 오락이나 드라마고, 유해한 것은 정치토론이나 뉴스나, 교육적인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기술,이라며, 그 자체로는 아무 지향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그 '기술'은 지향을 가진다고도 말한다. 나는, 읽으면서 공감했다. 

사람의 생각이 대면 대화,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사회와 글,이 보편화된 사회는 다른 구조를 갖게 된다며 중세 유럽와 초창기 미국을 비교한다. 그리고 티비가 보편화된 사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람의 눈을 보고 말하게 될 때, 공명같은 게 일어난다.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어도, 그 말이 싸움이 되어서 결국에는 화를 내며 끝났더라도, 말로 주고받은 것 말고 다른 것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쓴 시간, 말 밖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 때문에 그 사람과는 다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글로 말해야 할 때, 시작과 끝, 전과 후, 논리에 대해 생각한다. 말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글이 된 다음의 삶이나 그러니까 '일관성'이란 게 중요해진다. 

그런데, 티비처럼 '말'이지만 '말 외의 말'이 사라진 방식으로 전해지는 것은 그 방식 때문에 '오락화'가 일어난다. 그건,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의 문제라고.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개입이 필요없는 '뉴스들'을 듣는 건 사회에 대한 '무력감'을 강화시키고, 병렬로 이어지는 서로 다른 뉴스는 이전 뉴스,를 잊게 만든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지배계급의 통치방식에 순응적인 '긍정'이 넘친다. 

이미, 정치인의 일관성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재벌가의 행태는 포장된다. 

아, 화가 막 나는데, 이미 너무 많이 매체에 잠식당했는지, 하려는 말들이 전해지지 않는다.

말을 할 수도 없고 말들은 허공에 맴도는 거 같다. 


말,을 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거 말고, 전화로 말하는 것도 말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걸로, 진지하고도 길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시간도 흔치 않다는 걸 아는데도, 나이들어 꼰대가 되려나 보다. 


쉽게 전달된 것은 쉽게 사라지고, 형식이 내용을 제한하기 때문에, 책이 말하는 것이 그거라서,

아마도, 만화를 내려달라고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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