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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벌써 티빙으로 다 봤는데, 뒷북으로 티비엔에서 하는 걸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한자비석에 학교 밴드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있다고 해서 찾는 중이었는데, 그 비석에 쓰여진 말이 '出爾反爾'였다. 추리반,이라서 소리가 그렇게 나는 비석을 세웠나, 싶지만 역시 궁금해서 뜻을 찾았다. 

출이반이[出爾反爾]
국어우리말샘
너에게서 나와서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행불행과 좋은 일 나쁜 일이 결국은 모두 자기 자신에 의하여 초래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보기
出尔反尔[chū ěr fǎn ěr]
중국어
발음
발음듣기
① 이랬다 저랬다 하다 ② 언행이 앞뒤가 서로 모순되고 신의가 없다 더보기









너무 신기해서 기억해두려고 적어놓는다. 

같은 한자로 쓰여져 있는데, 국어사전 뜻이랑 중국어 뜻이 다르다.

한자를 배워두면 선조들이 하듯이 필담은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 아래쪽에 고사성어 사전에 맹자 양혜왕 하편에 나오는 말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어로 뜻은 왜 저렇게 된 걸까.  

더보기,로 들어갔더니, 중국어 예문에 자업자득,이라는 뜻도 있으니, 같은 의미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아마도 이랬다 저랬다 하다,의 뜻이 더 큰 게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라는 말을 아예 다른 뜻으로 쓰던 그런 식으로 의미가 변질된 건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의견을 억압적으로 하나로 통일시킨다,는 의미로 변질되던 과정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처럼, 어른들이 '결국 네가 한 행동이 너에게 돌아온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모순되는 행동을 해 왔으면, 아예 그 말이 그런 의미로 변질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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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낮에 딸아이가 보는 '놀라운 맞춤법 파괴 상황'을 정정해주고 그 저녁에 놀라운토요일을 보았다.

받아쓰기,하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신기한 기분이 된다. 

사람은 듣고, 머릿 속에서 자신의 지식 안에서 정리한다. 들었더라도,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그 말의 발화 상황과 어긋나면, 들은 걸 기억하지도 못하고 가끔은 아닐 거라고 단정한다. 

김세정의 밤산책을 받아쓰기,하는 2라운드에서, 키는 김동현이 특별히 솔직하니까 이렇게 풀리는 구나,라고 말하면서 김동현이 들은 '이억받고'에서 '이어폰'을 유추해낸다. 

아는 게 많거나,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면, 밤에 산책을 나가는 기분에 대한 노래를 들으면서 '이억받고'처럼 들렸어도, 그렇게 쓰지 못한다. 

들리는 대로 쓴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보이는 대로 본다, 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감각하는 모든 것은, 내 머릿속의 내 경험 안에서 정렬되고 선택되고 밖으로 나온다. 내 경험의 한계만큼, 내가 가지는 사고의 한계만큼 제약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작은 언제나 담백하게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묘사여야 하는데 너무 많이 알거나,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에 의심을 가지고, 그대로 우선 받아들인 다음, 그런 다음에 같이 이야기나눠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답이 분명히 있는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정답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서로를 오해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준다.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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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초3 딸과 아빠의 대화가 이상했다. 

"반려자가 뭐야"

"아빠한테 엄마같이 인생을 같이 가는 사람이야"

뭐 이상할 게 없는 대화인데, 남편이 아이가 보고 있는 폰을 안경까지 밀어올리면서 보고, 

"그런데 그건 그게 아니라, 반반 나눈다, 할 때 반에 려,라고 쓰는 거야."

라고 까지 하는 거다. 

옆에서 듣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대화이기는 한데, 실상 초3 딸은 공포의 맞춤법 모음캡처화면(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4344955 -이건 아니고 폰 화면 하나에 가득차는 신기한 거였는데 못 찾았다) 보면서 말하는 거라. 발여자를 보면서 발려자라고 읽으면서 묻는데, 듣는 나나 남편은 '발려자'를 듣고 '반려자'를 생각하는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이건 다 맞춤법 잘 못 쓴 거니까, 제대로 써 줄게, 하고 써주려고 폰을 가져왔다. 그런데, 딸래미가 하는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덮집회의,를 보면서 아무래도 모르겠어서 남편에게 물어볼려고 소리를 내면 그 때 겨우 알게된다. 괴자번호,를 보면서도, 순합공간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러면 엄청 웃겨서 안 웃을 수가 없었다. 

겨우 겨우, 그 틀린 맞춤법의 바른 맞춤법을 뒤죽박죽 써서 줬다. 46개나 되는데, 딱 하나는 설명하기부끄러워서 안 써 줬다.

글자를 볼 때 머릿 속으로 어떻게 소리가 날 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소리가 나는 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은 지경이라, 놀라기도 했다. 

한글이 소리나는 대로 쓰는 소리글자라고 해도, 그 많은 말들은 한자에서 왔기 때문에 소리나는 대로 쓰면 이상해진다. 그러니까 소리는 가오캥이,라고 들려도, 머릿 속에서는 다시 가혹행위,로 정렬을 해야 의미를 알게 된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가 회자정리,를 알아보겠다고 무수히 많은 말들을 검색하는 그 순간(https://blog.naver.com/tvntea/222295409940) 같은 거지. 

이렇게 소리난다는 게 재밌고, 소리나는 데로 이렇게 적는다는 게 재밌고, 아이랑 이렇게 낄낄대면서 이야기한다는 게 재밌었다. 

한자어가 많고, 오래되서 이제는 안 쓰는 말-외양간, 오라, 같은 말들-, 영어도 있다. 잘못 들을 수도 잘못 쓸 수도 있는 말들인데, 이렇게 소리나고 소리나는 대로 이렇게도 쓸 수 있어서 웃겼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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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XAvkmaut5g&t=16s

미혼의 여성이 이 유튜브를 들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글을 보았다. 이 유튜브의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와 초반 앞에 따 놓은 어그로 그대로 '그런 사람은 아이큐가 두 자리'라고. 아이가 셋인 나는 우선은 화가 많이 나서, 퇴근하는 차에서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남편이 그렇게 건너 들은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되고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확인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나는, 아빠가 '나는 되는 사람만 찍어'라고 말했을 때 믿었다. 

선거 다음날 누구를 찍었냐고 물으면 아빠는 언제나 저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나는 한참 후에나 알았다. 

무서운 시대였고, 정치적 입장은 숨겨야 했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나는, 주토피아,를 보고도 역시 왜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까, 의구심을 가졌었다. 

(쥬디의 부모가 자신의 직업(농업)을 묘사하는 방식에 뜨악해하고, -요새는 내가 너무 곧이 곧대로 듣는 성정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더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게 시니컬한 농담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https://blog.aladin.co.kr/hahayo/8604003 )

사람들은 순정하게 말하는 방식을 잊은 걸까. 


이런 나조차도, 아이를 막 키우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나 어렸을 때 상처받았어요'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때 내가 쓴 반어법은 음, 기억나지 않는다. 잘못을 한 아이에게 잘했다,고 했던가. 


나는 이야기,라는 것이 가지는 미묘한 왜곡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즈의 마법사'는 '돌아갈 집에 대한 예찬'이지만, 뇌리에 남는 노래는 '오버 더 레인보우'고, '겨울왕국'은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또 뇌리에 남는 노래는 '렛잇고'같은 거다. 집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서 '저기 무지개 너머에는 아름다운 것이 있을 거야,라는 노래가 남고, 사랑이 가장 힘이 세다고 말하는 영화에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노래'가 남는 거다. 

교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에 했고, 그게 전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결국 전해지지 않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역시, 나의 곧이 곧대로 듣는 성정이 문제인 건가. 


순정한 말들은 연약해서, 부끄럽고 깨지기 쉬워서 그런 걸까. 나의 부모가 나에게 했던 대답 같은 거였을까. 

상대가 더 잘 받아들일 만한 말들로 문을 열어야 상대가 듣기 시작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으니 그런 거였을까. 듣기 좋게 말하는 걸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담백하고 정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말은 내 뜻은 전해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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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스토랑을 보는데, 박솔미가 아이들을 등교?등원?시키고 아이들이 남긴 밥으로 자신의 밥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들이 남긴 밥은 버리기 아까워요,라고 말하는 박솔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화려한 삶을 전시해서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매체에서, 새 것을 보여주고 소비를 촉진하고, 위생과 청결을 설파해왔던 매체에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되니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나도 아이가 남긴 밥을 먹는다. 아깝다,는 말이 한국에나 존재하는 말이라고 자원이 풍족해본 적 없어서 하는 말이라고 그런 성정을 무언가 버려야 하는 태도처럼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확신에 차서 써놓은 그 글에 나는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식당에서 남는 밥이 아까워 쩔쩔 매는 나에게 '그걸 왜 뱃 속에 버리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깊은 거부감이 들었다. 

가난한 자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고, 더하여 그 가난한 자의 정체성을 변호한다. 

이렇게 쉽게 버린다면, 지구는 어쩌지, 같은 것. 내가 먹을 쌀을 짓기 위해 물고기가 살고, 잡초가 우거질 어떤 땅에서 쫓겨난 풀벌레들이 있는데, 내가 먹을 고기가 되기 위해서 죽어 간 동물이 있는데, 내가 그 요리를 앞에 두고, 그렇게 쉽게 버릴 수는 없다,는 각오 같은 것. 

집에서 먹는 밥은, 그런 것도 같다. 한 끼에 예쁘게 차려서 남는 반찬을 톡 털어서 버리는 게 아니라, 어차피 가까운 식구들이라고, 뚜껑을 덮었다가 다음 끼니에 다시 내오는. 식당이라면 비위생적이라 할 만한 어떤 것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누가 남긴 밥을 먹고 싶어해? 그건 권력이 없다는 징표야,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도 같다. 

아니,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어한다. 

권력은 가장 좋은 것을 누리는 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책임지는 가운데 있는 거고, 아이들을 먹이는 책임을 지고, 더하여 자연이나 지구를 돌보는 마음은 권장되어야 한다고. 

모두 다 같은 부위를 먹고 싶어한다면 소 한마리를 잡아도, 더 많이 버려지겠지. 그런 세상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무엇을 먹느냐에 계급이나 권력같은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고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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