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522호 : 2017.09.16
시사IN 편집부 지음 / 참언론(잡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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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불안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불안을 무진장 키우지 않고, 적당히 꾹꾹 눌러가며 살아내는 것은, 그런 불안을 키우는 것이 삶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균, 바이러스, 발암물질,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이지도, 코로 냄새맡지도 못하는 물질들이 나를 병들고 아프게 한다고들 한다. 깨끗해보이지만 세균이 있으니 일회용 행주를, 살균제를, 쓰라고 하고, 미세먼지가 있으니 창문을 꼭 닫은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리라고 하고, 여기에는 발암물질이 있으니 이걸 쓰라고도 한다.


정말 필요한 건 돈 주고 살 수가 없어, 정말 필요한 건 광고도 안 하지. 라고 딸에게 말하는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조마조마 사느니, 어차피 죽을 거 늙으면 아프겠지, 살던 대로 살란다, 그런다. 나 하나 잘 살자고, 그걸 다 쓰면, 나 지나간 뒤에 무언가 잔뜩 쌓여있을 텐데, 쓰레기 내다 버리는 죄책감도 장난 아니야, 그러면서. 


안전한 생리대는 없다,라는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한 교수의 어떤 태도가,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화학물질 염려증에 대한 교수의 우려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며 공감이 되었다.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는 두려움을 불식시키기보다 훨씬 쉽다. 죽음에 이르는 수준,이라는 것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준,이란 것도 있지만,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그저 존재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모호하면 모호한 채로도 작동한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원초적 감정이라서 대중에게 강하게 전해질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그걸 방법으로 택한 접근에 나는 언제나 뒤로 물러서고, 의심한다. 누구라도, 그래야 한다. 두려움으로 나를 설득하려는 상대는 위험하다.  


인터뷰한 교수는 편리함 때문에 탐폰을 쓴다고 했다. -탐폰에는 독성쇼크사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나는, 깔창 생리대 뉴스가 나온 다음에,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좀 더 경제적인 관점에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생리컵을 쓰고 있다. 딸아이에게 권할 수 있을만큼 좋다. 할 수 있는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지만, 아직은 해외직구만 가능한 물건이라 쉽게 권하지는 못한다.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는 것이 정말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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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불편한 민낯
일의 발견
조안 B. 시울라 지음, 안재진 옮김 / 다우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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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문은 거기에 가 닿게 마련이다. 

일과 삶은 분리하기 어렵다. 

가족의 빨래를 돌리고 밥을 만드는 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삶을 꾸리고 있는가. 

 

먼댓글 링크의 밑줄긋기가 나의 고민들과 닿아 있어서, 절판된 책을 구해 읽었다. 막 구했을 때는 화다닥 읽어낼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양의 기독교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한참이다. 기독교가 규범을 형성하는 중세 교회에서 창녀가 장인조합처럼 스테인드글라스를 기부하려 하는 에피소드는 신기했다. 장인이 아닌 급여생활자,를 타인의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에 대해 가지는 종교적 죄책감같은 것에 대한 묘사를 읽었다. 그렇지만, 현대로 넘어가면, 빠르게 읽어낼 수 있다. 미국의 경영학책이 빠르게 수입되는 나라에서, 직원들에게 으랏차차 교육같은 걸 시키는, 온갖 뒤죽박죽 리더십이 뒤섞인, 결국 배신하는 기업의 실상을 느끼고 있으니까.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시간을 파는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원자력에 대해 말하고 싶은 나는 나의 일 때문인지 나의 믿음 때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운이 좋게도 IMF 눈 앞에 취업을 해서 내 뒤로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이십년이 되어가고,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그런데도 여전히 일할 수 있으니, 일도 회사도 고맙다. 

그런데도, '회사가 어려워 지난 한 달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설명하던 관리본부장이나, 가까운 장들이 자신의 먹는 밥이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모두 회사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IMF를 앞두고 같이 입사한 동기가 '이런 세상에 잘리지 않은 사람은 한번도 휴가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회사 밖의 삶이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이런 두려움에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나름 취약한 지위라서 회사가 정말 나를 원한다는 자신만만함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도 따라붙는다. 

끊임없이 배신하면서, 헌신을 요구하는 거대한 회사라는 조직 앞에서, 조직에 속한 나는 내 안의 균형조차 잡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모호하고, 헌신하기 어려운 채로, 기묘하게 조직 안에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존재할 생각이다. 역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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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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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은 여자였을 때,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에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을 거다. 

세상의 부조리함이나, 세상의 악함에 내 책임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가끔 젊은 내가 무슨 말을 했었던지 다 늦게 후회한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며, 나의 선택들이 가끔은 더 나쁜 세상에 일조했다는 걸 안다. 


소설은, 대개 젊은 여자가 화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력하고, 무해하고, 무책임하다. 

대개는 피해자고, 가끔은 가해자면서도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선량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 사람, 관계를 악착같이 붙들지 않는 사람, 그저 먼 과거로 추억하는 사람. 

관계를 바로잡기보다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 사람의 무해함이나 책임이 없다는 자기변명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배경이 외국이거나, 외국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내가 가지는 2,30대 젊은 여성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나보다, 세계화된 세대라는 생각도 하지만, 역시 촌년인 나는 먼 곳을 선망하는 마음은 현재, 이곳의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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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516호 : 2017.08.05
시사IN 편집부 지음 / 참언론(잡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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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들은 두렵다. 

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격렬한 반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이게 그럴만한 일인가, 생각했다. 


낯선 기술이 두렵지 않으려면, 그 기술을 인지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많던가(자동차나 비행기처럼), 그 기술 자체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던가,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원자력발전소 안에서도, 실제 원자력,이라 부를 만한 것, 혹은 방사선에 관해 오해없이 이해하는 사람들은 한 줌이 안 된다. 이해조차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 무서운 거야? 뭐, 그래도 편리하니까 쓰겠어, 라고 생각할 만큼, 인지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원자력은 에너지 밀도가 높다.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것 때문에 실제 이해하거나 종사하는 사람이 작다. 게다가, 그 최종 산물은 아무런 구분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화력이나 수력이 전통적이고, 가스가 집집마다 요리에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원자력은 익숙해질 수가 없는 에너지원이다.  

원자력이 익숙해지는 방법은, 양동이원자로-정말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신문같은 데서 양동이크기에 모든 기능을 구현하고, 오랜 기간 전력을 생산하고, 생산이 끝나면 그대로 파묻으면 된다고 한, 배터리 같은-같은 걸 집집마다 구비하는 정도는 되어야 익숙해지려나, 싶은 생각도 한다. 지금 신고리 5,6이 오랜 숙의를 거쳐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감소로 돌아서야 할 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원자로나, 발전소를 중지하고 해체하더라도, 연료봉은 거기 두지 뭐,라고 쉽게 생각하고 마는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하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곁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이번호 시사인,은 조선업 특집이다. 그런데, 확 펼쳐지는 사진 한 장이 걸려서 심난한 거다. 

먼 바다 뒤로 송전철탑과 원자로 돔이 흐릿한 배경으로 잡히는 바다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사진이다. '"니 원전 마피아라 카는 거 아나?"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주변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곳 앞바다에서 여름을 난다. 아이들은 인공 조형물인 원전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어제가 그랬고, 오늘이 그렇듯, 내일도 원전은 가동되는 줄 알고 자란다. 고리 원전 1호기가 가동을 멈췄다. 새 원전 공사도 일시 중단되었다. 아이들에게 진짜 안전한 자연을 돌려줄 날은 언제일까?'가 사진에 달린 글이다.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고 쓰여진 글이다. 

탈원전을 반대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팽개쳐서 그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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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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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바로 입사했다. 1년, 3년, 그 모든 직장인이 심난해 한다는 때에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만두고 싶은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경제적 독립말고 다른 걸 내가 회사에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또, 어디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여기 존재하지 않는 걸 다른 곳에서 찾지 않는 태도도, 여전히 회사 밖 친구들과 꾸리는 모임과, 취미로라도 쓸 수 있는 글이 있었다. 

누운 배는 회사의 이야기다. 사람이 모여서, 일을 도모하는 조직 내부에서 사람이 느끼는 이야기.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회사의 위계대로 또 평판이 갈리는 가장 말단의 이야기. 어쩌면 배가 눕고, 책임을 이리도 저리도 밀어내는 조직의 모습은 그래, 그런 모습을 나도 알지,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중반 이후, 평가지표에 대한 이야기나, 공정률이나 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가 어쩌면 이상적인 리더로 그리려고 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의 묘사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생각했다. 섬김의 리더십처럼, 리더십을 묘사하기 위해, 소설의 얼개를 쓰는 일과 이 소설은 얼마나 다른 질문을 가지고 있나, 이런 생각을 했다. 자기 삶의 어떤 부분, 살면서 느끼는 불일치, 지금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인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소설 속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준 이 결과 다음에 작가는 어떤 소설을 또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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