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 블루레이] 베이비 드라이버: 일반판 (2disc: 4K UHD + BD)
에드가 라이트 감독, 안셀 엘고트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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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퍼 무비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선량'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복종하는 자를 원하는 기존의 도덕률을 그대로 드러내는, 해사한 백인남녀가 주인공인 영화다. 현실감을 덜어내는 것이 영화의 기술인 양, 은행강도짓을 일삼는 사람들의 탈주운전자인 베이비는 '착한 사람'처럼 묘사된다. 차를 빼앗으면서 사과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차를 뺏긴 사람은 욕이나 나오지. 


케이퍼 무비,가 좋은 이유는, 문명사회의 도덕률이 한심하다고, 나의 어떤 동물적 감각이 느끼기 때문이다. 범죄자 그룹에 잠입한 형사가 범죄자 그룹에 동화되는 그런 기분처럼-폭풍속으로의 키아누 리브스!- 온갖 이유들로 나를 묶는 제약들이 대체로 허무하고 한심하다는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약한 자들끼리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참을 뿐이지, 강한 자들이 타고 넘는 이중잣대에 대한 분노의 심연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야기하다, '그건 불법이야'라는 대응에 말이 막힌 적이 있다. '불법'이라서 하면 안 된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불법'이라서 하면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이러저러해서 하면 안 된다,라고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야기하다 '법으로 못하게 해야 되'라는 대응에 또 말이 막힌 적이 있다. 내가 법으로 못하게 했어도 내 마음이 해도 된다고 하면 할 사람이라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영화 속의 베이비가 왜,를 질문하지 않아서 말하기 힘든 사람처럼 보였다. 돈을 주기 때문에 일을 하고, 법에서 금지했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연결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가족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범죄자의 협박에 시달렸다고 말하겠지만, 베이비의 가족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영화는 오락이고,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은 괴롭지만, 사람이 이렇게 얄팍해지는 것을 또 좋다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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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563호 : 2018.07.0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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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농활을 갔었다. 집과 같은 소재지의 동네였다. 농활의 의미가 무얼까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가고 싶었던 건, 그때 같이 놀던 사람들이 다 간다고 해서였다. 가고 싶어서, 집에 가서 열심히 일했다. 자기 집 농사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던 딸년이 대학생이 되어 방학이라고 남의 집에 가서 농사일을 거든다는 게 어이없을 부모님을 위해 집에서도 일했다. 그렇게 시작한 농활에서 도시에서 온 나의 친구가 일손을 거들러 간 농가가 승용차도 있고 샤워실도 있고 참 좋다고 놀라면서 말했다. 그 말에 난 또 참 삐딱해져서, '생각해봐라, 하루종일 흙먼지 묻히면서 일하는 사람에게, 세탁기도 좋은 욕실도 필요하지, 그럼 초가집에 살 줄 알았냐'라고 쏘아붙였다. 


예멘난민 기사들을 찾아 본다. 기사만큼 댓글들을 보고, 왜들 이렇게 말하는지 생각한다. 

입진보,라는 말들을, 가혹한 말들을 본다. 

브로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이런 말들. 

적개심을 고양시키는 말들의 성격. 

50년대 전쟁에서 튀어나온 사진들을 가지고, 난민을 상상한다. 자신이 상상하는 난민과 다르다고 난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상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민이 정말 뭐라고 생각하는가. 현실에서 타인을 만나면, 상상은 언제나 깨어진다. 

만나지 않으면, 상상은 부풀어오르고, 그대로 믿음이 된다. 

나쁜 편견을 진실인 양 강화하면서, 점점 더 가혹해진다. 

자신이 한 가짜 상상을 그대로 믿고, 그 믿음 그대로 말한다. 

말하기 전에 자신의 말이 포함한 믿음 중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생각해야 한다. 


타인을 자신의 틀에 맞출 수 없다. 

자신의 틀에 맞는 타인들하고만 살 수도 없다. 

타인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모든 노력은 쓸모없다. 

타인을 대할 때 너무 가혹해진다면, 자신이 가진 틀을 깨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살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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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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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밥이 너무 하기 싫었다. 간만에 집에 가서 엄마에게,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안 먹는, 먹는 것도 재료를 불에 익히는 정도로 먹는 숲 속의 원주민이 부럽다고 한 적이 있었다. 가만히 듣던 엄마는, 얼마나 안 되었냐, 얼마나 배가 고플 거야, 라고 이야기하셨다. 아닌 체 해도 나 역시, 풍요 속에 자란 어린 아이라는 자각이 닥쳤다. 없어서 먹지 못하는 배고픔을 하나도 모르는 거다.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읽을 때였나, 작가가 아버지에게 낮게 나는 전투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듣는 장면이 있었다. 전쟁을 피상적으로 떠올리는 작가도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각했다던가. 


전쟁은, 오락이 아니다. 인간의 악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혼란이다. 


책 속에서 김일성대학을 마치고 교편을 잡은 스물 넘은 젊은이는 전쟁의 와중에 남조선 교육위원으로 파병된다. 미 제국주의로부터 남조선 인민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이지만, 전쟁 한 가운데 던져진 남자의 눈에 전쟁은 한심하다. 잘 작동하는 위원회들로부터 교육위원의 역할을 지원받는 짧은 묘사 다음에는, 폭격을 피해 전조등을 끄고 밤길을 달리는 차를 타고, 북으로 가기 위해 계속 걷고, 결국 북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포로가 된다. 남에도 북에도 회의하는 전쟁포로가 되어, 고향에 남기로 하고 수용소에서 온갖 혼돈을 겪은 다음, 출소하여 고향 언덕에 서는 것으로 책은 마친다. 


작가에게 전해진 오래된 수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은 생생하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은 안 된다. 애써 귀기울여 전쟁의 괴로움을 들어야 한다. 오락 따위가 아니고, 피와 살이 튀고, 전쟁의 가운데도 배는 고프고, 똥은 마렵고, 살아야 한다는 걸, 그래서, 구차하고 더럽고 또 한심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삶이 이렇게 겨우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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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에카 쿠르니아완 지음, 박소현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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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6 큰 딸이 티비 다시보기로 '크라임 씬 3'를 연속으로 보던 주말이 있었다. 그 아래 어린 동생들은 집을 나가 놀고 있는 참이라, 나도 졸다 깨다 같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연속으로 두 편에 여자 살인자가 등장해서 화들짝 놀랐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 딸에게 이건 살짝 그렇다며 언질을 주다가, 아마도 여자 살인자가 희박해서 저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벌어지는 백 개의 살인에 백명의 살인자 중에 여자가 열명쯤 되면, 그 열 건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거다. 옛 말씀에 당연한 이야기-너는 죽게 되어 있어, 같은-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지만, 네가 죽지 않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어, 같은 허무 맹량한 이야기에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 말이다. 


인도네시아 작가가 쓴 책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읽었다. 영혼의 집,이 떠올랐지만-띠지에 '가디언''뉴욕타임즈''파이낸셜타임즈'최고의 책,이라는 월계관을 뒷표지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살만 루슈디,를 언급하는 찬탄들이 가득하지만,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은 읽은 바 없고,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가 남성임을 끊임없이 깨닫게 한다. 

인도네시아의 해안가 늪지대였었다던 할라문다,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가계도 안에, 딸들의 짝으로 역사 속의 적대자를 연결시킴으로써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여성이 남성의 상상 속에 여성들이다.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창녀가 되는 데위 아유나,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거만하게 남자들을 상처 입히며,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하면서도 결코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알라만다나,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언니의 사랑을 결국 차지하는 아딘다나,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고분고분 어머니의 남자와 결혼하는 마야나 도대체 여성인 나는 이입하기보다 구경꾼이 된다. 

강간당하면서도 파괴되지 않는 여자를 남자가 얼마나 선망하는지, 책 속에 수없이 많은 노골적인 성애묘사로부터 알아차린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는 이유는 여자가 아름답고 친절했고 자신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고, 남자가 여자를 강간했다고 해서 여자가 파괴되지는 않는다. 강간당해 결혼한 알라만다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 하는 수고들을 나는 세상 저렇게 황당한 여자도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면서 구경한다. 기구한 인도네시아의 역사나, 기이한 신화들 가운데, 귀신과 악령과 복수를 구경한다. 그저 이야기로, 허무맹랑하기 때문에 구경하면서 읽었다. 그렇지만, 남자들이 보는 포르노를 옆에서 보는 듯한 죄책감이 드는 즐거움이다. 이야기의 허무맹랑함을 나는 감당할 수 있지만, 물론 나도 강간 따위로 파괴되지 않을 강한 여성을 원하지만, 이건 뭔가 남성의 변명을 위해 만들어진 여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책에 찬사를 늘어놓는 남자들?이란, 이라고 편견으로 가득 찬 생각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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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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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가 닿으면 좋겠다. 

상대에게 잘 가 닿고, 또 그 글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삶의 면면들이 너무 복잡해서, 글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쉬이 전해지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쓰려고 하다가 너무 내 자신이 드러나서 숨고 싶으면, 또 글은 모호해진다. 

글은 나다.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고, 거기에는 나의 어리석음, 나의 한심함, 나의 편협함이 드러난다. 


책 속에서, 이옥과 김려는 글을 쓴다. 서로의 글을 찬탄하며 읽었을 둘은, 자신의 글을 문제삼는 왕 앞에서 자신의 글을 바꾸라는 명을 듣는다.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글은 나니까. 다른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배신하는 일이다. 안 써도 되겠지만,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글을 쓰지 않으면 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쌓여서 또 그대로 내 자신을 잃을 것만 같다.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기 위해 쓴 그 오랜 글들이, 아름답고 선량한 글들이, 긴 세월을 건너, 깊은 우정을 통해 지금 나에게 와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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