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563호 : 2018.07.0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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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농활을 갔었다. 집과 같은 소재지의 동네였다. 농활의 의미가 무얼까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가고 싶었던 건, 그때 같이 놀던 사람들이 다 간다고 해서였다. 가고 싶어서, 집에 가서 열심히 일했다. 자기 집 농사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던 딸년이 대학생이 되어 방학이라고 남의 집에 가서 농사일을 거든다는 게 어이없을 부모님을 위해 집에서도 일했다. 그렇게 시작한 농활에서 도시에서 온 나의 친구가 일손을 거들러 간 농가가 승용차도 있고 샤워실도 있고 참 좋다고 놀라면서 말했다. 그 말에 난 또 참 삐딱해져서, '생각해봐라, 하루종일 흙먼지 묻히면서 일하는 사람에게, 세탁기도 좋은 욕실도 필요하지, 그럼 초가집에 살 줄 알았냐'라고 쏘아붙였다. 


예멘난민 기사들을 찾아 본다. 기사만큼 댓글들을 보고, 왜들 이렇게 말하는지 생각한다. 

입진보,라는 말들을, 가혹한 말들을 본다. 

브로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이런 말들. 

적개심을 고양시키는 말들의 성격. 

50년대 전쟁에서 튀어나온 사진들을 가지고, 난민을 상상한다. 자신이 상상하는 난민과 다르다고 난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상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민이 정말 뭐라고 생각하는가. 현실에서 타인을 만나면, 상상은 언제나 깨어진다. 

만나지 않으면, 상상은 부풀어오르고, 그대로 믿음이 된다. 

나쁜 편견을 진실인 양 강화하면서, 점점 더 가혹해진다. 

자신이 한 가짜 상상을 그대로 믿고, 그 믿음 그대로 말한다. 

말하기 전에 자신의 말이 포함한 믿음 중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생각해야 한다. 


타인을 자신의 틀에 맞출 수 없다. 

자신의 틀에 맞는 타인들하고만 살 수도 없다. 

타인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모든 노력은 쓸모없다. 

타인을 대할 때 너무 가혹해진다면, 자신이 가진 틀을 깨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살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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