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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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공식 PREP'을 읽었다. 읽고 참 좋은 책이라고 서평을 써야지, 생각하고는 쓰지를 못하고 있다. 좋은 책을 읽었으니, 잘 써야 할 텐데, 싶어서 쓰질 못하고 있는 거다. 

잘 쓰고 싶어서 책을 읽고는 도대체 독자인 나는 왜 읽는지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책이나 읽자 그러고는 이북도서관에서 책들을 골라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못하게 되었습니다'와 '상관없는 거 아닌가'이다. 그러고는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 

아무 할 말도 없으면서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때도 있는데, 지금 살아오고 말들이 쌓였지만 꾹 참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내가 책을 쓴다면 제목은 '모두 다 변명'일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대개는 '내가 한 선택들에 대한 이유'들이라는 걸 자각한다. 자각할 때마다, 그걸 왜 상대가 들어야 하지, 생각하는 거다. 그럼 쓸 이유는 없네, 싶다. 

나는 추상적인 글,에 박하다. 이유를 숨겨놓은 글들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 드러낼 마음이 없으니 책은 못 쓰겠다, 싶다. 실상은 그걸 누가 알고 싶겠어, 하는 거지. 독자인 내가 이렇게 박하니 못 쓰는 거지. 

어떤 글이라도, 자기 삶에서 비롯된 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글은 의심한다. 장기하의 글은 장기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배경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자유직업을 가진 미혼의 남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글이다. 살아가는 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태도는 좋은 태도다. 그렇지만 내가 그걸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지. 육체와 시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렇게 산 사람은 저렇게 사는 삶을 아예 모른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는 저렇게 사는 사람은 무슨 생각인가 궁금한 거고. 누구에게도 격렬하게 싸움을 거는 게 아니니까, 장기하의 '상관없는 게 아닌가'라는 태도가 살아가는 데 낫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책을 낼 때는 좀 달라도 되지 않는가. 좀 더 깊이 숨겨놓은 마음이어도 좀 더 스스로에 단단한 고집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만, 글이란 위험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박제되어 결국 나를 옭아매기 때문에, 글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휘청휘청하다가 결국 어떤 글이라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태도로 맺고 만다. 글은 닫혀버리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삶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글을 삶에 일치시키는 방법은 그것 뿐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상황-'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살다보니 이렇게 되어 버린 걸 열심히 변명하기에는 무의미한 말들이라 그럴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어렸을 때 생각한 것처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시시각각의 선택이라기 보다, 장기하 말대로 파도타기 같은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자면 결국 이렇게 살아버린 자신의 삶을 변명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런 감각을 이야기로 남기는 사람은 아마도 스스로가 소외된다고 느껴서, 더 말하고 싶은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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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6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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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난해하다. 그 난해함을 나는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 거 같다. 

그래,라고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그 난해함. 나쁜 줄 알면서도 끌리는 난해함. 

박완서님의 단편은 부끄러운 맘이 들어서 잘 못 읽는다. 너무 노골적이라서 내 마음이 들킨 것처럼 부끄럽다. 모순되는 순간들, 그 안에 내가 잡은 기이한 고집,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부끄러운 상상들까지 부끄러워서 대놓고는 말 못하는 감추는 마음들을 본다. 그걸 보는 마음은, 나만 그런 건 아니야,하는 안도도 있고, 다들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구나, 하는 너그러워지는 마음도 든다. 


모두 좋았다. 

난해한 자신,의 부끄러운 감정들 위로, 타인의 난해함을 연민하는 태도들, 을 본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의 짧은 대목을 어디선가 읽고 무언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서, 푸근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 해설에서 '신랄하다'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는다. 

신랄해서 부끄럽지만, 비난하는 말들은 아니다. 그대로 소우주인 인간이, 아무리 해도 알기 힘든 인간이란 존재의 난해함을 들어, 그래서 즐거운 삶이지 않냐,고 말해주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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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 모든 영어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마크 포사이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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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뭘까. 삼백이는 이름이 없어서 삼백살이나 살았는데 말이지. 이름이 없다고 해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과 본질은 연결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세상 만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원자력발전소와 핵발전소 때문에 한참을 이야기할 때(https://blog.aladin.co.kr/hahayo/7744179), 나는 언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언어에 대해서, 언어의 본질에 대해서, 언어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려는 태도의 무용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결국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에 거리두기를 실패한 안타까운 존재로 회자되는 것으로 마쳤지만, 지금도 나는 언어에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먼저 나서서 사회나 문화를 제도를 직조하지 않고, 사회나 문화나 제도 안에서 언어가 꼴을 갖추는 거지. 애초에 그런 언어가 아니었어도, 사회가 변화하면 언어 자체도 의미를 바꾸던지, 모양을 바꾸던지 변해버리는 거다. 

발화되고 사라지는 말뿐만 아니라, 기록되어 전해지는 글조차,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달라진다. 정 반대의 의미로도 변화하고, 오류가 고착되서 변화하기도 한다. 

책은 이적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고 재밌다길래 구해 읽었다. 표음문자들로만 가득찬 유럽의 말들이다. 거대한 언어의 경계가 세계의 다양한 말들을 품고 변화한 경로들을 보여준다. 인간의 혐오하고자 하는 마음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도, 역사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언어 안에 어떤 식으로 남아 있다. 언어라는 걸 수정하려는 태도는 어쩌면, 타인을 수정하려는 용맹하고 오만한 태도다. 

표의문자의 세계에 살고 있어서, 우린 좀 덜할까 싶어 다행인가. 우리 언어 관련 책을 찾아볼까, 싶다.  


앵글로색슨 족과 켈트족의 관계가 실제 어떠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겁니다. 학살이 만연했는지, 화기애애하게 잘 지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대는 암울했고, 역사는 망각이 심합니다. 애통해하거나 분개할 만한 일도 아닙니다. 역사는 길게 보면, 훔치지 않은 문물 없고 침략당하지 않은 나라 없습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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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오세라비.김소연.나연준 지음 / 글통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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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실에서 후배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는 518 공소시효 때문에 마음이 분주할 때였는데, 그 후배가 나한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좋겠다고 말해서 너무 놀랐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운동하고 있지 않았거든. 그 후배는 자신이 운동에 진입한 계기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소되면 다음은 없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나는 A를 원한다면 A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B를 원하면서 A를 말하고 있다는 걸 들으니까 너무 생경했다. B를 원하면서 A를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후배의 이유가 또 너무 이상해서도 나는 놀랐다.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게, 이 운동에 사람들이 계속 합류하는 게 왜 중요하지?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운동인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나도 알고는 있다. B를 원하면서 A를 말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자신의 바람을 다른 사람을 앞세워 말하는 것도 만나봤다. 뭔가 억울한 아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완전히 100프로인 마음은 없지 않은가. 만약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80이래도, 만나기 싫은 마음 20은 있고, 선택하는 순간 20은 결코 이뤄지지 못하는 거니까. 운동을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 80에, 함께 할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 20이면, 20은 버려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거다. 20을 선택하면, 지지부진하게 80을 버려야 하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은 알아챈다. 말은 A를 원한다지만, 실상은 아니구나, 라고 등을 돌리게 되는 거다. 나조차도 모호한 마음들이 항상 내 안에서 부딪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 가운데, 결국 어떤 말을 선택하고는 그 말에 책임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까, 말은 말. 만은 아니다. 

알라딘 서재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온 나는, 페미니즘에 있어서 그러한가, 회의하고 있다. 오래된 페미니즘 서적들에 대한 감상평에 달린 응원의 말들과 좋아요,에 비하면 나의 말들은 언제나 덜 전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좋아요,가 나의 좋아요,에 대한 응답이고, 친절한 말들을 하기 때문에 친절한 말들을 듣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좋아요,도 하지 않고, 친절한 말도 하지 않으니 나의 댓 상황이나 좋아요,가 나에게 적당한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요,가 좋아요,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절한 말이 그냥 친절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쉽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동조와 공감의 말들이 환영받는 세태라는 것도 알고 있다. 상관없는데, 왜? 그걸 안 하겠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말과 삶이 너무 멀어지면 병든다고 생각하는 축이라서 조금 악착같이 좋아요,도 공감의 댓도 달지 않는다. 말은 너무 쉬우니까. 오래된 1세계 페미니스트의 책들과 새로운 1세계 페미니즘 책들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도 어쩌면, 서양인의 어떤 태도, 말과 삶이 분리된 태도에 민감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뭔 말이래?' 싶은 아무 말들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닌데, 그 삶을 산 철학자의 멋진 말들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하는 거다. 버지니아 울프의 가족사를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과 떼어놓을 수 없고, 한나 아렌트의 연애사를, 보부아르의 연애사를 그들의 말들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거다. 


책은 쉽게 읽힌다. 그건 현학적인 스무살의 나에게는 단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삶을 어떻게든 가깝게 하려는 지금의 나에게는 장점이 된다. 합리적인 게 힘을 발휘하는 공간이나 조직에서의 삶을 살다가 감정이 힘을 발휘하는 공간이나 사람을 대하는 당혹감이 2장에서 드러난다. 공대를 졸업한 내가 여자들만의 모임에 갔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3장에는 드러난 목표와 추구하는 목표가 점점 벌어져버린 운동단체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문제해결을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 운동단체나, 앞세웠으나 그저 앞세워졌을 뿐인 피해자에 대한 말들이다. 1장은 가장 마지막에 읽었는데, 페미니즘 교육이나 공격으로 변질된 미투운동에 대한 말들이 아프다.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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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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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피플,을 재미나게 읽고 선물도 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었고, 재인,재훈, 재욱 도 가지고 있다. 이건 이북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로맨스가 나랑 안 맞는 거라고 결론을 내려야 하나 싶다. 

부모님께 쓴 감사인사 말고는 다 너무 끔찍했다. 외계인이 한아를 사랑하는 이유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사랑에 이유가 없는데, 굳이 있어야 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런 이유를 붙인 것이 너무 자만하고 있는 듯 해서 짜증이 났다. 

트렌드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에너지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나는 현대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친환경라이프에 코웃음을 친다. 비건이라고 해서, 재활용옷가게를 한다고 해서, 분리수거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 여성보다 탈탄소적이라고 할 수 있냐고? 도시의 삶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그 무지의 태도. 결국 도시 밖에서 매립될 쓰레기, 도시 밖에서 들여오는 많은 자원들, 이국의 열대과일들, 트렌드에 민감한 마음. 다 한심하다. 그러면서도, 꽤나 깨인 사람인 양 하는 모든 말들이 다 치기어린 자만이라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모르겠더라.

타인의 위성이 되는 삶, 지구 쯤은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젊은 삶, 나를 알아봐주고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사랑,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도, 죽음 이후에 다시 업로드 되는 삶이라니, 나는 다 싫었다. 댓가없는 고통없는 사랑을 원한다는 게 한심했다. 위험이 없다면 여행을 왜 하겠어? 죽음이 없다면 이 삶이 반짝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나는 돌덩이 외계인과 평화로운 사랑을 한다는 한아가 죽음 뒤에 다시 업로드되는 것이 어린 마음이나 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적 자본주의도 짜증이 나고, 평화로운 문명이라는 묘사에는 내가 평화를 안다,는 자만이 느껴졌다. 평화를 우리는 알 수가 없지 않나? 싶어서. 나의 평화가 너의 평화와 같을까? 왜 네가 그걸 안다고 생각하지? 평화로운 문명별에 제공되는 우주자유여행권,은 다시 우주적 절대권위를 상정하고 있어서, 또 짜증이 나지. 소설에 깔린 많은 전제들이 다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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