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오세라비.김소연.나연준 지음 / 글통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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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실에서 후배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는 518 공소시효 때문에 마음이 분주할 때였는데, 그 후배가 나한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좋겠다고 말해서 너무 놀랐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운동하고 있지 않았거든. 그 후배는 자신이 운동에 진입한 계기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소되면 다음은 없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나는 A를 원한다면 A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B를 원하면서 A를 말하고 있다는 걸 들으니까 너무 생경했다. B를 원하면서 A를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후배의 이유가 또 너무 이상해서도 나는 놀랐다.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게, 이 운동에 사람들이 계속 합류하는 게 왜 중요하지?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운동인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나도 알고는 있다. B를 원하면서 A를 말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자신의 바람을 다른 사람을 앞세워 말하는 것도 만나봤다. 뭔가 억울한 아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완전히 100프로인 마음은 없지 않은가. 만약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80이래도, 만나기 싫은 마음 20은 있고, 선택하는 순간 20은 결코 이뤄지지 못하는 거니까. 운동을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 80에, 함께 할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 20이면, 20은 버려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거다. 20을 선택하면, 지지부진하게 80을 버려야 하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은 알아챈다. 말은 A를 원한다지만, 실상은 아니구나, 라고 등을 돌리게 되는 거다. 나조차도 모호한 마음들이 항상 내 안에서 부딪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 가운데, 결국 어떤 말을 선택하고는 그 말에 책임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까, 말은 말. 만은 아니다. 

알라딘 서재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온 나는, 페미니즘에 있어서 그러한가, 회의하고 있다. 오래된 페미니즘 서적들에 대한 감상평에 달린 응원의 말들과 좋아요,에 비하면 나의 말들은 언제나 덜 전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좋아요,가 나의 좋아요,에 대한 응답이고, 친절한 말들을 하기 때문에 친절한 말들을 듣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좋아요,도 하지 않고, 친절한 말도 하지 않으니 나의 댓 상황이나 좋아요,가 나에게 적당한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요,가 좋아요,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절한 말이 그냥 친절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쉽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동조와 공감의 말들이 환영받는 세태라는 것도 알고 있다. 상관없는데, 왜? 그걸 안 하겠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말과 삶이 너무 멀어지면 병든다고 생각하는 축이라서 조금 악착같이 좋아요,도 공감의 댓도 달지 않는다. 말은 너무 쉬우니까. 오래된 1세계 페미니스트의 책들과 새로운 1세계 페미니즘 책들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도 어쩌면, 서양인의 어떤 태도, 말과 삶이 분리된 태도에 민감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뭔 말이래?' 싶은 아무 말들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닌데, 그 삶을 산 철학자의 멋진 말들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하는 거다. 버지니아 울프의 가족사를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과 떼어놓을 수 없고, 한나 아렌트의 연애사를, 보부아르의 연애사를 그들의 말들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거다. 


책은 쉽게 읽힌다. 그건 현학적인 스무살의 나에게는 단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삶을 어떻게든 가깝게 하려는 지금의 나에게는 장점이 된다. 합리적인 게 힘을 발휘하는 공간이나 조직에서의 삶을 살다가 감정이 힘을 발휘하는 공간이나 사람을 대하는 당혹감이 2장에서 드러난다. 공대를 졸업한 내가 여자들만의 모임에 갔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3장에는 드러난 목표와 추구하는 목표가 점점 벌어져버린 운동단체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문제해결을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 운동단체나, 앞세웠으나 그저 앞세워졌을 뿐인 피해자에 대한 말들이다. 1장은 가장 마지막에 읽었는데, 페미니즘 교육이나 공격으로 변질된 미투운동에 대한 말들이 아프다.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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