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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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왜 경험없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 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나는 아이를 이미 키운 나이 든 아주머니 말들을 들었다. 하나보다 넷을 키운 엄마 말을 들었다. 3개월의 아기는 낯을 안 가려서 맡기기 좋다고, 1년을 키운 아기는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 사람도 구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3개월 휴가만 내고 출근했다. 

친구에게 "왜 출산이나 육아가 이런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 엄마의 태도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먼저 아이낳은 나의 친구들 말에 내가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어떤 괴로움이든 내가 겪어야 할 문제고, 내 경험의 보편성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직장의 후배에게 "선배는 말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내가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거라서, 출산 경험을 과장할 수도 없었고,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 모든 순간들이 감사했다. 출산의 순간에는 항상 죽을 수도 있다면서 마음을 다 잡지만, 죽지 않았고 둘 다 건강하니, 그걸로 충분하다,였다. 후배는, 남자도 함께 듣는 출산 고생담을 엄마된 자가 저렇게 단순하게 묘사하는 걸 참지 못하는 거 같았다. 


젊은 엄마들이 만드는 책을 언니가 선물해서 받아 읽고 나랑 얼마나 다른지 쓴 적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1312880)


갯마을 차차차,를 보다가 덜컥 걸리는 게 있어서 쓴 적도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015445)


산후조리원을 보다가도 무언가를 쓴 적도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2151051)


어디에나 이야기는 있지만, 고양되고 독려되는 이야기는 있다. 지금은 여성이 얼마나 출산과 양육으로 착취당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고양되고 있다. 하나나 둘을 낳은 엄마들이, 일과 양육을 함께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팔린다. 프리랜서,라는 위태로운 직업군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런 직업군의 엄마들이고, 아이없는 젊은 여자들이 스스로의 확신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출산과 육아가 스펙이 되지 않아 애석해하는, 가치를 다른 것과 거래하는 세태가 강화되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타겟 독자는 지금 책을 주로 사는 2~30대 미혼이거나 기혼에 아이가 없거나 하나거나 둘인, 억울하고 괴로운 여성들인 거 같다. 이 책을 쓴 엄마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전통적인 피라미드 조직의 말단에 속해서 아이를 셋 건사하는 나는 시큰둥하게 읽는다. 결국 개인이 겪어내야 하는 삶의 국면들에서, 어떻게 조언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내가 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난다의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읽고 그런 말들을 남겼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0081387) 책 속에서도 그런 모순이 충돌한다. 먼저 아이를 키운 어른들의 말들에 '너도 당해봐라'라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당사자가 아니면 입을 닫아야 한다'라고도 한다. 그러고도,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일 것이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누군가는 아이를 낳기로 하고, 누군가는 낳지 않기로 할 것이다. 짧지만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온 조언들은 있지만, 이렇게 긴 말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찰나, 이유도 없이 깨닫게 된다.


정서경작가의 글은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처럼,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686633) 아이가 살고, 내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짧은 순간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말보다, ''이제 네 차례다'라는 음모'라던가 '보이스피싱에 낚여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물건을 주문해버린 것 같았다'라는 말, 아이없는 여자들의 두려움을 고양시키는 말들이 남을 거 같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사람의 글이다. 슬픔도 잔잔히, 기쁨도 잔잔히를 추구하는 나같은 사람은 '모두 지나가는 날들'이라고, 짧고 격렬하기 때문에 즐기라고 말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임소연연구자가 선배 학자에게 듣는 '나는 타협을 잘 했을 뿐이야'라는 조언이 와 닿는다. 젊고 선명하기 원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오염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조언이 절절하다. 


아티스트 전유진은 자기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방,이라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는 나 자신이 보이는 말들이다. 그렇지만 '출산과 육아를 하는 것에 관해 당사자가 아니면 그 어떤 말도 보태지 말자'라는 말은 너무 강경해서 물러서게 된다. 당신이 지금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게 된달까. 더하여 다음 장에 '하지만 그게 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라는 말이 붙는다. 양가성과 모순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 뒤로 이런 글들이 따라 붙는다. 어른들은 언제나 말해주고 있었다. 듣는 내가 미숙해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 말 뜻을 몰랐고, 실감하지 못했다. 겪어보고서야 뒤늦게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원망도 아무 말도 보태지 말라는 당부도 기이하다.


또래집단의 말들이 더 잘 들린다.  

또래집단의 감수성과 조응할 말들이 더 잘 들린다. 

세상의 진실과 거리가 멀더라도, 또래집단의 말들의 파도 위에 올라탄 말들이 더 잘 전해진다. 

어쩌면 그래서, 모두 개별적일 수 밖에 없는 경험 가운데-누군가는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두 시간 진통에 가뿐하게 낳을 수도 있는 거니까- 슬프고 억울하고, 쓸쓸하고 괴롭다는 이야기만 더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같다. 


엄마이기 전에 아이였으면서, 아이였을 때, 엄마의 감정을 느꼈을 거면서, 왜 그러는 걸까.

어쩌면 엄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마음이 이런 이야기들을 점점 더 커지게 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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