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로맨스의 끝이 결혼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사랑의 불시착'도,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결혼으로 맺지 않았다. 그러고도 오래도록 사랑했습니다,로 끝이 났던가. 결혼도 없고, 아이도 없이, 심지어 늙지도 않은 채로 이야기는 닫혔다. 결혼의 이야기는 '부부의 세계'나 '나의 위험한 아내'처럼 스릴러 장르가 되거나, 시월드와의 전쟁으로 묘사되고 있다. 부부가 도의 처음 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결혼을 한 나는, 지금 이야기들이 어떤 미래로 흐를지 근심한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이가 나에게 속했다는 감정을 누그러뜨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라서, 무언가 아이를 자기 자신에 속한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나 말들에 또 근심한다. '나는 내 복으로 살지요'라고 말하고 쫓겨났다는 셋째 딸 이야기(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691674) 를 좋아하는 나는, 준비 안 된 부모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말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도 낳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에도 조금씩 조금씩 물러나게 된다. 아이는 내가 낳았지만, 나에 속하지 않았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고, 어느 순간에도 완벽한 엄마가 될 수도 없다. 단지 존재하는 채로 그저 서로를 책임지고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산후조리원,을 가끔 짤들로, 가끔 재방송 토막으로 보고 있다. 이제 이야기의 세계로 진입했으니, 진실은 어디론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고 있을 때 엄마는 왜 집에 애를 안 보고, 남의 집 애를 보냐고 그랬었는데, 이제 출산과 양육이 내가 겪기보다 구경하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대하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짧게 으랏차차 지나가는 인생의 한 장면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대로 구구절절 장황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겪은 사람보다 겪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구경하고 말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인가도 싶다. 아니면, 이야기로도 충분해서 실상 겪지 않기로 결심하는 사람이 많아질거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야기,라는 게 정말 신기한 게 이야기되는 순간 달라지는 게 있다. 행복하다,는 말도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닌 거 같고, 슬프거나 어렵다,는 말도 그 자체로 본질은 아닌 거 같다. 직접 겪었을 때의 그 복잡한 감정을 단지 구경하는 것으로 알 수 없는데도, 구경하는 것으로도 안다고 느끼고 알아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과장되는 이야기들 가운데, 나는 이렇게 점점 아이가 사라지는 미래가 올까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