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제품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70여 년 전 만들었던, 라디오 T3는 애플사가 아이팟을 만들 때 참고했던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생활용품이 나올 때면 사용자들은 디자인과 실용성을 고려하여 기존보다 '더 나은 '제품을 기대한다. 평생을 산업디자이너로 일해 온 디터 람스가 말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기준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 게리 허스트윗은 헬베티카 서체를 만든 헬베티카의 삶을 조명한 영화를 시작으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물건과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을 그린 <오브젝티파이드>, 그리고 도시 디자인을 탐색한 <어버나이즈드>까지 3부작을 찍었다. <디터람스>(2018년)는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 (less but better)'철학으로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가구를 만들어 온 디터 람스의 열정과 철학을 담은 다큐영화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재건 운동이 일어났다. '절제적이고, 기능적이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당시 산업 현장에 모여들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던 람스는 브라운 회사에서 들어간 후 가전제품 분야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레코드 플레이어가 눈에 보이도록 투명 커버를 만들고 벽에 매달려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와 휴대하기 편한 라디오/ 플레이어를 제작한다.

 


제품의 '본질'에 충실히 하고자 했던 람스는 설명서가 없어도 누구나 작동 가능한 제품을 디자인 했다. 브라운 ET 66 계산기는  몇 개의 색과 버튼으로만 디자인하여 누구나 몇 번 사용하면 버튼의 위치와 기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고쳐 쓰고 개선해 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환경을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편리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도록 단순하게 생활용품을 구상했다.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이라는 원칙을 평생 고수한 람스는 늘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자 힘쓴다. 그는 "우리가 지구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이 모든 플라스틱을 찍어 내고 있었군.", "지구에 가치를 더하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가?"질문하고 각성한다. 환경을 위해 그는 제품의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고 본질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


람스에게 디자인이란 단순히 물건 하나를 만들어내는 일을 넘어선,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그는 그와 동료들이 더 좋은 세상,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제품을 제작할 때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준수했지만,  동료들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도록 격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 허스트잇은 람스가 50년 동안 살아온 집을 주무대로 삼아 디자이너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람스가 만든 가전 제품이 생활 속에 하나의 제품으로 어떻게 사람과 관계지어 있는지를 프레임 안에 포착한다. 흑백의 스틸 사진과 람스의 인터뷰를 줄기로 독일의 자택과 전시장, 영국의 비초에 가구작업장으로 공간을 이동하며, 감독은 대중과 지역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는 람스를 따라간다. 디터 람스에게는 그와 협업했던 동료들이 있었다. 각자의 책임 범위 이상의 것들을 매일 같이 고민했던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람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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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공님 디터 람스 리뷰 ✌ 열독 할 정도로
디터 람스 이야기라면 귀가 쫑긋 ˙˚ ʚ ᕱ⑅ᕱ ɞ˚˙

21세기에 각종 첨단 기기 디자인 속에 디텀 람스가 설계한 디자인의 기본 DNA가 깊게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용 설명서가 없어도 누구나 작동 가능한 디자인!!


청공 2021-09-21 04:58   좋아요 1 | URL
제가 늘 스콧님 페이퍼를 쫑긋 열독하고 있지요~^^
그쵸.심플한 가전제품보면 람스 디자인이 떠오를 듯요. 딱 필요한 것만 살려 놓은...올 가을 집안정리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
 

그가 자기 파트너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녀를 만지는그의 모든 몸짓이 그녀의 주체성의 핵심을 흔들었을 터이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그에게 더 없는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게 되면 파트너의 몸을 만지는 일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성적 욕망은 육체적인 반면 사랑은 정신적이라는 진부한 지혜를 다음과 같이 뒤집어야만 할 것이다. 성적인 사랑은 사랑이 없는 섹스보다 더 육체적이다.
- P67

바라건대, 이 감염병으로부터 내밀한 육체적 접촉을 새롭게 음미하는 길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땅earth, 그 움직임 없고 텁텁한 재질이 정신성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정신의 매체라고 보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Andrei Tarkovsky의 가르침을 다시금 배우게 될 것이다. 

타르콥스키의 걸작 〈거울〉(1975)에는 그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콥스키 ArsenyTarkovsky가 이런 대사를 읊는 대목이 나온다.
"몸이 없는 영혼에는 죄가 있다. 마치 옷이 없는 몸처럼."
육체적 접촉은 영혼으로 가는 길이지만 노골적 이미지들 앞에서의 자위는 죄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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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해석자는 ‘더‘ 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석을 꿈꾼다.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에서 얻었다."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의 표현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저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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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공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청공 2021-09-19 14:26   좋아요 1 | URL
스콧님~^^
추석인사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보름달 들고 있는 고양이인가요? 귀여워요. 저런거 어떻게 만드시는지~ 감탄~
스콧님두 즐건 추석보내세요~^^
 

아빠의 나약함과 결핍감을 발견하면서 과거에 그가 부재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빠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ㅡ강인한 해결사ㅡ을 할 수 없을 때, (사라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만 했다. (침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침묵해야만 했다. 가부장제는 약함을 여성성으로, 강함을남성성으로 환원하므로 아빠는 자신이 강하지 못할 때 보이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했다. 아빠 또한 남성의 감정을 억압하는가부장제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스스로가 위태롭게 느껴질 때마다 아빠의 편지들을 읽었다. 이토록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나는 착한 딸이었다.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고 모진 말을 해도 아빠에게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 P166

공간의 분배에서 할머니와 가장 대비되는 사람은 엄마였다. 집안 상황이 좋았을 때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방이, 나와 동생에게는 각자의 방이, 아빠에게는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있었다. 그러나 명문 빌라처럼 방이 넉넉했던 집에서도 엄마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불공평을 인식한 뒤 내가 엄마만 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집 전체가 다 내 방이지." 엄마의 뜻과 달리,그 말은 엄마의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있었다. 며느리, 아내, 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 P141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원하는 하나쯤은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혁명가, 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는 될 수 없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거라고생각했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혁명가,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를 모두 합친 사람이 되겠다는것이나 마찬가지다. - P92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정남규가 검거되었다. 열세 명이 사망하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뒤였다.
왜 서남부지역이었나는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습니다. 살인을 쉽게 하기 위해 방범시설이 갖춰져 있지않은 곳, 서민이나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장소로 삼았습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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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다이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시집의 내한공연은 그야말로 꿈의 무대였다. 8월 15일, 장소는 임진각 평화공원, 그리고 베토벤 <합창>교향곡 연주.  당시 바렌보임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이 우리의 음악으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북한 국민이 함께 모여서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한국 공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광복절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합창 소리를 들으며, 그날 임진각 평화공원에 앉아있던 관객들은 화합에 대해 생각해 봤음직하다.

<평행과 역설>은 이스라엘 출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문학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5년에 걸쳐 나눈 대담을 담은 책이다. 스스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다수 써온 사이드는 바렌보임과 음악 관련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교육, 철학, 정치 등 여러 분야의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 탄생 250주년 행사를 기획하며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바이마르 워크숍에서 처음 만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는 “아랍 음악은 아랍 사람만이 연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토벤 음악은 독일 사람만 연주할 자격이 있다는 건가”라며 서로 다른 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함께 연주하며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된다. 바렌보임은 분쟁은 타자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중동국가 젊은 음악가들을 이끌고 오랜 기간 지휘를 해왔다.

    

 

바그너는 친 나치 작곡가일까. 바그너 곡 연주가 금지된 이스라엘에서 바렌보임은 왜 연주를 하려는 걸까. 바그너는 작곡과 오페라 대본을 직접 썼고 다수의 산문을 남겼다. 그는 “모든 유대인을 불태워버려라”라는 글을 썼던 반유대주의자였다. 바렌보임은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에서 유대인 등장인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반유대주의를 암시하는 장면이나 대사도 전혀 없다.” 그리고 “정말로 오페라에서 반유대주의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그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연주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1948년 바그너 음악에 대한 연주를 보이콧한 일부 여론을 비판하며 바그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현세대들은 바그너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바렌보임이 바그너에게 열중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부분보다는 “음악적”인 이유가 컸다. 그는 바그너가 기존 오페라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음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작곡했기에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바렌보임이 음악 작품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기에 협주곡 5번 2악장을 연주할때 “어떻게 신성이 구현되었는지 매우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베토벤은 음악에서도 투쟁과 용기를 담으려 한 작곡가이다. 바렌보임은 “점점 세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여리게 연주”하는 기법은 고도의 연습을 요구하기에 연주자는 온 몸으로, 과감하게 투쟁하듯 곡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행과 역설>은 사이드와 바렌보임의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와 주관적인 해석이 담긴 책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사이드와 바렌보임이 나눈 대화는 다양한 이슈를 넘나든다. 국가 간 정치적인 분쟁 문제, 문학과 음악이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획일적으로 전문화 된 교육에 대한 숙고, 인간의 감정의 내적과정과 음악이 고립된 채 사회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기에 <평행과 역설>은 토론의 장으로 가져가기 좋은 책이다.

 

 

다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면 바렌보임이 베토벤과 바그너의 작품을 음악 용어를 예를 들어 해석하는 부분에서  멈칫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렌보임은 일반 청중들이 아닌, 오랫동안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랑해 온 에드워드 사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평행과 역설>에 언급된 음악을 감상하며 두 지성의 우정어린 대화에 천천히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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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8 0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책 저도 좋아합니다
바렌 보임이 개인적인것(병든 아내 버린)을 떠나 유대인임에도 자신의 소신을 밝혀서,,,
가장 깨어있는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빈필 신년 음악회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 노장임에도 훌륭했습니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이순간이라고 ,,,

청공 2021-09-09 06:33   좋아요 1 | URL
뒤프레.넘 안타깝죠? 개인사와 작품을 연관지어 예술가를 평가해야할지, 분리해야 하는건지 늘 어려워요.바렌보임 올해 내한공연이 취소된 거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스콧께서 신년음악회 관련 페이퍼를 쓰셨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워낙 글을 많으쓰셔서^^ 바렌보임 음반은 스콧님 페이퍼에 여러 번 올라온 것 기억나구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있다면, 지금 이순간˝에 밑줄 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