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이 출간되기까지 제임스 조이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로부터 항의와 소송제기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 소설이 무기력하고 인사불성에 빠져 있는 아일랜드인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비의 잠에 빠져 있다. 어머니를 잃고 가정을 책임지느라 먼지 풀풀 나는 집을 떠나지 못하는 열 아홉 살 딸, 하녀를 농락하여 돈을 뜯어내는 건달들, 결혼을 강요당하는 하숙인, 술과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 돈을 좇는 가톨릭 신부 등. 가정이 붕괴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몽롱한 혼수상태”를 즐기는 아일랜드인들의 모습이다.


 

14편의 단편 중 마지막에 실린 <죽은 이들>에서는 앞선 작품들에서 보여준 갇혀 있는 이웃들과는 달리,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는 인물이 그려진다. 이모들이 마련한 연례 댄스파티에 참석한 조카인 게이브리얼과 아내 그레타. 연설을 준비하는 게이브리얼은 로버트 브라우닝 시가 듣는 사람들의 수준에 비해 너무 높지 않은지 고민한다. “상스럽게 덜커덕거리는 남자들의 굽소리와 질질 끌며 춤을 추는 구두창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교양 수준이 자기보다 낮다고 여긴다.

 


게이브리얼은 연설에서 이모 세대들에게는 인심, 유머 인간미와 같은 미덕이 있지만 과거에 대한 생각에만 집착한다면 “산 자들의 세상에서 우리의 과업을 과감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해 버릴 수도 있다”며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를 다하기를 요청한다.

 


파티를 마치고 호텔에 도착한 게이브리얼은 아내 그레타에게 욕정을 느낀다. 그레타는 파티에서 들었던 노래를 떠올리며 수녀원 학교에 다닐 때 자신을 사랑했던 소년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있다. 그녀의 집 앞에 비를 맞고 서 있다가 폐병에 걸려 죽었던 소년.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게이브리얼은 소년의 사랑을 감지한다. 그리고 남편으로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초라했는지 깨달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는 아내에게 사랑을 줬던 죽은 영혼을 가깝게 여기며,  이제 소년과 아내의 고향인 “서쪽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의 전통을 옛것으로 치부했던 조이스가 과거를 포용하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부분이다. 창밖에는 눈이 흩날린다. 아일랜드 전역에 내리는 눈은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들 위에 모두에게 내린다.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화합과 눈으로 정화된 아일랜드인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아일랜드의 지형과 전통 노래, 영국과 대립하고 있는 정치, 종교적 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더블린 사람들>은 아일랜드 색채가 강한 소설이다. 1910년대 위선과 무기력한 일상에서 살았던  아일랜드인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와 이웃을 매치시킬 수 있기에,  <더블린 사람들>은 아일랜드 지역과 시대를 넘어선 보편적인 서사로 읽힌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민낯에 거울을 바짝 세워 들었던 조이스. 그는 ‘빈사 상태’에 빠진 아일랜드인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는 순간을 그린다. 인물들의 변화 여지를 열어놓기에 독자들의 부지런한 작품 해석의 참여를 유도한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조이스. 그는 이야기 속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암시와 열린 결말로 처리하기에, 독자들은 물음표를 찍어가며 상상과 짐작으로 그 틈을 메꾸어야 한다. 다행히 작품 뒤에 실린 역자의 해설이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하기에 독자들은 기댈 언덕이 있다. 조이스의 문학관, 이야기의 흐름과 빠져있는 부분의 해석, 그리고 “위선과 마비에서 해방시키려는 예술가의 노력”과 같은 후대 평가도 제시되어 있어 조이스가 뿌렸던 악취 제거제의 효과도 볼 수 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7-21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창공님 제목이 정말 강렬합니다. 저 이 책 읽어보고싶었는데 창공님 좋은 리뷰 👍

청공 2022-07-22 05:53   좋아요 1 | URL
시간내셔서 꼬옥 읽어보세욥.mini74님 리뷰도 기대합니당^^

새파랑 2022-07-21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조이스는 역시 <더블린 사람들>이 가장 좋은거 같아요. 다른 책들은 좀 어렵기도 하고 😅

청공 2022-07-22 06:05   좋아요 2 | URL
더블린사람들 읽기가 그리 쉽지 않았어여~ 역자해설이 많은 도움을 줬네요^^ 맞아요.조이스 소설은 어려워서 젊은 예술가까지 시도해 보는거로요😉

scott 2022-07-24 2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문동에서 야심차게 새 번역본<율리시즈>출간 된다는데

한국어 판은 김종건 교수님 못 뛰어 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피쉬 앤 칩스는
더!블!린! ㅎㅎㅎㅎ

그레이스 2022-07-25 06:36   좋아요 3 | URL
범우사 율리시스 갖고 있으나 어문학사 걸로 장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번역하신 김종건 교수님이 어문학사로 출판사 옮긴 이유가 있더라구요?!
문동에서도 나오는군요;;;

청공 2022-07-25 06: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새 번역본이 나오는구요. 우리말로 옮기는데 무척 고생했을 번역가... 언젠가는 율리시즈 일부라도 읽어볼 수 있는 독서가가 되고파요~

더블린 피쉬 앤 칩스 세상 최고군요ㅎㅎ
갈색 식초냄새가 물씬한 아침입니다~^^
 
제임스 조이스, 어느 더블린 사람에 대한 일대기 (만화평전)
알폰소 자피코 지음, 장성진 옮김 / 어문학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페인 만화가 알폰소 자피코가 그린 제임스 조이스 평전. 조이스가 떠돌아다녔던 도시마다 그를 도왔던 익명의 후원가들, 돈을 꿔준 사람들, 당대 작가들이 술자리마다 있었다. 출판이 거절된 <더블린 사람들>,<율리시스>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롤러코스터. ˝나는 예술가˝라고 생의 끝까지 외쳤던 조이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7-19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잊고 있었네요.
리뷰보고 장바구니 넣었던 책인데... 뒤로 밀렸나봐요. 조만간 율리시즈 낭독회 할거라 읽어봐야겠어요^^


청공 2022-07-21 03:42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와와. 낭독회까지하시다니요! 율리시스 출간 200주년 해에 의미있는 일이겠어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연초부터 율리시스 관련 행사를 하더라고요~ 저는 언제쯤 율리시스를 손에 넣어볼까나요?^^

scott 2022-09-09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공님 낼 역대급 보름달 뜬다고 보름달, 추석 대보름달이 뜬다고 합니다

추석 연휴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제가 드리는 보름달은 요기에
・ 。  ★彡
☆彡。∴。。🌕 ☆彡 ・
 ・゚*。・ 。*・゚
( )_( ) ・ 。・*・゚。  ・
(。- .•)
o_(“)(“)
 

우리는 러시아어 전체를 그 문체와 떼어놓고 판단해 온 것이다. 한 문장의 모든 단어를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바꿔 놓으면, 그리고 그럼으로써 의미도 좀 달라질뿐 아니라 단어들이 상호관계 속에서 갖는 소리와 무게와효과까지 달라지면, 대략적으로 전달되는 의미밖에는 남지않게 된다. 

그런 식으로 취급되면,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은마치 지진이나 철도 사고로 옷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중요한 것, 그러니까 성품의 독특함이나 행동 방식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고도 무엇인가 아주 강력하고 인상적인 것이 남는다는 사실은 영국인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통해 입증되는 바이지만, 그런 손실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왜곡하여 엉뚱한 데 강조점을 두며 읽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 P72

단순성, 인위적인 노력의 부재, 그리고 비참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의 주된 사명이 고통당하는 동료를 이해하되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는것이리라는 생각은 러시아 문학 전체 위에 감도는 구름과도같다.

 그것은 우리를 건조한 지성과 메마른 대로에서 끌어내어 그 그늘 아래 들어가게 하는데, 그 결과는 물론 낭패스럽다. 우리는 거북하고 자의식적이 되며, 우리 자신의 특질들을 부인하고 짐짓 선량함과 단순성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다. 급기야는 멀미가 날 정도로 착하고 단순하게 말이다. 우리는 그들처럼 단순한 확신을 가지고서 <형제여>라고 말하지 못한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면증은 여행처럼 자신이 뿌리내렸던 곳과 이별하는 경험이다. 처음 뿌리를 내렸던 토양에서 나온 식물처럼 잠으로부터 멀어지고 , 남아있는 잠의 존재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탈탈 털린다. 혼란의 뿌리가 말초신경처럼외부로 드러난다. 

잠이란 궁극적으로는 중력과 결부되어발생하는 문제다. 잠은 당신을 대지로 끌어당겨 그곳에눕히고 땅에 파묻는다. 잠든 시간 동안 당신은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휴식처와 자양분을 제공하는 터전과 재결합한다. - P27

불면을 연구한 한 학자는 "사랑도 수면처럼 측정 불가한 정도로 막대한 신뢰를 요구한다.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과 수면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좀 더 사적인 영역으로 옮겨 생각해보자. 불면증을 앓게 되면 우리는 사랑의 어두운 면과 마주한다. 바로 사랑하는 대상의 본질적 타자성이다. - P56

불면증과 사랑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둘 다 바늘로찌르는듯한 부재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면증에 걸리면 망각, 즉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수면을통해 누리는 의식으로부터의 탈출을 갈망하게 되며 그 갈망속에서 우리는 물질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재차 확인한다. 한편 사랑에 빠진 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면서 사랑의 서약을 맺는다.  - P55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1-27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술은자신의 광기와 접촉하는 한 방식이다. 그리고 손택은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며 그에 대항하기 위해 글쓰기를 ‘무기‘로 동원해야 한다고 느끼게 한 성격의 일부, 다시 말해 자신의 ‘어두운 면‘과 조우하게 만든 예술의 영역을 포함하는 논란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었다. 

이를테면 그는 미국의 엄격한 검열에도전하고 때로는 검열을 받아야 하는 현대 언더그라운드 영화에 관한 글쓰기가 불법적으로 이런 감정에 숨통을 틔워줄기회를 제공하고 생각했다.  - P151


예술작품을 ‘의미‘로 환원시킬 때, 비평은 그것을 길들이며, 말 잘 듣고 통제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며, 그것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능력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석은 개인의 정서적 경험을 더럽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은 그런 시대, 대부분의 해석 작업이 반동적이고 사람들의숨통을 막아버리는 시대다.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중공업 공장이 내뿜는 매연처럼, 예술 해석의 분출도 우리의감수성을 해친다." - P168

손택은 아방가르드 미학이 예술적·정치적 진보를 촉진하리라는 것을 더는 굳게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손택의 관심은 문화를 혁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손택은 더는 아방가르드의 선봉에 서지않으며, 대신 모더니즘의 영속적인 정신적 혁명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이 예술과 삶에 있어서 어떤 도덕적 함축을 갖는지묻는다.

이 탐구는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철학자 에밀 시오랑에 관한 에세이에서 가장 명료하게 표현된다. 손택이 보기에 시오랑의 철학은 영속적인 파멸의 시대에 정신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는가라는 긴급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었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