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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란을 날려라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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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한 때 ‘시인’이었다. <엽란은 날려라>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로 시인 콤스톡의 가난 투쟁기를 다루고 있다. 버마의 식민지 경찰을 그만두고 파리와 런던에서 떠돌며 노숙자, 접시닦이, 빈민원 사람들을 그린 르포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였다면, <엽란을 날려라>는 책방을 배경으로 한 가난한 시인의 돈과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고든은 시인이 되기 위해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돈으로 상징되는 자본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영혼을 지키며 시를 쓰고자 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그의 진짜 동기가 아니었다. 돈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모호하게나마 그는 일종의 돈 없는 은둔자가 되기를 고대했다.

돈을 정말로 경멸하더라도 하늘의 새처럼 어떻게든 살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든은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주머니 속 돈을 매 순간 만져본다. 맥주 한 잔 마실 돈, 한 끼 살 돈, 담배를 피울 돈. 그는 돈과의 투쟁을 감춘다. 로즈메리와 데이트 할 때, 비용은 절대 그녀가 내게 해선 안 된다. 상류층 친구와의 첫 술잔은 꼭 그가 사야한다. 돈을 증오하고 돈과의 사투를 벌이면 벌일수록 고든은 더욱 돈의 힘을 체감한다. 돈은 사랑도 좌지우지한다.

 

“돈은 모든 것과 관계가 있소.

내가 돈이 많다면 당신은 나를 더 많이 사랑할 거요.”

 

7개월 동안 고든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굶주려가며 오로지 시를 쓰겠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버는 주당 2파운드는 집세와 끼니정도만 간신히 해결할 정도였다. 점점 무기력해져 가는 그에게 로즈메리의 임신소식이 들려온다. 그녀와 뱃속 아기가 그를 가난에서 구원해 줬던 게 아닐까. 고든은 다시 광고회사로 돌아가게 된다. 고든의 원고 뭉치는 배수관 물속으로 던져진다.

    

엽란은 중산층 가정에 두었던 식물이다. 안락함, 여자, 평범한 일상을 상징한다. 고든은 결국 결혼을 하고 가구를 사고 엽란을 창가에 가져다 놓으며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가게 된다.

“오 엽란이여, 네가 승리했다.”

 

오웰은 <목사의 딸>과 <엽란을 날려라> 두 소설을 두고 결코 쓰지 말아야 했던, ‘돈벌이만을 노리고 쓴 책’이라고 고백하며 더는 출간되기를 원치 않았다. 냉철한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노동계급을 바라보는 오웰의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자발적 가난에 실패한 개인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웃다가 울다가 시인의 투쟁은 처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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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2파운드 정도만있어도 심각한 육체적 고생을 당하진 않는다. 육체적 고생을 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것은 중요치 않다. 돈의 결핍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머리와 영혼이다. 정신의 죽음,정신적 불결함- 이런 것들은 수입이 어느 수준 아래로 떨어질 때 불가피하게 우리에게 닥치게된다. 신념,희망,돈.이 세가지 중에 성인만이 마지막 것 없이도 앞의 두 개를 가질 수 있다.

"그렇군요, 다시! 단추가 하나도 없네요. 
고든, 정말로 끔찍해요!"

"난 그런 거 없어도 상관없소. 
난 단추 따위보단 영혼을 가지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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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승효상의 건축여행 21C 컬처크리에이터 1
승효상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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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의 건축은 낮고 고요하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하양 무학로 교회, 조계종 전통불교문화원, 수졸당, DMZ 평화생명동산, 노무현대통령 묘역 등 종교를 아우르며 공동체를 위한 건물을 지었다.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여행지의 현장에서 시작한다. 직접 보고 걷고 사유하면서 공간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상상했다.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찰과 서원 수도원 등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돌며 건축을 이야기하며 비움의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저자에게 영적 성숙을 줬던 건축은 종묘와 루이스 칸이 지은 샌디에이고의 소크연구소였다. 종묘의 정전 앞에 비어있는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옛 제례를 그리며 물질문명과 천민자본주의 세상을 벗어난 ‘피안’의 세계로 빠져든다. 소크 연구소에서 두 연구동 사이에 비어있는 마당을 바라보며 저자는 공간의 의미와 비움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더 웅장하고 현란한 건축물이 아닌 덜어냄으로써 진실 되고 욕심 없는 건축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리라.

 

‘비움’의 건축을 찾아 나선 그는 수도원, 사찰, 폐허를 방문하여 당시 살았던 사람들을 소환한다. 폐허에 남아있는 잔해를 보고 공간구조와 그 곳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복원 가능했다. 2천 년 전에 집집마다 수도가 공급되었던 폼페이, 누가 건설했는지 왜 멸망했는지 모르는 5세기에 20만 명이 살았던 신들의 도시, 테오티후아칸,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 폐허 속에서 그는 “지금 보이는 침묵의 세계가 절을 세운 목적이 아니었을까. 비록 사찰은 없어졌으나 ‘부질없음’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보이지 않은 절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성찰한다.

 

중심 공간을 기준으로 지어진 서양의 건축과 달리 우리 건축은 자연을 고려하고 공동체 삶을 지향했다. 우리의 전통 집은 방 자체가 홀겹이고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으며 대청이나 툇마루는 공간이 뚫려있다. 병산서원의 누각은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길고 기둥 있고 비어 있다. 그 안에 풍경을 채우기 위함이다. 사찰의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선암사는 여러 개의 건물군이 모인 집합체다.

 

저자는 고유한 특징을 가진 건물이 모인 것을 보고 이상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한 건물이 없어져도 선암사는 그대로이며 한 부분이 덧대어져도 그 역시 선암사인 것이다. 부분이 전체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는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야말로 다원적 민주주의 도시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은 우리를 르토로네 수도원, 안동의 영산암,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사는 페즈, 유럽의 여러 묘역지 등으로 안내하여 땅에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승효상의 비움의 건축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내서와도 같은 책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기에 각 챕터가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런 독자들에게는 30여개 도시와 50여개 종교 건축물 기행을 담은 승효상의 <묵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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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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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주체 성립 문제가 문학사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 책의 화두다.

한국현대소설 속 당당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더 넓혀 세계문학 속 주인공을 대치해 본다면 한국현대소설 속에 그려진 개인은 과연 주체적이었던가, 질문하게 된다. 20년 넘게 러시아, 세계문학을 강의해 온 저자는 “세계문학의 흐름”이라는 포괄적 시선으로 한국현대문학 (1950년부터 1990년까지)을 살펴보며, 시대적 맥락에서 작가는 사회 전체의 모습을 담고 있는지, 소설 속 인물은 자기 정립에 이르렀는지 되짚는다.

손창섭은 한국 전쟁 후 폐허된 현실을 암울한 분위기와 무능력한 인물로 그려냈다. 정신적 가치가 없어진 시대이기에 인간을 동물처럼, 어머니로부터 홀대받고 내버려진 소년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손창섭의 1960년대 초기 작품에 주목하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그 현실을 담으려면 장편소설의 등장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서 결말 이후 동옥이가 어디로 갔는지, 몸을 팔러 갔는지, 자살을 한 것인지 이야기가 더 전개되어야 하고 《잉여 인간》에서는 전쟁의 허무에서 벗어나 신분상승을 향한 길로 갔어야했다. 하지만 손창섭은 그곳에서 멈췄다.

4.19혁명과 5.16군사 정변, 본격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던 1960년대는 변화와 혼란의 시기였다. 개인이 주체적 인물로 살아가기 힘든 때였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남한과 북한 체제 사이에서 자신을 타협하지 않았던 이명준은 주체되기를 포기한 인물이다. 이에 반해 학병시절 체험과 해방 이후 정국을 자세히 담고 있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에서 주인공 유태림은 미래를 제시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소설의 말미에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태림의 제자들 이름을 작가가 제시하였기에 《광장》보다 더 나아갔다고 보았다.

유럽의 산업화, 근대화 시기와 함께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의 이야기는 당시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 《적과 흑》에서는 주인공 소렐이 시골에서 도시로 가서 부르주아로 출세하는 과정을 담았고 《고리오 영감》에서는 상경한 라스티냐크가 파리를 향해 외친 ”이젠 너와 나의 대결이다”라는 저항과 대결의 목소리가 있었다. 토마스 만은 《부덴부르크 가의 사람들》에서 4대에 걸친 가문이 어떻게 변화하고 몰락해 갔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이런 작품에 견주어 볼 때 저자는 한국 현대 문학에서 부르주아를 다룬 문학이 빈곤하다고 꼬집는다.

황석영은 《삼포가는 길》과 《객지》에서 계층 이동하는 부랑자, 간척 사업장 노동자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1970년대 모습을 잘 담았다. 하지만 저자는 비판적 리얼리즘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굳이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시대의 핵심을 다루어야 한다. 리얼리즘은 단편과 잘 결합되지 않는다. 사회적 총체적 진실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작품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비판적 리얼리즘이 구현가능하다.”

 

우리에겐 에밀졸라의 《제르미날》이 보여준 파업과 노동쟁의를 다루는 소설이 부재했고 노동계급을 담고 있는 소설이 부족하기에 1980년대에 우리는 고리키의 문학을 많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국사회의 총체적 시야를 담은 작품은 없었다. 저자는 우리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먼저 겪은 유럽의 소설 속 등장인물과 사회상을 예시 삼아 한국현대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작품의 의의를 찾고 방향성을 살피는 저자의 시선은 날카롭다.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은 색다른 해석으로 다시 읽는 재미가 있고 낯선 작품은 소설가의 생애와 줄거리, 작품 속 발췌로 이해를 돕는다. 가히 다년 간 문학 강의를 해온 저자의 노하우가 느껴진다.

 

올해는 한국 전쟁 7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현대사와 함께 걸어온 한국현대소설을 다시 펼쳐볼 시간이 아닐까. 때를 같이 하여 철도원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은 황석영 소설이 나올 예정이다. 한국현대사의 전모를 담은 작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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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왕성한 정신으로 지식을 쌓아 가는 반면, 인생의 반대쪽 끝에 있는 이 단계에서는 그 지식들이 해체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인 만큼, 두 단계는 다르다. 나는 어머니가 뜯어지는 책 같다고 생각했다. 책장이 날아가고, 문단이 뭉개지고, 단어가 흘러내려 흩어지고, 종이는 순수한 흰색으로 되돌아 간다.
가까운 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더해지지는 않는, 뒤에서부터 지워지는 책.어머니의 말에서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하며 텅빈 자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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