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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 수정의 야인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2
박홍규 지음 / 푸른들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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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작품과 사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삶과 글이 일치했던” 작가였기에 그의 전기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곧 그의 작품의 밑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저자는 초반부에 오웰이 교육을 받고 제국경찰로 일했던 반제국주의 작가로의 탄생했던 시기로 기술한다. 이어 버마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후 10년동안 밑바닥 생활을 하고 스페인 전쟁에 참여하는 시기를 사회주의 작가 오웰로, 스페인에서 돌아와 1950년 죽기까지를 권력에 반대하며 글쓰기를 해온 시기로 책은 구성된다.

 

이튼을 졸업한 후 미얀마에서 제국경찰로 일했던 오웰은 스스로를 제국주의 억압자로서 인식한다. 교수대로 끌려가는 죄수들, 미얀마에서의 처형 장면, 그리고 현지인들이 속에서 놀림을 받으면서 식민 경찰로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악취가 풍기는 감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죄수, 창백하고 겁에 질린 장시수의 얼굴...모두 견딜 수 없는 죄의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오웰은 미얀마 편이 아니었다. 그가 제국의 경찰로 있을 때 미얀마에서는 불교승려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졌다. 저자는 불교승려들에 대한 오웰의 증오는 그가 사회주의 작가라고 말했던 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오웰은 식민지 해방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경찰을 그만 둔 오웰은 런던과 파리의 최하층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식민지에서 오웰이 겪었던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약자들 편에 서고자 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번듯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다. 오웰은 온몸으로 노동계급의 실태를 체험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쓰며 부랑자들의 삶, 탄광노동자들의 싵태를 기록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쓰며 오웰은 사회주의 작가로 자리를 굳힌다. 저자는 우리가 노동자들의 일부가 되기 힘들지만 같은 편이라는 연대의식만으로 충분히 그들 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웰은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계획에만 몰두하여 근본적으로 세계를 바둑판으로 만들기는 바라는” 사회주의가 아닌 보통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적 품위, 즉 솔직함과 관대함”에 사회주의의 본질이 있다고 믿었다.

 

오웰은 순수와 참여문학을 동시에 추구했던 작가였다. 예술과 정치를 항상 접목시키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문학적 성실성’을 지키기 위해 정치와 문학 사이에 거리를 두라 경고한다. “내란에 참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면 참전할 수는 있지만 전쟁선전물을 쓰는 건 안 된다.”오웰은 같은 시기에 글을 썼던 조이스,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등을 ‘목적의식’이 결여된 작가라 비판하였다. 그들은 진보에 대한 믿음 대신에 ‘예술을 위한 예술’에 치중했기 했던 작가였기 때문였다.

 

저자는 오웰의 생애와 사상, 작품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오웰이 쓴 에세이와 작품을 바탕으로 소소한 개인사부터 출판사 뒷이야기, 1930년대의 문학흐름, 그리고 오웰의 사상 변화 등 작가 오웰과 인간 오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표작인 <동물농장>과 <1984>를 실제 역사와 비교하며 현대적 의의를 제시한 해석은 흥미롭다. 고세훈의 <조지오웰>은 오웰의 정치사상이 중심이 된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분석에 가까운 책이라면 박홍규의 <수정의 야인, 조지오웰>은 작가만의 주관적 해석이 돋보이는 오웰에 관한 총정리 격인 평전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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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서만 사느라 인간사에서 배제되었다는 두려움, 달리 말해 주위에 펼쳐져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답고 푸른 초원에 대한 동경이 한시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이 두려움, 이 동경이 바로 내 삶의 주요 모티브다. p.92

사랑을 하면서도 어느 한순간 죽음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황홀하고 끔찍한 체험이 임박했다는 사실. 사랑하면서 죽음의 신이 다가오는 걸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럼 예술은 무엇을 남길까?로베르토 무질은 대답했다.
"예술에서 남는 것은 변화한 우리이다."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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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은 사물과 그 감촉에 대한 관심, 특히 현실 생활의 냄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따라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모순적인 인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그 역시 모순에 찬 보통 인간이었다. p.40

오웰은 분명 촌놈이었다.
민요나 민중가요를 즐긴 반면 클래식 음악은 전혀 듣지 않았다.클래식을 예술중에서 가장 자연스럽지 못하고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림은 좋아했지만 현대 추상화는 싫어했다.현대화가 중에서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표명한 사람은 살바도르 달리였는데, 이 경우에도 그의 그림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의 자서전에 나타난 인간의 비정상적인 심리에 관심을 두는데 불과했다. 문학의 경우에도 유미주의적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p.42

내가 쓰는 것은 무엇인가 폭로하지 않으면 안 될 거짓이 있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타인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일이 동시에 미적 경험이 아니었다면 나에게는 한 권의 책을 쓴다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긴 잡지 기사 하나도 쓰지 못했으리라.p.45

오웰은 혁명과 전쟁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 결과는 반드시 환멸과 냉소주의가 아니다. 기묘하게도 이 경험은 인간의 고상함에 대한 신념을 더욱 작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이 내 속에 남기고 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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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 친구에게 신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별달리 성공적으로 묘사되지 못한 문학 속의 인물이며, 오디세우스나 리어 왕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단박에 오디세우스나 리어 왕보다 더 확실한 실체는 없다고 응수했다. 나는 조금도 납득되지 않았으나 그의 외교적인 답변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p.52

우리는 살면서 어느 문학작품에 쏟아진 온갖 혹평을 읽기도 하고, 때론 그런 비평을 직접 쓰면서도 그 작품을 향한 애정을 거두지 않은 경우가 있다. <기수>도 그런 작품의 하나다.그건 젊은 날의 꿈이 소중하기 때문이고, 어쩌면 천상의 따님인 열정이 우리에게 행복과 영감을 주었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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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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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문학 강의노트가 열렸다. 사십 년 전쯤 문학에 처음 눈뜬 저자는 오늘까지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읽고 쓰고 강의하고 있다. “좋은 소설은 이미 알고 있는 앎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되묻게 한다는 사실”이라면 저자는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매번 무엇을 보고 쓰고 있을까.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2012부터 2020년까지 일간지와 주간지 등에 저자가 써왔던 약 100여편의 서평과 발문, 헤제를 담고 있는 리뷰 모음집이다.

 

이현우만의 문학 서평이란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도 충실한 줄거리 전개에 있다. 작품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시 살려 놓아 아직 그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내용을 가늠케 해준다. 또한 소설가가 펴낸 작품의 언급이나 그 소설이 나왔을 때의 배경을 서두에 배치하여 생소한 소설을 접하는 독자도 충분히 서평을 읽어가게끔 한다.

 

줄거리 속에 저자는 당대에 각 작품이 갖는 의의도 끼워놓아 그 소설만의 역사성도 전달한다. “<고리오 영감>이 표준적인 소설이라는 말은 라스티냐크의 투쟁이 근대 소설의 기본형이라는 뜻이다”, “1830년대는 근대 사회소설이 본격적으로 발아하던 때였다”,“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유럽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비교 설명하기도 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초반본에 빠져 있는 여주인을 사랑한 하인의 에피소드, 각 출판사마다 차이가 나는 번역부분을 각 번역자마다 예를 들어 설명하는 등 문학 작품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서평의 마무리는 통찰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바틀비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저항의 주체로 보는 철학자들의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기계적 충실성이 역설적으로 강력한 위협이 되는 사례를 바틀비에게서 발견한다”, “모파상의 단편은 물질적 부가 계급적 차이를 낳고 그에 따라 시간도 달리 배분된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진실과 직면하게 한다.” 위트 섞인 마무리도 있다. “좋은 소설은 모든 문제를 더 복잡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파묻힌 거인), “<소송>을 읽으며 아무래도 좋지 않은 소송에 말려드는 느낌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각 소설이 익숙한 독자라면 저자만의 언어가 담긴 마무리에 눈이 오래 머물지 않을까.

 

“나로서는 이번 여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 가운데 하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읽은 김수영 시집이어서 애착이 간다”, “여러 차례 지인들에게 선물하였고, 학부 1학년 문학 개설 시간에 나눠줬던 글”이라며 저자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나는 책 소개는 독자의 지갑을 바로 열게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책에는 저자가 유럽, 일본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쓴 리뷰와 알렉시예비치의 인터뷰도 담겨있다. 셰익스피어에서 시작한 여정은 유럽, 러시아를 거쳐 가르시아 마르케스, 루슈디, 하루키 그리고 한국 소설에 다다른다. 마치 세계문학의 전체를 아우르는 풍성한 상차림과도 같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이들과 문학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함께 하고픈 식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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