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1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
조완선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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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리턴매치 !!! '전설의 책'을 둘러 싼 거대한 음모. 

몇년 전에 MBC '느낌표'에서 '위대한 유산 34434'라는 코너를 한 적이 있다.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되찾자는 취지의 코너.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고 일부 문화재를 환수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그 때 우리 국민들은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무참히 빼았긴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울분했다.
그러나 몇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은 우리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위대한 유산'이 진행햇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의 진행상황과 결과도 알려진 바가 없다. 

문득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동해서 주문을 했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프랑스 군에 의해 약탈당한 채 150년이 넘는 동안 돌아오지 못하 우리의 고서들.
이 책은 그 책 중 하나를 둘러싼 한국, 프랑스, 독일, 중국의 대결과 그 속에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빈치 코드'나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문헌에서만 전하는 '전설의 책'.. 그 실체는...? 

프랑스 국립박물관 관장이자 한국과의 문화재 반환협상의 책임자인 세자르는 비밀서고 안에서 '전설의 책'을 찾아낸다.
세자르는 이 책을 세상에 공표하려 하지만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프랑스 경찰은 은밀한 수사에 나서고 세자르를 자식처럼 여기던 정현선 박사 또한 세자르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세자르의 시신에 남겨진 표식에서 사라진 조직인 '토트(thoth)'의 흔적을 찾아내고
'토트'의 전문가인 헤럴드 박사와 함께 '토트'와 세자르, 그리고 사라진 '전설의 책'에 대한 추적을 계속하게 되는데....
서서히 드러나는 음모의 실체속에 한국, 프랑스, 독일, 중국의 치열한 대결속에 희생자는 늘어만 가는데...
세자르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전설의 책'은 어떤 책인가?
'전설의 책'을 둘러 싼 각국의 이해 관게는 어떤 것이며 '토트'라는 조직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국판 '다빈치 코드' 혹은 '인디아나 존스' 

전설적인 유물과 미스테리한 비밀 조직. 이어지는 살인과 추적.
한국판 '다빈치 코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고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유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진행되는 계속되는 추적과 모험담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이상의 스릴감과 즐거움을 선산한다.
2권의 책을 다 읽고난 느낌은 잘 만든 영화 한편을 감상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한계 또한 있다.
결코 '다빈치 코드'를 뛰어 넘을 수 없었던 아쉬움.
기본적으로 '다빈치 코드'가 다루는 유물은 기독교 전체에 대한 도전적 문제 제기였기에 그 반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스케일은 결국 '다빈치 코드'를 넘어서지 못한다. 4개국의 이해관계에 얽힌 이야기 정도 이니까.
'인디아나 존스'도 넘어서지 못했다.
애초 주인공인 정현선 박사가 60대의 할머니로 설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나이의 장벽은 보다 과감하고 활동적인 모험을 하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족쇄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이슈를 제기하고 화제가 되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유물이 아니기에 현실감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우리의 유물, 우리의 자랑을 이야기 하고 있기에 읽는 동안 보다 가까이 다가왔고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활동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정현선 박사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친다.
젊은 혈기로 덤비는 것이 아니라 경륜에 맞게 깊이 생각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해나가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소홀함에 대한 미안함. 힘없는 나라의 아쉬움. 

이 책에 나오는 '전설의 책'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책이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죽어라고 외웠던 제목이 튀어나온 순간, 나의 무관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이 책이 있었다고 그렇게 외웠건만 그 책의 가치가 이 정도 인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실제로 프랑스 국림도서관에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 자신의 소홀함에 미안함이 생긴다. 

문화 강대국이라고 말하는 프랑스.
그러나 그 '문화'라는 것의 상당수는 제국주의 침략의 산물이며 당연히 돌려 받아야 할 유산이다.
책 속에 인물이 이야기 하듯이 '유물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나라'가 가져야 된다고 하더라도
빼앗긴 우리의 유물들은 우리가 간직하고 보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주장은 억지이며 당연히 우리 품에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 당연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약소국 대한민국의 모습에 울분을 참을 수 없다. 
 

소중한 것들에 대한 작은 관심. 이제는 그게 필요하다 !!! 

작년 초 숭례문 방화 사건으로 전 국민의 관심이 우리 문화재에 쏠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 관심들은 식어갔고 보수공사중인 숭례문의 모슴 또한 그렇게 자연스러워져 갔다.
휴일이면 멀리있는 놀이공원에 놀러가면서도 가까이에서 외로이 서있는 경복궁 한번 가지 않는 무관심.
이제 또다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이번 주말 아들을 데리고 경북궁에라도 들러야 겠다. 

얼마 전 MBC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에서 김선아가 한 말
'당신은 그 대접을 고양이 밥그릇으로 썼잖아요. 그럼 그 대접은 그 만큼의 가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산들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아끼는 만큼의 가치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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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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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 '하악하악' 견뎌보자 !! 

거친 숨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하악하악]
제목부터 뭔가 팍 끌리는 느낌이다.
게다가 작가는 '기인'의 이미지가 강한 이 외수.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는데 카페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절반의 여백과 길지 않은 문장속에 담긴 여유로움.

치솟는 물가, 미국 소고기 파문, 부자로 도배된 내각...
하루 하루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이외수가 견디는 방법은?
책의 절반은 여백으로 채워 놓았다.
한 장의 지면도 아까워 빽빽하다 못해 어지럽게 지면을 채워놓는 요즘 책들.
책을 처음 열었을 때 본문보다 더 많은 여백을 보면서 여유가 느껴진다.
꼭 복잡한 내용을 어지러운 말들로 표현하지 않아도
단 몇줄, 심지어 단 한줄의 문장과 여백만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힘든 세상 웃음마저 없다면 어찌 살겠소.  

사이사이 숨어있는 유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다른 무기이다.
외롭지 시리즈, 닥쳐 시리즈,...
작은 미소가 묻어나기도 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민망할 정도의 박장대소나 터져 나오기도 한다.
개그맨들이 웃기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외수님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상에 가미된 유머 감각으로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베이게 만든다. 기분이 좋아진다.
 

에술가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소통

이 외수는 작가라기 보다 예술가다.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문학을 예술이라 여기는 사람이다.
작가와 예술가의 차이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글을 읽어가다 보면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작가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고생했던 젊은 시절도
악플과 비평아닌 비평으로 도배되는 지금도
에술이라는 벽안에 스스로를 감추기 보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모습이 보여진다.
나 조차 알지 못하는 '흠좀무', '듣보잡', 등등의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는 작가.
분명 다른 작가와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가슴 속 영원한 안식처를 연상하게 만드는 편안한 세밀화들. 

물론 책의 주인공은 작가 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 만큼은 예외이다.
이 책의 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세밀화들.
잊혀져가는 우리의 민물고기들을 그리 세밀화들이
책 전반에 걸쳐 편안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때로는 글을 돋보이게 만들고 때로는 스스로 빛을 내면서
책을 전반적인 품격을 높혀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작가 뿐만 아니라
세밀화를 그린 '정태련'님도 함께해야 한다.
시골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없는 나 조차도
그림을 보면서 어린시절 가끔 내려갔던 시골 개울가의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그런 편안함이 배경으로 있었기에 작가의 글도 더 좋았던 것 같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흔히 지옥철이라고 부르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니는 내가
사람들로 움직일 틈도 없는 복잡한 공간에서 작은 짜투리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꺾이고 비틀어지는 허리의 비명소리를 감내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120% 공감되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고 생활 속 작은 웃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때로는 참을 수 없는 박장대소에 얼굴이 뻘개지게 웃음을 참아야 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나의 Re-Action에 신기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
이 책. 참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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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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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비르크의 인쇄혁명은 조선에서 시작되었다. 

2005년 엘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 말이다.
학교에서 우리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고 배우고 외웠으나
과연 어떻게 우리의 활자가 유럽에 까지 전해지게 되었을까?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단지 중국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미국의 부통령이 이런 말을 하다니...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작가의 방대한 자료조사와
역사의 간극을 기가 막히게 메우는 대단한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다.
 

조선의 장인이 유럽을 무대로 펼치는 장대한 모험담. 

훈민정음을 반포하고자 하는 세종대왕과 반포를 막으려는 사대부의 대립.
그 대립의 현장에 끼어들게 되는 주자소의 야금장 석주원.
임금의 밀지를 받들기 위해 스승 장영실과 함께 명나라에 잠입한 그가
어려 사건에 휘말리면서 독일의 마인츠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조선의 우수한 활자기술과 타고난 장인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치며
유럽의 역사의 한 복판에서 겪게되는 모험담.
과연 석주원은 임금의 밀지를 수행할 수 있을까? 그의 여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의 조우,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는 작가의 상상력 

전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크게 6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조선인 석주원이 구텐비르크를 만나기 까지의 과정.
구텐베르크를 도와 마인츠 상인 길드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이야기.
안티몬을 구하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목격하게 되는 천년제국(동로마제국)의 멸망.
푸스트 형제와의 소송으로 파멸의 위기에 몰린 구텐베르크를 구하는 이야기.
피렌체에서 다시 만난 푸스트 형제와의 싸움과 르네상스를 이끄는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
로마에서 다시 만난 푸스트 형제와의 최후의 대결과 보르지아 추기경을 위시한 교황청의 이야기.
좀처럼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석주원을 매게로 연결된다.
앞의 이야기의 인연이 뒷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전개방식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연결된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쿠자누스 신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레오나르도 다빈치...
실존하는 역사사의 인물들이 역사책속의 위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등장인물이 된다.
그들 사이의 연결은 작가가 창초해 낸 가상의 인물들이 맡는다.
그러다보니 읽는 동안 누가 실제인물이고 누가 가상의 인물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다.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의 공존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 건 작가의 능력이다.
 

방대한 유럽역사 지식과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책. 

나에게는 생소한 유럽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에게는 생소할 지 몰라도 유럽의 사람들에게는 이순신 장군 만큼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실제역사가 책에 많이 나온다. 유럽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아진 느낌.
석주원을 통해서 조선 문화의 우수성과 조선 장인정신의 위대함을 이야기 한다.
유럽을 휩쓰는 문예부흥-르네상스-을 방관자로 지켜보는게 아니라
장인정신과 탁월한 기술로 르네상스의 한 복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석주원은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아쉽다. 

우리 민족문화의 총아라는 훈민정음을 그저 도입부의 소재로만 사용한 것이 아쉽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가 우리문화와 서양 문화의 소통에 있다고는 하지만
조금만 더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 창제와 반포에 대한 논쟁을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주저없이 추천할 만한 책.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소통의 문제가 보인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 안되고 정치인들은 서민과의 소통이 안되고
어른들은 아이들과의 소통이 안되고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소통이 안되고....
그러나 600여년 전에 우리는 절대로 불가능한 위대한 소통을 해낸 경험이 있다.
오스만트루크가 동서양의 가운데서 교통로를 막고 있는 역사상 유래없는 단절의 시기에
우리의 뛰어난 활자는 불가능을 넘어 서양으로 전파되고
그 활자를 시발로 해서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현재의 유럽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위대한 소통의 길목, 작가가 말하는 '활자로드'의 복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의미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재미와 지식을 함께 주는 의미있는 소설 책.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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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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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어둠속을 걷다'  

어느 평온한 휴일.
세상의 화려함에 묻혀 어떤 범죄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한 마을.
공원에 방치된 폐건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 19년. 미궁에 빠진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는 형사와 두 남녀의 이야기. 

사건이 발생한 초기에 이미 작가는 범인을 암시하고 있다. 게이고 특유의 범인 알려주기.
그러나 그들이 왜 범인인지, 아니 그들이 범인인지 아닌지도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의 인생을 관찰자의 입장으로 지켜본다. 치가 떨리게 잔인한 그들의 인생을...
그들을 둘러싸고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작가는 역시 그들이 범인임을 암시하지만
직접적으로 그들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범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뿐... 

'하얀 어둠'의 의미를 읽는 내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성장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끊임없는 범죄의 향연.
치를 떨리게 만들 정도로 잔인하고 무섭고 냉정한 그들을 보면서
요즘 많이들 이야기되고 있는 '싸이코 패스'를 연상했다.
다만 그들의 범죄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3권의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작가의 의도대로 고백하는 유키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 '하얀 어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가 읽었던,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훔쳐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면을 보게 되고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입장에 서서 느끼는 답답함과 '하얀 어둠'이라는 느낌.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도 계속 그들의 발목을 잡아끄는 그 무엇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유키호를 위한 료의 헌신. - 솔직히 사랑이라 하기는 쫌 그렇다. - 

형사는 그들의 관계를 공생이라 이야기 하지만
내가 느낀 그들의 관계는 무조건 적인 헌신에 대한 당연한 누림 정도.
료의 무조건적 헌신이 왜 있어야 했는지 그리고 유키호는 왜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 베일을 벗는다.
그렇기에 3권이라는 분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에 결국 책을 놓을 수 없다.
다들 게이고의 대표작으로 이 책을 뽑는 이유를 나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사건의 서술이 아니라
19년이라는 시간동안 변해가는 주인공들과 그들과 함께 변해가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치밀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있는 대단한 소설이다.
우리사회의 모습이 아니라서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료의 헌신은 아마도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사죄가 아닐까?
유키호에게 료는 어둠속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태양이 아닌 무엇'이었을 것이고
료의 덕분에 그녀는 '하얀 어둠'속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료는 '어둠속을 걷기 위한 무엇'이었을 뿐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결국 마지막에 그런식으로 어둠을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료는 그녀에게 어느 순간 짐이 되지 않았을까?
어지럽고 헷갈리는 결말이다. 

"나츠미, 하루 중에는 태양이 뜨는 때와 지는 때가 있어.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지. 물론 실제 태양처럼 정기적으로 일출과 일몰이 찾아오는 건 아냐. 사람에 따라서는 태양이 가득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또 계속 어두운 밤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면 그때까지 떠있던 태양이 저버리는 것이야. 자신에게 쏟아지던 빛이 사라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지. 지금 나츠미가 바로 그래."
유키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은 알 수 있었다. 나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이지."
유키호가 말을 이었다.
"태양 아래서 산 적이 없어."
"설마."
나츠미는 웃었다.
"사장님이야말로 태양이 가득하지 않아요?"
하지만 유키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눈빛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나츠미도 웃음을 지웠다.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그 태양을 대신했다는 게 뭐예요?"
"글쎄, 뭘까... 나츠미도 언젠가 알 때가 있을 거야."

 

- 3권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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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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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반골기질인지 몰라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은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북카페에서 여러 사람이 추천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와 그에게 걸린 노벨문학상
이라는 감투의 무게 때문에 쉽게 들지 못했던 책이었는데 나름의 용기를 얻어서 책을 들었다. 

첫장을 읽으면서부터 당황하게 되었다. 문장부호라고는 ,(쉼표)와 .(마침표) 뿐이고 분명히 대화를 하는 상황임에도 따옴표 하나 없으니 그 당혹감이란... 그래서 첫 느낑은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였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지금 책을 내려놓은 순간까지 단 일순간의 지루함도 용납하지 않는 책의 매력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정말 매력적인 책.

작가의 가정은 아주 단순하다. '만약 세상의 모두가 동시에 눈이 멀게 된다면... 오직 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 단순한 가정을 바탕으로 작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성에 의해 강요되는 도덕이나 질서,혹은 윤리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 눈으로 보면서 몸으로 익히게 되는 관습 혹은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를 이야기 한다. 윤리의식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인간 본연의 폭력성에 대해 고발한다.

아주 작은, 단지 눈이 멀었다는 가정으로 인해 인간이 만든 문명이란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이야기 한다. 남의 불행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있는 것인지 말한다. 

눈 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두 눈이 멀쩡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 우리가 보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과연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들의 뒤에 그 문명들을 문명이게 만드는 인간이 있음을 보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도덕이나 윤리의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 과연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인가? 그 사건들이 다만 자신이 살고있는 나라에서는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그저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는 올바르게 보고 있는가?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되게 보아왔던 폭력의 생성과 폭력 앞에 무릎꿇는 인간의 비겁함, 그리고 어느 누군가의 용기로 인해 시작되는 투쟁과 그결과 얻어지는 자유라는 대가가 수용소라는 공간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인간은 선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지 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관계라는 것도 심지어 가족이라는 최고의 관계마저도 부정되어 버리는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인간의 나약함과 무기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공동체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집단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자를 등장시켜서 우리가 진정 보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을 목격하도록 하면서 그 반성의 결과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무한한 희생을 베풀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결말은 그래서 눈물나게 고맙다. 

왜 눈이 멀었는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왜 그 여자만 눈이 멀지 않았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눈이 멀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 먼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장부호 하나 없이 단락의 구분도 없이 쉼없이 몰아치는 문체 속에서 독자는 끝없는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는 문장부호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어떤 감정도 독자에게 강요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이야기하는 것인지 물어보는 것인지 대답하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든 문장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분리하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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