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게이고의 작품들은 만나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다. 상상이 초월하는 다작을 하는 작가인 그이지만 내놓는 작품마다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하늘이 그에게 준 재능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번역이 되어 출간되고 있지만 출간순서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이번에 '가가형사 시리즈'로 묶어서 발간된 그의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의 따라 작가의 서술방식이나 사고방식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며칠전에 읽은 <졸업>이 그 시작이었고 <잠자는 숲>은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 된다.

<졸업>에서 아직 학생이던 '가가'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자신의 추리적 재능을 발견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교사와 형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교사가 되었지만 시리즈의 다음 편인 <악의>에서 밝힌 이유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악의>를 읽었기 때문에 이유를 알고 있다- 형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이 작품에서 그는 30세의 젊고 유능한 형사로 등장한다. <졸업>에서 그가 프로포즈했던 사토코는 이제 '일년에 몇번 소식을 전하는 옛날 애인'으로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갔고 그는 독신의 형사가 되어있다. 도쿄의 유명한 발레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발레리나에 대한 수사를 맡게 된 '가가' 일행.정황은 분명히 정당방위이지만 죽은 남자는 발레단에 침입할 이유가 없었다. 정당방위를 증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던 중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은 더욱 더 꼬이게 되는데....

<졸업>에서는 '가가'와 '사토코'의 사랑이야기 보다는 '가가'의 형사적 재능과 명석한 판단력, 예리한 관찰력 등을 중심으로 사건의 해결에 촛점을 두었다. 그래서 '사토코'와의 헤어짐은 그다지 '가가'에세 상처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가'는 드디어 자신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미오'를 만나게 된다. 발레단의 발레리나와 사건을 맡은 형사의 관계가 조금은 거슬리게 되지만 결국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까지는 막을 수 없다. 냉철한 판단력과 명석한 두뇌의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가가'가 '미오'를 향해 조금씩 서툴게 다가서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로 냉정하게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미오'에 대한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당당히 맞서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기가 막힌 트릭이 있고 생각하지 못한 반전을 숨기고 있는 추리소설이지만 낭만적인 분위기의 로맨스소설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기에 대단히 감성적인 소설이다. 사건의 전개와 추리를 위한 요소만을 간결하게 서술하는 게이고의 문체가 이렇게 감성적인 내용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 능력이 있었기에 <용의자 X의 헌신>의 그 눈물겨운 사랑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가가'와 '미오'의 사랑이 추후 '이시가미'의 헌신적 사랑을 낳은 모티브가 되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발레단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밀실은 아니지만 밀실살인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정된 용의자, 한정된 공간. 그 속에 범인의 기발한 트릭이 있고 그 트릭을 파헤치는 '가가'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발레리나들의 고통과 꿈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땀과 눈물이 그려진다. 꿈을 위해 사랑을 버려야 했던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절대로 미워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사랑. 남자들의 멋진 우정과 다른 여자들의 깊은 우정. 그리고 '가가'의 애틋한 사랑까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들에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은 추리소설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추리소설에 감성을 더하는 재주가 뛰어난 게이고의 능력이 서서히 보여지기 시작하는 소설이다. 그와 함께 때로는 냉철하고 때로는 감성적인 '가가'의 매력적인 캐릭터도 서서히 완성이 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시리즈의 다음편인 <악의>는 이미 읽었으니 이제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가가'와 '미오'는 어떻게 되었더라? <악의>에서 분명 그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악의>를 다시 뒤져봐야 하나? 아... 이제는 서서히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내 머리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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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8-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히가시노 게이고 좋아요.^^ <환야>도 재밌는데..ㅋ<옛날에 내가 죽은 집>과 <예지몽> 보고 싶어요. 훗..^^ 번역되어 출판된 책들이 많아서 흐뭇하고 기쁘답니다. 작품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충실하고요. 나를 흔드는 자랍니다. 설레게 하는 자..^^* 좋은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