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수 특별 세트- 전2권 - 인간의 운명을 가를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수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아폰노아 너머에서 건너 온 신의 후손이 다스리는 나라.
에린은 무시무시한 투사(鬪蛇-전투에 사용하는 뱀을 닮은 무시무시한 야수)를 사육하는
훌륭한 투사지기인 엄마와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날 엄마가 관리하던 투사가 무더기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에린의 엄마가 '아료(마법을 부리는 종족으로 천대 받음)'라는 이유로
감찰관은 모든 잘못을 에린의 엄마에게 전가하고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엄마의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에린은 엄마를 구하려 하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다.
엄마는 에린을 구하기 위해 종족의 계율을 깨서 에린을 구하지만 자신은 투사의 먹이가 되고 만다.
죽음의 고비에서 벌꿀치기인 조운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 에린은 조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벌을 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방법들을 배운다.
그러던 중에 야생 왕수(王獸-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새를 닮은 거대한 야수)를 보고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게 된다.
조운의 기력이 떨어져 왕도로 돌아가게 된 에린은 조운의 도움과 자신의 실력으로 왕수 보호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날개를 다친 야생왕수인 '리란'과의 운명적 만남을 하게되고 왕국의 운명이 걸린 모험이 시작된다.
한폭의 동양화를 눈 앞에 보여주는 듯한 묘사. 뛰어난 심리묘사.
개인적으로 일본 판타지는 처음이다. 일본 추리소설은 많이 읽었지만 다른 장르는 처음이다.
추리소설에서 느낀 일본사회,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은 잔인하고 끔직한 판타지를 예상했다.
그러나 책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 같은 표지에 반해 버렸다.
첫 장의 첫 문장부터 미야자키의 애니가 생각나서 끝까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표지의 힘도 한 몫 했다.
소설의 배경이나 등장하는 동물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것들이지만 배경의 묘사는 너무도 뛰어나서
한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무시무시한 투사의 모습은 나를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꿀벌의 생태를 묘사한 장면은 문외한인 내가 양봉을 하는 느낌을 갖게한다.
야생 왕수 모자의 모습은 읽는 것 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짖게 만들고
리란이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날아올라 에린과 같은 심장의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엄마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어린아이의 심정, 엄마를 잃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심리,
에린이 리란을 보면서 같은 아픔에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 리란에게 느끼는 모성애 까지...
에린의 심리가 리란의 성장과 함께 변해가는 과정이 세심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신과 친해졌다는 자만심에 경계심을 풀었다가 새삼 야수일 뿐인 리란에게 공포를 느끼게 되는 부분,
그 공포감 때문에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는 심리묘사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자연을 지배하려 하는 인간에 대한 호된 꾸짖움.
미야자키의 [원령공주]나 [나우시카] 같은 작품들을 보면 인간이 자연에 대해 행하는 만행에 대한 꾸짖움이 있다.
이 책의 전반에 걸쳐 흐르는 주제의식도 그런 애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야생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야수들은 번식도 하고 자유롭게 날기도 하고 의사소통도 하지만
인간의 손에 사육되는 야수들은 새끼도 낳지 못하고 날지도 못하고 언어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것조차 야수들을 제어하려는 인간의 잘못된 지배의식의 발로이지만 어쩌면 야수 스스로 인간에 대해 반항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수의 무시무시한 힘을 무성피리로 무력화 시키고 스스로 야수와의 사이에 무성피리로 벽을 쌓아버리는 인간들.
자연과의 소통을 시도하지도 않고 지배하려고만 하는 인간들.
결국 에린이 리란과의 소통에 성공하면서 그것 마저도 자신들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인간들의 만행.
소설을 이런 인간들의 만행을 꾸짖고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과 공존을 이야기하려 한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런 노력이 결코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바램들.
1. 이 책은 반드시 미야자키가 영화화 했으면 좋겠다.
- 책을 읽는 내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들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애니만은 반드시 챙겨서 모았고 내 아들에게 보여주었기에
그의 작품에 나오는 배경와 인물과 이야기가 참 좋았는데 이 소설이 딱 그런 이미지에 맞는다는 생각이다.
훌륭한 애니 감독들이 참 많지만 이 작품만은 꼭 반드시 미야자키가 직접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 삽화가 들어가 있는 개정판을 기대한다.
- 책에 나오는 배경들, 야수들, 인물들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그려진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삽화를 그려준 작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원래의 작품은 삽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만약 그렇다면 삽화까지 포함된 개정판이 출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이 좀 더 쉽게 이 책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아들을 포함해서...
3. 우리나라 판타지도 이런 이야기가 하나쯤 나와도 좋으련만....
- 우리나라는 판타지가 성공하지 못하는 나라이다.
나 역시 나이가 많이 먹은 아저씨라서 내가 이 책을 들고 다니는 동안 타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왜 저런 책을 읽을까?' 하는 불편한 시선.
판타지가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고 더 유익한 장르임은 틀림 없지만 어른도 읽을 수 있는 건데...
애니는 아이들 것, 게임은 아이들 것, 판타지는 아이들 것.... 이런 편견과 선입견이 빨리 사라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