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반 라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풍요가 넘쳐 흐르고 모든 것이 풍부했던 17세기 유럽. 황금의 시기에 최고의 화가였던 렘브란트.
최고의 화가에서 개인 파산에 이르기까지 굴곡많던 그의 삶과 예술이 한 출판업자의 손에 쥐어진 그의 일기로 되살아난다. 자신의 마지막 열정까지 완전히 연소하기를 바랬고 결국 그렇게 되어갔던 한 천재의 삶.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서는 화가의 일상. 낯설고 눈에 익지 않은 이름만큼이나 나에게 어색하게만 비춰지던 17세기 유럽의 모습과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은 크게 2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렘브란트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한 렘브란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이 이야기의 주된 화자(話者)인 출판업자가 그의 일기를 얻기까지 겪는 이야기(그가 만난 렘브란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렘브란트의 일기에서는 천재화가의 일상부터 그가 추구한 예술의 의미와 그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출판업자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해 방황하다 한 여인의 사랑과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삶의 지표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성장통이 그려진다. 

 천재적 재능과 사물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렘브란트. 아버지의 뜻을 따라 라틴어 대학까지 입학했으나 화가의 꿈에 자퇴하고 가족을 떠나 암스테르담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공하고 유명한 가문의 부인까지 얻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그. 그러나 예술가의 고집이었는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심성 때문이었는지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사치하고 넘치는 자신감에 미래에 대한 대비없이 낭비한 결과 개인파산까지 이르게 되는 비극적 말년을 겪게되는 천재. 그리고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 죽음. 천재 화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추구한 빛의 예술, 그가 추구한 그림자와 어둠의 미학이 어떤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의 삶이 일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예술을 핑계삼아 가족과 세상과 담을 쌓는 그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작가의 능력은 17세기 유럽을 내 눈 앞에 데리고 온다. 마치 내가 17세기 암스테르담을 뱀처럼 휘감아 흐르는 운하옆을 지나는 듯, 더러운 시궁창의 냄새를 직접 맡는 듯, 복잡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한복판을 지나가는 듯, 달뜬 축제의 한구석에서 비참한 심정으로 장례식장을 향하는 일행에 속한듯, 생생하고 실감나는 묘사는 책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미술을 전혀 모르는 내가 마치 천재화가의 손발이 되어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가의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자그마한 물감재료의 준비부터 화가의 세심한 붓질로 완성되는 그림의 모든 제작과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의 그림이 마치 내가 완성한 걸작으로 느껴질 정도다. 작가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살아있는 묘사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로인해 미술의 문외한인 나 조차 책을 읽는 동안 화가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새롭고 놀라운 경험. 

 그러나 작가의 언어들은 너무도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책의 3분의 1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생소한 미술용어와 그 시대 용어들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한단어 한단어 끊어서 읽으면 알 수 있으나 그것이 엮어서 문장이 되었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들. 어지럽고 관념적인 말들의 나열이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내용에 대한 이해를 불가하게 만든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만약 이 책이 서평이벤트로 받은 책이 아니라면 과연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직도 3분의 1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번역의 아쉬움도 남는다. 번역한 사람이 영어에 대해서는 지식이 많을 지 모르겠지만 국어에 대한 이해는 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작가의 말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번역가의 능력이 좋으면 독자가 조금이나마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 할 수도 있는데 작가의 글을 그대로 번역한 듯한 느낌이다. 가끔씩 이 부분은 이렇게 해 주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느낌이 많이 들 정도로 번역이 아쉽다. 마치 대학교 때 원서를 번역본으로 보았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라고 할까? 한 문장을 읽고나서 그 뜻을 음미한 후 다시보면 문장의 아쉬움이 남는 느낌.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번역. 아쉬움이 남는다.
 
 출판사의 경우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 내가 북카페에도 몇개 지적했는데 오자와 탈자의 빈도가 너무 심하다. 한참 몰입을 하다가도 한번씩 만나는 오자와 탈자는 맥을 끊어 버린다. 안그래도 어려운 말이 많아서 쉽지 않은데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몰입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이런 수준의 책을 독자에게 보인다는 건 출판사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끊어쓰는 편집의 아쉬움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한번에 끊어 있는 음절의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나 음절이 두개의 줄로 나뉘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그런 부분에도 신경을 써서 하나의 음절이나 단어가 두줄로 나뉘는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마저 아쉽다. 좀 더 쉽게 좀 더 눈에 들어오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번역과 출판사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가의 언어들도 너무 어려운 감이 있다. 그러나 17세기 유럽에 대한 방대한 조사와 탁월한 묘사, 자신의 모든것을 불태운 천재화가의 예술혼은 진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3분의 1일 아마도 다시 읽어보면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힘든 책이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꿍 2012-07-1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내용도 확 와닿았고, 번역도 아주 좋다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이런 좋은 책을 이제야 알게 된 걸 안타까워하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알라딘 들렀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동을 느꼈을까 궁금해 후기를 열어봤는데,
어안이 벙벙하네요. 55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번역한 이에게 괜히 제가 무안하고 죄송해서
저같은 독자도 있음을 알리고 싶어 댓글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