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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백동수 - 조선 최고의
이수광 지음 / 미루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등의 책들을 통해 작가를 만났고 어느정도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궁금했었던 백동수라는 인물을 믿을 만한 작가가 소설로 썼다고 해서 읽었는데 완전 실망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다. 이건 뭐... 무협소설도 아니고 역사소설도 아니고 역사서도 아닌 아주 요상한 책이 되어 버렸다. 어찌 이럴수가... 실망이다.

  초반은 백동수의 무예를 보여주기 위해서 무협지의 형식을 빌려왔다. '흑의인영'이라던가 '갈의선사' 등의 용어들은 기존의 역사소설에서 보기 힘든,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무협지의 문체를 따라한 것이다. 남자들이 무협지에 빠지게 만드는 적절한 베드신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싸구려 무협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질이 확 떨어지는 느낌.

  중간에 뜬금없이 사도세자와 영조, 정조, 노론대신들의 권력투쟁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흐른다. 그런데 그 부분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가깝다. 역사서에 나온 어려운 한문투의 대화들을 자세한 설명없이 나열하고 거기에 나로써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작가의 역사관이 투영되다 보니 이건 뭐...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질 낮은 역사서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리고는 정조의 즉위와 홍국영의 추출이 완료된 시점에서 또다시 뜬금없이 무협지로 돌아온다. 유지연과 혼인한 백동수에게 나모란이 나타나고 2명의 부인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참을 수 없다. 조선시대에 그것이 가당키나 한 포르노인가? 마지막은 또 다시 무협지의 말투로 돌아가서 허무하게 결론을 내 버린다. 어이없네 정말 !!!

  이건 좀 아닌것 같다. 물론 재주없는 내가 뭐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껏 신뢰했던 이수광이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겠다. 이제는 신뢰할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비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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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메시지 - 지구와 인류를 살리려는 동물들의
개와 돼지 외 지음 / 수선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북카페에서 서평이벤트를 하는 경우 대부분 좋은 책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서평이 좋은 방향으로 쓰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 책처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들도 있다.
그런 경우 난 고민은 한다. 어떤 식으로 서평을 써서 올려야 하나?
개인적인 감상을 배제한 채 책의 장점만 부각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내 느낌 그대로 써서 책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참고가 되게 할 것인가?
언제나 고민하지만 언제나 나의 선택은 같다. 최대한 솔직하게 쓰자.
내 스스로 구입한 책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받은 책이니 표현은 최대한 순화해서.

이 책의 장점
이 책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명상을 통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정령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들이 말하는 지구의 환경은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의 모습은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사악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강력하게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진다.
인식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고 이제는 실천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책.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닌 생활속의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세지.

이 책의 단점
우선 이 책은 어떤 의도로 기획되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의도라고 하지만 읽는 내내 명상에 대한 설교에 가깝다.
기획의도가 환경인지 자신들이 빠져있는 명상에 대한 전도인지 확인할 수 없다.
난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들의 이런 식의 태도는 강한 반감을 가지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알릴 수 있지만 이런 식의 속임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대안이라는 것도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개발을 중단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대안은?
지금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개발을 중단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가?
이 책의 대안들은 개발과 보존의 중간적 합의를 끌어내기 보다는 오로지 개발 반대에 매여있다.
이런 식의 주장은 누가 못하겠는가? 현실성 없는 대안은 그저 지껄임에 불과하다.

인간은 육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 또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뿐이다.
이론적으로 그럴지 몰라도 이미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 되어 버렸다. 
채식이 좋다는 것은 대부분 인식하고 있지만 인간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간의 먹는다는 행위는 그저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먹는다는 행위가 즐거움을 위한 욕구 충족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채식이 좋다고, 자기들이 그렇게 산다고 다른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느 식의 말은 말이 아니다.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 그들이 무슨 권리로 나에게 이런 불쾌감을 주는가?

책을 보내 준 출판사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책은 나오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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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 - 전2권
김진명 지음 / 대산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진명의 책을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이 그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재의 사학계가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부류의 사람에게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이지만 민족과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의 팩션들은 언제나 피를 끓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한권을 읽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나처럼 출퇴근 시간에 독서를 주로하는 게으른 독서가에게도... 이 책도 두 권의 책을 단 이틀만에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흡입력과 몰입도를 선사한다. 또한 역시나 가슴을 뛰게하고 피를 꺼꾸로 솟게 만드는 감정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과격함이 이번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면서 빛을 바래게 만든다. 특히 그의 성향에 도저히 동조할 수 없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졸작으로 폄하하게 만드는 독으로 작용한다.

'동토의 신'이라 불리었던 김일성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소설이다. 버클리의 천재교수 김민서는 자신의 학생이 연루된 살인사건을 추적하다 잃어버린 고구려의 역사인 '현무첩'의 존재를 알게 된다. 현무첩의 비밀은 고대 한반도와 중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 김일성이 간직하고 있던 현무첩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를 추적하던 중 그는 김일성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고 추적해 나가던 중 고대의 역사가 아닌 지금의 대한민국을 둘러싼 중국의 무서운 음모를 발견하게 되는데...

동북공정이 이슈화 되었을 때 발간된 이 책은 그래서 동북공정의 무서운 음모를 폭로하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보인다. 흔히 고구려 역사에 대한 왜곡정도로 알고 있는 동북공정이 과거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시무시한 음모로 발전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나조차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소설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라는 것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움을 느꼈다. 만약 우리 정부가 그런 음모를 알고 있다면 반드시 국민에게 알려야 하고 모르고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충분하 검토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임팩트는 딱 여기까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김일성의 암살설을 가정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비판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과 노벨상을 폄하하고 나아가 국민의 정부 5년을 통째로 부정하는 시각은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에서 반미,친북을 중국의 음모에 놀아나는 무식함으로 정의하는 우를 범한다. 더욱이 웃긴 것은 김일성을 민족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있는 지도자로 그리면서 그 아들 김정일은 멍청한 꼭두각시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만약 김일성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김일성을 멍청한 꼭두각시로 그렸을 것이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 들어갈수록 심해지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은 과연 이 작가의 집필의도가 무엇인가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역대 대선후보 중에서 가장 깨끗했던 이회창' 이라는 표현은 정말 그대로 읽어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난 분명 소설을 원했는데 이건 완전히 보수논객의 정치입문서 수준이다.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던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대한 모든 호감이 이 소설 한권으로 무너져 버린다. 정말 어이가 없다.

이 소설 이후에 나온 '천년의 금서'를 이미 읽었기에 그나마 실망감을 줄일 수 있었다. '천년의 금서'를 통해서는 정말 내가 원하던 소설을 써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소설을 집필할 때 뭔가 작가의 눈에 비친 사회의 모습이 많이 못마땅했던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소설 자체는 정말로 실망이다. 충분히 재미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덧. 마지막에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도 너무 많이 아쉽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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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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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사람들이 섬에 고립되고
'10명의 인디언 소년'이라는 동요의 내용에 맞춰 한명씩 죽어 나간다.
모두가 살해되고 남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얼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읽었다.
그 책은 영국동요집 머더구스에 맞춰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이야기 이고
이 책은 동요의 내용에 따라 사건이 하나씩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분명 두 작품이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야기의 전개도 다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속에 연관되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의 명작인 이 작품에 대해 오마주를 한 것이 아닐까?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는 너무도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이고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영위한 최고의 작가중 하나이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은 긴장감과 스릴감이 최고이기 때문에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명작이다.
기대를 한 만큼 뛰어난 사건의 재구성과 군데군데 숨어있는 힌트들,
사건의 전개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뛰어난 묘사까지.
역시 걸작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이미 그녀의 뒤를 이은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그녀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너무도 많은 명작들을 발표하였고 나도 그런 작품들을 많이 접해봤기에
이 책에 나오는 추리소설의 기법들이 전혀 새롭지 않고
마치 추리소설의 교과서를 읽는듯한 따분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최악의 번역은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Dr. Amstrong'이 '암스트롱 의사'라고 번역되는 이런 작품이 어떻게 출판될 수 있었는지...
번역이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과정임을 모르는 건지....
도대체 이 사람은 우리말을 제대로 할 수나 있는 건지... 한국어를 아는 건지...
중간중간 끊기는 문맥과 수시로 바뀌는 등장인물의 이름. 기가 막힌다.
'안소니'는 수시로 '토니'로 바뀐다. 도대체 이 인물의 이름은 '토니'인가 '안소니'인가?
최소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이런 책을 출판한 출판사나
이런 번역을 하고도 이름을 올린 번역가의 강심장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번역이 망쳐놓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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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non 2009-02-0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 (Tony)는 안소니 (Anthony)의 애칭(?), 혹은 줄인 이름이지요. 로버트 (Robert)를 밥 (Bob)으로, 에드워드 (Edward)를 테디 (Teddy)로 부르듯이. 아마도 원작에서 안소니와 토니가 혼용된 모양이군요. 이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 사람을 얘기할 때는 안소니라고 칭해야 하고 가까운 사람은 이 사람을 토니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혹은 그로써 그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를 나타낼 수도 있고요. 다만 그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이런 부분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습니다. 저는 해문판을 읽은게 아니라서 이 번역이 어떤지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부분 중 한가지는 오역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기에 토를 달아보았습니다.

곰탱이 2009-02-0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지적하신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을 책인데
그런 문화를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번역가의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혹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도 주선으로 설명 정도는 해주는게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부분은 그런 것이지요.
최소한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번역을 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번역의 의미가 없겠지요.
원서를 읽는 것이 시간을 더 걸리더라도 더 편할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렘브란트 반 라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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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풍요가 넘쳐 흐르고 모든 것이 풍부했던 17세기 유럽. 황금의 시기에 최고의 화가였던 렘브란트.
최고의 화가에서 개인 파산에 이르기까지 굴곡많던 그의 삶과 예술이 한 출판업자의 손에 쥐어진 그의 일기로 되살아난다. 자신의 마지막 열정까지 완전히 연소하기를 바랬고 결국 그렇게 되어갔던 한 천재의 삶.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서는 화가의 일상. 낯설고 눈에 익지 않은 이름만큼이나 나에게 어색하게만 비춰지던 17세기 유럽의 모습과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은 크게 2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렘브란트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한 렘브란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이 이야기의 주된 화자(話者)인 출판업자가 그의 일기를 얻기까지 겪는 이야기(그가 만난 렘브란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렘브란트의 일기에서는 천재화가의 일상부터 그가 추구한 예술의 의미와 그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출판업자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해 방황하다 한 여인의 사랑과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삶의 지표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성장통이 그려진다. 

 천재적 재능과 사물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렘브란트. 아버지의 뜻을 따라 라틴어 대학까지 입학했으나 화가의 꿈에 자퇴하고 가족을 떠나 암스테르담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공하고 유명한 가문의 부인까지 얻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그. 그러나 예술가의 고집이었는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심성 때문이었는지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사치하고 넘치는 자신감에 미래에 대한 대비없이 낭비한 결과 개인파산까지 이르게 되는 비극적 말년을 겪게되는 천재. 그리고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 죽음. 천재 화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추구한 빛의 예술, 그가 추구한 그림자와 어둠의 미학이 어떤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의 삶이 일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예술을 핑계삼아 가족과 세상과 담을 쌓는 그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작가의 능력은 17세기 유럽을 내 눈 앞에 데리고 온다. 마치 내가 17세기 암스테르담을 뱀처럼 휘감아 흐르는 운하옆을 지나는 듯, 더러운 시궁창의 냄새를 직접 맡는 듯, 복잡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한복판을 지나가는 듯, 달뜬 축제의 한구석에서 비참한 심정으로 장례식장을 향하는 일행에 속한듯, 생생하고 실감나는 묘사는 책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미술을 전혀 모르는 내가 마치 천재화가의 손발이 되어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가의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자그마한 물감재료의 준비부터 화가의 세심한 붓질로 완성되는 그림의 모든 제작과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의 그림이 마치 내가 완성한 걸작으로 느껴질 정도다. 작가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살아있는 묘사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로인해 미술의 문외한인 나 조차 책을 읽는 동안 화가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새롭고 놀라운 경험. 

 그러나 작가의 언어들은 너무도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책의 3분의 1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생소한 미술용어와 그 시대 용어들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한단어 한단어 끊어서 읽으면 알 수 있으나 그것이 엮어서 문장이 되었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들. 어지럽고 관념적인 말들의 나열이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내용에 대한 이해를 불가하게 만든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만약 이 책이 서평이벤트로 받은 책이 아니라면 과연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직도 3분의 1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번역의 아쉬움도 남는다. 번역한 사람이 영어에 대해서는 지식이 많을 지 모르겠지만 국어에 대한 이해는 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작가의 말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번역가의 능력이 좋으면 독자가 조금이나마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 할 수도 있는데 작가의 글을 그대로 번역한 듯한 느낌이다. 가끔씩 이 부분은 이렇게 해 주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느낌이 많이 들 정도로 번역이 아쉽다. 마치 대학교 때 원서를 번역본으로 보았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라고 할까? 한 문장을 읽고나서 그 뜻을 음미한 후 다시보면 문장의 아쉬움이 남는 느낌.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번역. 아쉬움이 남는다.
 
 출판사의 경우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 내가 북카페에도 몇개 지적했는데 오자와 탈자의 빈도가 너무 심하다. 한참 몰입을 하다가도 한번씩 만나는 오자와 탈자는 맥을 끊어 버린다. 안그래도 어려운 말이 많아서 쉽지 않은데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몰입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이런 수준의 책을 독자에게 보인다는 건 출판사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끊어쓰는 편집의 아쉬움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한번에 끊어 있는 음절의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나 음절이 두개의 줄로 나뉘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그런 부분에도 신경을 써서 하나의 음절이나 단어가 두줄로 나뉘는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마저 아쉽다. 좀 더 쉽게 좀 더 눈에 들어오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번역과 출판사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가의 언어들도 너무 어려운 감이 있다. 그러나 17세기 유럽에 대한 방대한 조사와 탁월한 묘사, 자신의 모든것을 불태운 천재화가의 예술혼은 진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3분의 1일 아마도 다시 읽어보면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힘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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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꿍 2012-07-1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내용도 확 와닿았고, 번역도 아주 좋다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이런 좋은 책을 이제야 알게 된 걸 안타까워하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알라딘 들렀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동을 느꼈을까 궁금해 후기를 열어봤는데,
어안이 벙벙하네요. 55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번역한 이에게 괜히 제가 무안하고 죄송해서
저같은 독자도 있음을 알리고 싶어 댓글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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