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한 일을 내일 기억하지 못한다는 가정.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생성되지 못하는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 싼 사람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일견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가슴을 졸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을 보여준 스릴러

초반은 주인공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이어진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낯선 누군가가 나와 부부라고 말한다면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서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은 또 어떨 것인가? 똑같은 설명의 반복, 전혀 나라징 기미도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의 연속. 난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곁에서 머물면서 지킬 수 있을까?

주인공의 일기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방향을 튼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진짜 남편일까? 내 아들은 정말 죽었을까? 난 정말 사고를 당했던 것일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이 보내는 경고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심했던 사람을 믿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을 의심하기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어떻게 해서든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는 주인공의 절규가 책의 활자를 뛰어넘어 내 가습속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결론에서 작가는 또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당신은 지금 진실된 사랑을 하고 있느냐고!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설이지만 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고 있다. 대개의 경우 잘 쓴 원작을 가진 영화은 실망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의 느낌이 사라진 이후에 VOD로 보아야 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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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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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에서 소년범의 갱생에 대한 이슈를 던졌던 작가는 [편지]에서는 범죄자의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미미여사`라는 별명을 가진 미야베미유키처럼 본격적인 사회파 작가는 아니지만 히가시노게이고도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의 신작(?) [공허한 십자가]는 그런 사회파 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게이고가 이번에 건드린 문제는 `범죄자의 참회`에 대한 내용이다. 그와 함께 가장 민감한 문제일 수 있는 사형제도에 대한 논쟁도 포함시키고 있다. 전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인생이 십자가의 한 점 처럼 만나는 순간 벌어진 사건. 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가면서 제기하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생각. 과연 범죄자의 참회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사형제도는 용납할 수 있는가? 사형을 당해야 하는 범죄자가 사형을 면하고 오랜시간 참회를 한 후 출소하여 다시 사람을 죽였다면 그를 사형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이 된 피해자의 삶은 누가 보상하는가? 남겨진 피해자 가족이 평생 안고 가야할 아픔은 누구의 잘못인가? 인간은 참회할 수 있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지만 게이고 특유의 필력으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쉽게,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전혀 연결 될 것 같지 않은 삶들을 엮어내는 그의 재주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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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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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이 소설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게이고가 어려워 한다는 역사를 소재로 했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보니 추리소설의 매력은 다소 떨어지고, 반전의 묘미도 떨어지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이고의 필력이 단점을 없애버린다. 익숙했던 게이고가 아니라 다소 낯설지만 매력적인 게이고의 모습이다.


  소설의 소재는 '노란 나팔꽃'이다. 옛날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노란 나팧꽃을 피우는데 성공한 노인이 죽임을 당하면서 사건이 시작도니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가 있고, 살인사건 보다는 노인이 피운 노란 나팔꽃을 추적하는 집단이 있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나서는 손녀가 나오고, 형과 아버지에게서 소외감을 느끼며 그들이 감춰왔던 비밀을 풀고 싶어하는 대학원생이 나온다. 그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를 형성하며 사건이 진행되고, 각각의 추적에서 작은 단서들이 발견된다. 서로 경계하면서도 정보를 공유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노란 나팔꽃'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소설은 일본의 에도시대-우리나라로 치면 조선말-에 존재했던 노란 나팔꽃을 소재로 한다. 작가는 왜 지금은 노란 나팔꽃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 힘들게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그 10년 동안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기에 주인공의 전공을 바꾸면서 새로 썼다고 한다. 노란 나팔꽃을 지금의 원자력과 연결시키는 발상은 신선하다. 사라진 노란 나팔꽃을 일본이 없애기로 한 원자력으로 대체하면서 읽으면 작가가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명확해 진다. 책의 말미에서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대사에 담긴 메시지.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다'


  실제로 노란 나팔꽃이 있는지, 노란 나팔꽃에 그런 부작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들에 의해 일어난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대를 이어가며 속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 아닐까? 당장 그 순간의 사죄가 아니라 끝없이 사죄하고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에 앞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타인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선조들의 잘못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후손들을 위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 작가는 그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이고가 친한파인지, 반한파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 소설이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꼭 읽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들은 사죄는 커녕 인정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억지가 일본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다르다는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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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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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아버지'라는 자리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나 가부장적 사회의 잔재로 아버지에게 대든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사람이 있다. 그것도 개국시조인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태종이다. 개국시조인 태조 이성계에게 칼을 겨누고 아버지의 왕위를 무력을 차지한 태종 이방원. 유교를 공부하고 과거에 까지 합격했으며 스스로 유학자임을 자부했던 이방원이 '효'라는 유교의 최고 덕목을 버려가면서까지 왕위에 나아갔던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집착인가, 아니면 새로운 왕조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수없이 많이 다루어진 이 주제에 대해 이 책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는가?

  이 책은 KBS의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제작진들을 위해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미 [정도전과 그의 시대]라는 책으로 1권이 나왔고 이 책은 그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과 이성계가 주도한 조선 개국에 이어 이방원에 의해 벌어진 1차, 2차 왕자의 난과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긴 이성계의 복수가 벌어지는 조선 초기의 혼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꼭 챙겨보는 드라마인 '정도전'도 이제 조선 건국을 지나 이성계와 이방원의 대립으로 흘러가는 시점이라 이 책은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비록 이성계와 이방원의 대립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대립이 조선의 개국과정에서 벌어진 '정몽주 피살'에서 촉발되었기에 이 책은 고려말의 상황부터 다루고 있다. 다만 [정도전과 그의 시대]가 고려말 사회의 혼란과 누구도 막지 못했던 권력형 비리들,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백성들과 그들의 삶에서 혁명을 꿈꾸는 정도전의 사상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책의 고려말 부분은 혁명의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두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지기 시작하는 이성계와 이방원의 대립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개국 후 이성계가 왜 무리한 세자책봉을 해야만 했는지, 그 세자책봉이 이방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결국 이방원의 선택은 어떤 생각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깊이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일반인 수준인 제작진에게 한 강의이기 때문에 역사를 많이 알지 못한다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설명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역사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을 교양역사서이다.


  나름의 역사관에서 바라 본 나는 이방원의 행동이 단순한 권력욕의 소산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정도전이 꿈꾸던 '왕이 군림하되 지배하지 아니하는 세상'도 좋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왕조 국가에서 그가 꿈꾼 세상은 이상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도 인정한다. 따라서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고 '현명한 왕이 군림하여 지배하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간 과정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비록 세조의 '계유정난' 이후 이방원이 생각했던 나라가 없어지고 말았지만 그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이 책은 그런 판단에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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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 완간 세트 - 전21권 (본책 20권 + 조조록 사전 + 가계도 + 브로마이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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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사극의 배경은 모두 조선일까? 단순히 가장 가까운 시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장 극적인 사건이 많았던 시기이기 때문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의 존재일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방대한 역사기록. 현대의 가장 큰 Big Data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량의 기록물. 그 방대하고 철저한 기록이 있었기에 우리는 조선 왕조를 손바닥 보듯이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고 그 방대한 기록의 틈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조선왕조실록'이 있어도 쉽게 접할 수 없음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기록의 방대함을 떠나 한문으로 기록된 실록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던 작업이고 그것을 DB화 하는 작업도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는 쉽게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 말이 변하고 한자어의 범람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기록.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록을 무려 10년에 걸친 세월 동안 묵묵히 만화로 그려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무려 19권 + 부록 1권, 20권의 만화책으로 정리된 조선의 500년 왕조사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여정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

  실록은 왕이 살아있을 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죽은 후에 후대의 왕이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록의 기록은 후대의 사관에 따라 선왕의 시대를 평가하게 된다. 선왕의 시대와 후대의 사관이 큰 차이가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정이나 정난 등의 굴곡으로 전후의 사관이 달라진다면 역적과 충신이 바뀌는 일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이른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실록의 기록은 신뢰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록의 기록뿐만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서들을 공부했다. 그 방대한 공부를 통해 역사에 대한 최대한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시각이 내가 가진 나름의 역사관과 달라서 인상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작가 나름의 역사공부의 산물이기에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게 된다. 작가의 역사관이 개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실록의 기록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에 왜곡에 대한 우려는 없다. 오히려 실록의 기록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작가의 해석을 통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있다.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고 작가의 노력을 통해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조선의 왕조사를 따라갈 수 있다.


만화라고 무시하지 마라 !!!

  우리나라는 특히 만화에 대한 인식이 낮다. 저급한 아이들의 문화 정도로 치부한다. 그나마 '학습만화'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들은 부모들의 손으로 버려지는 운명을 피하고 있지만 나머지 만화들에 대한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그래서 이 책 또한 만화라는 이유로 천대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도 처음에는 중학생 아들을 위해 전집을 구입했지만 결국은 내가 빠져서 읽어버렸다. 절대로 저급하지 않고 내용의 깊이가 그 어떤 인문서적 보다 뛰어나다. 이런 전집은 반드시 책장에 두고 두고 읽어야 한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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