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노트 1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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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을 읽으면서 좋아하게 된 작가 베르나르베르베르.
그의 팬들은 [파피용]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놓지만 나에겐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의 신작 [신]은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이고...
그런데 [신]의 전작이 있었으니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이 그것이다.
이제껏 부족했던 나의 독서량을 탓하며 [신]을 읽기 위해 [타나토노트]를 읽었다. 

첫장부터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제목만 보고 얄팍한 영어에만 의지해 뭔가를 적어놓은 '노트'라고 생각했는데
첫장에서 '타나토노트'가 '영계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는 의미라고 하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영계'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사후세계'인데 결국 그곳을 여행한다는 의미.
뭔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결국 그는 해냈다. 죽지않고 '천국'으로 가는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
도대체 그의 머리속은 어떤 생각들로 채워져 있길래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
의학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해도 상관 없다.
신학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기꺼이 그와 함께 '천국'을 탐험할 의지가 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을 통해 작가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가 죽으면 가게 될 천국의 모습이 이렇다면 넌 어떻게 살래?'
그 대답이 쉽지만은 아님은 내가 삶에 대한 고민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사후의 세계를 말하면서 현실의 삶을 명제로 삼는다.
사후의 세계가 작가가 그리는 모습과 같을리는 없겠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하는 현실의 삶에 대한 충고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스스로의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끝없는 윤회라는 삶의 의미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천국의 비밀이 밝혀진 이후에 인간들의 보여준 행태를 보며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된다.
결국 죽음을 얘기하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가 망라하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많은 사상들이 말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음은 알 수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이 말하는 것이 다르지 않고 불교와 기독교가 말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이 알려 준 천국의 비밀을
수많은 은유의 덧에 걸려, 혹은 욕심에 의한 의도적 왜곡에 의해  
우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 무지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때 우리가 사는 곳도 천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천국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종교를 이야기 해야 한다.
작가는 하나의 종교에 빠지지 않고 수많은 종교를 멋드러지게 모아 두었다.
그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묶어버린 작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결말까지도.... 

도저히 현실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그 전개 과정에 비약이 심하다.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끄덕임이라기 보다는 '그렇다고 하니 믿어줘야지'하는 인정이 필요하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면 소설의 참 재미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파피용'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죽음은 역시 너무 어려운 상대였을까? 

이제 '천사들의 제국'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과연 그곳에서 미카엘이 만나게 될, 작가가 이야기하는 삶의 의미는 또한 어떤 것이 될까?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기꺼이 다음번 여행에도 동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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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5 - 독수리의 승리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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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테메레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작품.
지금까지 이런 용은 정말 없었다!!!
이 나이에 용이야기에 이렇게 빠질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4편에서 어쩔 수 없이 영국을 배반해야 했던 로렌스와 테메레르.
그 일의 대가는 로렌스와 테메레르에게 비참한 현실을 선사한다.
테메레르는 사육장으로 로렌스는 전함의 구금실로....
로렌스가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들은 테메레르는
사육장의 용들을 설득해서 프랑스와의 전쟁에 나서게 된다.
인간인 조종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자적인 용 부대.
사상 최초의 용부대가 드디어 나폴레옹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이야기.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들어간 런던을 탈환하기 위한 영국군와 테메레르의 이야기.
감히 테메레르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인 조종사에 대한 애정으로 아무런 이익도 없이 전쟁에 참가했던 용들이
테메레르의 설득에 의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가한다.
자신들의 전리품과 이익을 위해, '용권 신장'을 요구하기 위해...
용이 지능이 낮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지휘하는 공군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체계적인 전략으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테메레르 일당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게 개성가득한 용들.
그들을 한데로 묶어서 승리를 이끄는 테메레르의 지휘력.
이런 용들을 등장시킬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슈베르니스' 전투를 만들어서
용들과 인간들의 협력으로 승리를 이끌어 냄으로서 대체역사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실제로 역사상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가공의 인물들의 적절한 배합.
실제 나폴레옹 전쟁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용들의 활약.
나폴레옹 전쟁에서 이제는 용들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게 되었다.
테메레르 시리즈의 독자라면 모두 그렇지 않을까? 

이제까지 조금 부족했던 전쟁사나 전투모습에 대한 묘사가 많이 늘어났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과 허를 찌르는 수많은 전략과 전술들.
전쟁영화 한편을 다 본 듯한 느낌의 생생한 묘사.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쉽게 읽혀진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는 소설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폴레옹 전쟁과 리엔과 테메레르의 대립.
식민지로 떠나게 된 테메레르와 그의 막무가내 연인(?) 이스키에르카.
그들이 식민지에서 펼쳐나가게 된 이야기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나오게 될 최종편인 6권.
난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게 될까?
최고의 이야기이다. 최고의 작품이다. 최고의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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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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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
일본 작가 중에서 가장 유쾌한 소설을 쓴다는 그를 이제서야 만났다.
첫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작품이 '남쪽으로 튀어!'
제목부터 튀기 시작한 이 책이 너무도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단언컨데 내가 읽은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별난 인물인 아버지.
그 아버지의 유별남에 황당한 사건의 연속으로 매번 당황하지만 결국 익숙해지는 아들 지로.
소설은 초등학교 6학년 지로의 성장소설로 시작하여 세상과 맞장 뜬 아버지의 투쟁으로 끝난다.
1권과 2권의 화자는 같은데 사건의 중심인물은 서로 다르다.
'이치로'와 '지로'라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형제의 이름에 알맞은 이름이 부자의 이름이다.
서서히 머리가 굵어가는 아들의 반항에 아버지는 레슬링 한판으로 응징한다.
결국 이 소설은 세상에 대한 '이치로'의 레슬링 한판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시종일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이야기 하는 것은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다.
'공산주의', '무정부 주의', '사회운동의 분열', '개발과 환경의 대립' 등...
평범한 작가가 이런 주제로 소설을 쓴다면 결코 이렇게 유쾌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가족간의 생이별이 이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여 지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무겁고 복잡하고 의식이 있는 주제임에 불구하고 소설의 유괘한 웃음속에 녹아버린다.
자칫 주제의식에 대한 가볍고 경박스러운 희화화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이 소설은 경박함과 진지함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멋진 조합을 이뤄낸다.
이런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나의 독서생활에서 커다란 소득임이 분명하다.
올해 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알게 되면서 느꼈던 그 흥분이 오래간만에 다시 느껴진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이 작가와의 만남으로 인해... 

'투쟁'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투쟁'이 필요한 곳이 수없이 많지만
어느새 우리는 그런 '투쟁'을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핑계로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서야 서서히 변하는 부분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저런 핑게로 그 부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어쩌면 작가는 '이치로'라는 황당한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외면하고 피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그럼 무책임과 무관심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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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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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래서 결국 패자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시대가 흘러 역사의 패자를 재조명하는 책들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서 승자의 눈으로 평가된 인물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흐르는 동안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우리시대 국사시간에 배운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결국은 승자의 평가이다.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인물, 우암 송시열도 그런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국사시간에 '송시열 + 효종 = 북벌'이라는 도식을 배워왔다.
지금도 이 도식은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져서 우리의 아이들도 배우고 있다.
그런 그에 대해 '절저한 사대주의자이고 철저한 보수주의자이고 북벌반대론자 였다'라고 말하는 이 책은
어쩌면 정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견고한 편견의 벽에 던지는 작은 계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책의 시도는 박수를 받을 만 하고 나는 아낌없는 찬사를 던진다. 

송시열이 태어나던 시대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왕실과 사대부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지고
그들이 목숨처럼 지켜오던 주자학의 통치이념이 일반 대중에 의해서 거부되던 시기이다.
백성들은 양반 사대부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주자학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고
사대부가 아닌 백성을 위한 통치이념과 사상을 원하고 있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이런 시대의 요구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명.청과의 등거리 외교와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으로 이런 요구에 부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광해군은 서인들의 정권 탈취에 가까운 명분없는 쿠데타인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나고
조선은 다시 망해가는 명에 대한 사대주의와 문치주의로 돌아가며 시대의 요구에 거스르게 된다. 

이런 시대에 태어난 그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임무가 맡겨져 있었다.
의식이 성장하여 더이상 지배층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백성들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백성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혀가는 양반 사대부들.
남인과 서인으로 갈려 서로 죽고 죽이는 당쟁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지배층 내부의 갈등.
이런 모든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고 화합된 힘으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가는 것.
이미 수명이 다해버린 명나라와 주자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아닌
실리에 입각한 정책으로 조선의 중흥을 꾀하고 새로운 조선의 건설에 매진하는 것.
학자로 태어난 그가 학자로 남았다면 이런 임무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었겠지만
학자가 곧 정치가 였던 시대에 정치의 길을 걸어간 그였기에 이런 임무에 대한 책임은 클 수 밖에 없다. 

결국 그의 선택이 어떠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평가는 왜 그렇게 되어가야 했는지,
많은 역사서를 읽고 나름 많은 관심을 쏟고 있지만 역사라는 것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기 마련이지만
같은 역사라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해석은 천자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는 결고 죽은 것이 아니고 현재에도 그 모습을 수없이 바꾸는 살아있는 것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가 현재의 XXX당의 정치인들이 보이는 행태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
최근 불거지고 있는 '종교 편향'의 갈등이 '주자학 유일사상'의 갈등과 겹쳐있는 것.
300년 전의 일들이고 이 책이 나온 지도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쩌면 이리도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인지...
과연 '이덕일'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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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특별 세트- 전2권 - 인간의 운명을 가를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수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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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폰노아 너머에서 건너 온 신의 후손이 다스리는 나라. 

에린은 무시무시한 투사(鬪蛇-전투에 사용하는 뱀을 닮은 무시무시한 야수)를 사육하는
훌륭한 투사지기인 엄마와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날 엄마가 관리하던 투사가 무더기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에린의 엄마가 '아료(마법을 부리는 종족으로 천대 받음)'라는 이유로
감찰관은 모든 잘못을 에린의 엄마에게 전가하고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엄마의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에린은 엄마를 구하려 하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다.
엄마는 에린을 구하기 위해 종족의 계율을 깨서 에린을 구하지만 자신은 투사의 먹이가 되고 만다.
죽음의 고비에서 벌꿀치기인 조운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 에린은 조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벌을 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방법들을 배운다.
그러던 중에 야생 왕수(王獸-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새를 닮은 거대한 야수)를 보고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게 된다.
조운의 기력이 떨어져 왕도로 돌아가게 된 에린은 조운의 도움과 자신의 실력으로 왕수 보호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날개를 다친 야생왕수인 '리란'과의 운명적 만남을 하게되고 왕국의 운명이 걸린 모험이 시작된다.
 

한폭의 동양화를 눈 앞에 보여주는 듯한 묘사. 뛰어난 심리묘사. 

개인적으로 일본 판타지는 처음이다. 일본 추리소설은 많이 읽었지만 다른 장르는 처음이다.
추리소설에서 느낀 일본사회,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은 잔인하고 끔직한 판타지를 예상했다.
그러나 책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 같은 표지에 반해 버렸다.
첫 장의 첫 문장부터 미야자키의 애니가 생각나서 끝까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표지의 힘도 한 몫 했다.
소설의 배경이나 등장하는 동물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것들이지만 배경의 묘사는 너무도 뛰어나서
한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무시무시한 투사의 모습은 나를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꿀벌의 생태를 묘사한 장면은 문외한인 내가 양봉을 하는 느낌을 갖게한다.
야생 왕수 모자의 모습은 읽는 것 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짖게 만들고
리란이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날아올라 에린과 같은 심장의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엄마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어린아이의 심정, 엄마를 잃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심리,
에린이 리란을 보면서 같은 아픔에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 리란에게 느끼는 모성애 까지...
에린의 심리가 리란의 성장과 함께 변해가는 과정이 세심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신과 친해졌다는 자만심에 경계심을 풀었다가 새삼 야수일 뿐인 리란에게 공포를 느끼게 되는 부분,
그 공포감 때문에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는 심리묘사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자연을 지배하려 하는 인간에 대한 호된 꾸짖움. 

미야자키의 [원령공주]나 [나우시카] 같은 작품들을 보면 인간이 자연에 대해 행하는 만행에 대한 꾸짖움이 있다.
이 책의 전반에 걸쳐 흐르는 주제의식도 그런 애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야생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야수들은 번식도 하고 자유롭게 날기도 하고 의사소통도 하지만
인간의 손에 사육되는 야수들은 새끼도 낳지 못하고 날지도 못하고 언어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것조차 야수들을 제어하려는 인간의 잘못된 지배의식의 발로이지만 어쩌면 야수 스스로 인간에 대해 반항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수의 무시무시한 힘을 무성피리로 무력화 시키고 스스로 야수와의 사이에 무성피리로 벽을 쌓아버리는 인간들.
자연과의 소통을 시도하지도 않고 지배하려고만 하는 인간들.
결국 에린이 리란과의 소통에 성공하면서 그것 마저도 자신들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인간들의 만행.
소설을 이런 인간들의 만행을 꾸짖고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과 공존을 이야기하려 한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런 노력이 결코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바램들. 

1. 이 책은 반드시 미야자키가 영화화 했으면 좋겠다.
     - 책을 읽는 내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들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애니만은 반드시 챙겨서 모았고 내 아들에게 보여주었기에
        그의 작품에 나오는 배경와 인물과 이야기가 참 좋았는데 이 소설이 딱 그런 이미지에 맞는다는 생각이다.
        훌륭한 애니 감독들이 참 많지만 이 작품만은 꼭 반드시 미야자키가 직접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 삽화가 들어가 있는 개정판을 기대한다.
     - 책에 나오는 배경들, 야수들, 인물들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그려진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삽화를 그려준 작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원래의 작품은 삽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만약 그렇다면 삽화까지 포함된 개정판이 출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이 좀 더 쉽게 이 책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아들을 포함해서...
3. 우리나라 판타지도 이런 이야기가 하나쯤 나와도 좋으련만....
     - 우리나라는 판타지가 성공하지 못하는 나라이다. 
         나 역시 나이가 많이 먹은 아저씨라서 내가 이 책을 들고 다니는 동안 타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왜 저런 책을 읽을까?' 하는 불편한 시선.
         판타지가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고 더 유익한 장르임은 틀림 없지만 어른도 읽을 수 있는 건데...
         애니는 아이들 것, 게임은 아이들 것, 판타지는 아이들 것.... 이런 편견과 선입견이 빨리 사라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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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1-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시군요. 저는 정령의 수호자만 애니메이션으로 봤는데 정말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아쉽게도 국내출판은 안돼있고, 원서는 못보고ㅠㅠ; 그후로 야수 라는 작품이 국낸출판본이 있어 보니 이것 역시 최고! 그후 애니메이션으로 나온것 아시나요?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짐승의 연주자 에린' 51화 완결을 바로 얼마전까지 감명깊게 보았죠.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