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래서 결국 패자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시대가 흘러 역사의 패자를 재조명하는 책들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서 승자의 눈으로 평가된 인물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흐르는 동안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우리시대 국사시간에 배운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결국은 승자의 평가이다.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인물, 우암 송시열도 그런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국사시간에 '송시열 + 효종 = 북벌'이라는 도식을 배워왔다.
지금도 이 도식은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져서 우리의 아이들도 배우고 있다.
그런 그에 대해 '절저한 사대주의자이고 철저한 보수주의자이고 북벌반대론자 였다'라고 말하는 이 책은
어쩌면 정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견고한 편견의 벽에 던지는 작은 계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책의 시도는 박수를 받을 만 하고 나는 아낌없는 찬사를 던진다. 

송시열이 태어나던 시대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왕실과 사대부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지고
그들이 목숨처럼 지켜오던 주자학의 통치이념이 일반 대중에 의해서 거부되던 시기이다.
백성들은 양반 사대부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주자학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고
사대부가 아닌 백성을 위한 통치이념과 사상을 원하고 있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이런 시대의 요구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명.청과의 등거리 외교와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으로 이런 요구에 부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광해군은 서인들의 정권 탈취에 가까운 명분없는 쿠데타인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나고
조선은 다시 망해가는 명에 대한 사대주의와 문치주의로 돌아가며 시대의 요구에 거스르게 된다. 

이런 시대에 태어난 그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임무가 맡겨져 있었다.
의식이 성장하여 더이상 지배층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백성들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백성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혀가는 양반 사대부들.
남인과 서인으로 갈려 서로 죽고 죽이는 당쟁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지배층 내부의 갈등.
이런 모든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고 화합된 힘으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가는 것.
이미 수명이 다해버린 명나라와 주자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아닌
실리에 입각한 정책으로 조선의 중흥을 꾀하고 새로운 조선의 건설에 매진하는 것.
학자로 태어난 그가 학자로 남았다면 이런 임무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었겠지만
학자가 곧 정치가 였던 시대에 정치의 길을 걸어간 그였기에 이런 임무에 대한 책임은 클 수 밖에 없다. 

결국 그의 선택이 어떠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평가는 왜 그렇게 되어가야 했는지,
많은 역사서를 읽고 나름 많은 관심을 쏟고 있지만 역사라는 것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기 마련이지만
같은 역사라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해석은 천자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는 결고 죽은 것이 아니고 현재에도 그 모습을 수없이 바꾸는 살아있는 것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가 현재의 XXX당의 정치인들이 보이는 행태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
최근 불거지고 있는 '종교 편향'의 갈등이 '주자학 유일사상'의 갈등과 겹쳐있는 것.
300년 전의 일들이고 이 책이 나온 지도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쩌면 이리도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인지...
과연 '이덕일'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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