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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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도시]였던 공화국 수도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그 사건이 흐른 후 4년.
백색실명의 전염병이 퍼지던 시기에 아무런 역할이 없었던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를 한다.
첫번째 투표에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정확히 오후 4시에 투표소로 향햐고
70% 이상의 사람들이 백지투표를 한다.
정부는 당황한다. 저조한 투표율 보다 그들의 공포에 떨게하는 백색투표 때문에...
결국 선거 당일 날씨의 문제로 억지로 치부하고 재선거를 한다.
그러나 이번에 놀라운 투표율에 무려 87%나 되는 백지투표가 돌아온다.
정부는 이제 완전히 공포에 빠지게 되고 백색투표의 배후를 찾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방식의 해결을 위해 심문, 협박, 회유, 호소 등등...
그러나 누구의 입에서도 '내가 백지투표를 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정부의 당황은 극에 달한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계엄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압박하지만 그 역시 효과는 없다.
결국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는 정부와 정치인들.
경찰도 없고 공무원도 없는 도시에서 그들이 원하는 혼돈이 올 것인가?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눈 먼 자들의 도시]와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속편이라는 개념은 없다. 다만 공간적 배경이 같고 '의사의 아내'가 나온다.
그러나 2권의 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시각적 경험에 의한 윤리가 사라진 상태의 인간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눈 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낸 정부가 없어질 위험에 처했을 때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대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전편이 일상에서 우리가 매일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작품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특수한 종으로 변화해 버린 '정치인'들의 본성을 보여준다.
전편이 눈이 멀어 보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눈은 분명히 뜨고 있으나 보지 않으려 해서 보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이야기 이다. 

계엄을 경계로 군사초소가 생기고 그 초소를 경계로 나뉜 사람들.
초소밖의 정치인들은 그들이 보려하는 것만 보려하고 보지 않으려 하는 건 보지 않는다.
그래서 초소 안쪽의 사람들, 대부분의 선량한 국민들이 보여주는 놀라울 정도의 인간성은 보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과 그들이 우상처럼 떠받드는 체제를 궁지로 몰아넣은
'백돌이'를 보려고 한다. 설령 그 백돌이가 실제로 없다고 하더라도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초소 안쪽으로 그들의 첩자를 침투시켜 백돌이를 보려한다.
처음에 첩자들도 백돌이 이외의 것은 보지 않으려 하지만
차츰 그들의 눈이 뜨이면서 백돌이가 아닌 인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치인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사건들과 배신(?)들의 연속.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정치인들은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듯이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 본다.
그러니 그들은 눈을 뜨고 있으나 눈이 먼 사람들이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과연 떳떳하게 '나는 눈이 멀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책에 나오는 사람들도 정치인들의 말이 새빨간 거짓인 줄 알지만
그들이 보는 것에 눈을 감는다. 희생양은 있어야만 한다. 자신들을 위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도 멀었다.
시골에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코시안'들을 보는 우리의 눈은
우리와 다른 그들의 까만 피부는 보고 있지만 우리와 같은 그들의 빨간 피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고 아무런 가책없이 차별을 가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독히도 눈이 먼 사람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결론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아쉽다.
전편에서 그렇게 희망을 보여주던 사람이 왜 이렇게 암울함으로 끝을 맺었을까?
어쩜 전편의 결말은 이 책의 결말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의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는가? 우리는 지독히도 눈이 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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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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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고 정통 추리소설로 돌아오다 !!!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 회랑정에 이치가하라 가문의 가족들이 모여든다.
대그룹을 창업하여 가문을 일으킨 다카아키의 유산을 분배하는 유언장을 공개하기 위해서...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초대받은 나는 6개월 이곳에서 나의 전부인 지로를 잃었다.
동반자살을 시도한 화재사건이라고 하지만 나는 나의 지로가 살해당했다는 걸 알고있다.
그 후 6개월. 복수를 위해 자살로 위장하고 기쿠요부인으로 변장한 채 회랑정을 다시 찾는다.
나와 나의 지로를 죽이려 했고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은 이들이 여기에 있다.... 

「용의자 X의 헌신」,「붉은 손가락」,「방황하는 칼날」
 3편의 전작에서 미리 범인을 밝혀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나를 매료시킨 작가.
그가 이번엔 정통 추리소설로 돌아왔다. 즉, 범인을 마지막까지 꼭꼭 숨기는 방식의 이야기.
작가의 이름만 믿고 주저없이 선택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피해자이자 탐정이며 주인공인 나의 추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책은 끝이 나 있었다. 

외모지상주의와 돈 때문에 속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이 작품은 보다 추리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지적유희를 즐기기 위한 작품.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수수께끼.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주인공의 추리와 그녀의 가슴속에 상처가 되어버린 이야기들.
왜 그녀가 그렇게 절박하게 복수를 다짐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처절해야 했는지
남자인 내가 여자의 심리를 잘 알수는 없겠지만 그녀의 절박함엔 공감이 간다.
그런 이유있는 복수이기에 그녀를 응원하는 심정적인 동조가 이루어진다. 

한정된 인물들이기에 처음부터 한명씩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게 된다.
단 한장의 거짓유서로 범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설정 또한 탁월하다.
인간의 심리란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은 아니지만 자기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생각에
서로 의심하고 서로 불신하게 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사건이 하나씩 풀려가면서 뜻밖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뜻밖의 인묻들이 하나씩 나타나면서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 시킨다.
추리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반전 또한 뛰어나다.
처음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을 때 처럼 강력하게 뒤통수를 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뛰어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인 반전을 위한 이야기 전개도 없다.
주인공의 추리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전. 역시 게이고 답다. 

어제 오후에 책을 펴서 오늘 아침에 다 읽었을 정도로 몰입감이 최고인 소설이다.
물론 게이고의 작품들이 다 그정도의 몰입도는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이 최고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재미있다. 

[렘브란트 반 라인]의 오타가 너무 심해서 '랜덤하우스'라는 출판사를 불신할 정도 였는데
이 책은 오타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놓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작품이다.
즐겁게 읽으면서 게이고가 펼치는 지적유희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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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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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나도 꽤나 영화를 좋아한다.
CGV와 롯데시네마의 VIP회원이 동시에 될 정도이니 영화를 적게 보는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를 좋아하지만 외국영화(특히 헐리웃 영화)도 좋아하는데 영어는 참 약하다.
대학교 때 까지는 자막없이 볼려고 노력했으나 지금은 그저 자막에만 의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많은 외국영화에 빠지지 않고 번역가로서의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미도 씨.
그 분이 산문집을 냈다고 하니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서 책을 구입했다. 

제목을 보면 느끼는 것이 영어 학습책 같은 느낌이다.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공부하라!'는 메시지를 던질 것 같은 느낌.
책에서 물론 그런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번역가 '이미도'로써, 영어를 사랑하는 '이미도'로써, 그리고 인간 '이미도'로써
세상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수필형식으로 엮어낸 산문집이다.
그의 직업이 번역가 이다 보니 영화의 수많은 명대사를 인용하고
작가가 모토로 삼고 있는 여러 명언들과 일화들을 사용하여
'영화에 대해', '영어에 대해', '영화와 영어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부담없는 문체로 편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내가 기대했던 영화의 뒷 이야기 부분도 빠질 수 없다.
번역가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한 작은 엿보기도 가능하게 해주고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외국의 유명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감독이나 배우가 아닌 번역가로써 바라보는 영화계의 모습도 있다.
나는 전혀 모르는 그 세계가 참 재미있게 느껴진다. 

꽤나 많은 영화를 보면서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는 명대사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 작가가 인용하는 명대사들 중에 나도 기억하는 명대사도 많았고
분명 내가 본 영화지만 나는 모르고 지나갔던 명대사들도 참 많았다. 그런 영화들은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진다.
작가가 추천하는 3편의 영화는 아쉽게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추천만으로도 한번쯤 찾아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꼭 그 영화들을 보고 나서 작가의 이야기와 비교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름 주제를 가지고 몇개의 그룹으로 묶어서 편집한 책인데
읽고있는 내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각각의 하나의 산문들은 참 느낌이 좋은데 여러개의 산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느껴지니 않는다.
뭔가 산만하게 이리저리 펼쳐저 있는 느낌. 아쉽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개인적인 생각과 다른 부분도 눈에 띈다.
물론 작가의 생각이고 독자가 받아들이는 정도는 작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도
개인적인 만족도에서 분명 마이너스가 되는 건 사실이다.
얼마 전에 읽은 히사이시조의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와 비교했을 때
몰입감이 떨어지는 것도 조금은 아쉽다. 그 차이의 원인은 지금 알 수 없지만... 

대학교 졸업 후에 영어와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실로 오래간만에 영작된 문장들을 보니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손에 들고 가볍게 읽기엔 적당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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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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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를 읽으면서 기욤뮈소에 반했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읽으면서 비슷한 내용에 조금 실망했던 나이기에 세번째로 접하는 그의 작품 '사랑하기 때문에'는 기대반 우려반의 심정이었다. 두 작품과 또 똑같은 형태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그래도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와 빠른 전개,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심정. 일단 두 작품과 전혀 다른 구성이다. 환타지적인 인물도 없고 사건의 구성도 다르며 이야기의 전개방식도 다르다. 두 작품이 환타지적인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추리나 스릴러와 비슷한 형식을 취한다. 물론 결론을 보고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작가는 여전히 운명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하더라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고 그 과거의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다는 것. 사람의 힘으로는 운명을 거스르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거기에 더 나아가 하나의 메세지를 더 남긴다. 그것이 운명이었든 사고였든 무엇이었든지 간에 과거의 기억이나 상처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되고 스스로 이겨내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대한 망각,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수용, 과거의 기억에 대한 용서... 이런 긍정적인 사고(思考)의 힘으로 모든 과거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치유와 극복의 과정을 거치면 인간의 정신은 더욱 강해지고 다가올지도 모르는 충격에 대한 내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것. 

 제목이 '사랑하기 때문에'이라서 뭔가 사랑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의 내용에 사랑이 녹아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목으로 삼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사랑에 할애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 상처에 대한 치유와 극복이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제목의 의미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긴 '구해줘'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경우도 제목과 내용의 일치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고 자책감에 빠져 자신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남편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아내, 망가지는 딸의 모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백만장자 아버지, 그리고 한 소녀의 불행을 쉽게 보아 넘기지 못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 과거의 고통스럽고 가슴아픈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3명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한 구성에 마지막에서야 드러나는 진실의 이야기. 기욤의 작품들이 모두 그런 형태를 취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이 제일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실 마지막에 가서는 살짝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서로 처음 보는 세 사람에게 얽히고 설키는 서로의 인생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하는데 내 행동이 그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기란 불가능이 아닌가? 그래서 운명론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어쨋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내 삶의 방식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나의 행동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 아닐까? 구성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보다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판타지가 아니고 판타지적인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지만 한편의 판타지를 읽은 느낌이다. 아니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놓고 난 내 가슴속에 따스한 느낌이 남아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해 있다. 물론 책 한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의 느낌은 편안하고 따스하다. 이런 기분과 감정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간동안은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 보일 것 같다. 그럼 이 책의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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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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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이걸 알고 있었더라면...'
사람은 언제나 '만약'이라는 말을 하고 산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다가도 문득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만약 고2로 돌아가 다시 선택한다면 주저없이 이과(理科)가 아닌 문과(文科)를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몰랐으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엘리엇도 언제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순간적 판단미스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구해준,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준 한 여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면 말이다. 다만 현실에서 그것이 불가능 하기에 30년의 시간을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갈 뿐. 

 그런 그에게 의도하지 않은 선행의 대가로 주어진 알약 10알. 현실에서 불가능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의 알약. 마지막으로 꼭 한번만 목숨처럼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하고 소박한(?) 소망을 이루어 줄 하늘의 선물. 그 알약을 건네 준 노인이 말한 조건이 있었지만 그것을 정말로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과거로 돌아가 소원을 이루게 되는 엘리엇. 거기서 끝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과거에서 그가 만난 건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다시 만나야만 했던 30년전의 자기 자신.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모든 것을 알고 인정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인정할 수 없었던 죄책감과 상처로 인해 인생의 지표를 놓치고 자신의 사랑마저 부정하려 하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과 그녀를 잃은 후 자신이 겪었던 30년간의 후회와 탄식의 삶. 그 기억들로 인해 결국 노인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신의 인생에 끼어들게 되는 엘리엇. 

 과거의 자신의 인생에서 그녀만을 구하고 싶었으나 운명은 그의 계획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과거의 그녀를 구하려면 현재 자신이 끔찍히 사랑하는 딸을 잃어야 한다는 전제. 그걸 피하기 위해 그와 과거의 그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지만 그 결과는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운명은 '일어날 것은 반드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래도 한번 싸워보지 않는다면 그런 삶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엘리엇은 운명에 맞서게 된다. 그의 투쟁에 박수를.... 

 '시간여행'은 너무도 매력적인 주제이고 그래서 너무도 유혹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진부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어쩌면 작가에게 일종의 '도박'일 수 밖에 없는 주제이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할 때도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우선 '시간여행'으로 만나는 대상이다. 그 대상은 다른 시대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과거의 자기자신과 자기자신의 삶이다. 그것이 다른 책들과 차이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시간여행은 공상과학의 시간여행처럼 신비롭고 흥분되는 체험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슬펐던 시간의 기억, 가장 행복했기에 가장 괴로워야 했던 기억'으로의 여행이었기에 차라리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시간여행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과거의 기억으로의 여행, 그리고 그 기억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치유. 

 두번째로 시간여행의 전제이다. 이 책의 시간여행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시간의 제한이 있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약 30분 정도의 시간. 그리고 단 10개의 알약. 그 제한들로 인해 자신의 삶에 끼어들 기회의 제한을 받고 그것이 정해진 운명을 따르게 하기도 한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기인한 이러한 제한들이 소설의 긴박함을 높히고 스토리의 전개를 흥미롭게 만든다. 역시 기욤뮈소. 

 늙은 엘리엇의 소원은 사랑했던 여인을 다시 한번만 만나는 것이었다. 알약을 어쩌면 신이 그의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준 선물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그의 소원이 과연 그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원은 어쩌면 과거의 그, 죄책감과 기억에 사로잡혀 무력하게 운명에 손을 들어버린 나약한 과거의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나서 30년의 세월이 그에게 가르쳐 준 인생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알약은 어쩌면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그에게 운명에 맞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평행세계'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 유명한 판타지 소설 '황금나침반'을 통해서 처음 접한 이론이지만 어쩌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만 하더라도 늙은 엘리엇이 알약을 얻지 못하고 죽는 세계와 알약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게되는 세계와 마직막 알약의 반전으로 인해 새롭게 살게된 세계. 3개의 세계가 평행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슬라이딩 도어즈'나 이휘재의 '인생극장'에서 순간의 선택으로 갈라지는 두개의 삶의 모습은 어쩌면 동시에 존재하는 두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살아가면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어쩌면 2개의 세계가 동시에 형성되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다. 결국 우리가 과거를 생각하며 '만약...'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 마다 지금의 세계와 동시에 존재하는 또다른 나의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결국 이야기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치유만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과거를 후회하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로 탑을 쌓고 살고 있지만 진정 그렇게 할 수 있다해도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의 삶에서 누리는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더이상 잃을게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막상 잃고나면 후회할 것들이 지금 우리의 삶에 수없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물론 내가 아무리 충실히 산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보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겠지만 지금의 삶은 다시 되돌린다면 얻을 수 없게 되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남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자체로 본다면 정말 재미있다.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 전개와 쉴새없이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들. 한마디로 재미있다. 문제는 내가 불과 1주일 전에 기욤뮈소의 '구해줘'를 읽었다는 것이다. '구해줘'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많이 기대를 했는데 너무나 비슷한 전개, 너무나 비슷한 등장인물, 너무나 비슷한 주제와 너무나 비슷한 설정들. 다른 작가가 썼다면 분명히 '표절'이라고 불렀을 정도의 유사함이 많이 아쉽다. 물론 그것이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너무도 비슷한 이야기가 작은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만약 기욤뮈소의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읽기를 권한다. 연달아 읽어보면 분명히 실망을 할 것이기 때문에.... 

 가끔 내가 마눌님에게 '내가 그 학교에 안갔으면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한다. 그럼 마눌님의 대답은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것이다. 어쩜 기욤뮈소가 300여 페이지의 소설로 이야기하는 것을 마눌님은 단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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