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이걸 알고 있었더라면...'
사람은 언제나 '만약'이라는 말을 하고 산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다가도 문득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만약 고2로 돌아가 다시 선택한다면 주저없이 이과(理科)가 아닌 문과(文科)를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몰랐으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엘리엇도 언제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순간적 판단미스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구해준,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준 한 여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면 말이다. 다만 현실에서 그것이 불가능 하기에 30년의 시간을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갈 뿐. 

 그런 그에게 의도하지 않은 선행의 대가로 주어진 알약 10알. 현실에서 불가능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의 알약. 마지막으로 꼭 한번만 목숨처럼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하고 소박한(?) 소망을 이루어 줄 하늘의 선물. 그 알약을 건네 준 노인이 말한 조건이 있었지만 그것을 정말로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과거로 돌아가 소원을 이루게 되는 엘리엇. 거기서 끝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과거에서 그가 만난 건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다시 만나야만 했던 30년전의 자기 자신.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모든 것을 알고 인정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인정할 수 없었던 죄책감과 상처로 인해 인생의 지표를 놓치고 자신의 사랑마저 부정하려 하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과 그녀를 잃은 후 자신이 겪었던 30년간의 후회와 탄식의 삶. 그 기억들로 인해 결국 노인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신의 인생에 끼어들게 되는 엘리엇. 

 과거의 자신의 인생에서 그녀만을 구하고 싶었으나 운명은 그의 계획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과거의 그녀를 구하려면 현재 자신이 끔찍히 사랑하는 딸을 잃어야 한다는 전제. 그걸 피하기 위해 그와 과거의 그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지만 그 결과는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운명은 '일어날 것은 반드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래도 한번 싸워보지 않는다면 그런 삶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엘리엇은 운명에 맞서게 된다. 그의 투쟁에 박수를.... 

 '시간여행'은 너무도 매력적인 주제이고 그래서 너무도 유혹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진부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어쩌면 작가에게 일종의 '도박'일 수 밖에 없는 주제이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할 때도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우선 '시간여행'으로 만나는 대상이다. 그 대상은 다른 시대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과거의 자기자신과 자기자신의 삶이다. 그것이 다른 책들과 차이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시간여행은 공상과학의 시간여행처럼 신비롭고 흥분되는 체험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슬펐던 시간의 기억, 가장 행복했기에 가장 괴로워야 했던 기억'으로의 여행이었기에 차라리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시간여행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과거의 기억으로의 여행, 그리고 그 기억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치유. 

 두번째로 시간여행의 전제이다. 이 책의 시간여행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시간의 제한이 있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약 30분 정도의 시간. 그리고 단 10개의 알약. 그 제한들로 인해 자신의 삶에 끼어들 기회의 제한을 받고 그것이 정해진 운명을 따르게 하기도 한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기인한 이러한 제한들이 소설의 긴박함을 높히고 스토리의 전개를 흥미롭게 만든다. 역시 기욤뮈소. 

 늙은 엘리엇의 소원은 사랑했던 여인을 다시 한번만 만나는 것이었다. 알약을 어쩌면 신이 그의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준 선물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그의 소원이 과연 그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원은 어쩌면 과거의 그, 죄책감과 기억에 사로잡혀 무력하게 운명에 손을 들어버린 나약한 과거의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나서 30년의 세월이 그에게 가르쳐 준 인생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알약은 어쩌면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그에게 운명에 맞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평행세계'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 유명한 판타지 소설 '황금나침반'을 통해서 처음 접한 이론이지만 어쩌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만 하더라도 늙은 엘리엇이 알약을 얻지 못하고 죽는 세계와 알약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게되는 세계와 마직막 알약의 반전으로 인해 새롭게 살게된 세계. 3개의 세계가 평행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슬라이딩 도어즈'나 이휘재의 '인생극장'에서 순간의 선택으로 갈라지는 두개의 삶의 모습은 어쩌면 동시에 존재하는 두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살아가면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어쩌면 2개의 세계가 동시에 형성되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다. 결국 우리가 과거를 생각하며 '만약...'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 마다 지금의 세계와 동시에 존재하는 또다른 나의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결국 이야기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치유만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과거를 후회하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로 탑을 쌓고 살고 있지만 진정 그렇게 할 수 있다해도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의 삶에서 누리는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더이상 잃을게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막상 잃고나면 후회할 것들이 지금 우리의 삶에 수없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물론 내가 아무리 충실히 산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보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겠지만 지금의 삶은 다시 되돌린다면 얻을 수 없게 되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남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자체로 본다면 정말 재미있다.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 전개와 쉴새없이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들. 한마디로 재미있다. 문제는 내가 불과 1주일 전에 기욤뮈소의 '구해줘'를 읽었다는 것이다. '구해줘'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많이 기대를 했는데 너무나 비슷한 전개, 너무나 비슷한 등장인물, 너무나 비슷한 주제와 너무나 비슷한 설정들. 다른 작가가 썼다면 분명히 '표절'이라고 불렀을 정도의 유사함이 많이 아쉽다. 물론 그것이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너무도 비슷한 이야기가 작은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만약 기욤뮈소의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읽기를 권한다. 연달아 읽어보면 분명히 실망을 할 것이기 때문에.... 

 가끔 내가 마눌님에게 '내가 그 학교에 안갔으면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한다. 그럼 마눌님의 대답은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것이다. 어쩜 기욤뮈소가 300여 페이지의 소설로 이야기하는 것을 마눌님은 단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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