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작품의 한계는 과연 어디인가?
물론 추리소설 작가라는 그의 직업이 분명히 말해주듯
게이고의 가장 큰 재능을 추리소설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 추리소설에서마저 그의 화법은 일반적인 화법을 거부한다.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등의 작품을 보면서 난 눈물을 흘렸고
<방과 후>, <백마산장 살인사건> 등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치밀한 구성과 트릭에 놀랬다.
그의 재능은 추리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백야행>, <편지>, <유성의 인연>등의 작품을 보면 추리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결코 추리소설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사람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이야기.
이 소설, <비밀> 또한 그런 게이고의 소설들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은 이미 일본에서 영화로 개봉하여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고
미국에서 <더 시크릿>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나 또한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접하면서 특이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차마 그 영화의 원작이 게이고의 소설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게이고의 작품세계와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나서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제조업체에 다니면서 현명한 아내 나오코, 귀여운 딸 모나미와 함께 살아가는 헤이스케.
평범하고 행복한 그의 일상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사건은 스키버스의 교통사고였다.
그 사고로 인해 아내는 생명을 잃고 딸은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끝까지 딸을 보호한 아내의 희생으로 별다른 외상없이 깨어난 딸 모나미.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딸인 모나미가 아니라 아내인 나오코라고 주장하게 된다.
모나미는 전혀 알 수 없는 그와 나오코만의 비밀들을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헤이스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들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다.
아내이지만 아내일 수 없고 딸이지만 딸일 수 없는 그녀에 대한 그의 안타까운 심정.
그들이 지켜야만 했던 비밀과 마지막 몇장에서 펼쳐지는 기막힌 반전.
'역시 게이고'라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만드는 게이고의 최고의 작품이라 할 만한 소설이다.

무려 4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마지작 5페이지에서 벌어지는 반전은 기가 막힌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예측은 하지도 않았던 반전에 완전히 허를 찔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전하는 사랑과 서로에게 보여주는 최고의 감동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아무런 살인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형사나 탐정도 나타나지 않았고 범인도 없는 소설이지만
그 어느 추리소설보다 더 짜릿한 반전의 묘미를 전해주는 이 소설은 과연 추리소설인가?
추리소설로 상을 받았다고 하지만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랑과 가족을 이야기 하는 이야기.
나오코와 헤이스케가 보여주는 부부간의 사랑과 모나미에 대한 헤이스케의 부성애가 만나고
딸이면서도 아내이기도한 그녀에 대한 질투와 묘한 감정들의 혼란함을 능숙하게 그려낸
게이고의 솜씨는 인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던 헤이스케와
딸의 인생을 다시 살아가기를 원하는 나오코(?)의 대립과 갈등.
딸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을 바라보는 시선과
딸의 모습을 한 아내가 다른 남자들-남학생들-과 만나는 것을 지켜보는 질투의 시선.
나오코가 때로는 아내의 마음으로 때로는 딸의 마음으로 헤이스케에게 이야기하는 이야기들.
딸과의 사이에서 왠지 어색해지고 어려워질 수 있는 아빠에 대한 따뜻한 충고이다.
난 딸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공감의 크기가 작을 수 밖에 없지만 그 충고가 공감이 가지 않는건 아니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남자들이 가볍게 넘기기 쉬운 부분들에 대한 지적들.
남자가 아닌 여자들의 심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은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소설이다.

난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이들의 평을 들어보면 소설보다 못하다고 한다.
역시 영상으로는 전하지 못하는 미세한 표현의 차이들과 치밀한 심리묘사가 소설의 매력이다.
독서를 통해서 전하는 감동의 크기는 절대 영상이 따라올 수는 없을 듯 하다.
게이고의 또다른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그의 최고의 걸작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용의자 X의 헌신>, <유성의 인연>과 함께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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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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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머리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지는 작가가 있다.
수많은 다작을 하면서도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캐릭터로 유쾌한 소동을 벌이는 ’오쿠다 히데오’.
상상의 대륙 차모니아를 창조하여 그 세계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를 하는 ’발터뫼르스’ 등.
이 책의 저자인 베르나르베르베르 또한 그런 작가 중에 하나이다.
’타나토노트’ -> ’천사들의 제국’ -> ’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에서 사후세계를 탐험하고
’개미’를 통해서 무심코 지나가고 무시해 버린 개미의 세계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펼치고
’뇌’를 통해서 인간의 마지막 과제인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더니
’파피용’에서는 최대 규모의 우주선을 통해서 인간의 구원과 인류의 기원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작품 ’나무’에서 그 상상력의 갈래를 끝까지 밀고나가 놀라운 이야기들은 풀어낸다.

기계가 스스로 의식을 가지고 서로가 소통을 하는 세상의 이야기.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왼손의 이야기.
20까지밖에 알지 못하는 부족들이 사는 제국의 이야기.
나이 든 노인들을 강제로 없애는 사회의 이야기.
우주인의 사업에 아무것도 모른 채 협력하게 되는 인간들의 이야기 등등.
누구나 한번 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들이지만 누구도 그 극단까지 펼치지 못한 상상들.
작가는 이런 가정들을 극단까지 끌고가서 그 극단에서 기막힌 반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반전들을 통해서 인간의 문제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다.
기계 만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인간 복제에 대한 성찰,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인간들에 대한 비판,
인간의 시각이 아닌 인간 보다 우월한 존재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에 대한 비판 등등.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미래의 모습.
우리의 시각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
때로는 너무 무섭고 때로는 너무 우습고 때로는 너무 기가 막힌다.
작가는 이 단편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의 방식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기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력 속의 세계는 가볍지도 않고 우습지도 않다.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고 우리가 직면할 운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단편들은 결국 베르베르의 대표작들의 토대가 된다.
유명한 그의 작품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매력에 빠져 읽어 내려갔던 그 작품들의 프로토타입을 볼 수 있는 기회.
이 책은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베르베르의 작은 서비스 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완벽하게 발전되지 않은 이야기의 뼈대같은 느낌이 있다.
뭔가 더 발전시키고 더 살을 붙여낼 수도 있었을 텐데 단편의 한계로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다.
그런 반면에 이런 작은 상상력의 단서로 독자 스스로의 상상력을 더 펼칠 수 있어서 좋을 수도 있겠다.
이 책 정말 쉽게 헤어날 수 없는 상상력의 바다이다. 그 속에 풍덩 빠져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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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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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명의 아빠가 있다.
그의 큰아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일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신장애와 지체장애가 함께 있는 최고등급의 장애를 지닌 아들.
하나로도 버거운 그에게 하느님은 또하나의 시련을 더한다.
그의 둘째 아들마저 형과 같은 운명을 가진 장애아로 태어난 것.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두번이나 했다는 이 아버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감동적인 역할을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일들.
아버지와 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도 그는 하지 못한다. 
캐치볼도 할 수 없고 같이 공원에 산책조차 할 수 없다.
나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아빠에게는 너무 간절하다.
"아빠, 어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는 아들을 쳐다볼 수 밖에 없는 현실.
너무나 평범한 것이 너무나 하고싶은 아빠의 이야기가 안타깝다.

그러나 동정을 구걸하지는 않는다.
아빠의 이야기는 오히려 읽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머리속에 지푸라기 밖에 없는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자신의 아들들을 가지고 모임의 분위기를 띄우는 아버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신과 아들들을 비하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들을 제대로 낳아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의 표현이다.
그런 현실에서 아들들에게 천사표 아빠가 되어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히이다.
그래서 그의 그런 유머러스한 표현들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책은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장애를 현실로 직시하고
아들의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감동을 느끼고 싶었는데...
어쩌면 나 역시도 책속의 아빠에게 ’감동적인 역할’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었던가?
장애를 가진 아빠의 감독적인 이야기를 예상한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런 기대가 어긋난 것은 나 자신의 실책이라 할 지라도
책의 전반을 거쳐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넋두리를 하는 듯한 모습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넋두리로 일관한 아쉬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조소하는 듯한 태도 또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비록 그 조소의 의미가 큰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성애’를 찬양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것이 ’부성애’이다.
가정 내에서 아빠의 역할이 적어지고 아버지의 부재가 심화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잠깐의 시간만 투자하면 우리가 몰랐던 아버지를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 하나의 의미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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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필
존 그리샴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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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시시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최악의 오염사고가 발생한다.
크레인 케미칼이라는 대기업에 의한 식수 오염으로
마을 사람들의 전염병처럼 암에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남편과 자식을 한꺼번에 잃은 한 부인을 위해 페이튼 부부은 소송을 걸고
4년간의 지루한 법정다툼 끝에 4,1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승소를 하게 된다.
천문학적 배상금으로 인해 회사의 존폐의 위기에 몰린 크레인의 투르도 회장은
대법원의 상고를 통해 판결을 뒤집기 위한 모종의 음모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익집단의 이해에 휘둘린 법의 정의
미국이라는 나라는 소송의 천국이라고들 한다.
얼마전 우리 교민이 관련되어 큰 화제가 되었던 바지소송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상식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소송이 흔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소송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나 손 쉽게 법에게 호소할 수 있는 그들의 법원시스템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 미국에서 사법제도의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무분별한 소송의 남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개혁이라고 하는데
그 배경에는 수많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이다.
이미 법이 대변하는 정의라는 것은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사라진 지 오래이다.
변호사들은 자기가 대변하는 이익집단을 위해 정의를 던져버린 상황에서 이 소설의 의미는 작지 않다.

기존의 존 그리샴과 다른 느낌의 소설
수많은 히트작들을 통해 법정슬리러의 대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 존 그리샴.
그의 명성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님은 나 역시도 수많은 책과 영화를 통해서 경험했던 바이다.
그의 소설들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법원의 정의가 약자를 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언제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하고 그 과정을 법이라는 정의가 돕는 이야기.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그의 다른 작품들의 경향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윗의 승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승리 이후를 그리고 있다.
법정의 다툼을 다루는 법정스릴러가 아니라 판사 선거를 둘러싼 정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다윗의 승리로 통쾌함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다.
그가 기존의 포맷을 버리고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국민으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시민으로서의 위기의식 때문이다.
더이상 진실과 정의가 시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 법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
그런 위기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며 그런 위기를 이겨내고자 하는 나름의 투쟁이다.

그들과 별로 다를게 없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사법제도는 미국의 그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리는 정치의 모습은 우리의 선거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실의 단편만을 편집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로 조작하기를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이슈화 하고 논쟁한다.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모습을 우리의 모습과 전혀 차이가 없다.
그렇기에 작가가 느낀 위기의식이라는 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위기가 된다.
불과 2년도 안되어 나라의 모습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지금의 정치세력도 결국 우리의 책임이 아닌가?

다윗은 과연 승리하는가?
소설을 다윗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시시피 주민들의 승소에서 시작된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을 통해 우리가 보아왔던 수많은 정의의 승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다윗은 승리한 것으로 끝나는가? 세상은 그런 해피엔딩일까?
항소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진짜 싸움은 시작된다.
다윗의 승리는 골리앗에게는 뜻하지 않은 일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정신을 차린 골리앗에게 다윗은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그것이 더욱 현실에서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결말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너무도 무서운 것이 되어버린다.
다윗은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사회는 다윗의 승리에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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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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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쩌면 예지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92년. 
그리고 우리는 13년 후 황우석 사태로 인해 이 책이 에견한 미래를 보았다.
어쩌면 이리도 소름이 끼치도록 닮아 있는 책속의 논쟁와 실제의 논쟁.
무서운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의 오버인가?

출생의 비밀을 찾아 나선 두 여인의 자아찾기.
그리고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추악한 모습.
윤리성이 결여된 과학과 어미의 모성애라는 상반된 가치의 결합이 만들어 낸
결코 있어서는 안되었을 비극과 그 비극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두 여인의 이야기.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 오만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

황우석 사태에서 난 개인적으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특별히 '황빠'는 아니었을 지라도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배아연구는 찬성했던 쪽이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기초과학이 천대받는 환경에서 황박사가 일구어 낸 성과는
온 국민을 그에게 빠지도록 만들 수 밖에 없는 신천지였고 그래서 모두 열광했다.
비록 그의 연구가 100%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판명된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사태를 겪고나서 접하게 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과학기술도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리한다.
핵분열과 행융합이라는 기술은 원자력이라는 무공해 에너지의 원천이 되지만
그와 동시에 수백만의 인명을 일순에 살상하는 원자폭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배아를 키우고 연구하여 불치병을 가진 이들의 희망이 되기도 하겠지만
거기에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이 더해지게 되면 그 결과는 얼마난 무시무시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아무리 인간 스스로 그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해도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위험부담이 큰 기술이고 결국 우려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지금의 우리가 이 무서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을 것인가?

마리코와 후타바. 2명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그들은 과연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가?
그녀들이 고뇌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든 이유가 그대로 나에게도 생각거리를 만들어 준다.
인간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인가?
게이고는 인간의 조건을 생물학적인 근거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고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과연 그녀들을 동일한 인간의 종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가장 큰 포인트 중에 하나는 바로 모성애 이다.
자진해서 받아들인 상황이었던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던
마리코와 후타바의 어머니들이 보여준 모성애는 커다란 감동을 가져다 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어떤 작품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이고의 사랑이 이 소설에서는 모성애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성애는 나의 어머니를 회상하게 한다. 그래서 눈물이 한 방울 맺히게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레몬'이라는 제목은 원제목인 '분신' 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뒷표지에 나온 요약된 내용은 너무도 잔인하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뒷면에 인쇄해 놓은 출판사의 배짱에 기가 막힌다.
제목을 아무리 잘 지었다 하더라도 이건 정말 아니다.
독자들의 책 읽는 재미를 반감시킨 만행에 어이없는 웃음이 묻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이 소설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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