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쩌면 예지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92년. 
그리고 우리는 13년 후 황우석 사태로 인해 이 책이 에견한 미래를 보았다.
어쩌면 이리도 소름이 끼치도록 닮아 있는 책속의 논쟁와 실제의 논쟁.
무서운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의 오버인가?

출생의 비밀을 찾아 나선 두 여인의 자아찾기.
그리고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추악한 모습.
윤리성이 결여된 과학과 어미의 모성애라는 상반된 가치의 결합이 만들어 낸
결코 있어서는 안되었을 비극과 그 비극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두 여인의 이야기.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 오만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

황우석 사태에서 난 개인적으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특별히 '황빠'는 아니었을 지라도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배아연구는 찬성했던 쪽이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기초과학이 천대받는 환경에서 황박사가 일구어 낸 성과는
온 국민을 그에게 빠지도록 만들 수 밖에 없는 신천지였고 그래서 모두 열광했다.
비록 그의 연구가 100%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판명된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사태를 겪고나서 접하게 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과학기술도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리한다.
핵분열과 행융합이라는 기술은 원자력이라는 무공해 에너지의 원천이 되지만
그와 동시에 수백만의 인명을 일순에 살상하는 원자폭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배아를 키우고 연구하여 불치병을 가진 이들의 희망이 되기도 하겠지만
거기에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이 더해지게 되면 그 결과는 얼마난 무시무시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아무리 인간 스스로 그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해도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위험부담이 큰 기술이고 결국 우려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지금의 우리가 이 무서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을 것인가?

마리코와 후타바. 2명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그들은 과연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가?
그녀들이 고뇌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든 이유가 그대로 나에게도 생각거리를 만들어 준다.
인간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인가?
게이고는 인간의 조건을 생물학적인 근거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고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과연 그녀들을 동일한 인간의 종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가장 큰 포인트 중에 하나는 바로 모성애 이다.
자진해서 받아들인 상황이었던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던
마리코와 후타바의 어머니들이 보여준 모성애는 커다란 감동을 가져다 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어떤 작품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이고의 사랑이 이 소설에서는 모성애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성애는 나의 어머니를 회상하게 한다. 그래서 눈물이 한 방울 맺히게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레몬'이라는 제목은 원제목인 '분신' 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뒷표지에 나온 요약된 내용은 너무도 잔인하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뒷면에 인쇄해 놓은 출판사의 배짱에 기가 막힌다.
제목을 아무리 잘 지었다 하더라도 이건 정말 아니다.
독자들의 책 읽는 재미를 반감시킨 만행에 어이없는 웃음이 묻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이 소설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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