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야! 세상엔 바보란 없단다
안의정 지음, 고성원 그림 / 밝은세상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바보’가 한명씩은 있었다.
가난해서 못먹어서 바보가 되는 사람도 많았고
열이 40도를 넘나들어도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해 바보가 되기도 했고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바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동네마다 한명씩 바보는 있었다.

바보는 온 동네 어린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었고
’말 안들으면 저 바보처럼 된다’도 말하는 어른들의 으름장의 도구였고
화가 날 때 화풀이를 해도 보복이 돌아오지 않는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었다.
단순한 거짓말로 사기를 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했고
그 가족들에게 사기를 치기도 참 쉬운 범죄의 대상이기도 했다.
세상의 시선은 바보들에게 그런 역할을 강요했고 바보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책은 그런 세상의 강요에 맞선 바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형이기에 세상의 돌팔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어느새 자신도 형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며
온 가족의 짐이 되기도 하고 아픈 상처가 되기도 하는 형.
그런 형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동생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하고싶은 말이 많아도 결국 한마디 하지 못한 바보 형에 대한 작은 기록.

’아우야, 세상에 바보는 없단다. 그런척 하는 사람만 있을 뿐’

형이 결국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한 동생의 이 독백은
바보를 이용하고 놀리고 학대하고 무시하며 자신의 배를 부린 세상 사람들에게
결국 그들이 놀림의 주체가 아니고 스스로를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깨달음을 얻게하는 말이다.
어쩌면 세상의 부당함에 한번도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사라져간 형을
단순한 패자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동생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형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보인 척 했을 뿐이죠’ 라고...

점점 더 각박해지고 사람의 감정이 건조해지는 요즘 같은 세상.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 이제 ’동네 바보’는 특수학교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히고
세상에 더 이상 ’바보’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세상에서
한 평생 바보로서의 역할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다 간 한 바보의 이야기가 
잘난 척 해대며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작은 반성과 큰 감동을 남기고 있다.
짧은 이야기, 얇은 책 속에 어느새 잊고 살았던 어린날의 순수가 담겨 있었다.

조금은 ’바보’처럼 세상을 살아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아닐 것 같다.

P.S : 요즘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를 보면 황정민이 연기하는 '구동백'의 이미지가
         어쩌면 이 시대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오래전의 아날로그 감성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구동백'의 모습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만큼만 바보처럼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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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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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아수라장의 현장에 서다.
2011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말 날벼락처럼 통일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6년.
통일만 되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통일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혼란만이 가중된 아수라장의 현장이다.
상상을 초월한 통일비용을 부담한 남쪽의 사람들은 북쪽의 사람들을 싫어하고
획일하된 사고방식을 교육받으며 자라온 북쪽의 사람들은
따뜻한 남쪽나라라 믿었던 남쪽의 모습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며 무너져간다.
이미 동서로 갈린 나라는 이제 남과 북의 이념으로 또다시 갈려 갈등은 극에 달하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들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탓에
극도로 불안한 치안속에서 사회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
무언가 터질듯한 분위기의 서울 한 복판에 북한군 출신의 조폭 '대동강'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에서 엘리트 군인의 길을 가던 '리강'은 대동강의 중심이 되어있다.
그가 잠시 평양에 다녀온 사이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부하인 '림병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미 적절한 선에서 봉합된 살인사건에서 뭔가 석연치않는 부분을 발견한 그는
살인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거대한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린 시절 우리는 세뇌를 당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러나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서 과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굳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북한이 조용히 있어 주기만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통일에 대한 의식이 변화가 되어있는 이런 상황에서 소설은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바로 2년 뒤인 2011년의 갑작스러운 통일.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아무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느닷없이 이뤄진 소원.
그러나 소설은 통일 이후의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이 그리고 있는 통일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소설을 읽는 동안
과연 지금의 우리는 통일을 원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통일 이후의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그대로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슬픈 자화상이다.
북한의 고위층에 있던 사람들도 결국 비리와 차별과 불공정이 난무하는 남한의 사회에서
스스로 버텨내지 못하고 도태되고 하층으로 전락해 버린다.
흡사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시골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
결국에 가진것을 모두 잃고 원래의 순박함마저 잃어버린 채 타락해 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동안 남한의 사람들은 북한에서 남한과 같은 짓들을 한다.
부동산 투기, 환경 오염, 개발을 위한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자본주의가 가진 모든 병폐들을 그대로 북한으로 옮겨놓는 모습은 오히려 더욱 현실적이다.
과연 지금의 우리사회는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북한의 사람들의 숫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가?
서울 근처에 조그마한 땅덩어리 하나 남겨놓지 않고 온통 부통산 투기를 일으키는 우리 사회가?
전직 대통령으로 부터 작은 동사무소의 직원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우리 사회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그들의 사회를 무시하고 경시하는 우리 사회가?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의 통일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바로 현재의 우리사회를 그리기 위함이 아닐까?
통일 이후의 디스토피아는 결국 우리 사회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문제들의 터짐에 지나지 않음을,
그렇기에 그런 혼란을 막기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함을 경고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국가의 사생활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가가 인격을 가진 인격체라면 그래서 사생활이 존재한다면
그런 숨기고 싶고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사생활은 이처럼 비참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통일 이후 북한군 출신의 폭력단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소설이 그리는 사회는 지금의 우리 사회이다.
우리 모두 알고있지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고 숨기고만 싶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사생활.

매력적인 구성... 떨어지는 디테일
소설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리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리강이 평양에서 돌아오기 전과 후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그 사이에 그를 둘러싼 주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결국에 거대한 음모로 이어지면서 결말로 이끌어가고 있다.
구성방식이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가가 그리는 사회의 디테일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대동강'이라는 하나의 폴력단에 한정된 묘사가 전체 사회를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있다.
등장인물들의 사정속에서 나타나는 모습 또한 그 범위가 한정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일회성 화제로 그치고 마는 정도의 책은 아닌 듯 하다.
소설 자체의 이야기 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강추는 아니더라도 한번 쯤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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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 야구의 추억, 두 번째 이야기
김은식 지음 / 산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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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말 그대로 야구의 추억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야구의 추억'이라는 에세이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제목이 그대로 이 책의 내용이 된다. 말 그대로 야구의 추억.
정확히 말해 한국 프로야구의 추억.
더 정확히 말하면 80,90 년대 한국 프로야구의 추억이다.
그 시대에 활약한 프로야구 선수들...
선동렬, 이종범, 이승엽 등등 내노라 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아닌
이제는 그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는 잊혀져 가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준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들...

20년 롯데광팬.... 그 시대 기억을 다시 더듬다.
난 20년 롯데광팬이다. 
비록 원정경기에 목숨을 걸고 다닐 정도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롯데 자이언츠라는 구단에 대한 나 자신의 애증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20년 롯데 팬으로... 또한 20년 한국프로야구의 팬으로서 이 책은 너무나도 고마운 책이다.
내가 야구에 미쳐있던 시기에.... 정확히 말해 롯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기에
롯데의, 또는 다른 7개 구단의 선수였던 작은 영웅들을
한 가락 굵은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작은 기억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나의 영웅들을
이 책은 지금의 시기에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있는 영웅으로 끌어다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남긴 작은 기억들, 그들의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이 되었던 경기들.
그 경기들 속에서 나의 젊은 날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로새겨 놓은 빛나는 기억들까지.
야구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 이름들 조차 알 수 없겠지만 나에겐 영웅인 그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는 3일정도의 시간동안 난 그 시절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소리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한 책이다.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 그 안타까운 이름.
책의 부재가 되어있는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는 롯데의 임수혁 선수를 대변하는 말이다.
2000년 4월 18일. 
잠실운동장에서 벌어진 LG와의 경기에서 2루주자로 나가있던 그는 정말로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그 최악의 순간에 현장엔 의사 하나 없었고 단 5분의 산소공급 부족으로 인해
그는 아직까지 9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매 경기 3만을 가득 채우고 한시즌 130만명을 불러들이는 롯데의 가장 아픈 손가락.
전국에 퍼져있어 그 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모든 롯데팬들의 가슴 한구석에 패인 깊은 상처.
그 날 현장에서 그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던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그의 이야기가 가슴을 후벼판다.
의약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다시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다해도...
롯데팬이라면 누구나 그 2루주자의 홈인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일어나라 임수혁 !!!

작은 영웅들에게서 얻는 희망
98년 IMF 이후 최악의 경제난으로 온통 힘들다는 소리로 둘러싸여 있는 지금의 우리사회.
서민들의 고통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뚜렷한 족적으로 기억되는 선수가 아닌 작은 물결 하나로 흘러갔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힘들고 지친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전해준다.
그들이 경험한 성공, 좌절, 역경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났던 그들의 용기.
그 용기와 극복의 기록속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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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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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이름.... 해태 타이거즈

나는 야구광이다. 정확이 말하면 롯데에 미쳐사는 수많은 롯데광팬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 나에게 해태타이거즈는 애증이 교차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프로야구를 접했던 그 시절에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으로 해태는 롯데의 적이었다.
사직구장에서 해태가 롯데를 이기던 날엔 사직수장 쓰레기통이 불타던 시절이었고
롯데 팬이었던 나에게 해태는 그렇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그 팀은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동렬을 필두로 김성한, 김봉연, 이종범.... 한국의 자랑이었던 그들이 있던 팀이었기에
해태는 나에게 또한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던 팀이다.
그런 애증의 이름인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을 이야기하는 책. 읽을 수 밖에 없다.


굴곡많은 현대사... 언제나 피해자였던 호남

굳이 80년 광주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호남은 굴곡많은 현대사의 피해자였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 호남에 대한 차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어릴 때 전라도에 있던 외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본가였던 경상도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불편했던 전라도의 기억.
박정희가 살해된 후 그 차별이 없어질거라  했던 작은 기대는
80년 광주의 비극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히고 차별에 왜곡이 더해진 상황은 더 비참해졌다.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광주에서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그시대 우리 사회의 인식이었기에 '전라도놈은 안된다'는 인식은 일반화 되었다.
역사의 피해자이면서도 억울함을 주장할 수 없었던 그들의 처지에서
유일한 희망이 되었던 것은 해태 타이거즈라는 전설적 강팀과 김대중이라는 거물의 존재였다.


약한자들의 영웅이었던 그들... 해태 타이거즈

해태타이거즈가 한국 프로야구사에 남긴 족적은 가히 전설이다.
무려 아홉번을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서 아홉번 모두 우승을 했던 전설적인 팀.
객관적인 전력이 아무리 딸린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우승을 만들어냈던 불가사의한 팀.
'브라보콘 팔아서 운영한다'고 했던 열악한 구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부자구단들의 슈퍼스타들을 무너뜨리고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음을 몸소 증명했던 팀.
선동렬, 김성한, 김봉연, 이종범, 조계현,...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에게 했던 영웅들이 뛰던 팀.
그리고 그들의 전설 속에는 현대사의 가장 약자였던 광주와 호남의 한이 서려있다.
야구장의 열기와 전혀 맞지않는 '목포의 눈물'이 응원가로 흐를 수 있는 유일한 팀이 바로 해태 타이거즈이다.


호남의 기대와 좌절의 상징... 김대중

박정희 시대부터 그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김대중.
납치와 감금, 고문과 사형선고 등 수많은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
그는 전라도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동시에 매번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좌절의 이름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마다 전라도는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그를 응원했고
매번 그들은 영남의 무서운 쪽수에 밀리며 좌절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말 그대로 '목포의 눈물'이다.
결국 97년 대선에서 무려 4수만에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은 나는 알 수 없다.
그런 그의 좌절의 기록에서 상처받고 지친 전라도 사람들을 달래 준 것은 언제나 해태타이거즈였다.
현대사의 피해자이기만 했던 전라도를 닮은 타이거즈의 호랑이들은
막강한 지원을 받은 수많은 스타들이 즐비했던 막강한 팀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언제나 우승했다.
그들의 선전과 우승에 전라도는 환호했고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야구의 사회학... 그 오묘한 접점을 집어내다.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 이다.
사람의 삶과 가장 닮아있는 스포츠가 야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맞아도 정면으로 잡히는가 하면 빗맞은 것이 안타가 되는 것이 야구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홈런 한방으로 역전을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이다.
사람이 사는 모습과 그렇게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18명이 벌이는 승부는 그대로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야구와 사회를 연결하는 시도를 한 책이 없었다.
이 책은 야구와 사회, 그리고 사회가 흘러가는 역사를 이어주는 접점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라는 야구팀과 광주와 전라도라는 사회, 그리고 김대중이라는 역사를 연결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 속에 수많은 스타들과 명승부들은 고스란히 나의 추억을 일깨워 주었고
광주와 전라도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는 '목포의 눈물'로 대변하는 그들의 한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치사의 이야기 속에서는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깨우쳐 주었다.


굳이 야구팬이 아니라도 좋다.
굳이 전라도 사람이 아니라도 좋다.
세상에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나 자신이 사회의 약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태타이거즈가 그려놓은 전설의 기록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목적도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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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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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범인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유명한 작가인 히다카가 어느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작가의 아내와 그의 절친한 친구라는 또 다른 작가 노노구치.
노노구치는 자신의 일생에 다시 해 볼 수 없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가가형사(붉은 손가락에 나왔던 그 형사)는 수사에 들어가지만
목격자이자 용의자가 되는 부인과 노노구치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노노구치와 같은 학교에 있던 경력이 있는 가가형사는 노노구치의 수기를 읽게되고
그 수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논리적 추론을 통해 노노구치의 알리바이를 깨뜨리게 된다.
결국 범인은 노노구치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고 경찰에 체포되게 되지만 끝까지 동기를 밝히지 않는다.
친한 친구였다고 하는 노노구치는 왜 히다카를 살해하게 되었는가?
우발적 범행이라고 말하는 그의 진술에 의문을 가진 가가형사는 수사를 계속하게 되고
서서히 그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게이고 특유의 형식... 그리고 역시나 멋진 반전.
범인을 미리 알려주는 게이고 특유의 형식이 이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방황하는 칼날>, <백야행> 등의 작품들에서도 그랬다.
범인이 심어놓은 장치들을 교묘히 피해가며 결국엔 범인을 찾아내는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반대로
처음부터 아예 범인을 알려주고 나서 그 사건의 과정을 파헤치는 형식의 추리소설.
게이고가 가장 즐겨쓰는 방식이고 그의 재능이 가장 멋지게 발휘되는 방식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게이고 작품들의 특징은 끝에 가서야 드러나는 멋진 반전에 있다.
400 페이지가 되었던 500 페이지가 되었던 결국엔 마지막 단 몇 페이지에서 결론이 뒤집히는 반전들.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비밀> 등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그의 반전 솜씨는
언제나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반전을 보여주어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치는 느낌이다.
이 소설에세 드러나는 반전의 묘미도 어떤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물론 가가형사의 입장에서 노노구치를 의심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의심에 대한 타당한 이유와 그 속에 드러나는 진실이 보여주는 반전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기게 부족함이 없다.

작가가 써내려가는 작가의 세계.
사건의 피해자가 유명 작가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결국엔 작가들의 세계가 그려지게 된다.
유명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금 보여주고 있는 작가들의 세계는 그리 좋지만은 않다.
등단 자체가 힘들 수 밖에 없는 치열한 경쟁,
그 과정에서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현실,
유명 작가가 되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지독한 슬럼프와 유혹,
사실이든 아니든 그 존재가 있다고 생각되는 고스트라이터의 존재까지....
화려하고 자유로운듯 보이는 작가들의 세계에도 그들만의 고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소설.... 여러개의 이야기.
소설은 히다카를 살해한 노노구치의 살해동기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그 속에 여러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유명작가인 히다카의 소설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소설의 줄거리들.
히다카와 노노구치의 과거속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그들의 이야기들.
노노구치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내는 허구의 이야기들까지.
하나의 추리소설 속에서 게이고는 참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권의 책을 읽었으나 여러권의 책을 읽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런 작은 이야기들과 소소한 등장인물들이 하나로 모여져서
결국은 마지막의 반전을 위한 재료로 쓰이는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노노구치와 가가의 대결... 치열한 두뇌싸움.
자신이 체포될 것 까지 각오하고 만들어 놓은 노노구치의 치밀한 트릭들.
하나의 트릭을 벗기면 또다른 트릭이 나타나고 결국에 그 모든 과정까지 뒤엎는 반전들.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하나도 만들어 내기 어렵다고 하는 트릭들을
여러개나 만들어내고 그 트릭들에 조금의 구멍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게이고의 능력은 대단하다.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형사의 수사기록을 번갈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건.
트릭과 함정들로 가득차 있는 노노구치의 수기와 그 수기에서 틈을 발견해 내는 가가의 수사기록.
두 사람의 시각을 왔다갔다 하면서 소설을 읽다보면 이게 과연 한 사람의 작품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한 사람의 작가가 두 사람의 시각을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인지...
노노구치와 가가형사가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은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그 대결의 결과 밝혀지는 진실을 접하고 나면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한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왠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를 품는 경우가 있다.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보기 싫다', '그냥 밉다'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런 악의가 가져올 수 없는 무서운 결과에 대한 경고.
제목에 '악의'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가볍지 않은 것이다.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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