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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통일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아수라장의 현장에 서다.
2011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말 날벼락처럼 통일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6년.
통일만 되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통일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혼란만이 가중된 아수라장의 현장이다.
상상을 초월한 통일비용을 부담한 남쪽의 사람들은 북쪽의 사람들을 싫어하고
획일하된 사고방식을 교육받으며 자라온 북쪽의 사람들은
따뜻한 남쪽나라라 믿었던 남쪽의 모습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며 무너져간다.
이미 동서로 갈린 나라는 이제 남과 북의 이념으로 또다시 갈려 갈등은 극에 달하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들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탓에
극도로 불안한 치안속에서 사회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
무언가 터질듯한 분위기의 서울 한 복판에 북한군 출신의 조폭 '대동강'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에서 엘리트 군인의 길을 가던 '리강'은 대동강의 중심이 되어있다.
그가 잠시 평양에 다녀온 사이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부하인 '림병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미 적절한 선에서 봉합된 살인사건에서 뭔가 석연치않는 부분을 발견한 그는
살인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거대한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린 시절 우리는 세뇌를 당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러나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서 과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굳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북한이 조용히 있어 주기만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통일에 대한 의식이 변화가 되어있는 이런 상황에서 소설은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바로 2년 뒤인 2011년의 갑작스러운 통일.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아무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느닷없이 이뤄진 소원.
그러나 소설은 통일 이후의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이 그리고 있는 통일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소설을 읽는 동안
과연 지금의 우리는 통일을 원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통일 이후의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그대로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슬픈 자화상이다.
북한의 고위층에 있던 사람들도 결국 비리와 차별과 불공정이 난무하는 남한의 사회에서
스스로 버텨내지 못하고 도태되고 하층으로 전락해 버린다.
흡사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시골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
결국에 가진것을 모두 잃고 원래의 순박함마저 잃어버린 채 타락해 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동안 남한의 사람들은 북한에서 남한과 같은 짓들을 한다.
부동산 투기, 환경 오염, 개발을 위한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자본주의가 가진 모든 병폐들을 그대로 북한으로 옮겨놓는 모습은 오히려 더욱 현실적이다.
과연 지금의 우리사회는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북한의 사람들의 숫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가?
서울 근처에 조그마한 땅덩어리 하나 남겨놓지 않고 온통 부통산 투기를 일으키는 우리 사회가?
전직 대통령으로 부터 작은 동사무소의 직원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우리 사회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그들의 사회를 무시하고 경시하는 우리 사회가?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의 통일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바로 현재의 우리사회를 그리기 위함이 아닐까?
통일 이후의 디스토피아는 결국 우리 사회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문제들의 터짐에 지나지 않음을,
그렇기에 그런 혼란을 막기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함을 경고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국가의 사생활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가가 인격을 가진 인격체라면 그래서 사생활이 존재한다면
그런 숨기고 싶고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사생활은 이처럼 비참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통일 이후 북한군 출신의 폭력단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소설이 그리는 사회는 지금의 우리 사회이다.
우리 모두 알고있지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고 숨기고만 싶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사생활.
매력적인 구성... 떨어지는 디테일
소설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리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리강이 평양에서 돌아오기 전과 후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그 사이에 그를 둘러싼 주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결국에 거대한 음모로 이어지면서 결말로 이끌어가고 있다.
구성방식이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가가 그리는 사회의 디테일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대동강'이라는 하나의 폴력단에 한정된 묘사가 전체 사회를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있다.
등장인물들의 사정속에서 나타나는 모습 또한 그 범위가 한정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일회성 화제로 그치고 마는 정도의 책은 아닌 듯 하다.
소설 자체의 이야기 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강추는 아니더라도 한번 쯤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