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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09년 4월
평점 :
애증의 이름.... 해태 타이거즈
나는 야구광이다. 정확이 말하면 롯데에 미쳐사는 수많은 롯데광팬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 나에게 해태타이거즈는 애증이 교차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프로야구를 접했던 그 시절에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으로 해태는 롯데의 적이었다.
사직구장에서 해태가 롯데를 이기던 날엔 사직수장 쓰레기통이 불타던 시절이었고
롯데 팬이었던 나에게 해태는 그렇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그 팀은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동렬을 필두로 김성한, 김봉연, 이종범.... 한국의 자랑이었던 그들이 있던 팀이었기에
해태는 나에게 또한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던 팀이다.
그런 애증의 이름인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을 이야기하는 책. 읽을 수 밖에 없다.
굴곡많은 현대사... 언제나 피해자였던 호남
굳이 80년 광주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호남은 굴곡많은 현대사의 피해자였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 호남에 대한 차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어릴 때 전라도에 있던 외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본가였던 경상도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불편했던 전라도의 기억.
박정희가 살해된 후 그 차별이 없어질거라 했던 작은 기대는
80년 광주의 비극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히고 차별에 왜곡이 더해진 상황은 더 비참해졌다.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광주에서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그시대 우리 사회의 인식이었기에 '전라도놈은 안된다'는 인식은 일반화 되었다.
역사의 피해자이면서도 억울함을 주장할 수 없었던 그들의 처지에서
유일한 희망이 되었던 것은 해태 타이거즈라는 전설적 강팀과 김대중이라는 거물의 존재였다.
약한자들의 영웅이었던 그들... 해태 타이거즈
해태타이거즈가 한국 프로야구사에 남긴 족적은 가히 전설이다.
무려 아홉번을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서 아홉번 모두 우승을 했던 전설적인 팀.
객관적인 전력이 아무리 딸린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우승을 만들어냈던 불가사의한 팀.
'브라보콘 팔아서 운영한다'고 했던 열악한 구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부자구단들의 슈퍼스타들을 무너뜨리고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음을 몸소 증명했던 팀.
선동렬, 김성한, 김봉연, 이종범, 조계현,...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에게 했던 영웅들이 뛰던 팀.
그리고 그들의 전설 속에는 현대사의 가장 약자였던 광주와 호남의 한이 서려있다.
야구장의 열기와 전혀 맞지않는 '목포의 눈물'이 응원가로 흐를 수 있는 유일한 팀이 바로 해태 타이거즈이다.
호남의 기대와 좌절의 상징... 김대중
박정희 시대부터 그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김대중.
납치와 감금, 고문과 사형선고 등 수많은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
그는 전라도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동시에 매번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좌절의 이름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마다 전라도는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그를 응원했고
매번 그들은 영남의 무서운 쪽수에 밀리며 좌절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말 그대로 '목포의 눈물'이다.
결국 97년 대선에서 무려 4수만에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은 나는 알 수 없다.
그런 그의 좌절의 기록에서 상처받고 지친 전라도 사람들을 달래 준 것은 언제나 해태타이거즈였다.
현대사의 피해자이기만 했던 전라도를 닮은 타이거즈의 호랑이들은
막강한 지원을 받은 수많은 스타들이 즐비했던 막강한 팀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언제나 우승했다.
그들의 선전과 우승에 전라도는 환호했고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야구의 사회학... 그 오묘한 접점을 집어내다.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 이다.
사람의 삶과 가장 닮아있는 스포츠가 야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맞아도 정면으로 잡히는가 하면 빗맞은 것이 안타가 되는 것이 야구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홈런 한방으로 역전을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이다.
사람이 사는 모습과 그렇게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18명이 벌이는 승부는 그대로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야구와 사회를 연결하는 시도를 한 책이 없었다.
이 책은 야구와 사회, 그리고 사회가 흘러가는 역사를 이어주는 접점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라는 야구팀과 광주와 전라도라는 사회, 그리고 김대중이라는 역사를 연결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 속에 수많은 스타들과 명승부들은 고스란히 나의 추억을 일깨워 주었고
광주와 전라도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는 '목포의 눈물'로 대변하는 그들의 한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치사의 이야기 속에서는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깨우쳐 주었다.
굳이 야구팬이 아니라도 좋다.
굳이 전라도 사람이 아니라도 좋다.
세상에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나 자신이 사회의 약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태타이거즈가 그려놓은 전설의 기록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목적도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