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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야! 세상엔 바보란 없단다
안의정 지음, 고성원 그림 / 밝은세상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바보’가 한명씩은 있었다.
가난해서 못먹어서 바보가 되는 사람도 많았고
열이 40도를 넘나들어도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해 바보가 되기도 했고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바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동네마다 한명씩 바보는 있었다.
바보는 온 동네 어린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었고
’말 안들으면 저 바보처럼 된다’도 말하는 어른들의 으름장의 도구였고
화가 날 때 화풀이를 해도 보복이 돌아오지 않는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었다.
단순한 거짓말로 사기를 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했고
그 가족들에게 사기를 치기도 참 쉬운 범죄의 대상이기도 했다.
세상의 시선은 바보들에게 그런 역할을 강요했고 바보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책은 그런 세상의 강요에 맞선 바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형이기에 세상의 돌팔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어느새 자신도 형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며
온 가족의 짐이 되기도 하고 아픈 상처가 되기도 하는 형.
그런 형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동생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하고싶은 말이 많아도 결국 한마디 하지 못한 바보 형에 대한 작은 기록.
’아우야, 세상에 바보는 없단다. 그런척 하는 사람만 있을 뿐’
형이 결국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한 동생의 이 독백은
바보를 이용하고 놀리고 학대하고 무시하며 자신의 배를 부린 세상 사람들에게
결국 그들이 놀림의 주체가 아니고 스스로를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깨달음을 얻게하는 말이다.
어쩌면 세상의 부당함에 한번도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사라져간 형을
단순한 패자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동생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형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보인 척 했을 뿐이죠’ 라고...
점점 더 각박해지고 사람의 감정이 건조해지는 요즘 같은 세상.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 이제 ’동네 바보’는 특수학교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히고
세상에 더 이상 ’바보’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세상에서
한 평생 바보로서의 역할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다 간 한 바보의 이야기가
잘난 척 해대며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작은 반성과 큰 감동을 남기고 있다.
짧은 이야기, 얇은 책 속에 어느새 잊고 살았던 어린날의 순수가 담겨 있었다.
조금은 ’바보’처럼 세상을 살아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아닐 것 같다.
P.S : 요즘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를 보면 황정민이 연기하는 '구동백'의 이미지가
어쩌면 이 시대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오래전의 아날로그 감성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구동백'의 모습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만큼만 바보처럼 살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