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의 심장 - 완전범죄 살인릴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임을 자청하고 책장의 두칸을 그의 작품으로 채워넣은 광팬이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은 읽지 못한 작품이 많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작품 중에 하나가 바로 [브루투스의 심장]이다. 1989년에 쓰여진 그의 초기 작품인 이 소설은 2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오히려 그 시대 보다는 지금이 더 소설속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게이고의 사회에 대한 시각이 정확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서형 추리소설(범인의 트릭을 미리 보여주고 경찰이나 주변인물들의 추리과정을 쫓아가는 추리소설)의 걸작이라는 '미미여사'의 극찬이 과장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잘 짜여진 트릭과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작은 단서들의 조합이 역시 게이고라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교적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속에 그의 다른 작품들인 [용의자 X의 헌신], [방황하는 칼날] 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꽤나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다.

모든 작업이 로봇으로 자동화되고 로봇의 관리자 만으로 돌아가는 최첨단의 공장에서 작업자가 로봇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 사건이 결국 마지막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만 마지막이 되기 전 까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사건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출세에 대한 욕망으로 뭉쳐있는 다쿠야는 전무의 딸과의 결혼으로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의 내연녀였던 야스코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이를 낳겠다는 협박으로 그의 출세에 커다란 장벽으로 가로막고 서게 된다. 그녀의 문제로 고민하던 그에게 똑같은 입장에 처한 나오키가 그녀를 죽이자는 제안을 걸어온다. 이른바 '살인 릴레이'. 그녀를 죽이는 것은 나오키가 맡고 다쿠야와 하시모토는 시체의 운반을 맡는다는 계획. 세 사람 각각의 알리바이는 완벽한 상황이라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트릭. 그러나 시체를 운반하여 하시모토에게 전달하던 다쿠야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고 나오키임을 알고 당황하게 된다. 도대체 왜? 나오키가 죽었단 말인가? 그럼 살인자는 누구인가? 혼란에 빠진 다쿠야 앞에 하시모토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사건의 실체는 어떤 것인가?

주인공인 다쿠야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욕망으로 똘똘뭉친 출세형 인간이다.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차라리 로봇에게 애정을 느끼는 인간.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치 않는 인간. 그런 그에게 야스코는 위험한 여인이었다. 그녀 또한 어린 시절 사건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상실하고 자신의 자식마저 자신의 생활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만큼 냉정한 팜므파탈이었다. 그녀는 또한 나오키라는 또 다른 성격 장애를 가진 인물과도 관계를 가진다. 어린 시절 아비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상처를 지닌 나오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삐뚤어진 성격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인간이 없이 로봇만이 존재하는 공장에서 장시간 일하면서 인간의 냄새를 잃어버린 인물까지 끼어들면서 결국 인간의 따뜻한 심장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죽이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결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을 게이고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는 담담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그들의 인생에 동정도 보내지 않고 어떠한 비판적인 시각도 보이지 않는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 마치 다쿠야의 로봇 '브루투스'가 욕망에 허우적대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서술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방황하는 칼날]에서 미성년자 보호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소 감정적인 문체를 보여주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로봇 '브루투스'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다쿠야도, 야스코도, 나오키도 각작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심장이 없었다는 느낌이다. 그들의 가진 사연들 속의 사건들로 인해 그들은 아무런 외상도 입지 않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의 심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뜨거운 심장'에 있다. 그것은 사랑이나 동정, 그 밖에 희노애락을 느끼는 감정 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윤리 같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규칙도 포함하는 것이다. 심장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도덕성과 윤리는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한편으로는 불쌍하게도 느껴지지만 동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마치 '사이코패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면서 로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욕망이라는 전지를 달고 끝없이 파멸로 향해 걸어가고 있는 로봇. 

소설에서 벌어지는 5건의 살인사건이 따로 따로 떼어내어 추리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치밀하다. 게이고의 천재성은 언제나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반전을 조금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초기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전의 힘이 조금은 약한 느낌이다. 또한 소설에서 유일하게 동정심을 가지게 만드는 하시모토가 살인릴레이에 가담하는 동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중에 그가 후회하는 장면을 보면 더 그런 느낌이다.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도는 크다. 또한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상의 몰입도를 가지고 있다. 복잡한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편하게 읽기에 좋은 추리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흔히들 아무리 큰 상처라도 아물지 않는 상처란 없다고들 한다.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다 벗어나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행복해 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어떤 상처라도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감히 말하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절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란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외상은 모두 치유될 수 있지만 가슴속에 남은 상처란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폭력에 의한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폭력도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폭력의 피해자의 의지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말 그대로 안식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선과 악의 판단도 없이 느닷없이 들어닥친 자연의 폭력, 아버지에 의해 가해지는 자식에 대한 무자비한 물리적 폭력, 빛나간 욕망에 의해 강간의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 그리고 살인이라는 이름의 폭력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 뿐만 아니라 학대받는 아이에 대한 방관과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폭력까지... 어린 시절 수많은 폭력에 본의 아니게 노출이 되어버린 3명의 아이들은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서로가 다른 길로 살아나가지만 3명만의 비밀로 봉인된 또 다른 폭력과 함께 간직한 그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치유할 방법이 폭력밖에 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서로를 향해 또 다른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선과 악의 구분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어떤 안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폭력의 피해자인 그들은 폭력의 가해자가 처벌받기를 원하지만 세상이 만든 어떤 법으로도 그들은 처벌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교활해진 폭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폭력뿐. 아들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과거를 묻고 싶은 남자는 과거를 가지고 협박하는 과거의 동생을 죽이려 한다. 우리가 원하는 착한 결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훨씬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폭력은 폭력으로만 제어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진실이다. 그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진실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볼 때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힘있고 간결하면서도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문체까지... 작가가 가진 매력은 단 한편의 작품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꽤나 매력적인 작가를 만났다는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민규'라는 작가.... 이제는 나의 완소작가가 되다.

처음 접한 박민규라는 작가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인생의 패자들의 모습을 자조적이고 허탈한 유머로 묘사하며 승자만의 세계에서 자리를 잃은 패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늘어놓는 소위 'Looser 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문체와 그 속에서 담겨져 있던 특유의 유머는 박민규라는 작가를 재미있는 작가로 나의 뇌리에 박히게 만들었다. 그 후 [지구영웅전설]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나에게 재미있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작가이기에 그가 썼다는 연애소설에 대해서도 나는 어떤 유머와 재미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소설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무참히 깨 버리면서 박민규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핑퐁]에서 세상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서의 서툼 때문에 조금은 어지러웠던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상과 인간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유머와 재미는 줄어들었지만 특유의 파괴적인 문체는 여전하며 유머와 재미의 빈자리를 채워넣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수없이 접혀있는 책의 페이지들 만큼이나 나에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은 것이었다. 이제는 그저 재미있는 시각을 가진 작가가 아닌 나의 취향에 맞는 나만의 완소작가로 새롭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사랑이야기.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소위 '못난이'가 여자 주인공이었던 소설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여주인공은 예쁘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못난이'다. 그것도 '신문으로 얼굴을 덮어야만 강간할 수 있는' 수준의 그런 못난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언제나 움츠려들어야만 했던 여자. 이제는 세상의 모든 차별에 두손을 들어버리고 체념한 채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여자. 그러나 남자 주인공은 정상적인(?) 인물이다. 오히려 다른 이들의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소위 '꽃미남'에 속하는 남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 커플의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남자의 관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와 자신의 감정이 여자의 상처를 아프게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두사람의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자청한 또 한 사람의 외로운 영혼이 펼치는 청춘의 아픈 사랑이야기. 아련함 기억속에 남아있는 풋사랑의 감정, 그러나 결코 잊혀지는 추억으로 남을 수는 없는 젊은날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을 통해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부끄러워 하지 마라... 부러워 하지 마라....

전체의 10%도 안되는 갑부들을 부러워하고 그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다 그들을 따라가는 대부분의 남자들. 전체의 1%도 안되는 미인들을 부러워하고 그녀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다 그녀들을 따라가는 대부분의 여자들. 그렇게 허걱대며 따라가면 어느새 그것이 평균이 되어버리고 또 다시 전체의 1%를, 10%를 따라가는 사람들. 이런 현상의 반복은 결국 절대 소수가 절대 다수를 지배하는 불합리한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미인이 싫은 것이 아니라 미인에 대한 관대함이 싫어지고, 부자가 싫은 것이 아니라 부자에 대한 관대함이 싫어지게 만드는 이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런 세상이 싫다면 그 해답은 분명한 한가지로 정리된다. 부끄러워 하지 마라...그리고 부러워 하지 마라...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타인을 부러워 하지 마라. 자신의 애인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타인의 애인을 부러워 하지 마라. 자신에게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하라. 

Director's Cut....

난 이미 director's cut을 읽었기에 어떤 판단도 하지 못하겠다. 다만 어린시절 동화처럼 'happily ever after'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director's cut을 읽지 말기를 권한다. 그러나 director's cut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와 그녀의 사랑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보다 많은 눈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director's cut도 'happily ever after'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박민규라는 작가가 추리소설 작가로도 충분한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였다면 그것이 나만의 오버만은 아닐 것이다. 

흔히들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결혼생활을 아무리 오래했다 해도 첫사랑이 가슴에 새겨놓은 각인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소년에서 남자로 넘어가는 시절의 가장 큰 상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기억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다. 가끔... 이런 소설을 통해서라도 추억으로 남겨두었던 기억을 더듬는 것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 저녁으로 서늘함을 몰고오는 바람이 가을을 알리는 계절입니다.
유난히도 어지럽고 힘들었던 세상사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가네요.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왠지 우울해지는 시간입니다.
이럴 때 실컷 울고나면 스트레스마저 풀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가을을 맞아 실컷 울어버릴 수 있는 책들을 몇 권 추천합니다.

1. 고향 사진관

아버지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알려진 김정현 작가님의 [고향사진관] 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소설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발병으로 가족을 짊어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특출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꿈조차 없을 수는 없었던 한 청춘이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됩니다.
달아날 수도 회피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묵묵히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와 함께 비록 초라하기는 했지만 오롯이 간직하고 있던 그의 꿈도 사라지게 되고
누나와 여동생, 어머니의 생계와 아버지의 병수발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게 됩니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고목처럼 말라가는 그의 청춘이 독자들의 눈가를 촉촉히 적시고
그저 원망스러운 짐이 될 수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의 효심이 읽는 이의 기억에 봉인된 나의 아버지를 꺼내게 만듭니다.
그나마 그런 그를 묵묵히 지켜내는 아내와 자식들의 사랑에 그의 삶이 그리 불행하지만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읽는 내내 바보스러울 정도로 안타까운 그의 삶에 가슴이 저며오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미련한 그의 모습에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면서도 눈가는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에 저항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잊고 살았던, 아니 잊은 척 회피하고 달아났던 나의 부모님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소설입니다.


2. 바보

이미 연극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만화 책 입니다.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많은 이들의 무시를 받게되는 현실에서 강풀의 만화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강풀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순정만화'는 밝은 이야기, 이쁜 이야기였지만 '바보'는 사람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연타가스 중독(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 당시에는 수많은 이들이 죽었었죠)으로
'바보'가 되어버린 승룡이가 가슴 속 숨겨준 첫사랑 지호에게 보여주는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와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 준 사람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베풀었던 희생의 커다란 의미가 독자들을 울게 만들었죠.
특히 승룡이가 쓰러지며 남긴 웃음은 세상 무엇보다 행복한 웃음이면서 동시에 가장 슬픈 웃음이기도 합니다.
나온 지 꽤나 오래된 책이고 이미 대여섯번 반복해서 읽은 책이지만 언제나 손이 가는 책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뭔가 세상에 대해 소리치고 싶은 답답함을 느낄 때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해주는 고마운 책 입니다.
바보 승룡이가 전하는 사랑과 희생으로 이 가을을 채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


3. 아우야, 세상에 바보란 없단다.

세상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언제나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이들은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양심냉장고의 첫 주인공이었던 장애인 부부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속에 깊이 박혀있죠.
그래서 바보들의 이야기가 더 큰 감동을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도 바보가 나옵니다. 어린 시절 피난을 가다가 얼음물에 빠져서 바보가 된 형이죠.
동생의 입장에서 바보같은 형이 창피하고 불편합니다. 가족들에게도 짐이 될 뿐이죠.
그런 형이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게 되는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형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입고 나서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 가족의 이야기 입니다.
결국 형은 바보인 채로 세상을 떠나지만 그를 보낸 가족에게는 그는 한번도 바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바보들은 구경하기도 힘들어진 세상에 바보 형이 전하는 메시지는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세상에 바보란 없습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바보로 만들 뿐... 


4. 능소화

400년의 세월을 이기고 발견된 '원이엄마'의 편지. 
TV 뉴스의 토픽거리에 지나지 않는 이 짧은 사실에 가슴 아프고 이쁜 사랑을 불어넣어 살아 숨쉬게 만든 소설입니다.
흔히들 가문간의 정혼으로 이루어지던 조선시대의 혼사에서 당사자들의 사랑은 상상이 힘듭니다.
그러나 400년이라는 세월을 견디고 발견된 '원이엄마'의 편지에는 남편을 향한 애절함이 묻어납니다.
하늘의 꽃.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꽃이라는 소화꽃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응태와 여늬의 이쁜 사랑.
그리고 끝끝내 그 사랑을 시기하여 응태를 데려가 버린 원망스러운 하늘의 변덕.
그렇듯 버려지듯 남겨진 후 잠시도 그를 떠나 보내지 못한 여늬의 애절한 망부가.
정해진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인간의 존재는 이렇듯 허무한 것인지?
그러나 그렇게 나약하고 힘이 없는 인간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이야기는 하늘조차 어쩌지 못한 채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여늬의 편지처럼, 400년 전 여늬의 약속처럼 그녀의 무덤가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소화꽃처럼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쁘고 슬픈 사랑은 읽는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책을 많이 읽으려 하고 소설을 특히나 좋아하지만
아직은 어린아이 같은 감성이 많아서 추리소설이나 판타지에 빠집니다.
그래도 간간히 만나는 가슴시린 작품들이 있어서 감정이 메마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각박해지는 세상을 핑계로 점점 더 메말라가는 가슴에 이 책들로 감동을 선물하세요.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능소화-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5월 7일 (수)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09월 14일에 저장

아우야! 세상엔 바보란 없단다
안의정 지음, 고성원 그림 / 밝은세상 / 2002년 4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09년 09월 14일에 저장
절판

바보 전2권 세트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2009년 09월 14일에 저장
구판절판
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09월 14일에 저장
절판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V 뉴스에서 400년의 세월을 이긴 '원이엄마의 편지'를 접했을 때, 가문간의 형식적인 결혼을 했던 그 시절에 그토록 애절한 사랑을 가질 수 있었던 부부의 사연이 참으로 궁금했었다. TV 뉴스로 접한, 신문의 기사로 접한 내용은 너무도 짧았기에 그 편지 뒤에 숨겨져 있는 두 사람의 사랑과 그들의 삶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원이엄마의 편지'를 기초로 한 이 소설의 출간 소식에 호기심이 동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충분히 채워 줄 만한 이야기에 만족감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이기에 그 진실은 알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호기심은 충분히 채워 주었다.

소화꽃은 하늘의 꽃이라고 한다. 모든 꽃들이 떨어지고 없는 한 여름에 홀로 피어나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를 한껏 뽐내다가 시들지 않는 꽃 그대로 툭! 떨어져 버리는 꽃. 이 세상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 꽃. 그렇기에 조선조 양반들이 그들의 집에 한 그루씩은 꼭 심어두고 절개를 기렸다는 꽃. 그러나 그 향기를 맡으면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그 꽃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멀고 만다는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꽃.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히말라야의 고봉들 처럼 고고한 자태를 가진 꽃. 그 소화꽃을 닮은 여늬를 사랑한 응태.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 운명을 가진 그녀를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감싸 안았던 응태의 사랑. 그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그런 자신을 안아 준 응태의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했던 여늬의 사랑. 두 사람의 사이를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하늘밖에 없었음을, 오로지 운명만이 갈라놓을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운명이 아니면, 하늘의 뜻이 아니면 감히 누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서로의 운명을 탓하며 그들의 운명에 힘없이 꺾였다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식의 가혹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던 요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비극적 운명. 그러나 응태는 결국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이기려 하였다.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운명을 이기려 했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저주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 온 응태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이유로 사랑을 거부하고 다가오는 사랑을 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늬와 응태의 모습을 보면 그 수많은 이유들이 얼마나 초라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는가? 사랑을 두려워 하지 마라. 다가오는 사랑을 멀리하지 마라. 그렇게 당당하게 운명에 맞서 치열하게 사랑하라. 400년이 지난 그녀의 편지가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400년이 지난 단 한편의 편지로 이렇듯 아프고 이쁜 사랑을 만들어 낸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감탄한다. 작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뉴스의 짧은 토픽으로 끝나고 말았을 '원이엄마의 편지'는 눈물이 나게 슬프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이쁜 사랑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미이라의 형태로 발견된 응태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이유를 과학적인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신격화 되고 있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응태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이유가 그를 향한 여늬의 애절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소망은 아닐것이다. 세상이 힘들어 지고 모두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시절이기에 한 편의 편지가 던져 준 애절한 사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소화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하늘의 정원에서 부디 두 사람이 다시 만나서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뜨거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늘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아... 오늘의 하늘은 너무도 청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