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의 심장 - 완전범죄 살인릴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임을 자청하고 책장의 두칸을 그의 작품으로 채워넣은 광팬이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은 읽지 못한 작품이 많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작품 중에 하나가 바로 [브루투스의 심장]이다. 1989년에 쓰여진 그의 초기 작품인 이 소설은 2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오히려 그 시대 보다는 지금이 더 소설속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게이고의 사회에 대한 시각이 정확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서형 추리소설(범인의 트릭을 미리 보여주고 경찰이나 주변인물들의 추리과정을 쫓아가는 추리소설)의 걸작이라는 '미미여사'의 극찬이 과장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잘 짜여진 트릭과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작은 단서들의 조합이 역시 게이고라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교적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속에 그의 다른 작품들인 [용의자 X의 헌신], [방황하는 칼날] 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꽤나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다.

모든 작업이 로봇으로 자동화되고 로봇의 관리자 만으로 돌아가는 최첨단의 공장에서 작업자가 로봇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 사건이 결국 마지막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만 마지막이 되기 전 까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사건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출세에 대한 욕망으로 뭉쳐있는 다쿠야는 전무의 딸과의 결혼으로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의 내연녀였던 야스코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이를 낳겠다는 협박으로 그의 출세에 커다란 장벽으로 가로막고 서게 된다. 그녀의 문제로 고민하던 그에게 똑같은 입장에 처한 나오키가 그녀를 죽이자는 제안을 걸어온다. 이른바 '살인 릴레이'. 그녀를 죽이는 것은 나오키가 맡고 다쿠야와 하시모토는 시체의 운반을 맡는다는 계획. 세 사람 각각의 알리바이는 완벽한 상황이라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트릭. 그러나 시체를 운반하여 하시모토에게 전달하던 다쿠야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고 나오키임을 알고 당황하게 된다. 도대체 왜? 나오키가 죽었단 말인가? 그럼 살인자는 누구인가? 혼란에 빠진 다쿠야 앞에 하시모토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사건의 실체는 어떤 것인가?

주인공인 다쿠야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욕망으로 똘똘뭉친 출세형 인간이다.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차라리 로봇에게 애정을 느끼는 인간.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치 않는 인간. 그런 그에게 야스코는 위험한 여인이었다. 그녀 또한 어린 시절 사건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상실하고 자신의 자식마저 자신의 생활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만큼 냉정한 팜므파탈이었다. 그녀는 또한 나오키라는 또 다른 성격 장애를 가진 인물과도 관계를 가진다. 어린 시절 아비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상처를 지닌 나오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삐뚤어진 성격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인간이 없이 로봇만이 존재하는 공장에서 장시간 일하면서 인간의 냄새를 잃어버린 인물까지 끼어들면서 결국 인간의 따뜻한 심장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죽이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결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을 게이고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는 담담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그들의 인생에 동정도 보내지 않고 어떠한 비판적인 시각도 보이지 않는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 마치 다쿠야의 로봇 '브루투스'가 욕망에 허우적대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서술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방황하는 칼날]에서 미성년자 보호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소 감정적인 문체를 보여주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로봇 '브루투스'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다쿠야도, 야스코도, 나오키도 각작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심장이 없었다는 느낌이다. 그들의 가진 사연들 속의 사건들로 인해 그들은 아무런 외상도 입지 않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의 심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뜨거운 심장'에 있다. 그것은 사랑이나 동정, 그 밖에 희노애락을 느끼는 감정 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윤리 같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규칙도 포함하는 것이다. 심장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도덕성과 윤리는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한편으로는 불쌍하게도 느껴지지만 동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마치 '사이코패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면서 로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욕망이라는 전지를 달고 끝없이 파멸로 향해 걸어가고 있는 로봇. 

소설에서 벌어지는 5건의 살인사건이 따로 따로 떼어내어 추리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치밀하다. 게이고의 천재성은 언제나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반전을 조금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초기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전의 힘이 조금은 약한 느낌이다. 또한 소설에서 유일하게 동정심을 가지게 만드는 하시모토가 살인릴레이에 가담하는 동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중에 그가 후회하는 장면을 보면 더 그런 느낌이다.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도는 크다. 또한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상의 몰입도를 가지고 있다. 복잡한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편하게 읽기에 좋은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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