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라는 작가.... 이제는 나의 완소작가가 되다. 처음 접한 박민규라는 작가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인생의 패자들의 모습을 자조적이고 허탈한 유머로 묘사하며 승자만의 세계에서 자리를 잃은 패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늘어놓는 소위 'Looser 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문체와 그 속에서 담겨져 있던 특유의 유머는 박민규라는 작가를 재미있는 작가로 나의 뇌리에 박히게 만들었다. 그 후 [지구영웅전설]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나에게 재미있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작가이기에 그가 썼다는 연애소설에 대해서도 나는 어떤 유머와 재미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소설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무참히 깨 버리면서 박민규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핑퐁]에서 세상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서의 서툼 때문에 조금은 어지러웠던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상과 인간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유머와 재미는 줄어들었지만 특유의 파괴적인 문체는 여전하며 유머와 재미의 빈자리를 채워넣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수없이 접혀있는 책의 페이지들 만큼이나 나에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은 것이었다. 이제는 그저 재미있는 시각을 가진 작가가 아닌 나의 취향에 맞는 나만의 완소작가로 새롭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사랑이야기.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소위 '못난이'가 여자 주인공이었던 소설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여주인공은 예쁘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못난이'다. 그것도 '신문으로 얼굴을 덮어야만 강간할 수 있는' 수준의 그런 못난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언제나 움츠려들어야만 했던 여자. 이제는 세상의 모든 차별에 두손을 들어버리고 체념한 채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여자. 그러나 남자 주인공은 정상적인(?) 인물이다. 오히려 다른 이들의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소위 '꽃미남'에 속하는 남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 커플의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남자의 관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와 자신의 감정이 여자의 상처를 아프게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두사람의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자청한 또 한 사람의 외로운 영혼이 펼치는 청춘의 아픈 사랑이야기. 아련함 기억속에 남아있는 풋사랑의 감정, 그러나 결코 잊혀지는 추억으로 남을 수는 없는 젊은날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을 통해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부끄러워 하지 마라... 부러워 하지 마라.... 전체의 10%도 안되는 갑부들을 부러워하고 그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다 그들을 따라가는 대부분의 남자들. 전체의 1%도 안되는 미인들을 부러워하고 그녀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다 그녀들을 따라가는 대부분의 여자들. 그렇게 허걱대며 따라가면 어느새 그것이 평균이 되어버리고 또 다시 전체의 1%를, 10%를 따라가는 사람들. 이런 현상의 반복은 결국 절대 소수가 절대 다수를 지배하는 불합리한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미인이 싫은 것이 아니라 미인에 대한 관대함이 싫어지고, 부자가 싫은 것이 아니라 부자에 대한 관대함이 싫어지게 만드는 이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런 세상이 싫다면 그 해답은 분명한 한가지로 정리된다. 부끄러워 하지 마라...그리고 부러워 하지 마라...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타인을 부러워 하지 마라. 자신의 애인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타인의 애인을 부러워 하지 마라. 자신에게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하라. Director's Cut.... 난 이미 director's cut을 읽었기에 어떤 판단도 하지 못하겠다. 다만 어린시절 동화처럼 'happily ever after'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director's cut을 읽지 말기를 권한다. 그러나 director's cut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와 그녀의 사랑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보다 많은 눈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director's cut도 'happily ever after'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박민규라는 작가가 추리소설 작가로도 충분한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였다면 그것이 나만의 오버만은 아닐 것이다. 흔히들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결혼생활을 아무리 오래했다 해도 첫사랑이 가슴에 새겨놓은 각인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소년에서 남자로 넘어가는 시절의 가장 큰 상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기억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다. 가끔... 이런 소설을 통해서라도 추억으로 남겨두었던 기억을 더듬는 것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