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흔히들 아무리 큰 상처라도 아물지 않는 상처란 없다고들 한다.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다 벗어나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행복해 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어떤 상처라도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감히 말하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절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란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외상은 모두 치유될 수 있지만 가슴속에 남은 상처란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폭력에 의한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폭력도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폭력의 피해자의 의지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말 그대로 안식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선과 악의 판단도 없이 느닷없이 들어닥친 자연의 폭력, 아버지에 의해 가해지는 자식에 대한 무자비한 물리적 폭력, 빛나간 욕망에 의해 강간의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 그리고 살인이라는 이름의 폭력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 뿐만 아니라 학대받는 아이에 대한 방관과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폭력까지... 어린 시절 수많은 폭력에 본의 아니게 노출이 되어버린 3명의 아이들은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서로가 다른 길로 살아나가지만 3명만의 비밀로 봉인된 또 다른 폭력과 함께 간직한 그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치유할 방법이 폭력밖에 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서로를 향해 또 다른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선과 악의 구분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어떤 안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폭력의 피해자인 그들은 폭력의 가해자가 처벌받기를 원하지만 세상이 만든 어떤 법으로도 그들은 처벌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교활해진 폭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폭력뿐. 아들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과거를 묻고 싶은 남자는 과거를 가지고 협박하는 과거의 동생을 죽이려 한다. 우리가 원하는 착한 결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훨씬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폭력은 폭력으로만 제어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진실이다. 그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진실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볼 때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힘있고 간결하면서도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문체까지... 작가가 가진 매력은 단 한편의 작품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꽤나 매력적인 작가를 만났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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