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는 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양계장 안에 사는 잎싹은 열렬히 소망하는 존재다.

   ‘단 한번만이라도 알을 품을 수 있다면, 그래서 병아리의 탄생을 볼 수 있다면          …….’ 

  암탉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바램이지만 양계장 안에 갇혀 사는 난용종 암탉이 품기에는 이상이 너무 높다. 잎싹이 소망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을 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아카시아나무 잎사귀가 부러워서 ‘잎싹’이라는 이름을 저혼자 지어 가질 만큼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잎싹이니 결국은 자신의 소망을 이뤄 낼 것이다.

 

  잎싹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양계장을 나와 마당으로 가야한다.  ‘마당’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잎싹은 기꺼이 간다. 먹이를 거부하고 알 낳기를 거부하면서 야위어 가다가 폐계 판정을 받아 죽은 닭들의 구덩이에 내던져 지고, 족제비의 밥이 될뻔한 위기도 겪지만 기어이 그토록 소망하는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잎싹의 몸은 알을 만들어 낼 수 없을 만큼 피폐졌고(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고 싶은 소망 하나로 마당까지 왔는데 알을 만들어 낼 수 없다니!), 마당 식구들은 잎싹을 받아주지 않는다. ‘마당’이 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자신의 소망을 이룰 곳으로 알았던 잎싹에게 죽음을 무릎쓴 댓가치고는 너무나 허망하고 혹독한 시련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하는 일 마다 실패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다면 언젠가 자신이 꿈을 이룰 수 있다’ 는 말이 생각난다. 현실적인 한계 앞에서 그렇게 쉽사리 물러날 소망이라면 잎싹은 애초부터 소망을 품지도 않았을 것이다. 잎싹은 기막힌 현실 앞에 좌절하고 분노하지만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마당’을 나온 것이다. 이 제목이 ‘양계장을 나온 암탉’ 아니라 ‘마당을 나온 암탉’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당’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잎싹은 그 ‘마당’을 나온 후에야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당’을 나오니 더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넓은 세상은 ‘마당’ 처럼 자신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는 수많은 위험에 도사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마당을 나온 후에야 자신의 소망을 이룬 잎싹. 자기가 낳지는 않았지만 족제비의 밥이 될뻔한 청둥오리의 알을 끝까지 품어 까고, 그 아기를 몸을 던져 끝까지 지켜낸다. 그리고 자신의 몸뚱이는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처럼 느껴졌던’ 새끼족제비들의 먹이로 기꺼이 내어놓는다.

 

  잎싹이 살아간 삶이 양계장 닭장 속 닭들 눈에는 참으로 무모하게 비춰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다간 잎싹은 행복한 삶을 살다 갔다고 생각한다.  잎싹은 또 다른 ‘나’이므로.

 

  나는 참 철이 늦게 들었다. 막연히 바깥세상을 동경하던 잎싹이 아카시아꽃이 피고지는 것을 보면서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품었듯이 나는 내가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을 그렇게 찾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집 맏이 답게 20대는 사는게  바빴다. 소망따위는 품지도 않았다, 또래 친구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일찍부터 찾아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나는 목표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 가게 일을 도우며 틈틈이 동네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면서 내가 평생을 해도 지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원대한 꿈을 꾸던 친구들이 꿈을 접고 결혼하고 애기낳고 남편 그늘에 안주하기 시작할 때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잎싹이 안전한 양계장을 나와 수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자신의 소망을 이뤘듯이 나도 내 가슴 속에 품은 소망을 하나하나 이뤄 갈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나는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는 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화두였다. 살아가면서 내가 품을 소망의 고삐가 느슨해질 때마다 잎싹을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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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6-1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참 좋지요...어른을 위한 동화인것 같아요...아이들 보다 어른이 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해요...

다솜 2005-06-1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제법 오래전부터 이 책을 중 1 아이들에게 읽히고 토론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 과제 제출할 곳이 있어 다시 차근차근 읽었어요.읽을 수록 좋은 책이네요
 

  

내 가슴에 별이 되어 뜬 동시

『너의 가슴에 별 하나 빠뜨렸네』읽고-


  제목을 보니 이 책을 엮은 분들의 소망을 알겠다. 서문에 밝힌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에 어떤 모습으로든 크고 작은 의미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책에 실린 동시들’이 아이들과 어른의 가슴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남아주기를 희망한 것이다. 읽어보니 글쓴이의 바람대로 어둔 밤길에 가로등 불이 하나 둘 켜지듯 메마른 가슴에도 별이 하나둘 뜬다

  이 책에 실린 동시들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가치와 재미가 느껴진다

  이정석 시인이 쓴 ‘어린이’를 읽어본다

  

   -어린이-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하는

  바구니에 담아 놓은 꽃게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쉼없이 세상을 기웃거린다. 바다로 나가고 싶어 몸살하는 바구니에 담긴 꽃게랑 꼭 닮았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수없이 꽃게를 잡아 바구니에 담았어도 그저 꽃게는 꽃게일 뿐이었는데, 창의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이렇게 빗대어 표현될 수 있다니! 놀랍다. 바구니에 담긴 꽃게의 움직임을 보고 어린이의 본능을 이렇게 잘 표현한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이정환 시인이 쓴 ‘길도 잠잔단다’라는 시를 읽어보니 내 어릴적이 생각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에는 전기가 늦게 들어왔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밤낮없이 불빛이 번쩍이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야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엄마가 가까운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늦어지면 호롱불을 들고 큰댁 번답 머리로 마중을 나갔다. 불빛이 보이는 마을을 연신 뒤돌아 보며 새까만 밤길을 동생 손을 잡고 걸어가면 두런두런 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길도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그 땐 어두운 길이 참 무서웠었다. 저녁이 되면 낮 동안 고단했을 길도 어둠에 안겨 잠을 자야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데. 살다가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이 닥처와 눈 앞이 캄캄해 질 때면 ‘지금은 내일을 시작하기 위해 잠을 자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 절망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동시 한 편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수많은 전등이 밤 길을 밝히고 있는 지금에도.


 손동연 시인이 쓴 ‘소와 염소’라는 시도 참 재미있다. 이 시를 읽고 나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1연을 읽어주고 물었다.

  “그러자 아기 염소가 뭐랬게?”

  아이 하나가

  “젊은 게 까불지마 수염도 안 났으면서”이렇게 말했단다.

   손동연 시인이 염소의 입장에서 대답한 말을 읽어주니 아이들은 깔깔깔 웃는다 ‘소와 염소의 다툼이 정겹다.

 

 이 책에 실린 동시들을 읽기 전에 차례를 쭉 훑어보다 놀란 것이 있다. 윤동주와 박목월, 정지용 시인의 동시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쓴 동시를 읽어보니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넣을 것이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에 겨울이 되어 주먹 두 개를 넣었더니 갑북해졌다’는 생각이 참 맑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분들이 쓴 시를 읽어보면 맑고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는데 이 책에 실린 동시를 읽어보니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겠다. 가슴 속에  동심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나는 기성 시인들이 쓴 시가 난해하다.  그런데 복잡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 동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내가 이 동시를 읽고 느낀 감동을 영상 문화에 익숙해져 순간적인 재미나 즐거움에 길들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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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 고사가 코앞이어도 5일,6일 연휴 중 하루는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것도 갑자기 경주를 가고 싶었다.

몇 해 전 남두랑 ‘딱’ 이맘 때 남산을 갔다가 길가 지천에 조롱조롱 달린

딸기를 따 먹으며 행복해 했던 일이 생각나자 불현듯 경주로 날고 싶었다.

그런데 못갔다.

미리 계획을 했더라면 알찬 여행을 했을 텐데.


그래서 어영부영 놀다가 오후에 정민이랑 드라이브 간 곳이 대변항.

가는 길에 차가 많이 밀렸다.

햇볕이 사그러드는 오후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몰려 나온 건지

광안대교를 지나 해운대 신도시로 접어드는 길에서 차가 한참동안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러다가 대변이 아니라 소변도 못 가겠다”고 투덜대다가 쉬엄쉬엄

대변으로 가는 길에 연화리 바닷가를 들렀다.

오늘이 여섯물인가 돼서 오후에 물이 제법 빠졌을 텐데 밀물 때라 바위가 거의 잠겼다.

놀러나온 아이들은 바지를 둥둥 걷어올리고 작은 물고기도 잡고 고둥도 잡느라 이바위

저바위를 왔다갔다 한다.

분주한 아이들 모습을 보니 늘어졌던 몸에 활력이 생긴다.

 

 

바닷가에서 올라가 서랑도예 갤러리 구경을 갔다. 건물 밖에는

다양한 표정의 토우들이 있다. 표정이 재미있다.

 

 


  연화리를 나와 몇 분 거리에 있는 대변항에 들렀다.

 

 입구 공영 주차장을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항구 구경을 갔다.

 멸치 흥정도 하고, 납세미 흥정도 하면서.

 예전에 왔을 때는 멸치잡이 배 한척이 멸치 그물을 털면서 부르는

노동요를 듣기도 했는데 오늘은 없다.

 멸치회를 먹을려고 시장통을 기웃거리는데 멸치가 너무 커서 선듯 사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그래서 깨끗해 보이는 꽁치 회를 먹기로 했다.

싸고 싱싱하고 맛있다.

가족들과 함께 조만간 한번 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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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신문을 보니 어제 해운대 백사장에서 모래조각전이 있었단다.

 미리 알았더라면 정민이랑 대변 안가고 해운대 갔을텐데

  

 그래서 오늘 수업 하나를 끝내고 뒷 수업들어가기 까지

 비는 시간을 이용해 해운대로 날았다

 그런데 모래조각전을 했던게 맞나 싶잖게 군데군데 모래 무더기만 쌓여있다.

 ‘설마 조각 작품을 하루 만에 허물었을라고’ 이러면서 무더기 사이를 기웃거렸다

 다행히 허물어지긴 했지만 서너개 작품이 남아있다.


 이름하야

 

  '큰 바위 얼굴'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인어아가씨'  

 

추정되는(?) 조각작품들


아쉽지만 카메라로 서너장의 사진을 찍고 백사장을 한바퀴 휘 돌아본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저물녁 해운대 백사장은 차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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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백사장,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그물을 쳐 놓은 기둥 위에

 물새 두 마리가 앉아있네

 물새들이 싸웠을까? 서로 등을 돌리고 있네

 앞에 있는 물새는 골이 많이 난 것 같은데 뭣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났지? .....

 

 

   이러고 있는데 앞에 있던 물새가

  조금 멋쩍은 듯 몸을 뒤로 돌리더니 뒤에 있는 물새를 힐긋 쳐다보고는

  차마 마주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아직 화가 덜 풀렸다는 표신가?

  하는 꼴이 암놈인 모양이다.

  꼭 어린 연인들의 사랑싸움을 보는 것 같다.

  그 꼴을 뒤에 있던 숫놈인 듯한 새가 고개를 약간 돌려 물끄러미 쳐다본다

  ‘참 내. 그럴 거면서 뭐하러 삐지냐?’ 이러면서 .

  한참 보고 있으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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