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 작별 세트 - 전2권 - 정이현 산문집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작별』

소설가를 문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근원적 존재성의 시각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품 속의 필력과 세계관만으로는 한 명의 소설가를 실재적이고 입체적으로 아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드리블과 패스만으로 펠레의 인간성을 알 수 없고, 가창력만으로 이승철의 삶의 소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소설은 소설가의 필력과 사유와 의지로 창조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에 대한 다양한 '객관'을 얻어낸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작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나마 간접적으로 작가에 대한 탐구를 객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글로 작가를 읽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나 수필로 만나게 되면 소설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소설가를 탐구하는 데 보다 객관적이 된다. 소설의 서사는 작가적 상상력이 기반하지만, 수필과 산문은 작가의 진실된 고백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소설가가 쓴 수필집을 만날 때마다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1C가 낳은 한국문학의 특별한 아이콘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은 소설가 정이현을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텍스트다. 작년에 출간된 정이현의 산문은 '작별'과 '풍선'의 제목으로 가름되어 두 권으로 구성되었다. 두 권 중에서 내가 『작별』을 먼저 손에 든 이유는 책의 부제 때문이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는 인상적인 부제는 즉각 내 마음속에 꽂혀 책의 선택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정이현의 산문 『작별』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떤 책은 덮고 난 후에 더 가까이 사귀게 된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책의 서두 <작가의 말>에서 정이현은 위의 문장으로 산문을 시작한다. 책 제목 '작별'이 갖는 실질적 의미와 작가의 책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이 책의 골격까지 정갈하게 메타포한 문장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일상적 고백과 주관, 다양한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단상, 소설가로서의 고독과 번민이 매우 잘 담겨 있다. 수많은 '당신'을 만난 것도 책이었고 수많은 '당신'을 떠나보낸 것도 책이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정이현. 과거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독서 세계와 주관적 단상을 늘어놓는 진솔한 그녀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객관적'으로 작가 정이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가득하게」 카테고리에 있는 다섯 편의 산문이 자못 인상적이다. 작가는 다섯 편의 산문 속에서 소설가로서의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자존감, 문자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위대함, 문학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문단의 아픈 현실 등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대형서점에서 점점 그 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지리적 점령비율의 현실 앞에서 독자에게 '응원'을 주문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가 처연하다. 그리고 그 처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나 또한 가슴이 일렁인다.

  잘 다듬어지지 않는 산문집은 '산만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이현은 산만한 글의 구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일기와 같은 몇몇 글을 제외하고는 전부 책을 읽은 후의 리뷰의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 산문집의 전체적 통일성을 보증한다. 문학을 위시하여 다양한 방면의 책을 두루 읽고, 그 읽음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뒤틀고 해석하는 작가의 글담이 흥미있다. 비단 문학과 사랑뿐만 아니라 소외된 여성성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신랄한 작가의 논지가 담겨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균형적이다.

  매번 확인하지만 정이현은 글을 참 잘쓰는 작가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고민에 대한, 사회적 오류와 모순에 대한 정이현의 솔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의 존재성은 충분하다. 글 잘쓰는 한 인기 여류작가의 타자 문학으로 관통한 사랑과 문학과 사회에 대한 '논설'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살포시 권한다. 그리고 한 세트로 함께 구성된 다른 산문 『풍선』으로 손을 옮긴다.



『풍선』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상문화가 문자문화의 결락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조각났다. 영양가 없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로 매주 반복되는 연속극이나 시청자의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기 분주한 쇼·오락프로그램의 부박한 수준은 심히 넌덜머리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즐겨보는 TV프로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금년에 신설된 M본부의 <명랑 히어로>를 매우 즐겨본다. 소위 '막말'로 대변되는 리얼리티 쇼프로의 골격을 답습하곤 있지만, 방송의 구성과 취지가 마음에 들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점차 희망과 행복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명랑'한 사회를 꿈꾸며 수다를 떠는 그들네의 '막말'이 내게는 그닥 밉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이현의 산문을 연이어 만나고 있다. 『작별』과 함께 한 세트로 구성된 산문집 『풍선』의 부제 또한 인상적이다.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라는 부제는 '명랑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책의 첫장을 넘기게 한다. 하지만 부제를 통해 예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라는 부제의 『작별』보다는 한결 '명랑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작별』이 타인의 문학을 통해 정이현이 관조한 삶과 사랑과 문학의 네러티브를 얘기한 산문이라면, 『풍선』은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의 문화 미디어를 통해 사유하고 또 사유한 정이현의 외침이다. 정이현표 아포리즘은 영화와 드라마 속 주제와 인물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선 동시대 코드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들로 우리사회의 모순된 문화와 습속을 꼬집는다. 역시나 톡톡 튀는 새콤발랄한 그녀의 활자는 가벼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독자의 부담을 희석시킨다.

  같은 리뷰라도, 동일한 주제의 칼럼이라도, 소설가가 쓰면 다르다. 단언컨대, 분명히 다르다. 필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소설이 아닌 글에서 빛나는 소설가의 특별함은 바로 '관찰력'이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별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정이현이 리뷰한 영화의 대부분은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대중영화들이다. 별 것 없이 보였던 영화 속 인물과 대사로부터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들을 콕 찝어서 활자화의 재료로 삼는 세심한 관찰력은 그녀가 왜 소설가로 존재하는지를 은근하게 표상한다. <섹스 & 더 시티>에서 뉴요커의 멋진 삶이라는 피상성보다 '관계'라는 핵심 키워드를, 영화시상식에서 배우가 아닌 한 인간의 맨 얼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작'과 '각색'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음을 관찰해내는 그녀는, 역시나 '소설가'다.

  정이현의 글은 소위 '공감'이라는 코드로 독자와 쉽게 호흡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별, 별, 별」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다. 그녀는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은 언제부터인가 지상에 내려와 '점수'가 되었다며 한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써 세상의 수많은 프로·아마추어 비평가들을 일침한다.

제발 쉽게 가치판단하지 마시라. 당신의 판단 기준은 당신 눈에만 옳을지도 모른다. 계몽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으니, 부디 남을 함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마시라. 텍스트 생산자는 당신의 '권위 있는' 한마디에 제 모자람을 깨닫고 회개하는 어린 양이 아니다. 문화 텍스트에는 정답과 중심이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어차피 오독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을 이념화시키고 절대화시키는 비평이 아니라 '내 오독의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비평, 텍스트의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을 섬세하게 읽어주는 비평을 기다린다.   <p. 203>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를 내 어찌 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싫다'와 '나쁘다'의 정의를 정확하게 가름하고 다양성 침범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사회의 건전한 비평문화를 기대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에 나는 오롯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조차도 하나의 문장으로 읽어내고 음미하면서 타자의 창조된 텍스트에 대한 겸손한 의무를 전제할 줄 아는 독자. 바로 이러한 책읽기와 비평의 고차원적 기준을 소설가 정이현을 통해 새삼 학습한다.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은 소설가 이전의 인간 정이현의 맨얼굴이 많이 배어 있다. 무겁지 않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엇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소설 쓰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쓰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라고 고백하는 소설가 정이현. 그녀의 '외로움'과 '명랑'은 산문의 활자 속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의 문장을 조금 수정하면 두 권의 산문집을 읽은 내 느낌이 잘 정리된다. 소설 읽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읽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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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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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상문화가 문자문화의 결락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조각났다. 영양가 없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로 매주 반복되는 연속극이나 시청자의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기 분주한 쇼·오락프로그램의 부박한 수준은 심히 넌덜머리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즐겨보는 TV프로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금년에 신설된 M본부의 <명랑 히어로>를 매우 즐겨본다. 소위 '막말'로 대변되는 리얼리티 쇼프로의 골격을 답습하곤 있지만, 방송의 구성과 취지가 마음에 들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점차 희망과 행복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명랑'한 사회를 꿈꾸며 수다를 떠는 그들네의 '막말'이 내게는 그닥 밉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이현의 산문을 연이어 만나고 있다. 『작별』과 함께 한 세트로 구성된 산문집 『풍선』의 부제 또한 인상적이다.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라는 부제는 '명랑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책의 첫장을 넘기게 한다. 하지만 부제를 통해 예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라는 부제의 『작별』보다는 한결 '명랑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작별』이 타인의 문학을 통해 정이현이 관조한 삶과 사랑과 문학의 네러티브를 얘기한 산문이라면, 『풍선』은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의 문화 미디어를 통해 사유하고 또 사유한 정이현의 외침이다. 정이현표 아포리즘은 영화와 드라마 속 주제와 인물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선 동시대 코드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들로 우리사회의 모순된 문화와 습속을 꼬집는다. 역시나 톡톡 튀는 새콤발랄한 그녀의 활자는 가벼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독자의 부담을 희석시킨다.

  같은 리뷰라도, 동일한 주제의 칼럼이라도, 소설가가 쓰면 다르다. 단언컨대, 분명히 다르다. 필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소설이 아닌 글에서 빛나는 소설가의 특별함은 바로 '관찰력'이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별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정이현이 리뷰한 영화의 대부분은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대중영화들이다. 별 것 없이 보였던 영화 속 인물과 대사로부터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들을 콕 찝어서 활자화의 재료로 삼는 세심한 관찰력은 그녀가 왜 소설가로 존재하는지를 은근하게 표상한다. <섹스 & 더 시티>에서 뉴요커의 멋진 삶이라는 피상성보다 '관계'라는 핵심 키워드를, 영화시상식에서 배우가 아닌 한 인간의 맨 얼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작'과 '각색'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음을 관찰해내는 그녀는, 역시나 '소설가'다.

  정이현의 글은 소위 '공감'이라는 코드로 독자와 쉽게 호흡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별, 별, 별」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다. 그녀는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은 언제부터인가 지상에 내려와 '점수'가 되었다며 한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써 세상의 수많은 프로·아마추어 비평가들을 일침한다.

제발 쉽게 가치판단하지 마시라. 당신의 판단 기준은 당신 눈에만 옳을지도 모른다. 계몽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으니, 부디 남을 함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마시라. 텍스트 생산자는 당신의 '권위 있는' 한마디에 제 모자람을 깨닫고 회개하는 어린 양이 아니다. 문화 텍스트에는 정답과 중심이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어차피 오독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을 이념화시키고 절대화시키는 비평이 아니라 '내 오독의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비평, 텍스트의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을 섬세하게 읽어주는 비평을 기다린다.   <p. 203>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를 내 어찌 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싫다'와 '나쁘다'의 정의를 정확하게 가름하고 다양성 침범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사회의 건전한 비평문화를 기대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에 나는 오롯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조차도 하나의 문장으로 읽어내고 음미하면서 타자의 창조된 텍스트에 대한 겸손한 의무를 전제할 줄 아는 독자. 바로 이러한 책읽기와 비평의 고차원적 기준을 소설가 정이현을 통해 새삼 학습한다.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은 소설가 이전의 인간 정이현의 맨얼굴이 많이 배어 있다. 무겁지 않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엇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소설 쓰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쓰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라고 고백하는 소설가 정이현. 그녀의 '외로움'과 '명랑'은 산문의 활자 속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의 문장을 조금 수정하면 두 권의 산문집을 읽은 내 느낌이 잘 정리된다. 소설 읽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읽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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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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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문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근원적 존재성의 시각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품 속의 필력과 세계관만으로는 한 명의 소설가를 실재적이고 입체적으로 아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드리블과 패스만으로 펠레의 인간성을 알 수 없고, 가창력만으로 이승철의 삶의 소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소설은 소설가의 필력과 사유와 의지로 창조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에 대한 다양한 '객관'을 얻어낸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작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나마 간접적으로 작가에 대한 탐구를 객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글로 작가를 읽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나 수필로 만나게 되면 소설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소설가를 탐구하는 데 보다 객관적이 된다. 소설의 서사는 작가적 상상력이 기반하지만, 수필과 산문은 작가의 진실된 고백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소설가가 쓴 수필집을 만날 때마다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1C가 낳은 한국문학의 특별한 아이콘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은 소설가 정이현을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텍스트다. 작년에 출간된 정이현의 산문은 '작별'과 '풍선'의 제목으로 가름되어 두 권으로 구성되었다. 두 권 중에서 내가 『작별』을 먼저 손에 든 이유는 책의 부제 때문이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는 인상적인 부제는 즉각 내 마음속에 꽂혀 책의 선택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정이현의 산문 『작별』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떤 책은 덮고 난 후에 더 가까이 사귀게 된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책의 서두 <작가의 말>에서 정이현은 위의 문장으로 산문을 시작한다. 책 제목 '작별'이 갖는 실질적 의미와 작가의 책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이 책의 골격까지 정갈하게 메타포한 문장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일상적 고백과 주관, 다양한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단상, 소설가로서의 고독과 번민이 매우 잘 담겨 있다. 수많은 '당신'을 만난 것도 책이었고 수많은 '당신'을 떠나보낸 것도 책이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정이현. 과거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독서 세계와 주관적 단상을 늘어놓는 진솔한 그녀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객관적'으로 작가 정이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가득하게」 카테고리에 있는 다섯 편의 산문이 자못 인상적이다. 작가는 다섯 편의 산문 속에서 소설가로서의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자존감, 문자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위대함, 문학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문단의 아픈 현실 등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대형서점에서 점점 그 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지리적 점령비율의 현실 앞에서 독자에게 '응원'을 주문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가 처연하다. 그리고 그 처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나 또한 가슴이 일렁인다.

  잘 다듬어지지 않는 산문집은 '산만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이현은 산만한 글의 구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일기와 같은 몇몇 글을 제외하고는 전부 책을 읽은 후의 리뷰의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 산문집의 전체적 통일성을 보증한다. 문학을 위시하여 다양한 방면의 책을 두루 읽고, 그 읽음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뒤틀고 해석하는 작가의 글담이 흥미있다. 비단 문학과 사랑뿐만 아니라 소외된 여성성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신랄한 작가의 논지가 담겨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균형적이다.

  매번 확인하지만 정이현은 글을 참 잘쓰는 작가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고민에 대한, 사회적 오류와 모순에 대한 정이현의 솔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의 존재성은 충분하다. 글 잘쓰는 한 인기 여류작가의 타자 문학으로 관통한 사랑과 문학과 사회에 대한 '논설'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살포시 권한다. 그리고 한 세트로 함께 구성된 다른 산문 『풍선』으로 손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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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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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 갖는 매력을 나는 사랑한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 혼합되어 있는 역사소설은 진실과 상상력 사이의 오묘한 긴장감이 화학작용되어 매우 맛난 문장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우리네 역사를 담고 있는 한국역사소설의 그것은 더욱 풍요롭고 매력적이다.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 그랬고,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이 그랬으며, 신경숙의 『리진』도 그랬고, 김훈의 『남한산성』 또한 그랬다. 중국 청나라 때의 대학자 장학성(章學誠)이 언급한 '칠실삼허(七實三虛)'의 논리적 배율을 굳이 인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소설 속에 내재된 작가의 상상력을 음미하는 것은 과히 매혹적이다.

  소설가 심윤경을 좋아한다. 그녀는 불과 단 세 편의 장편소설로 한국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괄목함은 발군의 문장력과 계속된 진화로 대변되는 그녀의 강렬한 존재성에 기인한다. 한국에서 심윤경 만큼 이쁘고 다듬어진 문장을 구사하는 소설가는 드물다. 또한 매 작품마다 신선한 주제와 새로운 기법으로 높은 폭의 진화를 꾀하는 소설가는 더욱 드물다. 내가 심윤경을 사랑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그 후 2년을 주기로 『달의 제단』과 『이현의 연애를』을 발표하며 평단과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가 심윤경은 금번에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의 신작 『서라벌 사람들』은 연작소설의 형태로 신라시대의 정치와 종교,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재창조한다.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을 모자이크식으로 배치하여 '서라벌'이라는 정신적·시대적·지역적 동일성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아하고 맛깔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지증왕의 부인이었던 연제부인의 이야기 「연제태후」가 연작의 전면에 배치된다. 신라가 결코 제후국이 아니었건만, 작가는 지증왕의 양물이 한 자 다섯 치에 이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연제부인의 거대한 존엄성을 부각하고자 신라를 제후국으로 지칭한다. 신라국 본래의 토속신앙을 사수하고자 하는 연제태후와 대국 당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점점 확대되고 있는 신흥종교 불교의 포교를 강화하려는 아들 법흥제와의 대립은 강한 긴장을 준다. 이러한 신라 토속신앙과 불교와의 첨예한 대립적 긴장은 다섯 편의 단편을 모두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각 단편은 모두 비슷한 완성도를 가지며 연작으로 엮여 있다. 그중 백제를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무열왕 김춘추의 이야기인 「변신」이 자못 인상적이다. 골품제라는 특유의 신분제 속에 신라의 강함과 약함이 함께 내재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를 김춘추의 번민과 고통으로 그려내고 있다. 성골이 아니었던 김춘추의 태생적 한계, 모두 성골이었던 선왕들의 자취가 남겨진 월성(서라벌 궁궐)의 구조적 형태들, 그리고 인위적으로 성골이 되고자 했던 김춘추의 '변신'이 잘 묘사되어 당시 서라벌이 처한 정치적·사회적 아이러니를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심윤경은 당시의 신라인들을 매우 역동적이고, 정념적이며, 희열적인 사람들로 묘사했다. 남녀가 상하관계로 가름되지 않고, 여성의 성적 발현이 제압되지 않으며, 남녀의 섹스가 국가의 기강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 여겼던 바로 그 시대를 심윤경의 활자는 매우 유쾌하고 신비스럽게 그려냈다. 연제부인과 박이차돈, 선덕여왕과 무열왕, 김유신과 원효대사 등 신라의 초특급 슈퍼스타들을 현재의 시공간적 감각으로 불러내 재창조한 심윤경의 상상력은 단연 발군이다.

  정열적이고, 야하고, 역동적인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이 재창조한 천오백여 년 전의 왕국 신라는 과히 '열정의 제국'이라 칭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 모든 성질의 파토스가 살아숨쉬는 서라벌의 정념적인 형상화와 그 시대 그 사람들의 네러티브는 매우 유쾌하고, 너무 강렬하며, 심히 화려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역시 심윤경이다. 한마디로, 참 잘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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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6-2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땡스 투~ 보내요^^

다윗 2008-06-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님. ^^ 오히려 제가 땡스~ ^^

프레이야 2008-07-0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리 잘 쓰셨대요, 다윗님 ^^
날이 이제 더워져요. 햇빛 쨍쨍한 날입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구요.
저 이 소설 읽고 있어요.^^

다윗 2008-07-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지요? 심윤경 작가를 꽤 좋아해서요. 흥미있게 읽으시고 좋은 서평 올려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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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은 과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엉뚱하면서도 흥미있는 질문이다. '제국주의'의 의미가 세계의 변화 속에서 점점 확장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결국 크고 강하고 힘센 나라가 작고 약한 나라에 침투하여 군사적·경제적 영향력 및 이익을 꾀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군사력을 위시한 강한 힘이 있어야 하는데 '촌놈'이 주는 어감은 그러하지 못하다. 어떻게 촌놈이 제국주의를 노려볼 수 있단 말인가.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흥미있는 제목 못지않게 신선한 미래의 전망을 전제에 두고 설파하는 경제 이야기다. 『88만원 세대』를 첫 번째로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4부작을 완성해가고 있는 저자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그 시리즈의 세 번째로 배치했다. 작금의 동아시아의 정치적·경제적·역사적 상황에 기인하여 앞으로 한·중·일간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신선하면서도 자못 어두운 미래상을 제시한다. 또한 점차 제국주의적으로 흐르는 한국의 현재상을 우려한다. 그러면서 '평화'라는 소중한 가치를 코드화하여 경제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역설한다. 

  한국전쟁 이후 평온하기만 한 동아시아의 현대사에 전쟁이라는 극히 어두운 미래상을 예견한다는 것이 무리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 중국과의 동북공정 분쟁, 그리고 북한과의 대치 상황은 그 가능성을 제로화하지 못하는 요소들이다. 더욱이 국제유가는 계속해서 급등하고, 대체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세 나라의 피나는 혈투는 경제전쟁으로 불리우며 동아시아 지역에 묘한 긴장감을 드리우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 이후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의 제국주의 경향을 꼬집는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감행한 이라크 파병을 비롯하여 한미FTA 협상 속의 내밀한 요소들, 2002년 들끓었던 월드컵 쇼비니즘,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쟁에서 드러난 민족적 포퓰리즘,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경제영토'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로 치닫는 한국의 현재상을 저자는 신랄하게 조명한다. 그러면서 역사상 한 번도 식민지를 가져보지 못한, 더욱이 운영할 능력조차 갖지 못한 '촌놈들'의 제국주의라 이기죽거린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주의 경향이 일본과 중국의 그것과 맞닥뜨릴 때에 벌어질 지도 모를 전쟁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선포한다.

  저자가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을 지금의 10대에 맞춘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절대악이며, 평화의 조건은 평화로운 시기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이 책 속에 깊게 배어 있다. 지금의 10대 젊은이들이 훗날에 일어날지 모르는 먹구름을 책임지는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평화'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신중하게 인식하고, 경제에 어떻게 스며들어 작동하며, 그로 인한 미래가 어떠할지 희망하며 역설하는 저자의 논지는 일견 공감된다.

  기실 그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 주도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지구 공동체를 밀림의 숲으로 만들어버렸다. 소위 '정글자본주의'로 불리는 신자유주의는 잘사는 나라가 약육강식의 논리로 더욱 잘사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저개발국가의 가난과 소외는 외면되고, 개발도상국가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 미국에 의해 자행된 이라크 전쟁도 평화를 위함이 아닌 석유를 위한 경제전쟁이다. 중동의 석유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초강대국 미국의 노림수가 이라크 전쟁의 내밀한 계획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은 주류 경제학으로 대두되며 당분간 세계 경제를 주도할 전망이다. 국가간의 무역장벽은 점점 무너질 것이며, 철저한 국익과 시장의 논리로 침투받게 될 것이다. 한미FTA도 바로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에 맞닿아 있는 아이콘이다. 최근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논란 또한 신자유주의의 상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제지형의 움직임은 철저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 건설하면서 건조하고 어둡고 긴장감있는 지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인간성은 피폐해지고, 평화보다 경제적 이익이 우위에 서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인간을 위한 원리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때에 영장으로서의 위대함이 빛을 발한다. 인간이 인간성을 잃고, 오로지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위한 존재로 살아간다면 인류는 파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전쟁을 위한 산업은 돈이 되고, 평화를 위한 경제는 돈이 되지 않는 오류와 모순의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전쟁에 반대한다"라는 단 한 문장을 자신의 파토스로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다면 최소한의 희망은 보증되지 않을까.

  무조건 '착한' 경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가치를 언급하는 것이다. 220년 전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곱씹는다면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인류사에 얼마나 소중한 가치였는지를 재인식하게 된다. 한 번도 식민지를 건설해보지 않은 한국이 어설픈 제국주의 논리로 경제적 비대함을 꾀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그 기반 위에 경제를 운용할 수 있는 힘과 정신력을 길러줘야 한다. 바로 거기에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으며, 동아시아의 공존과 상생이라는 당연한 희망이 있다. 

  비록 어둡고 암울한 미래상을 전제한 경제학이지만 혹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망에 대한 예방적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의 존재성은 부각된다. 냉전이 종식된 지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과 테러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죽어가고 있다. 동아시아 또한 영원히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노아의 방주가 비가 오기 전에 만들어졌던 것처럼, 평화도 평화로울 때에 그 기준과 기반을 만들어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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