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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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소설이 갖는 매력을 나는 사랑한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 혼합되어 있는 역사소설은 진실과 상상력 사이의 오묘한 긴장감이 화학작용되어 매우 맛난 문장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우리네 역사를 담고 있는 한국역사소설의 그것은 더욱 풍요롭고 매력적이다.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 그랬고,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이 그랬으며, 신경숙의 『리진』도 그랬고, 김훈의 『남한산성』 또한 그랬다. 중국 청나라 때의 대학자 장학성(章學誠)이 언급한 '칠실삼허(七實三虛)'의 논리적 배율을 굳이 인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소설 속에 내재된 작가의 상상력을 음미하는 것은 과히 매혹적이다.

  소설가 심윤경을 좋아한다. 그녀는 불과 단 세 편의 장편소설로 한국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괄목함은 발군의 문장력과 계속된 진화로 대변되는 그녀의 강렬한 존재성에 기인한다. 한국에서 심윤경 만큼 이쁘고 다듬어진 문장을 구사하는 소설가는 드물다. 또한 매 작품마다 신선한 주제와 새로운 기법으로 높은 폭의 진화를 꾀하는 소설가는 더욱 드물다. 내가 심윤경을 사랑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그 후 2년을 주기로 『달의 제단』과 『이현의 연애를』을 발표하며 평단과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가 심윤경은 금번에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의 신작 『서라벌 사람들』은 연작소설의 형태로 신라시대의 정치와 종교,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재창조한다.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을 모자이크식으로 배치하여 '서라벌'이라는 정신적·시대적·지역적 동일성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아하고 맛깔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지증왕의 부인이었던 연제부인의 이야기 「연제태후」가 연작의 전면에 배치된다. 신라가 결코 제후국이 아니었건만, 작가는 지증왕의 양물이 한 자 다섯 치에 이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연제부인의 거대한 존엄성을 부각하고자 신라를 제후국으로 지칭한다. 신라국 본래의 토속신앙을 사수하고자 하는 연제태후와 대국 당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점점 확대되고 있는 신흥종교 불교의 포교를 강화하려는 아들 법흥제와의 대립은 강한 긴장을 준다. 이러한 신라 토속신앙과 불교와의 첨예한 대립적 긴장은 다섯 편의 단편을 모두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각 단편은 모두 비슷한 완성도를 가지며 연작으로 엮여 있다. 그중 백제를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무열왕 김춘추의 이야기인 「변신」이 자못 인상적이다. 골품제라는 특유의 신분제 속에 신라의 강함과 약함이 함께 내재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를 김춘추의 번민과 고통으로 그려내고 있다. 성골이 아니었던 김춘추의 태생적 한계, 모두 성골이었던 선왕들의 자취가 남겨진 월성(서라벌 궁궐)의 구조적 형태들, 그리고 인위적으로 성골이 되고자 했던 김춘추의 '변신'이 잘 묘사되어 당시 서라벌이 처한 정치적·사회적 아이러니를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심윤경은 당시의 신라인들을 매우 역동적이고, 정념적이며, 희열적인 사람들로 묘사했다. 남녀가 상하관계로 가름되지 않고, 여성의 성적 발현이 제압되지 않으며, 남녀의 섹스가 국가의 기강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 여겼던 바로 그 시대를 심윤경의 활자는 매우 유쾌하고 신비스럽게 그려냈다. 연제부인과 박이차돈, 선덕여왕과 무열왕, 김유신과 원효대사 등 신라의 초특급 슈퍼스타들을 현재의 시공간적 감각으로 불러내 재창조한 심윤경의 상상력은 단연 발군이다.

  정열적이고, 야하고, 역동적인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이 재창조한 천오백여 년 전의 왕국 신라는 과히 '열정의 제국'이라 칭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 모든 성질의 파토스가 살아숨쉬는 서라벌의 정념적인 형상화와 그 시대 그 사람들의 네러티브는 매우 유쾌하고, 너무 강렬하며, 심히 화려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역시 심윤경이다. 한마디로, 참 잘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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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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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6-2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땡스 투~ 보내요^^

다윗 2008-06-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님. ^^ 오히려 제가 땡스~ ^^

프레이야 2008-07-0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리 잘 쓰셨대요, 다윗님 ^^
날이 이제 더워져요. 햇빛 쨍쨍한 날입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구요.
저 이 소설 읽고 있어요.^^

다윗 2008-07-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지요? 심윤경 작가를 꽤 좋아해서요. 흥미있게 읽으시고 좋은 서평 올려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