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 작별 세트 - 전2권 - 정이현 산문집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작별』

소설가를 문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근원적 존재성의 시각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품 속의 필력과 세계관만으로는 한 명의 소설가를 실재적이고 입체적으로 아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드리블과 패스만으로 펠레의 인간성을 알 수 없고, 가창력만으로 이승철의 삶의 소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소설은 소설가의 필력과 사유와 의지로 창조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에 대한 다양한 '객관'을 얻어낸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작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나마 간접적으로 작가에 대한 탐구를 객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글로 작가를 읽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나 수필로 만나게 되면 소설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소설가를 탐구하는 데 보다 객관적이 된다. 소설의 서사는 작가적 상상력이 기반하지만, 수필과 산문은 작가의 진실된 고백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소설가가 쓴 수필집을 만날 때마다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1C가 낳은 한국문학의 특별한 아이콘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은 소설가 정이현을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텍스트다. 작년에 출간된 정이현의 산문은 '작별'과 '풍선'의 제목으로 가름되어 두 권으로 구성되었다. 두 권 중에서 내가 『작별』을 먼저 손에 든 이유는 책의 부제 때문이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는 인상적인 부제는 즉각 내 마음속에 꽂혀 책의 선택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정이현의 산문 『작별』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떤 책은 덮고 난 후에 더 가까이 사귀게 된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책의 서두 <작가의 말>에서 정이현은 위의 문장으로 산문을 시작한다. 책 제목 '작별'이 갖는 실질적 의미와 작가의 책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이 책의 골격까지 정갈하게 메타포한 문장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일상적 고백과 주관, 다양한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단상, 소설가로서의 고독과 번민이 매우 잘 담겨 있다. 수많은 '당신'을 만난 것도 책이었고 수많은 '당신'을 떠나보낸 것도 책이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정이현. 과거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독서 세계와 주관적 단상을 늘어놓는 진솔한 그녀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객관적'으로 작가 정이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가득하게」 카테고리에 있는 다섯 편의 산문이 자못 인상적이다. 작가는 다섯 편의 산문 속에서 소설가로서의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자존감, 문자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위대함, 문학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문단의 아픈 현실 등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대형서점에서 점점 그 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지리적 점령비율의 현실 앞에서 독자에게 '응원'을 주문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가 처연하다. 그리고 그 처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나 또한 가슴이 일렁인다.

  잘 다듬어지지 않는 산문집은 '산만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이현은 산만한 글의 구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일기와 같은 몇몇 글을 제외하고는 전부 책을 읽은 후의 리뷰의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 산문집의 전체적 통일성을 보증한다. 문학을 위시하여 다양한 방면의 책을 두루 읽고, 그 읽음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뒤틀고 해석하는 작가의 글담이 흥미있다. 비단 문학과 사랑뿐만 아니라 소외된 여성성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신랄한 작가의 논지가 담겨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균형적이다.

  매번 확인하지만 정이현은 글을 참 잘쓰는 작가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고민에 대한, 사회적 오류와 모순에 대한 정이현의 솔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의 존재성은 충분하다. 글 잘쓰는 한 인기 여류작가의 타자 문학으로 관통한 사랑과 문학과 사회에 대한 '논설'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살포시 권한다. 그리고 한 세트로 함께 구성된 다른 산문 『풍선』으로 손을 옮긴다.



『풍선』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상문화가 문자문화의 결락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조각났다. 영양가 없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로 매주 반복되는 연속극이나 시청자의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기 분주한 쇼·오락프로그램의 부박한 수준은 심히 넌덜머리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즐겨보는 TV프로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금년에 신설된 M본부의 <명랑 히어로>를 매우 즐겨본다. 소위 '막말'로 대변되는 리얼리티 쇼프로의 골격을 답습하곤 있지만, 방송의 구성과 취지가 마음에 들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점차 희망과 행복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명랑'한 사회를 꿈꾸며 수다를 떠는 그들네의 '막말'이 내게는 그닥 밉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이현의 산문을 연이어 만나고 있다. 『작별』과 함께 한 세트로 구성된 산문집 『풍선』의 부제 또한 인상적이다.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라는 부제는 '명랑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책의 첫장을 넘기게 한다. 하지만 부제를 통해 예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라는 부제의 『작별』보다는 한결 '명랑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작별』이 타인의 문학을 통해 정이현이 관조한 삶과 사랑과 문학의 네러티브를 얘기한 산문이라면, 『풍선』은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의 문화 미디어를 통해 사유하고 또 사유한 정이현의 외침이다. 정이현표 아포리즘은 영화와 드라마 속 주제와 인물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선 동시대 코드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들로 우리사회의 모순된 문화와 습속을 꼬집는다. 역시나 톡톡 튀는 새콤발랄한 그녀의 활자는 가벼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독자의 부담을 희석시킨다.

  같은 리뷰라도, 동일한 주제의 칼럼이라도, 소설가가 쓰면 다르다. 단언컨대, 분명히 다르다. 필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소설이 아닌 글에서 빛나는 소설가의 특별함은 바로 '관찰력'이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별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정이현이 리뷰한 영화의 대부분은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대중영화들이다. 별 것 없이 보였던 영화 속 인물과 대사로부터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들을 콕 찝어서 활자화의 재료로 삼는 세심한 관찰력은 그녀가 왜 소설가로 존재하는지를 은근하게 표상한다. <섹스 & 더 시티>에서 뉴요커의 멋진 삶이라는 피상성보다 '관계'라는 핵심 키워드를, 영화시상식에서 배우가 아닌 한 인간의 맨 얼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작'과 '각색'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음을 관찰해내는 그녀는, 역시나 '소설가'다.

  정이현의 글은 소위 '공감'이라는 코드로 독자와 쉽게 호흡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별, 별, 별」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다. 그녀는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은 언제부터인가 지상에 내려와 '점수'가 되었다며 한탄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써 세상의 수많은 프로·아마추어 비평가들을 일침한다.

제발 쉽게 가치판단하지 마시라. 당신의 판단 기준은 당신 눈에만 옳을지도 모른다. 계몽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으니, 부디 남을 함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마시라. 텍스트 생산자는 당신의 '권위 있는' 한마디에 제 모자람을 깨닫고 회개하는 어린 양이 아니다. 문화 텍스트에는 정답과 중심이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어차피 오독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을 이념화시키고 절대화시키는 비평이 아니라 '내 오독의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비평, 텍스트의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을 섬세하게 읽어주는 비평을 기다린다.   <p. 203>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를 내 어찌 멀리할 수 있단 말인가. '싫다'와 '나쁘다'의 정의를 정확하게 가름하고 다양성 침범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사회의 건전한 비평문화를 기대하는 소설가 정이현의 목소리에 나는 오롯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쉼표와 말줄임표, 숨결조차도 하나의 문장으로 읽어내고 음미하면서 타자의 창조된 텍스트에 대한 겸손한 의무를 전제할 줄 아는 독자. 바로 이러한 책읽기와 비평의 고차원적 기준을 소설가 정이현을 통해 새삼 학습한다.

  정이현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은 소설가 이전의 인간 정이현의 맨얼굴이 많이 배어 있다. 무겁지 않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엇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소설 쓰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쓰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라고 고백하는 소설가 정이현. 그녀의 '외로움'과 '명랑'은 산문의 활자 속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의 문장을 조금 수정하면 두 권의 산문집을 읽은 내 느낌이 잘 정리된다. 소설 읽기가 고통이었을 때, 산문 읽기는 고통을 다독여주는 사랑스러운 알약이었다. 진심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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