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다. 가라타니 고진이 제기한 근대문학의 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에 겐자부로 이후 일본문단이 보여준 문학적 퀄리티는 심상한 수준이다. 하루키와 류의 소설들은 읽을 만하다. 나는 일본 현대문학의 종언을 하루키까지로 잡는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현재의 일본문학을 주도하는 작가들의 텍스트에 호평을 주기에는 민망스럽다. 가볍고 밋밋하며 건질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소설에 공복감일 느낄 때가 있다. 최근 일본소설의 경향은 스토리 위주로 정리된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수고로움은 필요없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다양한 소재,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다채로운 플롯의 형태 등 빠른 가독성을 보증한다. 깊은 문학적 정수를 뽑아내는 동력을 머리와 가슴에 덜 요구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한 편안함이 내가 종종 일본소설을 찾는 이유라면 이유이다.

  오기와라 히로시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꾸준히 읽는 편이다. 그들은 소설을 참 재미있게 쓴다. 고향을 살리기 위한 산골 청년들의 고군분투는 흥미있었고, 추리 형식에 사랑의 테마를 녹여낸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특히 추리물의 대가로 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힌다. 그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하여 『붉은 손가락』, 『방황하는 칼날』 등은 나를 충분히 즐겁게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유성의 인연』을 읽었다. 제목의 낯섬과 표지 비쥬얼의 신비스러움에 반응되어 낚은 책이다. 두 권의 양장본의 이 소설은 살해당한 부모님의 범인을 찾아나서는 세 남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작가는 일본 추리소설의 대표 아이콘답게 시종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의 가독성을 이끌어낸다.

  유성을 보기 위해 밤에 몰래 집을 나서는 세 남매의 어렷을 적 이야기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유성을 보지 못하고 집에 들어온 세 아이들은 부모의 살해 현장을 목격하며 충격에 빠진다.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두 명의 담당 형사가 투입된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채 14년의 세월이 흐른다. 어른이 된 세 남매. 14년 전의 살인 사건은 어떤 일을 계기로 세 남매의 현실 앞에 부활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 몰랐던 사실들. 충격적인 사건들. 마지막 범인의 존재가 밝혀지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펼쳐진다.

  흡입력 있는 전개, 생각지 못한 반전, 깔끔한 마무리까지 추리소설이 가져야 할 요건들을 무리없이 갖추었다. 중후반부까지 일정한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에게 긴장을 놓게 하다가 후반부부터 갑작스레 몰아치는 게이고 특유의 결말 처리 방식은 단연 돋보인다. 밝혀지는 범인의 존재와 범행 동기에 대해 너무 단시간에 풀어놓고 있어 핍진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까지 흠이 될 만한 부분은 아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드라마로 제작되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2008년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소설의 약점과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소설의 경우 대개 드라마나 시트콤, 영화로 바로 제작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다. 일본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작가가 이를 미리 염두해두고 쓴 것인양 다른 매체로 전환할 수 있는 확장성을 내재했다는 점에서 일본소설은 흥미롭게 읽힌다. 다만 그것이 깊은 문학적 수준과 함께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문학은 문학다워야 한다. 잘 읽힌다고, 쉽게 읽힌다고 좋은 문학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쉽고 잘 읽히는 문장만 찾는다. 그들에겐 하루키도 버겁다. 하지만 거꾸로 난해한 문장과 작가만의 소우주에 함몰된 어려운 사유의 세계가 열거되었다고 해서 좋은 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학이 독자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떨 때는 한 편의 시트콤을 보듯한 뛰어난 가독성으로 한달음에 읽고픈 소설이 땡기게 마련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에 가장 적확한 작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 장편소설 『유성의 인연』. 정말 '잘'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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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네이버후드 어워드 시상식에 다녀왔다. 책리뷰 부문 WINNER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생각보다 꽤 큰 규모의 시상식이었다. 네이버의 위력을 실감했다. 큰 규모의 시상식장, 아이팟 터치를 비롯한 각종 상품과 기념품들, 적잖은 수상금액, 사회자 서경석을 위시한 각 파트별 심사위원들의 참석 등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규모'였다. 물론 중요한 것은 양보단 질이다. 나는 금번 네이버후드 어워드를 참석하며 느낀 두 가지 질적인 부분과 그에 파생된 개인적 소망을 논지한다.

  먼저 네이버후드 어워드는 탈권위적이었다. 모든 시상식에는 '권위'가 전제하기 마련이다. 권위있는 상을, 권위있는 수상자에게, 권위있게 수상하는 게 모든 시상식의 특질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모든 아마추어 리뷰어들이 꿈꾸는 상이자 대한민국 최대 포털에서 수상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네이버후드 자체의 권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반면 수상자들이 권위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의 투표와 심사위원의 엄격한 심사에 의해 선정했다는 네이버측의 공지만 있었을 뿐 그것이 얼마나 공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가를 받아들이는 경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정작 중요한 건 시상식 내용의 권위에 관한 것인데, 시상식 내내 탈권위를 지향한 진행 내용에 내 얼굴은 미소를 지었고 마음은 편안했다. 

  21세기는 소위 탈권위의 시대다. 각 계의 모든 분야에서 권위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권위'와 '무게감'이 유사한 느낌으로 인식되던 시기는 끝났다. 예컨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라. 사회자는 유머로 일관하며 수상자는 온갖 개성을 뽐낸다. 작은 규모의 상에도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고 소소한 이벤트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카데미 영상 그 어느곳에도 권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평온하고 유머러스한 인간미만 존재할 뿐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현재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작금의 시대 흐름은 권위 타파로 자유의 무한대로 간다를 지향한다. 시상식의 준비와 내용을 통해 네이버후드가 전해준 정서적 평온함은 대한민국 최대 포털사이트의 존재감을 방증한다. 편안한 인상의 코미디언 서경석의 재치있는 사회는 이를 뒷받침했고 본래 일정을 다소 빗나갔음에도 시기적절하게 유연성을 발휘한 스텝들의 운영력에서 기분 좋은 시간의 초과만이 허락되었을 뿐이다.

  또한 네이버후드 어워드는 열린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수상자는 물론 최종후보자, 기수상자, 동반인들까지 넓은 홀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서 자리를 빛냈다. 만약 수상과 관계된 사람만이 자리를 채웠다면 네이버후드는 그저 그런 밋밋한 이벤트에 불과했을 것이다. EL타워는 지성만 있고 사랑과 인류애는 결락된 건조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동반인이라는 명분으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게 한 네이버의 배려는 블로거와 비블로거와의 간극을 좁혔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경직성을 순화시켰다. 

  다양성은 좋은 것이다. 공공의 이익과 평화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다양성은 절대선이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는 문화에서 다양성은 만개하며 '창조'는 범람한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단지 온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오프라인과 구별짓는 행태는 무의미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구별되면서도 동일하다. 둘 다 창조와 운영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교집합을 가진다. 네이버후드 어워드가 위대했던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 그리고 그 둘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현장 그 자리에서 생생히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시상식에 어머니와 함께 자리를 했다. 그곳에서 온라인 '다윗'과 오프라인 '어머니'는 동일한 인간으로 함께 존재했다. 열린 공간 네이버후드 어워드는 곧 '인간'이었다.

  네이버후드 어워드를 통해 얻은 두 가지 좋은 느낌은 곧바로 네이버의 역할론으로 치환된다. 한국을 IT 강국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하드웨어 코드로만 IT 한국을 읽었을 때다. 한반도 지하를 관통하며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광랜과 인공위성으로 전파를 조달받는 인터넷 무선 서비스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인프라 수준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반면 콘텐츠는 매우 빈약하다. 100메가 광랜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1인칭-3인칭의 '정보'가 아니라 1인칭-2인칭의 '교류'다. 미국을 보라.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라도 콘텐츠가 매우 깊고 풍부하다. 지식과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들에게 블로그는 도서관의 다른 이름이다.

  인터넷 예절 또한 한국의 수준은 심각할 정도로 저질이다. 생각없이 쓴 네티즌들의 덧글에 상처받은 일류 여배우는 종내 목숨을 끊었다. 익명성의 모순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책임지지 못할 독문장을 뿜어내며 인터넷 사디스트가 된다. 사실의 호도, 욕설과 비방의 난무, 글쓰기 수준의 저급성, 공인의 민감한 대응 등 KTX의 속도가 퍼나르는 것은 인간과 정보가 아닌 다량의 쓰레기뿐이다. 심각한 현실이다.

  네트워크 소프트웨어의 빈곤과 인터넷 예절 문화의 저급성이라는 현실 앞에 초거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역할과 의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네이버는 분명 일위다. 현재 네이버의 아성을 무너뜨릴 포털은 없다. 2위 다음과의 격차는 아직도 산너머 산이다. 당분간 네이버의 헤게모니는 굳건할 것 같다. 중요한 건 '일위位'와 '일류流'는 다르다는 점이다. 네이버가 일위를 넘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작금의 한국 인터넷 콘텐츠와 예절 문화가 갖고 있는 가난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질 좋은 콘텐츠 생성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 매너있는 온라인 문화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상업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는 기업이야말로 일류가 되는 전제조건임은 100년의 자본주의사는 잘 보여준다.

  3년째 지속되고 있는 네이버후드 어워드는 바로 이러한 의지를 담은 NHN의 열정일 것이다. 네이버후드가 지속되길 바란다. 매년 양질의 우수한 콘텐츠를 창조하는 훌륭한 블로거들을 많이 발견하여 소개해주길 기대한다. 이땅의 수많은 블로거들이 지식 탐구와 정보 전달을 위해 무던히 수고하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이 모여 한국의 인터넷 콘텐츠가 거대한 도서관으로 변혁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전달해주길 바란다. 네이버후드 어워드가 열 번째 정도 열리는 즈음에는 우리의 인터넷 문화가 몇 단계 차원 상승을 이룰수 있지 않을까. 그 강력한 기대감 앞에 내 열정 또한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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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작년 이맘때 어떤 분의 수상소감 비슷한 걸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읽은 시상식장의 느낌과 비슷하네요.
 

  모든 리뷰어들의 꿈인 네이버후드에 제 미천한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이 시대의 대중지성을 만들어가시는 훌륭한 분들과 함께 설 수 있어 기쁩니다.

  블로그라는 공간에 서평을 써온 지 어느덧 2년의 세월이 되어갑니다. 가진 지식의 일천함과 깊이없는 성찰력을 피부로 느끼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들과 지성있는 블로거들과의 교류를 통해 내게 결핍된 앎과 지혜를 충전하기도 합니다.

  책읽기는 타인의 머릿속의 소우주와 조우하는 것입니다. 내 머리가 남의 머리가 되어 사유하는 일입니다. 책을 읽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사랑을 알고 배우게 되며, 지식을 축척케 되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고양시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아를 향한 역동적인 질문과 자기 확인을 쉬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책은 '변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입니다. 세계 속에서 작동하며, 세계를 비틀고, 세계를 만들어내는 책이지요. 그런 책이 많아질수록 지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이 많아지고, 많이 발굴되고, 많이 읽혀져서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좋은 책을 발굴하고, 읽고, 소개하겠습니다. 좋은 서평 쓰겠습니다. 

  일천한 책벌레에게 큰 영광을 주신 네티즌들과 네이버측에, 그리고 심사위원으로 수고하신 공지영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8 네이버후드 링크주소 : http://campaign.naver.com/naverhood2008/main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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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1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축하드립니다. ^^ 큰거 하셨습니다.

진주 2009-01-1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네이버에 이런 제도도 있었군요~
잘은 모르지만 다윗님은 상 받을만한 장한 분이시리란 느낌 들어요^^*
축하드립니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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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고민하고 궁구한 주제는 무엇일까. 정답은 없지만, 아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답변하지 않을까. 사랑 만큼 인간을 번뇌케 하고, 행복케 하며, 열정케 한 가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사랑에 고통했고 사랑에 행복했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었다. 인류사는 과히 사랑의 명멸사滅史다. 고로 인류는 '호모 에로스'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를 통해 인류사 최고의 뜨거운 감자인 사랑을 해부하고 천착했다. 물론 사랑에는 여러가지 줄기가 있다. 이 책에선 '사랑과 연애의 달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에로스적 관점에서 사랑을 탐구했다. 에로스를 갈구하는 인간의 내외재적 성향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조명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사랑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 태제를 제시한다. 사랑하는 대상은 바로 '나'이고, 실연은 행운이며, 에로스는 쿵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환원시킬 필요가 없이 주체인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차는 것과 차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이기에 차였다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으며, 사랑은 공부 없이는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테제를 기본 논지로 삼아 '호모 에로스'를 풀이한다.

  총 4부로 구성된 본문은 더욱 흥미롭다. 1부는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랑과 성(性, sex)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지적한다. 2부는 '국가'와 '가족', '학교'와 '쇼핑몰'을 코드로 청춘이면서도 전혀 청춘스럽지 않은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지적한다. 3부는 에로스의 속성을 언급하며 이 땅의 청춘들에게 욕망을 발현하라고 주문한다. 4부 또한 3부의 연장에서 에로스를 향한 인문학적 고찰을 쉬지 않는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두려움없이 사랑할 것을 '명령'하기도 한다.

  고미숙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체는 여전하다. 고전과 현대소설의 인용과 사랑을 격렬히 탐구했던 철학자들의 이름도 많이 등장한다. 니체와 에리히 프롬의 명언이 인용되고, 정이현의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본문이 차용된다. 스피노자와 사르트르의 지성, 루쉰과 정화스님의 철학도 소개된다. 저자는 '에로스'라는 거대한 명제를 천착키 위해 인류의 위대한 고전과 명사들의 정신 세계를 두루 망라하여 들려주고 있다.

  본문 중 가장 고개가 주억거리는 부분은 사랑과 책읽기의 상관성을 설명한 파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랑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논리다.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에리히 프롬은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과 공부의 연관성을 주창했다. 사랑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제가 참임을 인정한다면 앎과 지성의 열정을 통해 사랑이 더욱 공고해진다는 결론에 수긍할 수 있다. 앎의 크기는 곧 존재의 크기다. 앎과 지성의 확장에 가장 적확한 작업은 책읽기다. 책을 읽지 않고서 어찌 사랑을 알고 만끽할 수 있으리요. 사랑을 알고, 누리며, 긍정하기 위해서 책읽기는 꼭 필요하다.

  이는 곧 러셀의 삶과 곧바로 연결된다. 러셀은 자서전의 서문에서 고백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 고통에 대한 연민. 이 세 태제가 자신의 일생을 지배한 세 가지의 열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던 연원은 바로 책읽기였다는 것을. 요컨대 러셀은 책읽기를 통해 사랑을 알았고, 지식을 탐구했으며,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일갈하자.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사랑을 아는가. 

  이 책은 연애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간에 내재된 에로스적 성징에 대한 인문학 탐구서다. 인간을 탐구했고 사랑(에로스)을 조명했다. 동시에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꼬집었고 사랑에 대한 열정을 명령했다. 에로스에 국한된 사랑의 속성을 담았지만 책 속에 담긴 지식과 도전은 충분히 깊이있고 폭넓게 풍성하다. 인간 탐구가 외면되고 결락되는 시대에서 이 한 권의 책은 긴요하다. 인문학에 희망이 있다. 인문학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서점에서는 이를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인문학 서적은 이미 소설과 계발서에 자기 영토를 내준지 오래이다. 이런 와중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대중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서적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공부'와 '놀이', '언어'와 '예술', '책읽기'와 '사랑'을 넘어 다음은 어떤 주제로 인문학적 고찰을 꾀할 지 자못 기대된다.

  좋은 책은 좋은 세계를 만든다. 고병원의 책 구분법을 그대로 인용하자. 가장 좋은 책은 세계를 변혁하는 책이다. 세계를 비틀고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책이다. 인문학은 인간 본연을 탐구하고 천착하는 학문이다. 세계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인간 본연을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기초적 지성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을 움직이는 책이 많아지길 소원한다. 더불어 이 땅의 수많은 책벌레들이 그런 책을 발굴하고 탐독하고 소개하는 작업에 게으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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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기소하다
빈센트 불리오시 지음, 홍민경.최지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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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을까. 미국과 한국을 위시한 대통령제 국가들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형사상 소추가 불가하도록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다. 직무와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의회 제적의 2/3 이상의 가결을 통해서 탄핵할 수 있을 뿐이다. 기소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야 가능하다. 대통령 개인의 불법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거대 리더십이 요동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헌법 장치인 셈이다.

  엄연히 헌법과 법률상으로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 전직 검사는 '대통령을 기소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106건의 재판에서 105건을 승소하고, 이중 21건의 살인 사건에서는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전직 검사 빈센트 불리오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유일무이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 『대통령을 기소하다』는 부시 대통령을 기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증거를 논설한 책이다.

  책을 읽기 전, 자못 도발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치거나 비논리적 외침이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부시 대통령의 살인죄 기소 이유를 독자에게 설명한다. 왜 부시를 기소해야 하며, 증거는 무엇이고, 법률적 가능성은 어떠한지를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언급한다. 또한 열정적이고 흥미있게 논설하고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논지 전달로 충분한 공감이 형성된다.

  저자가 부시 대통령을 살인죄로 형사 고발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건은 응당 이라크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4,000명이 넘는 미국 젊은이들이 사망했으며, 이라크 민간인 도합 1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철저하게 실패한 이라크 전쟁의 원흉으로 부시를 지목했다. 또한 잘못이 없는 한 국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으로서 부시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논리다. 탄탄한 논리와 생생한 증거들, 그리고 법률적 근거들을 열거하며 독자를 설득한다.

  현직 대통령의 기소 여부를 떠나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특별하다. 애초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후세인이 WMD(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는 당장이라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인이 9·11 테러에 연루되었다고 한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후세인과 이라크는 WMD를 보유하지 않았고, 9·11 테러와는 전혀 상관 없음은 이미 명명백백해졌다. 요컨대 초강대국 미국이 자국에 아무런 잘못도 가하지 않은 주권국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저자는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을 위해 부시와 그의 참모들이 온갖 거짓과 기만으로 국민을 속였음을 증명한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 양심의 부재, 도덕과 인권의 추락, 언론과 지식사회의 역할 부재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미국 사회의 오류와 문제점 또한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부시에게 8년 동안이나 국가 운영을 맡긴 미국민들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비단 저자의 논설을 떠나서라도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추락은 자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이뤄온 미국의 존재감은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부시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외교 노선은 많은 국가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를 초토화시키며 세계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다. 모두 부시가 재임한 이후에 벌어졌다.

  미국 만큼 빛과 어두움이 대극적으로 공존하는 국가는 드물다.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이면에는 세계 제일의 양극화 국가라는 오명이 존재한다. 가장 부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4,000만 명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존재하는 국가. 국민 중 약 5,000만 명이 의료보험 하나 없이 살아가는 국가. 아무 명분없는 전쟁으로 1조 달러를 쏟아붓고 4,000명의 젊은이가 개죽음을 당하는 국가. CEO의 임금과 직원의 평균임금 비율이 531대 1의 엽기적 경영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 그게 바로 미국이다.

  저자가 주장한 도발적 문제제기는 그 실현성 여부를 떠나 지난 8년 간의 부시 행정부의 무능과 독단이 미국과 세계를 얼마나 불행하게 했는지, 더 나아가 작금의 미국사회가 얼마나 잘못 운행되고 있는지를 꼬집고 자책했다는 점에서 응당 유의미하다. 어쩌면 저자와 같이 의식있고 용기있는 지성인이 아직도 목소리를 내고 있기에 미국엔 아직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부시 정권의 실패와 미국의 추락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부시 정부의 정책과 기조를 그대로 따라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모토는 시장주의와 미국우방주의다. 하지만 이는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미국발 경제위기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폐해는 만천하에 입증됐다. 또한 자국의 경제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은 이미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부시 정권의 실패를 교훈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위정자들은 고심하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백악관의 주인이 바뀐다. 미국인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건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부시는 분명 무능했고 독선적이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그대로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민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지난 8년 동안 잘 봐왔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 또한 국민의 힘이자 책임이다.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민들의 수준은 다시 한 번 검증받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앞으로 남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민들의 수준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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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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