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다. 가라타니 고진이 제기한 근대문학의 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에 겐자부로 이후 일본문단이 보여준 문학적 퀄리티는 심상한 수준이다. 하루키와 류의 소설들은 읽을 만하다. 나는 일본 현대문학의 종언을 하루키까지로 잡는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현재의 일본문학을 주도하는 작가들의 텍스트에 호평을 주기에는 민망스럽다. 가볍고 밋밋하며 건질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소설에 공복감일 느낄 때가 있다. 최근 일본소설의 경향은 스토리 위주로 정리된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수고로움은 필요없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다양한 소재,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다채로운 플롯의 형태 등 빠른 가독성을 보증한다. 깊은 문학적 정수를 뽑아내는 동력을 머리와 가슴에 덜 요구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한 편안함이 내가 종종 일본소설을 찾는 이유라면 이유이다.

  오기와라 히로시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꾸준히 읽는 편이다. 그들은 소설을 참 재미있게 쓴다. 고향을 살리기 위한 산골 청년들의 고군분투는 흥미있었고, 추리 형식에 사랑의 테마를 녹여낸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특히 추리물의 대가로 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힌다. 그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하여 『붉은 손가락』, 『방황하는 칼날』 등은 나를 충분히 즐겁게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유성의 인연』을 읽었다. 제목의 낯섬과 표지 비쥬얼의 신비스러움에 반응되어 낚은 책이다. 두 권의 양장본의 이 소설은 살해당한 부모님의 범인을 찾아나서는 세 남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작가는 일본 추리소설의 대표 아이콘답게 시종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의 가독성을 이끌어낸다.

  유성을 보기 위해 밤에 몰래 집을 나서는 세 남매의 어렷을 적 이야기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유성을 보지 못하고 집에 들어온 세 아이들은 부모의 살해 현장을 목격하며 충격에 빠진다.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두 명의 담당 형사가 투입된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채 14년의 세월이 흐른다. 어른이 된 세 남매. 14년 전의 살인 사건은 어떤 일을 계기로 세 남매의 현실 앞에 부활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 몰랐던 사실들. 충격적인 사건들. 마지막 범인의 존재가 밝혀지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펼쳐진다.

  흡입력 있는 전개, 생각지 못한 반전, 깔끔한 마무리까지 추리소설이 가져야 할 요건들을 무리없이 갖추었다. 중후반부까지 일정한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에게 긴장을 놓게 하다가 후반부부터 갑작스레 몰아치는 게이고 특유의 결말 처리 방식은 단연 돋보인다. 밝혀지는 범인의 존재와 범행 동기에 대해 너무 단시간에 풀어놓고 있어 핍진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까지 흠이 될 만한 부분은 아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드라마로 제작되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2008년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소설의 약점과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소설의 경우 대개 드라마나 시트콤, 영화로 바로 제작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다. 일본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작가가 이를 미리 염두해두고 쓴 것인양 다른 매체로 전환할 수 있는 확장성을 내재했다는 점에서 일본소설은 흥미롭게 읽힌다. 다만 그것이 깊은 문학적 수준과 함께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문학은 문학다워야 한다. 잘 읽힌다고, 쉽게 읽힌다고 좋은 문학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쉽고 잘 읽히는 문장만 찾는다. 그들에겐 하루키도 버겁다. 하지만 거꾸로 난해한 문장과 작가만의 소우주에 함몰된 어려운 사유의 세계가 열거되었다고 해서 좋은 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학이 독자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떨 때는 한 편의 시트콤을 보듯한 뛰어난 가독성으로 한달음에 읽고픈 소설이 땡기게 마련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에 가장 적확한 작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 장편소설 『유성의 인연』. 정말 '잘'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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