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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일본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읽기 쉽다는 것과 굉장히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본 특유의 문화에서 연유하는 그 무언가가 일본소설에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곤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만나게 된 동기는 네이버 독서 카페인 '책좋사'에서 많은 회원들의 서평을 접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을 썩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과 카페회원들의 서평에 대한 잦은 노출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던 것이다.

 

 하드커버가 덮고 있는 심플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카페 회원들의 몇몇 서평에 노출된 것 外에는 없던 터라 3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라는 것과 본래 1960년대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공간 소설의 명작,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하다!」, 「NHK, 장편 드라마, 후지TV 단편, 장편 드라마, TBS 단편 드라마, 2회 연속 영화화 대히트, 만화책 발간,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된 메가톤급 화제작.」이라는 책의 띠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포스는 읽기 전 내 머리 속에 호기심을 일렁케 하는데 일조했다. 개인적으로 책이든 영화든 SF공상과학류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충만한 기대감과 함께 책의 첫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표제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주인공 여자소녀 요시야마 가즈코의 신비한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가즈코는 과학실 청소를 하다가 실험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깨진 시험관에서 흘러 나온 액체로부터 라벤더 향의 달콤한 냄새를 맡고 의식을 잃는다. 의식에서 깨어난 후 바로 하루 전의 과거로 타임리프된 것을 알고 가즈코는 경악한다. 바로 어제의 일이 가즈코의 앞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즈코는 절친한 친구 가즈오와 로고에게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가즈코의 얘기에 친구들은 시큰둥하지만 그날밤 가즈코가 얘기한 사건들이 정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경악의 대열에 합류할 수 밖에 없다. 평소 신뢰가 두터웠던 후쿠시마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반복되는 가즈코의 타임리프는 계속해서 과거로 가즈코의 삶을 돌리고 있다.

 빨리 원상황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즈코.. 몇 번에 걸친 시간이동을 경험하면서 맨 처음 자신이 의식을 잃은 과학실 청소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험실 안에서 발생했던 소리를 주의깊게 숨어서 관찰하고 당시의 그 범인(?)과 조우한다. 충격의 충격을 얻은 가즈코.. 쉴새없이 달려왔던 시간이동 사건에 대한 판타지적 줄거리는 가즈코와 범인(?)과의 조우를 지나면서 서로간의 연민과 사랑의 싹을 발생시키고 있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가즈코.. 시간이동을 비롯한 신비한 체험들은 기억에 없다. 귀가하면서 어느 집에서 연유하는 라벤더 꽃향기를 맡으며 무언가 어렴풋한 기억과 상상이 가즈코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언젠가, 누군가 멋진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사람은 나를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일지, 언제 나타날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멋진 사람과... 언젠가... 어디선가...

 

 『악몽』은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학교 2학년인 마사코와 다섯살의 남동생 요시오는 겁쟁이다. 마사코는 반야 가면만 보면 심장이 격렬하게 띄며 경악한다. 요시오는 밤에 화장실 갈 때마다 귀신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며 그냥 오줌을 싸는 버릇이 있다. 마사코는 동생 요시오의 공포가 엄마와 아빠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요시오가 공포에서 벗어나게끔 회복시킨다. 하지만 정작 마사코 자신의 고소공포증과 반야 가면에서 오는 의문 모를 공포감은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날 강렬한 악몽을 꾼 마사코는 절친한 친구인 분이치와 함께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옛날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옛친구 에츠를 만나고 자신이 왜 높은 곳에서의 현기증과 반야 가면에 대한 공포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과거 기억을 완벽하게 되찾게 된다.

 과거의 모습을 회복한 마즈코는 집에 오는 길에 동생의 용기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The Other World』의 경우도 시간이동의 이야기다. 하지만 설정되는 미래는 훨씬 더 멀며 시간이동의 내용은 더 복잡하다.

 노부코는 귀가길에 항상 귀찮게 하는 불량학생 3명을 마주한다. 어느날 여김없이 불량한 애들과 만나게 되는데 옆에 함께 걷던 같은 반 우등생 시로가 불량학생들에게 대들다가 타격을 입는다. 내심 강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던 노부코는 불량애들한테 맞고도 담담한 시로가 이해되지 않는다. 노부코는 집에 와서도 시로의 무덤덤한 반응이 계속 신경이 쓰였고 시로의 몸상태가 걱정되어 전화하려는 순간.. 눈앞이 기우뚱 하고 흔들리더니 초점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대략 2천년이 지난 3921년의 도쿄시로 장면은 넘어간다. 베라트론 연구소의 시간양자학자 노부는 광자기 연구실험을 진행하다가 실패한다. 그러면서 큰 폭발이 발생한다. 그리고 다원우주와 동시존재라는 복잡한 과학적인 설명이 소개된다.

 다시 노부코의 집으로 시점이 옮겨가고 귀가길에서의 불량배들의 만남이라는 동일한 사건에서 예전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노부코는 경험한다. 어쩌면 노부코 자신이 과거 원했던 장면이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할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시점은 또 바뀐다. 이번에는 더 다른 세상으로 간 것 같다. 학생의 신분이 아니다. 없던 쌍커풀이 생기고 핸드백 안에는 커다란 백금 케이스의 콤팩트.. 전부 최고급품이다. 이게 정말 나일까?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싸인을 해달라고 한다. 소설의 말미에 노부코는 외친다.

"싫어! 이젠 싫어! 싫으니까 나를 원래 세계로 돌여보내줘!"

 

 뭔가 짧고 갑작스럽게 몰아가는 이야기가 아쉽긴하지만 1960년대 쓰여진 내용임을 감안하면 그 놀라운 상상력과 소재설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복잡한 시간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쉽게쉽게 풀어간다는 점이 좋다. 물론 말미의 이야기를 더욱 연장하면서 시간의 폭을 넓혀 한 권의 장편소설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소설은 보편적으로 읽기 수월하고 특이하다. 게다가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필름화할 수 있는 소재가 풍성하다. 즉 소설에서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영화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느낌을 일본소설을 접하면서 자주 느낀다. 사실도 그렇지 않은가? 일본문학이 애니나 영화로, 더욱이 한국영화와 방송에까지 원작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다반사가 아니었던가? 영화라는 또다른 장르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일본작가들의 역량과 상상력이 부러울 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아쳐서 읽은 흥미있는 책이었던 만큼 신속하게 애니메이션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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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 권불십년
송국건 지음 / 네모북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은 어디에서 분출할까? 쉽고 이상하고 싱거운 질문일 것이다. 열에 아홉은 대통령이라고 답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과 국가원수로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삼권이 독자적으로 분리된 삼권분립체제라고 하지만 단일헌법기관으로서 그 상징성과 영향력, 그리고 실질적인 권한을 확인하면 응당 대통령이 가장 강력한 권력의 핵심요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여느나라의 그것과는 내용과 느낌이 다소 다른 면이 없지 않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현 참여정부에 이르면서 많이 변화되었지만 제왕적이고 권위적인 대통령제에서 완벽하게 벗어낫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분명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청와대를,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을, 그것도 현직 대통령과 관계된 상당수의 공적 사적 얘기를 묶어 정리하여 책으로 낼 수 있는 자유로운 표현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라는 제목은 솔깃하여 군침이 돌 지경이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창고가 청와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선망 또한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대선정국과 맞물려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세인들에게 흥미있게 읽히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역 최장기 청와대 출입기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취재한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저자는 대통령의 업무를 위시해 개성, 성격, 업무스타일, 참모들, 친인척,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공적인 부분뿐만아니라 사적인 부분까지 자세하게 얘기하고 있다. 현직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과 관련하여 세인들에게 폭넓게 공개되지 않는 비화와 해프닝까지 낱낱이 알려주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거론되는 인물들의 실명이 최대한 거론되고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청와대출입기자생활을 하는동안 보고 듣고 확인된 내용, 즉 철저한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기에 책에 쏠리는 흥미와 집중은 배가된다. 최대한 저자 자신의 사견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설명을 다루고 있어 독자들이 역대 대통령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는데 있어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하고 있기도 하다. 책 내용 중 종종 등장하는 대통령과 관련된 코믹한 에피소드들은 개콘이나 웃찾사 못지 않은 유머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용의 비중을 보면 단연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내용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의 내용은 DJ, YS,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이 동일한 분량으로 채워져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이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최규하, 윤보선 대통령의 경우는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 처음으로 청와대기자로 활동했던 점을 감안하면 전두환 대통령 이전의 이야기는 취재기사 및 선배기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기술할 수 밖에 없었음은 충분히 이해될만하다. 424p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가운데 청와대에 대해 몰랐던 정보들과 매우 흥미로운 비화가 즐비한데 그 중 몇개 추려서 리뷰의 뒷부분에 발췌하겠다.

 

 아리랑TV 인선과정 해프닝에서 드러난 대통령 비서실의 파워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대통령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대한 설명까지 대통령과 그에 파생되는 수많은 관계를 소재로 하여 사실정보, 역사적 사건, 세간의 소문 등을 줄기차게 설명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뒷부분에 소개되는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10년 전쟁, 즉 1990년초 통합민주당의 '노무현 대변인'과 조선일보간의 명예훼손 소송건의 1차 전쟁, 2001년의 '해양수산부 장관 노무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2차 전쟁,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일보 사이 아직도 종료되지 않은 3차 전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흥미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간혹 발견되는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지만 인생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문학작품이 아니기때문에 그로 인한 집중력 저하와 스트레스 생성은 발생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알려주는 청와대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보와 사건들에 대해 가벼운 통독으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씁쓸한 아쉬움 한가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직 한국정치의 현대사에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퇴임 이후 저술이나 강연, 인권운동, 재단설립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국민들로부터 현직에 있을 때 못지 않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미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실시한 미국의 경우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청문회출석, 유배생활, 구속수감 등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의 불운한 현대사는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여 우리도 미국 못지 않은 퇴임 후의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가 창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민이 행복할 길이며 더 나아가 먼 훗날 우리 다음 세대들이 학습하며 꿈을 키울 미래이기 때문이다.

 

 

박진 통역관의 이런 영어 실력에다 타고난 순발력은 YS의 좌충우돌식 언행을 적당히 커버함으로써 빛을 발했다. 따라서 YS와 박진 통역관이 등장하는 수많은 일화가 청와대 주변에 남아 있다.

가장 압권은 YS가 휘호로 즐겨 쓴 '大道無門(대도무문:정도를 걸으면 거리낄 것이 없다)'을 통역한 일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 휘호를 선물 받고 무슨 뜻이냐고 묻자 처음엔 "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라고 말했다. 위트였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이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자 박진 통역관은 정색을 하고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했다.

<책내용中, 130p>

 

사정이 이렇다 보니 TK는 자기들끼리도 편을 갈랐다. '성골 TK'니 '진골 TK'니 하는 말은 꽤 알려져 있다. TK들 사이에선 내부적으로 경북고를 나온 사람은 '광어 TK', 그냥 고향만 대구,경북이면 무늬만 TK라며 '도다리 TK'로 부르기도 했다.

<책내용中, 180p>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당시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훗날 미국 28대 대통령이 된 우드로 윌슨을 스승으로 모셨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책내용中, 188p>

 

이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다변(多辯)이 결과적으로 정신건강 뿐아니라 육체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석하는 참모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잡곡박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그리고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 입맛이 없을 때는 삼계탕을 찾는다. 그런데 식사량이 많으면서도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데 대해 이 참모는 '대통령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많은 부분은 말을 하는 것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어떤 자리에서나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함으로써 스트레스도 풀고 칼로리도 소모한다는 것이다.

<책내용中, 205p>

 

정치권 일각에선 역대 대통령을 외울 때 우스개 삼아 '이,윤,박,최,돌,물,깡'이라고 한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까지는 성을 그대로 부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별명이다. 즉 '전두환=돌', '노태우=물', '김영삼=깡'이다. 직전인 김대중 대통령과 현역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인된' 별명은 아직 없다.

<책내용中, 272>

 

이낙연 의원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일화는 YS와 DJ의 성격 차이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름하 '호헌조치' 직후 두 김 씨가 만났다.

DJ: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백만 인 서명운동을 전개합시다."

YS: "백만이 뭐꼬? 천만으로 합시다."

DJ: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인데 천만 명의 서명을 받는단 말이오."

YS: "누가 세어보나."

결국 두 사람은 직선제 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서명한 국민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지만 1천만 명 서명운동은 대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DJ는 이낙연 의원에게 이 비화를 소개해 주면서 "그분(YS)의 그런 장점은 내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 내용中, 274p>

 

'3김 시대' 정치판을 취재한 기자들은 세 사람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논리성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DJ의 말은 받아 적으면 그대로 가시체가 된다. YS의 말은 아무리 받아 적어도 나중엔 기사 쓸 것이 하나도 없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은 받아 적고 나서 무슨 뜻인지 한참 동안 사전을 뒤져봐야 한다."

<책내용中, 284>

 

따라서 지금까지 소개한 역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정리해보면 '노무현= 실험형, 김대중= 실사구시형, 김영삼= 독선형, 노태우= 신중형, 전두환= 기분파형, 박정희= 분할통치형, 이승만= 궁정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책내용中,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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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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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을 읽었다. 2/4분기 업무회의 관계로 부산본사에 내려가는 일정 外의 신경숙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따른 장애물은 있지 않았다.
 

  죽도록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읽기를 갈망했던 본질을 들추어 보면 기대심이 반이었고 의구심이 반이었다. 신경숙과 역사소설이라는 연결고리가 머리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독을 한 후 내 마음 속의 감성량이 충만함을 확인하였고 의구심은 산산이 부서졌고 기대감은 만족감으로 승화되었다.
 

  조선시대 말기 궁중 무희였던 여자, 리진의 일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리진을 향한 여러갈래의 사랑과 리진이 향하고 있는 한갈래의 사랑으로 엉켜있는 러브스토리라고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프랑스 공사 콜랭을 위시하여 파리에서 리진 곁을 맴도는 홍종우, 한솥밥을 먹고 자란 오랍동생 강연, 그리고 한 궁녀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주었던 국왕에 이르기까지.. 리진을 향한 남성들의 관심과 사랑이 이야기의 중요한 근간을 이루고 있다. 궁궐에서의 첫 만남 시 자신의 프랑스식 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언어로 되돌려주고 또 궁중의 연회에서 주인공 격인 무희로 등장하여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리진에 대한 조선의 초대 프랑스 공사 콜랭의 사랑.. 김옥균의 암살범이자 한말의 정객으로 프랑스 유학 생활을 하고 또 '춘향전'과 '심청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던 홍종우.. 고아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리진과 남매처럼 성장하여 끝까지 리진 곁을 지켰던 실어증의 악사 강연.. 겉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리진의 아름다운 미모에 눈길을 주었던 국왕 고종의 시선.. 

관리의 재촉으로 걸음을 빨리 옮기다가 뒤가 당기는 것 같아 콜랭이 뒤돌아보았을 때다. 콜랭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뒤를 돌아다보고 있던 궁녀의 눈과 콜랭의 눈이 한순간 마주쳤다. 궁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콜랭은 서 있는 그 자리에 붙박이는 듯했다. 궁녀의 깊고 검은 눈에 한껏 다정함이 묻어 있어서였다. 장난기 없이, 눌라움 없이, 구경하는 마음 없이, 이미 자신을 알고 있는 듯이 다정하게 바라보는 조선인의 눈을 콜랭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콜랭이 오로지 그 다정함 때문에 그 자리에 붙박이는 듯했던 건아니다. 궁녀의 검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콜랭은 예상치 않았던 옛 추억의 한 단락과 마주쳤다. 이미 잊혀졌다고 여겼던 얼굴 하나가, 궁녀의 반짝이는 검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되살아났다. 급물살에 떠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1권, 107p>

 

  소설의 전반부는 리진에 대한 콜랭의 관심과 사랑으로 시작하여 중반 이후까지 이야기의 뼈대로 서나가고 있다. 리진에 대한 강연의 사랑과 지나치게시리 민감성을 갖는 왕비의 관심은 이야기의 가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콜랭과 리진의 로맨스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조선의 프랑스 초대 공사로 발령이 나서 국왕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 도중 궁궐 금천교 위에서 처음으로 만난 리진에 한 순간에 반한 콜랭은 이후 알 수 없는 왕비의 전격적 지원에 힘입어 리진을 자신의 여자로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리진에 대한 콜랭의 끊임없는 잘해줌과 이후 모국인 프랑스에까지 리진을 데려가서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프랑스로 건너간 조선 최초의 궁중 무희라는 사실과 프랑스 작가 모파상과의 만남, 홍종우의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신경숙의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소설의 흥미진진함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만든다.
 

콜랭이 나지막이 말했다.
- 사흘 동안 말이오. 조선에서 첫밤에 당신이 말했던 파리를 순서대로 돌아봅시다.
- 순서를 기억해요?
- 기억하오.
- 어디 말해봐요.
- 루브르..... 노트르담..... 볼로뉴 숲..... 카르티에 라탱 거리..... 오페라 극장..... 뤽상부르 공원..... 샹젤리제 거리..... 앵발리드..... 시테 섬.
콜랭은 조선에서의 그밤, 루브르에 데려가세요, 하던 리진의 슬픔과 체념 그리고 얼마간의 기대도 동시에 실려 있던 맑은 목소리가 되살아나 리진의 검은 머리를 빗질하듯 쓸어내렸다.
- 그걸 어떻게 차례로 외우고 있어요?
외워두려 애쓰지 않았다. 저절로 외워졌다. 사랑이란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콜랭은 마치 날아가려는 새를 가두려는 것처럼 리진을 끌어안고 뺨과 입술과 목덜미와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2권, 58p>

 

  하지만 중후반 이후 불로뉴 숲을 다녀간 이후의 리진의 변화를 통해 소설의 흐름은 급반전된다. 파리 생활의 매너리즘에 따른 무료함이었을까? 조국에 대한 향수에서 오는 애국심의 발로였을까? 강연, 서씨, 왕비 등의 보고 싶은 이에 대한 순수한 그리움이었을까?
 

  이야기의 공간은 다시 조선으로 넘어간다. 한번 궁녀는 영원한 궁녀라 했던가? 조선으로 온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궁녀라는 신분.. 더욱이 파리에서 리진에게 퇴짜를 맞은 홍종우의 간언으로 궁에서 리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콜랭의 사랑도 예전같지 않다.
 

  인간은 영원히 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인간의 사랑은 무한한 태양에너지와 같은 것이 아닌 유한할 수 밖에 없는 한 개의 전구나 형광등과 같은 것인가? 과히 일방적이라 할 수 있었던 리진에 대한 콜랭의 사랑의 에너지는 어느새 그 기운이 다한 것인가? 리진을 남기고 모로코로 떠나는 콜랭과 그를 따라 나서지 않은 리진..
 

  어렸을 때 만나 남매처럼 지냈던 강연은 평생 한 여인을 흠모하며 살아왔다. 리진에 대한 강연의 사랑은 콜랭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리진의 목숨을 위해 손가락까지 절단해야 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리진이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여느 슬픈 영화 못지 않은 가슴 뭉클함이 스며든다. 어느새 소설의 이야기 중심에 자리 잡았던 콜랭의 사랑은 저 뒤로 밀려나 있고 강연의 웅숭깊은 사랑의 무게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듯 하다.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 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그러니 너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잇는 학당은 세우려는 일을 이루었으면 한다. 홍종우 대감이 도와줄 거야. 어제 그를 만나 내 간절히 부탁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 집에서 글을 모르는 반촌의 아이들부터 글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봐도 좋을 거야. 곁에서 네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 네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네 곁에 있으려 했지만 바닷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뿐이냐. 다시 조선에 돌아온 너를 지켜줄 힘도 없었다. 그것이 사무칠 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대금을 불어주는 일뿐이었다.
은방울.
이보다 더 힘들었던 날들을 견주어 생각해보며 살아갈 힘을 얻길 고대한다. 한 가지, 어떤 이야기가 들려도 나를 찾아나서려고 하지 마라. 나는 청국에 가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마라.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주어.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니.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 들면들수록 나는 나빠질 뿐이니.
<2권, 260p>

 

  하지만.. 소설책을 덮는 순간.. 리진과 콜랭의 로맨스도.. 리진을 향한 해바라기 같은 강연의 사랑도.. 작가 신경숙이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의 본질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밀려 온다. 수많은 이야기의 가지를 치면서 왕비(명성황후)에 대한 리진의 사랑과 연민이라는 이 소설의 뿌리를 목도한 것이다.
 

  사실 리진 자신은 궁궐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궁중무희로서의 뛰어난 춤실력과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신분의 상승이나 외교관의 아내로서의 행복감을 동경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 처음 만나 고결하고 신비한 존재로 다가왔던 왕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가슴에 품고 있었고 그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 리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왕비의 명에 따라 프랑스 공사관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지극정성인 콜랭에게 있었던 것도, 프랑스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향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리진의 마음은 오로지 왕비가 있는 궁궐을 향해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콜랭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도 왕비의 의중을 파악하고 난 다음이었다.
 

"나는 개화된 세상에 나가보길 꿈꾸나 이 궁궐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할 처지이니 네가 부럽구나." <1권, 28쪽> 
 

  리진은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왕비에게 편지를 썼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험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세세하게 편지에 기록하여 왕비를 향해 말하고 있다. 리진이 프랑스에 있게된 이후로 소설의 각 장 첫 문구는 '중궁마마'로 시작하는 왕비를 향한 리진의 목소리로 일관되게 시작하고 있다. 조선에 온 이후에도 리진의 시선은 강연을 넘어 일관되게 궁궐을 향해 있다. 이 소설의 이야기 초점이 리진을 둘러싼 몇몇 남성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닌, 왕비를 향해 있는 리진의 방향성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소설의 뒷부분에 묘사된, 이름하여 을미사변이라는 국가적 수치의 역사 현장을 신경숙은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여러장에 걸친 명성황후의 죽음은 그 긴장감과 서글픔, 두근거림과 분노의 감정을 동화시켜 불러일으키는 압권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왕비의 죽음은 더이상 리진 자신의 존재가 필요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독이 발라진 불문사전의 종이 한조각 한조각을 먹음으로써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리진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은 역시 궁궐이었다. 콜랭과 강연의 리진에 대한 애모로 가려져 있던 왕비를 향한 리진의 방향성과 민감성이라는 이야기의 뿌리가 흙 밖으로 나오면서 짧지만 짧지 않았던 리진의 인생과 더불어 소설의 이야기는 종료된다.
 

  하드커버의 무거운 마지막 뒷장을 덮은 뒤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리진이 아니라 왕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리진의 방향성은 궁궐을 향해 있었고 그녀의 눈과 귀를 포함한 모든 감각은 왕비의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작가 신경숙은 슬픔과 수치로 대변되는 한국의 전근대사를 리진이라는 궁중무희의 일생을 통해 관통하면서 명성황후라는 또다른 비운의 여성을 조명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수년만에 만난 신경숙의 장편소설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오군란,을미사변을 거쳐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봉건사회에서 전근대사로 넘어가는 역사를 관통하는 동시에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하여 또다른 여인을 조명하는 깊이 있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그림으로써 읽는 이에게 배부른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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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정 - 역사를 바꾼 고뇌 속의 선택들
앨런 액설로드 지음, 강봉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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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우유부단하면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대통령이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국가를 위해 다행한 일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면 국가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던 해리 트루먼 미국대통령의 유명한 말이다.

 

그렇다. 결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리더가 가져야 할 다양한 자질중에 결단력이라는 요소를 손가락 안에 꼽는 것도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말해준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들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모험을 향한, 양심의, 위기 속의 , 위험을 무릅쓴, 미래를 위한 결정 등의 우리의 삶은 수많은 결정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의 결과로 우리의 삶이 결정될 수 있다는 주장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결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류역사가운데 위대한 결정은 무엇무엇이 있었으며 그 결정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고 그것이 인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각 주인공들이 결정 앞에 처한 여러가지 환경들을 5개 파트로 나누어 34가지의 용기 있는 결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신세계를 향해 배를 띄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결정부터 비행기 테러 가운데 "OK! ,행동 개시!"라며 죽음을 무릅썼던 토드 비머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역사 속으로 독자들을 밀어넣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34가지의 이야기들이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결정들이라고는 공감하지 않는다. 34개의 이야기중에서 개인적으로 위대한 결정이라고 꼽을 만한 두 가지 결정이 있다. 위기일수록 더욱 멀리 봐야하는 신념을 갖고 쿠바 미사일 위기를 깔끔하게 해결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결정과 타이레놀 사망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심으로 승리한 제임스 버크의 결정이 그것이다. 물론 나머지 이야기들도 좋은 내용이지만 '위대한 결정'이라는 타이틀의 격과 포스에 있어 다소 못미친다는 것이 사견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번역부분이다. 번역서들에 있어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원서라도 번역에 문제가 있으면 원서로부터 얻어야 하는 원초적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과 자주 발견되는 오탈자에 의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다소 위축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34명의 주인공들이 펼쳐가는 당시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으며, 어떤 결과를 이뤄냈는가에 대한 그 자체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큰 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모험정신, 다니엘 엘스버그의 양심, 엘리자베스 1세의 기백, 해리 트루먼의 판단력, 카네기의 위대한 유산, 존 F. 케네디의 신중함, 토드 비머의 용기 등... 34명의 위대한 결정의 역사속으로 침투해보자. 그들을 결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또 다른 위대한 요소들과 만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또 다른 행복한 욕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등정에 성공한 그(에드먼드 힐러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보상은 다름 아닌 "평온한 만족감"이었다. 힐러리에게 있어 자신의 결정이 결국 옳았다는 증거는 탁월한 업적 그 자체가 아니라 이처럼 무언가를 일궈냈다는 평온한 성취감이었다.   - 책내용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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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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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 학생회 교사로 헌신하고 있을 그 해 추석즈음에 학생회 전도사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다. 당시 받자마자 가벼운 통독으로 읽긴 했지만 읽은 후 머리 속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깊이 있는 내용인 만큼 읽는 이의 자세에도 깊이가 있어야 했는데 그저 문자만 주욱 훑은 것이 원인이었다. 2년여의 시간이 흘러 책장 한구석에 꼽혀 있던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왔고 주말을 기회삼아 재차 읽을 수 있었다.
 

 신학의 대학자가 쓰신 책 답게 평범한 여느 기독도서들과는 상당한 무게감의 차이를 느꼈다. 당시 전도사님께서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면서 책을 건넸고, 저자인 김세윤교수님 또한 머리말에서 평신도들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전제했지만 썩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어휘나 학구적인 용어에 있어 쉽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독교의 핵심을 풀어가는 데 있어 그 깊이와 무게감이 장중했다는 뜻이다. 여하튼 내 자신의 부족한 신학적 소양은 차치하고 책의 내용을 언급해 보자.

 

 김세윤교수님은 복음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대에 직면해 있음을 주지시킨 뒤 예수의 복음과 사도들의 복음의 차이를 지적하며 이 두가지 차이를 시작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 데 비해 예수님 사후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사도들의 복음이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복음에 어떻게 연장되는 지를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다.

 

 '복음'에 대한 깊이 있는 대학자의 접근이기 때문에 내 사견을 붙이는 것보다 책 내용을 발췌정리하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상속자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라고 초대한 것이다. 또한 예수의 죽음은 그 약속을 성취하여 실제로 우리를 죄가 씻긴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바친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의도에 있어 그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와 그의 죽음은 약속과 성취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 이후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켜 그의 이러한 가르침과 주장을 옳다고 인정했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관심의 초점은 당연히 예수의 약속보다 그의 죽음으로 그런 약속을 성취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런 이유로 부활 이후 사도들의 복음 선포는 예수의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성취하신 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구원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의 선포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항상 같이 등장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그의 메시아로서의 구원의 행위의 중심이고, 그러기에 사도들의 선포의 초점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복음 선포의 초점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부활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를 통한 약속과 그의 죽음을 통한 그 약속의 성취, 그리고 그의 부활을 통한 그 성취의 확인. 이 세 가지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상호간 해석을 도와준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같은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성취돌 구원을 향하여 가면서 그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로 그 구원을 약속했기 때문이고, 그의 사도들은 그의 죽음과 부활의 관점에서 이미 성취된 그 구원을 되돌아보며 선포했기 때문이다. 즉 관점의 차이 또는 구원사적 시점의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나단의 신착에 의해 다윗 왕조를 문자적으로 재건하고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모든 민족들 위에 군림하게 하는 메시아를 기대했다. 즉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와 평화, 그리고 경제적 풍요를 그 메시아가 가져다 줄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다윗 왕조를 재건하지 않았고,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키지도 않았다. 예수의 메시아적 행위는 그의 죽음이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드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 곧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들이 되게 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을 상속받게 한 것, 즉 하나님의 신적 생명(영생)을 얻게 한 것, 바로 그것이 예수가 가져온 구원이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종말론적인 유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의 종말의 구원이 이미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죄에 대한 죽음으로 죄 문제에 대한 결정적 해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부활로 오는 세대 또는 하나님 나라의 신적 생명(영생)이 죽음을 꺾고 이 세상에 결정적으로 침투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죽음을 가져다주는 사단에 대한 결정적 승리이다. 그러므로 사단의 죽음의 현상들인 질병들을 하나님의 영(성령)의 힘으로 치유하면서 하나님의 생명의 통치를 시위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통치가 사단의 죽음의 통치를 확실히 꺾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죄와 죽음의 세력은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이 죄와 죽음이 없는 신적 생명을 누리는 축복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와서 그의 구원을 완성할 때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벌써 덕입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얻게 될 그 완성된 구원의 첫 열매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이 첫 열매는 지금 하나님의 영(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실존의 모든 면들에게 치유를 가져오며 그 힘을 발휘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첫 열매를 얻고 체험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미래에 그 구원을 총체적으로 수확할 것을 바라 볼 수 있으며, 지금의 첫 열매를 그 완성된 구원에 대한 보증금으로 여기고 확신 가운데서 소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 구원의 첫 열매를 벌써 받아 누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것의 완성을 받으라고 권고한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의로우심/은혜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안도함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석에 서야 함을 늘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의 자세로 의인의 삶을 사는 것, 바로 이 두 측면들이 서로 논리적 긴장을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창조 전부터 존재하며 하나님의 초월에 참여하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하나님의 초월에서 이 내재(세상) 속으로 보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초월의 힘을 가지고 이 내재 속에 계셨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줄(계시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실행할 수 있었다.

 

신약성서의 언어로 복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아마 요한복음 3:16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종자(獨種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필자의 사역).

 

이 복음을 믿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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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다윗의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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