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 권불십년
송국건 지음 / 네모북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은 어디에서 분출할까? 쉽고 이상하고 싱거운 질문일 것이다. 열에 아홉은 대통령이라고 답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과 국가원수로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삼권이 독자적으로 분리된 삼권분립체제라고 하지만 단일헌법기관으로서 그 상징성과 영향력, 그리고 실질적인 권한을 확인하면 응당 대통령이 가장 강력한 권력의 핵심요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여느나라의 그것과는 내용과 느낌이 다소 다른 면이 없지 않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현 참여정부에 이르면서 많이 변화되었지만 제왕적이고 권위적인 대통령제에서 완벽하게 벗어낫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분명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청와대를,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을, 그것도 현직 대통령과 관계된 상당수의 공적 사적 얘기를 묶어 정리하여 책으로 낼 수 있는 자유로운 표현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라는 제목은 솔깃하여 군침이 돌 지경이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창고가 청와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선망 또한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대선정국과 맞물려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세인들에게 흥미있게 읽히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역 최장기 청와대 출입기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취재한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저자는 대통령의 업무를 위시해 개성, 성격, 업무스타일, 참모들, 친인척,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공적인 부분뿐만아니라 사적인 부분까지 자세하게 얘기하고 있다. 현직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과 관련하여 세인들에게 폭넓게 공개되지 않는 비화와 해프닝까지 낱낱이 알려주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거론되는 인물들의 실명이 최대한 거론되고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청와대출입기자생활을 하는동안 보고 듣고 확인된 내용, 즉 철저한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기에 책에 쏠리는 흥미와 집중은 배가된다. 최대한 저자 자신의 사견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설명을 다루고 있어 독자들이 역대 대통령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는데 있어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하고 있기도 하다. 책 내용 중 종종 등장하는 대통령과 관련된 코믹한 에피소드들은 개콘이나 웃찾사 못지 않은 유머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용의 비중을 보면 단연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내용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의 내용은 DJ, YS,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이 동일한 분량으로 채워져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이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최규하, 윤보선 대통령의 경우는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 처음으로 청와대기자로 활동했던 점을 감안하면 전두환 대통령 이전의 이야기는 취재기사 및 선배기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기술할 수 밖에 없었음은 충분히 이해될만하다. 424p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가운데 청와대에 대해 몰랐던 정보들과 매우 흥미로운 비화가 즐비한데 그 중 몇개 추려서 리뷰의 뒷부분에 발췌하겠다.

 

 아리랑TV 인선과정 해프닝에서 드러난 대통령 비서실의 파워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대통령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대한 설명까지 대통령과 그에 파생되는 수많은 관계를 소재로 하여 사실정보, 역사적 사건, 세간의 소문 등을 줄기차게 설명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뒷부분에 소개되는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10년 전쟁, 즉 1990년초 통합민주당의 '노무현 대변인'과 조선일보간의 명예훼손 소송건의 1차 전쟁, 2001년의 '해양수산부 장관 노무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2차 전쟁,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일보 사이 아직도 종료되지 않은 3차 전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흥미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간혹 발견되는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지만 인생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문학작품이 아니기때문에 그로 인한 집중력 저하와 스트레스 생성은 발생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알려주는 청와대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보와 사건들에 대해 가벼운 통독으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씁쓸한 아쉬움 한가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직 한국정치의 현대사에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퇴임 이후 저술이나 강연, 인권운동, 재단설립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국민들로부터 현직에 있을 때 못지 않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미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실시한 미국의 경우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청문회출석, 유배생활, 구속수감 등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의 불운한 현대사는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여 우리도 미국 못지 않은 퇴임 후의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가 창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민이 행복할 길이며 더 나아가 먼 훗날 우리 다음 세대들이 학습하며 꿈을 키울 미래이기 때문이다.

 

 

박진 통역관의 이런 영어 실력에다 타고난 순발력은 YS의 좌충우돌식 언행을 적당히 커버함으로써 빛을 발했다. 따라서 YS와 박진 통역관이 등장하는 수많은 일화가 청와대 주변에 남아 있다.

가장 압권은 YS가 휘호로 즐겨 쓴 '大道無門(대도무문:정도를 걸으면 거리낄 것이 없다)'을 통역한 일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 휘호를 선물 받고 무슨 뜻이냐고 묻자 처음엔 "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라고 말했다. 위트였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이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자 박진 통역관은 정색을 하고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했다.

<책내용中, 130p>

 

사정이 이렇다 보니 TK는 자기들끼리도 편을 갈랐다. '성골 TK'니 '진골 TK'니 하는 말은 꽤 알려져 있다. TK들 사이에선 내부적으로 경북고를 나온 사람은 '광어 TK', 그냥 고향만 대구,경북이면 무늬만 TK라며 '도다리 TK'로 부르기도 했다.

<책내용中, 180p>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당시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훗날 미국 28대 대통령이 된 우드로 윌슨을 스승으로 모셨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책내용中, 188p>

 

이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다변(多辯)이 결과적으로 정신건강 뿐아니라 육체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석하는 참모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잡곡박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그리고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 입맛이 없을 때는 삼계탕을 찾는다. 그런데 식사량이 많으면서도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데 대해 이 참모는 '대통령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많은 부분은 말을 하는 것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어떤 자리에서나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함으로써 스트레스도 풀고 칼로리도 소모한다는 것이다.

<책내용中, 205p>

 

정치권 일각에선 역대 대통령을 외울 때 우스개 삼아 '이,윤,박,최,돌,물,깡'이라고 한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까지는 성을 그대로 부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별명이다. 즉 '전두환=돌', '노태우=물', '김영삼=깡'이다. 직전인 김대중 대통령과 현역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인된' 별명은 아직 없다.

<책내용中, 272>

 

이낙연 의원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일화는 YS와 DJ의 성격 차이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름하 '호헌조치' 직후 두 김 씨가 만났다.

DJ: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백만 인 서명운동을 전개합시다."

YS: "백만이 뭐꼬? 천만으로 합시다."

DJ: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인데 천만 명의 서명을 받는단 말이오."

YS: "누가 세어보나."

결국 두 사람은 직선제 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서명한 국민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지만 1천만 명 서명운동은 대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DJ는 이낙연 의원에게 이 비화를 소개해 주면서 "그분(YS)의 그런 장점은 내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 내용中, 274p>

 

'3김 시대' 정치판을 취재한 기자들은 세 사람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논리성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DJ의 말은 받아 적으면 그대로 가시체가 된다. YS의 말은 아무리 받아 적어도 나중엔 기사 쓸 것이 하나도 없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은 받아 적고 나서 무슨 뜻인지 한참 동안 사전을 뒤져봐야 한다."

<책내용中, 284>

 

따라서 지금까지 소개한 역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정리해보면 '노무현= 실험형, 김대중= 실사구시형, 김영삼= 독선형, 노태우= 신중형, 전두환= 기분파형, 박정희= 분할통치형, 이승만= 궁정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책내용中, 295>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의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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