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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일본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읽기 쉽다는 것과 굉장히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본 특유의 문화에서 연유하는 그 무언가가 일본소설에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곤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만나게 된 동기는 네이버 독서 카페인 '책좋사'에서 많은 회원들의 서평을 접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을 썩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과 카페회원들의 서평에 대한 잦은 노출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던 것이다.
하드커버가 덮고 있는 심플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카페 회원들의 몇몇 서평에 노출된 것 外에는 없던 터라 3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라는 것과 본래 1960년대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공간 소설의 명작,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하다!」, 「NHK, 장편 드라마, 후지TV 단편, 장편 드라마, TBS 단편 드라마, 2회 연속 영화화 대히트, 만화책 발간,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된 메가톤급 화제작.」이라는 책의 띠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포스는 읽기 전 내 머리 속에 호기심을 일렁케 하는데 일조했다. 개인적으로 책이든 영화든 SF공상과학류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충만한 기대감과 함께 책의 첫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표제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주인공 여자소녀 요시야마 가즈코의 신비한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가즈코는 과학실 청소를 하다가 실험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깨진 시험관에서 흘러 나온 액체로부터 라벤더 향의 달콤한 냄새를 맡고 의식을 잃는다. 의식에서 깨어난 후 바로 하루 전의 과거로 타임리프된 것을 알고 가즈코는 경악한다. 바로 어제의 일이 가즈코의 앞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즈코는 절친한 친구 가즈오와 로고에게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가즈코의 얘기에 친구들은 시큰둥하지만 그날밤 가즈코가 얘기한 사건들이 정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경악의 대열에 합류할 수 밖에 없다. 평소 신뢰가 두터웠던 후쿠시마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반복되는 가즈코의 타임리프는 계속해서 과거로 가즈코의 삶을 돌리고 있다.
빨리 원상황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즈코.. 몇 번에 걸친 시간이동을 경험하면서 맨 처음 자신이 의식을 잃은 과학실 청소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험실 안에서 발생했던 소리를 주의깊게 숨어서 관찰하고 당시의 그 범인(?)과 조우한다. 충격의 충격을 얻은 가즈코.. 쉴새없이 달려왔던 시간이동 사건에 대한 판타지적 줄거리는 가즈코와 범인(?)과의 조우를 지나면서 서로간의 연민과 사랑의 싹을 발생시키고 있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가즈코.. 시간이동을 비롯한 신비한 체험들은 기억에 없다. 귀가하면서 어느 집에서 연유하는 라벤더 꽃향기를 맡으며 무언가 어렴풋한 기억과 상상이 가즈코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언젠가, 누군가 멋진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사람은 나를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일지, 언제 나타날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멋진 사람과... 언젠가... 어디선가...
『악몽』은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학교 2학년인 마사코와 다섯살의 남동생 요시오는 겁쟁이다. 마사코는 반야 가면만 보면 심장이 격렬하게 띄며 경악한다. 요시오는 밤에 화장실 갈 때마다 귀신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며 그냥 오줌을 싸는 버릇이 있다. 마사코는 동생 요시오의 공포가 엄마와 아빠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요시오가 공포에서 벗어나게끔 회복시킨다. 하지만 정작 마사코 자신의 고소공포증과 반야 가면에서 오는 의문 모를 공포감은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날 강렬한 악몽을 꾼 마사코는 절친한 친구인 분이치와 함께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옛날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옛친구 에츠를 만나고 자신이 왜 높은 곳에서의 현기증과 반야 가면에 대한 공포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과거 기억을 완벽하게 되찾게 된다.
과거의 모습을 회복한 마즈코는 집에 오는 길에 동생의 용기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The Other World』의 경우도 시간이동의 이야기다. 하지만 설정되는 미래는 훨씬 더 멀며 시간이동의 내용은 더 복잡하다.
노부코는 귀가길에 항상 귀찮게 하는 불량학생 3명을 마주한다. 어느날 여김없이 불량한 애들과 만나게 되는데 옆에 함께 걷던 같은 반 우등생 시로가 불량학생들에게 대들다가 타격을 입는다. 내심 강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던 노부코는 불량애들한테 맞고도 담담한 시로가 이해되지 않는다. 노부코는 집에 와서도 시로의 무덤덤한 반응이 계속 신경이 쓰였고 시로의 몸상태가 걱정되어 전화하려는 순간.. 눈앞이 기우뚱 하고 흔들리더니 초점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대략 2천년이 지난 3921년의 도쿄시로 장면은 넘어간다. 베라트론 연구소의 시간양자학자 노부는 광자기 연구실험을 진행하다가 실패한다. 그러면서 큰 폭발이 발생한다. 그리고 다원우주와 동시존재라는 복잡한 과학적인 설명이 소개된다.
다시 노부코의 집으로 시점이 옮겨가고 귀가길에서의 불량배들의 만남이라는 동일한 사건에서 예전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노부코는 경험한다. 어쩌면 노부코 자신이 과거 원했던 장면이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할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시점은 또 바뀐다. 이번에는 더 다른 세상으로 간 것 같다. 학생의 신분이 아니다. 없던 쌍커풀이 생기고 핸드백 안에는 커다란 백금 케이스의 콤팩트.. 전부 최고급품이다. 이게 정말 나일까?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싸인을 해달라고 한다. 소설의 말미에 노부코는 외친다.
"싫어! 이젠 싫어! 싫으니까 나를 원래 세계로 돌여보내줘!"
뭔가 짧고 갑작스럽게 몰아가는 이야기가 아쉽긴하지만 1960년대 쓰여진 내용임을 감안하면 그 놀라운 상상력과 소재설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복잡한 시간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쉽게쉽게 풀어간다는 점이 좋다. 물론 말미의 이야기를 더욱 연장하면서 시간의 폭을 넓혀 한 권의 장편소설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소설은 보편적으로 읽기 수월하고 특이하다. 게다가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필름화할 수 있는 소재가 풍성하다. 즉 소설에서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영화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느낌을 일본소설을 접하면서 자주 느낀다. 사실도 그렇지 않은가? 일본문학이 애니나 영화로, 더욱이 한국영화와 방송에까지 원작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다반사가 아니었던가? 영화라는 또다른 장르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일본작가들의 역량과 상상력이 부러울 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아쳐서 읽은 흥미있는 책이었던 만큼 신속하게 애니메이션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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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다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