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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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나라 시에라리온은 내게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하여 그 나라가 겪은 참상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 약 5백만 명의 작은 나라이자, 평균 수명이 25~35세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나라이며, 인구 대비 신체 장애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그리고 인구 대비 난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정보가 머리속 기억 저장소에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에라리온이 그런 프로파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동기에 있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10년의 내전에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과 인권 말살이 이 작디 작은 국가에서 십 여 년이 넘도록 일어난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그때...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책 표지>
 

  열두 살의 나이. 과연 열두 살의 내 초상은 어떠했을까? 영원히 정지해 있는 내 삶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 본다. 열두 살이면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다. 동네 개천에서 가재와 개구리를 잡고, 공을 차고 놀며, 팽이 돌리기와 딱치치기에 몰두했던 열두 살의 초상이 떠오른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이스마엘 베아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인간이라는 동일한 종족으로 동시대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외면하듯 나의 열두 살과 그의 열두 살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상대적인 차이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사는 것에 대한 절대적 기준의 차이이자,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한 어린 소년의 처절한 아픔이요, 상처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군과 반군의 수 년에 걸친 전쟁을 통하여 시에라리온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옥이 되었다. 정치적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의 머리를 베고, 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전부 불태우고, 아들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강간하도록 강요하고, 시끄럽게 운다고 갓난아기들을 반 토막을 내고,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라 아기를 끄집어내 죽이는 등 인간으로서, 아니 짐승이라도 할 수 없을 만한 짓들이 일어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른들의 엽기적이고 광기 어린 행태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두려움의 데드 수치를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황폐한 영혼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소년병>이라는 것이 조직되어 아이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살육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에라리온은 지옥 중에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처참하다.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이스마엘과 그 친구들의 기나긴 여정은 뜻하지 않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피폐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총과 칼로 무장한 소년병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부모와 이웃을 죽인 원수들 밖에 없다. 가는 곳마다 총을 난사하고 칼을 휘두르는 어린 아이들의 생생한 장면을 읽어 내려가면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일렁거리며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죄라면 시에라리온에 태어난 것. 고작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이길 포기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몸 속에서 들끓는 전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극히 어린 나이에 못 볼 것을 보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야만 했던 이스마엘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하여 아픔과 상처, 회복과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스마엘은 AK-47을 들고 사람 죽이는 일이 물 마시는 일보다 쉬운 것이라 외치며 환호한다. 더 나아가 지치고 상처받은 심신을 위로받고자 코카인과 마리화나 등의 마약을 친구로 벗삼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옥같은 곳에서 구원받고, 치유받으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이스마엘을 아껴주고 보듬어준 간호사 에스더를 통하여 이스마엘은 <사랑>이라는 인류 최대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고, 점점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스마엘에 대해 에스더가 보여준 관심과 사랑은 이스마엘이 안정감을 누리고 회복할 수 있는 추동이 되면서 따뜻하고 위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잠시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생각의 시선을 돌린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단 3년 사이에 400만 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잔인한 전쟁을 겪은 나라. 이 전쟁으로 제조업 시설의 절반과 철도의 75% 이상이 파괴된 폐허의 나라. 1961년 연간 1인당 소득이 82달러로, 당시 가나의 1인당 소득인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 하지만 그 이후 40여 년의 시간차를 넘어 GDP 2만불,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그 어떤 칼이나 총으로 위협받지 않고 두 발 뻗고 잠 잘 수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행복지수를 부여했던가? 열두 살의 어린 소년 이스마엘이 겪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말살을 목도하며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는 내 자신을 동시에 목도한다. 그리고 새삼 감사를 사유(思惟)한다. 

  비단 시에라리온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곳은 적지 않다. 정치적인 이유로, 또는 가난과 기근으로, 또는 질병과 무지의 이유 등등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좁게는 우리 주변의 질병과 가난과 장애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 넓게는 시에라리온을 위시하여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외민족들까지 제법 인간답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을 돌아보고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음은 자명하다.  

  <인권>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권은 그 어떤 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것이다. 우리는 신으로부터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라는 의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인간이 함께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평화를 이루고 지향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평화, 그리고 단지 우리 시대만이 아닌 영원한 평화를 말이다. 우리가 이 작은 행성에 공존하고 있는 이상, 같은 공기를 마시며 동일하게 2세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인간>들이란 사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바로 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생각하자. 이 권리는 절대 명제다.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인간도 이 명제의 카테고리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된다. 이는 개인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치이자, 동시에 신이 인류에게 질문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직 인간만이 이런 아름다운 지구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과 특권을 선사받은 유일한 종족이기 때문에 이 절대 명제를 완성키 위한 생명수 또한 인간 자신에게 있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나에게 하늘이 자기를 쳐다보고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는 말을 걸어준다고 하셨다. "언제나 하늘에 모든 것에 대한 답과 설명이 있단다.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혼란이든, 뭐에 대해서든 말이다." 그날 밤 하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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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벨로의 마녀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두빈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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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없음.
※ 다소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서평을 썼음. 그 시각의 농도는 심히 옅은 편이지만 읽는 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없기를 기도할 뿐.

 

신을 향한 인간의 천착은 끊임이 없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신에 대한 갈증의 농밀함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알고, 경험하며, 믿는 수많은 종교의 이면에는 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이 담겨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종교성은 어쩌면 인류역사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신과 인간은 언제나 공존한다는 명제에 동의하게 된다. 이를 풀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전지전능한 신의 절대성은 시간의 구속을 초월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의 시간대에서 통합된다. 반면 철저하게 시간에 구속된 인간은 항상 현재로 존재하는 신과는 다른 시간의 성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즉, 신은 언제나 현재의 시간으로 존재하면서 과거의 인간을 만나고, 현재의 인간을 만나며, 미래의 인간을 만난다. 

  2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온 파울로 코엘료는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통해 신의 여성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모성의 근원과 그 본질을 탐구하고 싶었고, 이 사회가 왜 신의 여성성을 속박해왔는지 묻고 싶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코엘료의 고백에서 신을 향한 인간의 목마름, 그리고 신과 공존하고 있는 현재적 인간을 새삼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코엘료 자신의 의지가 철저하게 반영된 듯, 그의 신작 『포로토벨로의 마녀』는 우리가 흔히 인식해왔던 신의 남성성과 배치된 여성성으로서의 신을 조명하고 있다. 권위적이며 공의적이고 규범적이라는 기존의 신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제시하며, 자애롭고 보듬어주며 희생적인 신의 다른 면을 부각하면서 대조한다. 아테나라는 한 여인의 짧은 삶을 통해 그동안 감추는 것이 미덕이었던 여성성에 대한 강렬한 찬사를 발산하고 있다.  

  역사는 남성적 가치를 지향해왔다. 역사적으로 동서를 막론하고 지구상의 모든 종족과 국가는 여성에 인색했다. 여성의 존재감은 아예 없거나, 또는 있거나 말거나, 또는 보다 발전된 공동체에서 남성을 돕는 존재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여성의 존재감은 중세를 넘고, 19세기의 페미니즘 태생의 시기를 넘어, 작금의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남녀평등이 당연한 인류 보편의 가치로 인식될 정도로 진보했다. 코엘료는 마치 지난 수 천 년 동안의 여성의 빈곤했던 존재감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를 피력하듯, 인간 여성에 대한 찬가는 물론, 남성에게 독점된 잃어버린 신의 정체성의 반쪽까지 건드리고 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인 아테나의 삶은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다. 춤을 추고 글을 쓰며 자신의 공백을 확인하면서 그것을 채워가는 그녀의 행동은 기묘하지만 다분히 철학적이다. 소설의 중반부 이후 마녀로서의 본격적인 아테나의 신성이 발휘된다. 아테나의 인성과 아야소피아라는 신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녀는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며 제자를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기존 종교(기독교)의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장하며 극도의 이단성을 발산하는 아테나의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호와 분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기존의 것,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것, 진리라 여겼던 것에 대한 아테나의 도전은 자신의 수제자 앤드리아에게 그 역할을 넘기며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것으로 소설 안에서 일단락된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코엘료가 소설의 창작 목적으로 언급했던 '신의 여성성 탐구'라는 외연적 동기는 <사랑>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내포적 목적을 수식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이 갖는 가장 강력한 힘의 표준어인 <어머니>라는 단어는 <여성으로서의 신>과 동의어로 소설속에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어머니의 자비로움과 편안함이라는 모성적 사랑을 신의 성품에 반영하여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난 또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파울로 코엘료는 신의 여성성을 탐구한 것이 아닌, 사랑과 자비라는 있는 그대로의 신성 그 자체를 탐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남성과 여성, 암컷과 수컷의 개념은 그것을 창조하고 구분한 절대자에게는 구속할 수 없는 개념이다. 신의 신성, 즉 신적인 성품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로 구분되거나 특징 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방향이 바뀐 것이다. 거꾸로 신의 성품이 남성과 여성으로 존재하는 인간에 녹아든 것이며, 그것은 철저하게 일방통행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신의 의지며 주권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것, 그리고 신이 선(善)하다는 것까지를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집어 넣은 당신의 작업에 겸허하게 되는 동시에 신성을 남성성이냐 여성성이냐 하는 등의 기준으로 들이대지 못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성은 차원을 논할 수 없는 절대적 상위개념이며, 남성과 여성은 신 안에 구속된 종속적 하위개념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된 방향성을 확인하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파울로 코엘료의 하나님 탐구와 사랑에 대한 천착은 매우 감미롭고, 충분히 아름다우며, 결코 가볍지 않다. 다시각적 인터뷰 형식과 극적 반전이라는 기계장치를 통해 가슴 두근거림과 긴장감을 제공하며, 어렵지 않으면서 충분한 무게를 함의한 문장을 통해 신과 사랑을 탐구한 파울로 코엘료의 기술에 나는 심히 매료되었다. 쏟아지는 아포리즘의 홍수속에서 하나님과 사랑과 여성과 나 자신을 동시에 사유(思惟)할 수 있도록 한 코엘료의 언어 연금술을 상찬하며 별 다섯 개를 흔쾌히 던진다.
 

오늘날의 사회는 "모든 것은 설명 가능하다"는 오해에 사로잡혀 있다. 사회는 우리가 세상에, 또 우리 자신에게 완벽하게 투명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 속엔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어떤 공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신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p. 398,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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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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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력서>라는 양식은 전혀 낯설지 않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직을 준비하면서 대략 백여 통에 가까운 이력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본 프로파일은 물론이요, 학력과 경력과 자격 등의 내 자신의 현주소를 최대한 그럴듯하게 수없이 써내려갔던 당시 취업준비자의 마음가짐은 과히 대단한 열정과 비전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었음을 회고한다. 

  나카무라 코우의 '새로운 시작 3부작'의 첫 번째 시리즈 『이력서』는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력서의 통념과는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한자와 료는 취직을 하기 위한 통과의례절차에 불과한 이력서와는 전혀 다른,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며 기념하는 새로운 이력서를 창조한다. 누나의 친구를 만나는 것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심야에 체조를 하며 우연찮게 만난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료는 자신만의 이력서를 채워가고 있다. 

  인간은 꽤 오랜 시간을 산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80년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면 긴 시간이기도 하다. 80년이라는 거대한 인생의 항해 앞에 불과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는 초라해 보일 따름이다. 나무가 모여 숲이 이뤄지듯이, 우리의 하루하루 일상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단지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일 분이라도, 그 시간은 매우 소중하며 낭비할 이유가 없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대한 조악한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에 대한 존재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망각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비록 작고, 짧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의 편린들로 소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겸허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하고 리드미컬해 질 것이다. 

  작은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 하나도 내가 이룬 <이력>임을 자각하며 나만의 이력서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력서』는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이력이 발생하고 또 하루가 지나게 되면 새로운 이력이 발생하는, 그런 소소한 이력의 편린들이 우리네 인생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잔잔하게 얘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비록 리듬감이 없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진 않지만, 쉽고 편안하고 잔잔한 문체로 인생의 부분적 시간들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반갑진 않지만 나쁘진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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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100호점의 숨겨진 비밀 - 대한민국 1등 브랜드
마케팅컨설턴트 맹명관 엮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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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2일은 세계 유통역사를 다시 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전 세계 10여개국, 4,400개의 점포, 190만명의 임직원, 3,450억 달러의 매출액을 자랑하는 세계 초일류 공룡기업 월마트가 한국시장에서 두 손 들고 철수를 선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거대자본과 뛰어난 경영감각으로 가는 곳곳마다 승승장구를 일궜던 월마트의 한국시장 철수는 <이마트>라는 작지만 거대한 존재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외연적인 상황과 더불어 이를 목도하는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심어준 것과 유통시장의 현지화에 있어서 핵심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내포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인공위성을 띄워 전 세계 농작물의 분포를 포함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관리 시스템으로 유명한 유통업계의 골리앗 월마트의 한국 철수는 할인점 마케팅 업무를 보고 있는 내게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까르푸와 비앤큐코리아 등의 외국계 할인점의 철수 건은 차치하더라도 설마 월마트까지 철수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트, 롯데마트의 토종할인점과 약진을 하고 있는 외국계 테스코와의 경쟁에서 상당한 뒤쳐짐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월마트 본사에서도 고심이 많았던 것 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관리방법에 변화를 주거나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을 불러 일으켜 한국시장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의심치 않았기에 월마트 철수에 대한 충격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계 초일류 골리앗 유통업체 월마트의 아성을 무너뜨린 토종 국산 유통업체 이마트는 도대체 어떤 기업일까? 어떤 무기와 강점을 지니고 있기에 골리앗 월마트를 불과 10년 만에 한국시장에서 내쫓을 수 있었던 것일까?  

  마케팅컨설턴트 맹명관 씨의 『이마트 100호점의 숨겨진 비밀』은 다윗 이마트가 골리앗 월마트를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생동감 있게 알려주는 책이다. 월마트의 세계적 성공의 현주소와 한국적 실패의 현주소를 분석하여 월마트코리아의 한국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의 기호와 소비문화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전통적인 할인점 경향에 변화를 꾀한 이마트의 성공원인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알려주고 있다. 더욱이 당시 이마트 성공의 주역인 임원들과 이마트 우수 협력업체 CEO들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어 현재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이마트의 생동감 있는 현주소를 조명하고 있다. 

  이마트의 성공요인을 몇 가지 핵심적인 사안으로 추리면, 철저한 고객중심주의 경영, 한국인 기호에 맞는 매장 레이아웃, 선도적 물류 시스템의 도입, 신선식품의 매장화 구축, 잘 다듬어진 윤리 경영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미 야채, 과일, 채소, 고기 등의 신선식품은 이마트의 생명이 되어 있다. 또한 타경쟁사의 진열집기가 한국인 체형에 맞지 않게 높게 설계되어 잇는 데 비해, 이마트는 주 고객 층인 주부들의 눈높이 이내로 설계하여 편한 쇼핑이 가능하다. 넓은 고객 동선과 과학적이며 지역적인 선도적 물류 시스템의 도입 또한 지금의 이마트를 만든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마트 협력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내게 이마트라는 한 유통기업의 존재감은 언제나 동경과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어왔음을 고백한다. 경쟁사인 롯데마트와 테스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마트>의 대내외적 지표의 인과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리라. 개인적으로 이마트가 갖는 특강점 중 '윤리 경영'이라는 것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윤리적으로 경영을 한다는 것인데, 이마트 지점 발주담당자와의 상담과 교류를 통해 이마트 직원들이 얼마나 깨끗하며 도덕적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거래처 직원과의 식사, 제품의 반품 건, 로스(loss) 지원 여부 등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몸에 벤 윤리성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찬란한 상도의라 상찬해도 인색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 생각해보라. 거래처 직원과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도 자신의 분량을 위해 묵묵히 100원 짜리 동전 두개를 자판기에 집어 넣는 고집있는 이마트 직원들의 모습을. 

  물론 이마트가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00여개가 넘는 매장으로 독과점적 위치에 있다는 여론이 많고, 무엇보다 할인점의 포화로 인하여 재래시장의 타격이 녹록지 않음에 따라 긍정적인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이마트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과 사회 환원 제도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고심과 노력의 흔적일 것이다.  

  이제 더이상 이마트는 할인점이 아니다. 이마트는 한국인의 놀이요, 문화며, 삶이자, 친구이다. 어린 아이들이 이마트 매장에서 뒹굴며 공을 차고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고객을 편안하게 하는, 다시 말해서 고객이 있고 싶게끔 만드는 이마트만의 매력은 경쟁사로 하여금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할인점이 더이상 물건만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닌, 먹고 놀고 나누며 공감하는 곳으로의 진보를 꾀하고 있는 작금의 변화를 목도하면서 앞으로도 이마트의 계속된 변화를 지지한다. 그 변화의 바람을 통해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 초일류 유통기업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993년 1호점 창동점을 시작으로 할인점의 선도기업으로 유통시장을 이끌어 온 이마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은 물론, 사업 초반의 국내 킴스클럽과 1996년 유통개방 이후 월마트, 까르푸의 외국 유통업계와의 전쟁을 불사르는 경쟁, 그리고 이마트의 외부적, 내부적 경쟁력에 이르기까지 한 기업의 성공신화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재적인 내용으로 정리한 『이마트 100호점의 숨겨진 비밀』을 할인점으로 대변되는 신유통시장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거나 경영&경제에 관심이 있는 수많은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에게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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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기술
레일 라운즈 지음, 임정재 옮김 / 토네이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장기라는 흥미있는 게임이 있다. 2,200년 전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을 자그만 나무판 위에 고스란히 올려놓은 게임으로서, 오랜 기간동안 많은 동양인들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장기판의 배경이 되는 초한전쟁은 결국에는 한나라의 승리로 종결된다. 사실 초나라의 수장인 항우와 한나라의 수장인 유방의 개인적 배경을 비교하면 전자의 압도적인 우위로 정리된다. 대대로 장군직을 지낸 명문 귀족 출신인 항우와, 이름없는 백정출신인 유방은 시작시점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숙부 항량과 함께 강동(양자강 하류)에서 거병, 양치기를 하던 초의 왕족 심을 회왕으로 추대하면서 반군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항우와 일개의 녹록한 유격대장으로 반군에 가담한 유방과의 시작점은 천양지차라 할 만큼 확연히 구별된다. 하지만 종국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이에 대한 여러가지 이유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넓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관찰하면, 유방과 항우의 <사람>을 얻는 기술에서의 현격한 수준차이의 인과관계였음이 확인된다. 

  유방은 거의 모든 면에서 항우에게 뒤졌지만, 사람을 얻고 다루는 기술, 단 하나의 장점만을 갖고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유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유방의 친화력은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동기가 되었고, 능력과 직분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고 신뢰함에 따라 힘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천하의 대세에 대한 일은 장량의 말을 전적으로 신임하였고, 군사는 모두 한신에게 위임하였으며, 내정은 모조리 소하에게 맡겨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정하여 그 힘을 다하게 하였다. 인사에 있어서 형편없던 항우와의 상이한 유방의 용인술은 그의 많은 단점을 커버하면서 최후의 승자가 되어 종국에 한제국을 건국하는 동기가 되었다. 사람을 얻고 다루는 기술. 그 차이 하나만으로 천하의 승패가 갈라졌던 것이다. 

  레일 라운즈의 『사람을 얻는 기술』은 바로 이러한 사람을 얻는 기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책이다. 총 82가지의 기술을 강렬한 목소리로 피력한다. 언어, 배려, 경청, 칭찬, 미소, 진심 등의 수많은 대인관계의 기술적 요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겪은 경험담과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관찰된 도전담들을 정갈하고 자신감 있는 문체로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는 것는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데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무려 9가지의 소제목으로 다양하게 얘기하고 있다. 칭찬의 다양성과 타이밍, 분위기와 미소, 받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저자 자신이 겪은 경험과 관찰을 자원으로 한 도전적 글귀들을 들려준다. 
☞ 그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를 칭찬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그 어떤 칭찬보다도 조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p. 193) 

  언어의 사용 또한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술 중 하나다. 저자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어서인지 상대를 배려하는 것, 특히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언어생활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신중치 못한 말의 사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적으로 돌아서는가. 사람을 소재로 한 농담이 순간적인 싸구려 웃음을 가져다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한 사람을 영원한 적으로 만드는 길이며, 인간관계에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절대로 상대방을 폄하하지 않는다는 인과성을 생각할 때 언어사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닌 너를 세워주고, 배려하며, 감싸주는 언어야말로 너를 얻는 기술의 절대적 전제조건임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실수를 빗대어 농담하지 마라. 그리고 상대의 약점을 빗대어 장난하듯 말하지 마라. 당신은 전혀 악의가 없었다고 강변할지 몰라도, 악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p. 126) 

  언제나 자기계발서를 읽은 후에 동일하게 남는 부담스런 생각의 찌꺼기가 있다. 과연 내가 이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지혜와 교훈에 동의하는 것과 정작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의 불일치가 불편하기만 하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독서가들의 비행동화를 감안했는지, 에필로그에 매우 중요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사람을 얻는다는 건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행동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에 힘입어 성격이 만들어지며, 성격이 바로 운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운명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깔끔한 메세지로 책의 막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가정이나 회사나 국가, 그 어떤 공동체라 할지라도 세상 모든 가치는 결국 사람이 창출한다. 사람이 시작이며, 사람이 끝이고, 사람이 전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결과가 바로 성공의 길이자, 세상을 얻을 수 있는 힘이다. 대인관계에 두려움이 많은 이들이나 인간관계의 개혁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레일 라운즈의 『사람을 얻는 기술』을 살포시 추천하는 바이다. 
 

☞ 무릇 상대를 사로잡는 첫인상은, 상대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편안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p. 37) 

☞ 당신이 구사하는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어 당신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당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배려, 그것을 당신의 매력이라고 여기는 사람만이 당신의 사람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는 것,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큰 애정과 신뢰를 만든다.   (p. 52) 

☞ 모임에서 특별한 만남을 원한다면, 당신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선택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라.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거나 좋은 지식을 내보이지 못해 안달할 필요 없다. 중요한 건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름답다는 확신,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자신감이다.   (p. 229)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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