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황제(Imperor)'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두가지 면이 공존한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전자가 강하다는 것,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 신성한 것 등으로 정리된다면, 후자는 폭정, 잔인한 것, 백성들의 고통 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재위하는 황제가 성군일 경우 백성들은 행복하고 국가는 태평성대를 누리지만, 폭군일 경우에는 온갖 피바람이 일어나면서 백성들의 찢어지는 고통이 발생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B.C. 200년 즈음에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후 약 2,000년 동안 중국사는 황제의 역사였다. 하나의 왕조가 탄생될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백성들의 고통과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이며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암투속에서 대략 200여명의 황제들이 2,0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다. 중화민족사 연구회 회장인 사식(史式)은 『황제들의 중국사』를 통해 진시황제 이래 2,000년의 중국역사를 황제라는 절대 권력자의 존재를 통해 관통하고 있다.  

  저자 사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통념과는 배치된 의견을 제시한다. 역사는 오로지 사실 안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성공과 실패로만 역사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결과보다는 동기 차원에서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당 맞는 얘기다. 우리가 학습하는 과거의 역사 자체가 승자의 역사일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하기에 과정론적으로 역사와 인물을 천착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은 심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지나친 과정 중심의 역사 해석은 역사의 긴 줄기라는 측면에서 역사의 인과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어떤 과정으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발생한다는 역사의 인과성은 역사 자체를 넓고 깊게 보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역사적 통념을 전복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그 논거가 지엽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해서 읽는 내내 적잖은 부담이 발산된다.  

  예컨데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하지 말라는 강렬한 문장을 시작으로 유방과 항우를 비교한 저자의 주장과 논거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항우는 진실된 사람이요, 훌륭한 장군이요, 양심이 있는 영웅이다. 하지만 유방은 출생이 미비한 천민이요, 전쟁을 모르는 자요, 은혜를 모르는 소인배다. 그런데 어떻게 유방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저자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용인술'에 기인한다. 저자는 항우의 단점은 사람을 잘 쓰지 못한 것이었고, 유방의 장점은 사람을 잘 쓴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유방의 용인술은 항우와 비교하여 유방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비꼬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얻고 다루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사에 있어 성공과 실패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식할 때, 유방의 승리는 당연한 인과성의 순리라 할 수 있다. 항우라는 개인이 가진 장점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 흠모를 표현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으나, 그 주관적 잣대를 논거로 승자와 패자의 역사적 인과성을 무시하며 일반적 통념을 전복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진시황제가 평생 남에게 통제당하며 살았던 황제라고 주장하며 이런저런 논거를 즐비하게 늘어 놓는다. 또한 뛰어난 전략가였던 조조에 대한 주관적 비방도 강렬하게 내뿜는다. 더욱이 '정관의 치'와 '개원의 치'로 대변되는 중국사 최고의 태평성대를 일군 당태종 이세민과 당현종 이융기의 존재감마저 건드리고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과 해석은 좋은 것이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객관성을 잃을 때에는 접하는 이에게 설득력을 얻기 힘든 법이다.  

  황제의 자질을 평가하는 저자의 일관된 잣대는 <덕성>과 <도덕성>으로 함축된다. 황제는 정직하고, 양심이 있어야 하며,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진시황부터 옹정제까지의 15명의 중국황제들을 다루면서 오직 덕과 도덕의 기준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물론 덕성과 도덕성을 갖춘 군주가 좋은 군주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의 어느 나라의 역사보다 개국과 망국이 많았고, 그에 따른 왕조 교체가 빈번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 황제사 2,000년의 특질을 깊이 사유할 필요가 있다. 죽고 죽일 수 밖에 없는 왕조 교체의 반복된 혼란상, 그리고 진시황 이래 계속되어진 절대적인 권력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봉건주의 사회라는 점을 곱씹는다면 덕과 도덕의 잣대로만 한 영웅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저자가 언급한 <도덕성>의 잣대를 작금의 시대로 들이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위정자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정치인의 자격요건이 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한 자가 어찌 국민과의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겠는가? 실수한 대통령은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말 하는 대통령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미국 유권자들의 정치 철학은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대통령을 갖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존재감을 정갈하게 대변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 중국의 군주제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하다. 서양과는 달리 별다른 견제장치가 없었던 중국식 황제 제도는 결과적으로 전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력하게 피력한다. 사실 그렇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속성이 있기에 세계사에서 가장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가졌던 중국 황제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불행의 2,000년 역사를 만든 동기가 되었다. 극소수의 성군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혼군이나 폭군이었던 중국 역사 2,000년은 인간이 힘과 권력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교훈이 된다. 

  저자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지나치게 주관적인 영웅 해석이 되어버린 책이지만, 황제라는 절대 권력자를 통해 2,000년의 중국 역사를 관통한 점, 그리고 몇몇 중국 황제들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일반적 통념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점에 대한 신선한 시도와 용기는 반갑기만 하다. 불완전한 인간의 특질, 일인 절대 권력 체제의 허구, 중국식 황제 제도에 대한 모순 등은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에게 여러가지 각도에서 다양한 사유를 하게 한 주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의 중국식 절대 봉건사회를 이름만 들어도 번쩍하는 몇몇 황제들의 존재감을 통해 관통하고 싶다면 사식의 『황제들의 중국사』 는 적잖은 흥미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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